
Lethal Upgrade
양요섭x이기광
by. 프록시마 (@D_alpha_stage)
※ Lethal Upgrade라는 제목은 Forever Bound의 동명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음을 알려드립니다.
※ lethal: 치명적인, 죽음의, 죽음을 불러오는
July 26nd AM 3:07
in Lucid, 제35통신실
-...섭아, 들...? ...어나.
요섭은 곯아떨어져 코를 골고 있었다. 통신실에 살다시피 하며 앉은 자리에서 먹고, 자고 하기를 벌써 몇 주. 교대를 붙여 주겠다고 해도 만류하며 끝까지 혼자 하겠다 우긴 탓에 제대로 된 잠을 자 본 적이 없을 게 뻔하다. 미련하긴. 한쪽 이어헤드가 볼에 들러붙은 채 우습게 숙여진 요섭의 고개를 화면 너머로 지켜보던 기광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바락 소리를 질렀다.
-야! 양요섭, 안 일어나?! 애인이 임무 나가 있는데 졸다니!
“어...으허얽?!”
-3교대 싫으면 2교대라도 하라고 그렇게 얘기했건만, 꼭 쓸데없는 데서 고집을 부리더라? 언제까지 버티나 했다.
“으...어어...기광아, 왜, 왜. 무슨 일인데...?”
-침부터 닦고 얘기해라, 밥통아.
멍한 눈빛으로 턱에 소매를 가져다 대는 요섭을 기광은 한심하게 쳐다봤다. 아직도 잠에 취해 계시는구만. 세수라도 하고 와, 라고 툭 던지자 고개를 힘차게 흔드는 요섭이다. 잠을 깰 요량인 건지 기지개도 켜고 얼굴도 찰싹찰싹 때려대더니 아까보다 또렷해진 눈동자로 기광을 응시한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쌍꺼풀진 눈에 천천히 눈을 맞추며 기광은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나 업그레이드 좀 시켜주라.
“...야. 그게 자던 사람 깨워 놓고 할 소리냐.”
응. 야속하리만치 단호한 대답에 요섭이 울상을 지었다.
“9단계 업그레이드 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그래.”
-4일.
“야, 내 말이 그런...! ...아니다, 말을 말자. 요즘따라 왜 이래, 너.”
-내가 뭐.
딱 보면 모르냐, 멍청아. 너란 남자, 업그레이드 하는 속도로 신기록 갈아치우고 계시다구요. 한 달도 안 돼서 9단계 찍은 게 말이나 되냐구. 여태껏 제일 막 나가던 애가 6단계까지 업그레이드 하는 데 걸린 시간이 한 달이란 말야. 최근의 너 자신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폭주하고 있는지 넌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그러니까, 지금 너는 너답지 않게...
“너답지 않게, 위험한 임무 막 뛰어들고. 이렇게 몸 혹사시키고. 아무리 어려운 임무였어도 너, 7단계 넘어간 적 없잖아. 누구보다 신중하고 안전을 중시했던 너인데...진짜 왜 그래, 걱정되게.”
-너도 알잖아. 이번 임무, 정말 힘들고 어렵다는 거.
“아무리 어려워도 킹사이즈 전갈 때려잡는 것보다 어렵겠냐, 아오 진짜...뭐 8단계까지는 이해해. 9단계로도 모자라서 10단계가 뭐냐고, 10단계가.”
-...이번 거는 꼭 필요한 거야.
“네네, 저번 거는 뭐 꼭 안 필요한 거였습니까.”
-그런 게 아니야!
아이쿠 깜짝이야. 아니면 아닌 거지,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런다냐. 요섭은 어깨를 조그맣게 튕기며 이어헤드의 음성 출력을 절반으로 낮췄다. 애인 목소리 좀 크게 들으려다가 고막 다 나가겠네. 음성 출력을 무식하게 높여 놓은 과거의 자신을 살짝 원망하면서, 요섭은 의자 등받이에 길죽하게 등을 걸쳤다.
-두준이 마지막 생명 신호가 이 근처에서 감지됐어. 이 근처에 마지막 바이탈 포인트 박아 놓고 갔다고.
