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소나기

손동운x이기광

by. 별 (@BYEOL_DA01)

비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기광은 쏟아지는 빗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근처의 카페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나 카페에 들어가 있을게!’ 문자도 잊지 않고 남겼다.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한 후, 얼른 빈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다. 으아, 머리 다 젖었네... 한숨을 포옥 내쉰 기광은 손으로 머리를 탈탈 털었다. 그래도 책은 안 젖어서 다행이다. 기광은 가방을 열어 안쪽을 살폈다. 가방을 안고 뛴 덕일까, 하나도 젖지 않았다. 쨍한 주황색 표지와 그 위에 보라색으로 적힌 ‘시작’이라는 글귀. 기광은 환히 웃었다. 어쩐지 우리의 첫 만남이 떠오른다. 오늘같이 무더운 날 갑자기 내린 소나기처럼 다가온... 갑작스러운 만남이.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자리를 찾아 앉기 바빴다. 아, 힘들어. 빨리 자고 싶다. 창가에 머리를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때, 무릎 위가 무거워졌다. 뭐지? 눈을 떠 무릎 위를 바라보았다. 새하얀 표지 위 정갈하게 쓰인 ‘아름답다’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어, 이거 내 책인데. 하는 마음이 들어 옆자리를 바라보자 짙은 이목구비의 남자가 말한다. ‘책은 챙겨가야죠.’ 네? 무슨 말인가 싶어 되묻자 책을 쿡 찌르며 말한다. ‘책이요. 정류장 의자에 두고 간 거 내가 챙겨 왔다고요.’ 아, 감사합니다. 힘든 마음에 대충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가관이다. “고마우면... 나랑 친구할래요?” 롸? 당황스러운 마음에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그게... 이런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그쪽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작업을 걸기엔 너무 거부감 가질까봐 친구하자는 건데.” 씩 웃은 남자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손동운, 26살이에요.” 그리고 그 웃음에 넘어간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이, 이기광, 22살...이에요.” 아, 내가 형이네? 잘 부탁해요 기광동생.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그게 벌써 3년 전이구나... 기광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소나기 같은 만남, 단시간에 가까워진 사이라서 금방 식을 사이일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여름에도 폭염주의보가 내리다가도 소나기만 내리면 더위가 훅 물러가듯. 우리 사이도 그럴 줄 알았는데... 내가 이런 생각한 걸 형이 알면 혼내겠지? 뭐라고 하려나... 동운의 반응까지 미리 생각한 기광이 픽 웃었다. 아 근데 이 형은 대체 왜 안 오는 거야..... 그때 기광의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 화면을 확인한 기광이 환히 웃었다. [운] 동운이었다. “운아 어디야?” [카페 앞이야.] 응? 카페 앞? 기광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틀어 창밖의 입구 쪽을 확인했다. 그 앞엔 동운이 서 있었다. “뭐야, 앞이면 들어와야지. 왜 안 들어오고 있어..?” 뾰로통해진 기광이 툴툴댔다. [널 보는 게 너무 떨려서. 목소리 들으면서 긴장 풀려고 전화했어.] 날 보는 게 떨린다고? 순간, 기광은 좀 전까지 혼자 상상하던 것들을 떠올렸다. 짧은 시간동안 이별이 다가온다면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형이 너무 좋아져서 이젠 형 없이는 내가 안 되는데... 형이 먼저 헤어지자고 하면 어떡하지? 따위의 소설을 쓰던 기광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동운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가, 기광아.] “...응” [우리 처음 만났던 날 기억해?] “당연하지.” 방금도 그 날을 추억하고 있었던 걸. [사실 그때 네게 관심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무서웠어. 난 생각보다 겁이 많은 사람이거든.] 응 알아. 손동운 겁쟁이 인거.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래서 나 아프면 형은 내가 죽을병에 걸린 것 마냥 밤새 내 옆에서 간호하면서 울었잖아. [너한테 고백하던 날도 엄청 고민했었어. 난 차이면 그만이지만 너는 좋은 형 한 명을 잃는 