“기광아...요즘 누가 바이탈 포인트 근처에서 죽어. 요원들 웬만하면 바이탈 포인트 안 박는 거 알잖아. 최근 5년간 마지막 바이탈 포인트 근처에서 시신, 아니 소지품이라도 발견된 요원 봤어?”
-...그래, 그렇지. 그런데...두준이한테는 해당 안 되는 얘기잖아. 두준이가 매일 하던 말 기억 안 나? 바이탈 포인트는 생명선이다, 우주선에 연결된 줄 같은 거다. 틈 날 때마다 박아 둬야 문제가 생겨도 구조될 확률이 높다고 말이야. 아무리 쉬운 임무를 나가도 바이탈 포인트는 꼭꼭 박았던 두준이니까, 분명 이 근처에 있을 거야. 확실해. 근데 이 망할 9단계 탐색장비가 말을 안 듣잖아...
“얼마나 썼으면 4일 만에 그래. 팀장님 바이탈 포인트 개수가 많아서 확인하는 작업이 힘들었다 쳐도 이건 심해. 장비 성능이 좋아지면 내구도가 떨어진다지만 이렇게 빨리는...확실히 네 장비 운용에는 무리한 감이 있어.”
그리고, 네 몸에도.
요섭은 기광을 알기 전에 맡았던 파견 요원 하나를 떠올렸다.
-무리하면 뭐 어때.
‘...임무만 완수하면 되는걸.’
제일 막 나가던 애. 요섭에게 동운은 애물단지였다. 중간 난이도 이상의 어려운 임무를 나갈 땐 뭐 하나씩 부숴먹고 돌아오고, 꼭 필요하지도 않은 업그레이드를 주저 없이 해대고. 유능한 요원이긴 했지만, 안전보다 속도를 중시했던 성격 탓에 장기 임무에서 10단계를 찍었던, 그렇게 안타깝게 가 버리고 말았던. 빠른 것을 추구하는 게 동운의 스타일이긴 했지만 그게 명(命)에도 적용될 줄은 몰랐던 요섭이다. 과하게 부주의하던 동운 다음으로 요섭이 맡은 건 과하게 신중하던 기광이었다. 전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겠거니 했는데, 지금의 기광은 그때의 동운보다 더 막 나가고 있다...요섭은 불안해졌다.
-이대로는 분석 힘들어. 업그레이드 시켜 줘, 요섭아.
“야, 9단계 정도 내구도면 정상 운용했을 때 2주는 가. 너 지금 엄청 무리하고 있는 거라고. 팀장님 찾는 거, 물론 중요하지. 그런데...너 자신까지 버려 가며 할 만큼 중요해? 또 업그레이드 하면, 알잖아. 너 진짜로 못 돌아와!”
-그쯤이야, 뭐. 임무 들어올 때부터 각오했어.
“아니, 못 돌아오는 건 둘째 치더라도 너, 못 버텨. 네 몸이 못 버틴다고. 너 자신을 괴롭히고 싶은 거면 지금까지로도 충분해. 10단계 업그레이드 별명이 괜히 죽음의 업그레이드겠어? 괴물, 천재로 유명했던 요원들도 채 3일을 못 버티고 죽어나간 게 10단계야. 이제는 네 몸 망가뜨리는 일, 그만해. 넌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걸로...”
-양요섭.
기광은 약간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아니,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아니 공허한 눈으로 화면 속 요섭의 뒤쪽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알쏭달쏭한 표정이었지만, 그 얼굴에 드러난 감정이 기쁨이나 행복 같은 것이 아님은 분명했다.
요섭은 입술을 깨물고 기광을 바라봤다.
-지금 나보고 두준이를 포기하라는 거야? 우리 팀원, 아니고 팀장을?
“...기광아.”
-두준이는 유능한 요원이었지, 과거형이지만. 재수 없는 소장이 두준일 임무에 혼자 보내지만 않았으면 현재형일지도 몰라. 소장은 그 임무가 혼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위험하단 사실을 분명히 알아. 아는데도 두준일 보냈던 거야. 물론 그 임무의 위험성을 용 소장만 알고 있던 건 아냐.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팀원들, 루시드 요원들 다 알잖아. 두준이도 알고 있었겠지. 아는데...그런데, 그런데 왜 갔을까.
기광의 눈동자가 요섭의 눈동자와 똑바로 마주쳤다. 기광은 눈빛으로 묻고 있었다. 왜 말리지 않았어?
두준은 촉망받는 인재였다. 리더십이 탁월해 팀을 잘 이끌어 나갔고, 사교성도 좋아 딱히 적이랄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대로 가 버리기엔 참 아까운 사람이었다. 요원으로서 부족한 점도 없고, 모두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모두의 존경과 사랑.
모두. 루시드 요원들, 같은 팀의 팀원들, 우리 팀 파견 요원들, 이기광.
그리고 치졸하고 더러운 질투.
그건 위험천만한 임무였다. 성공은커녕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도 보장하기 힘들었다. 당연히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요섭 자신으로서는 무리였지만, 요섭의 직속 선배를 통하면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두준이 떠나기 일주일 전, 기광이 자신의 팔을 붙잡아오며 울음을 터뜨렸을 때, 자신은 절대로 막을 수 없을 거라고. 그냥 포기해 버렸다.
우리 두준이 좀 살려달라며 정신을 놓아버릴 것처럼 울던 기광이, 나약해져 바스라질 것만 같던 몸이 무너지는 것을 요섭은 잡아주지 못했다.
치졸하고 더러운 질투, 그건 용 소장의 것과 같은 마음.
처음으로 이성이 감정에 무릎을 꿇었고, 기광은 울었고, 두준은 떠났다.
그리고 너무 당연하게도 돌아오지 않았다.
-요섭아...
그건 모르는 척하면 안 되는 거였다. 과거뿐 아니라 현재든, 미래든. 입맛에 맞지 않는 건 부정하고 보는 습관이, 머지않아 더한 눈덩이로 불어나 나를 짓이기고 말 거라고. 현재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갈등이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엮여 우리의 대단원을 예견하고 있었던 건가. 그럼 불가역적인 시간의 흐름에 매인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하지.
-너도 알고 있겠지만...
후회는 쉽다. 인지는 쉽지 않다. 인정은 어렵다. 수용은 더욱 어렵다. 요섭은 기광에게 있어 두준이 얼마만큼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묻고 싶었다. 그 물음이, 최근 기광이 보여 온 무모한 행보에 대한 대답이 될지도 모르니까. 요섭은 그것에 대해 묻고 싶지 않았다. 어려웠다. 두려웠다. 좌절을 맛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리고 그 답을 듣는 순간 지금을 수용하고 기광을 보내 줘야 할까 봐.
나는 지금 후회하고 있나.
-9단계 업그레이드도 위험했던 건 마찬가지야.
차라리 시간이 멈춰 버렸으면 좋겠다. 아니 과거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요섭은 시간이 흘러간다는 사실이 싫었다. 수용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부정이라는 천을 걷어내면 사실이 보인다.
시간이 흘러간다.
-업그레이드 하나, 안 하나 어차피 우린 다시 못 봐.
그래...사실은 진작에 받아들였어. 애써 부정하려 했지만, 난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했고, 넌 그 사건 이후로 미세하게 달라졌으니까.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고, 난 네 고집을 이기지 못하지. 언젠가 네가 저 멀리로 훌쩍 떠나 버릴 걸 알아. 그런데도 널 쉬이 보내줄 수 없는 건, 내게 주어진 가혹한 현실을 너무 늦게 깨달아서일까.
-그러니까...
어쩌면, 줄을 타는 것처럼 위태위태한 사랑을 한 우리의 당연한 결말인지도 모르지.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파견 요원과, 그의 마지막을 제일 가까이서 지켜봐야 하는 통신 요원의 사랑.
여태껏 너와 내가 파트너였던 건, 지독히도 잔인한 운명의 짓궂은 장난일 거야.
그렇지만 난 아직 운명에 순응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단 말이야.
“기광아.”
제발 나에게 이별을 얘기하지는 말아 줄래.
“업그레이드 승인해 줄 테니까, 준비해.”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는 것이, 너와 내가 함께인 시간을 잠깐 연장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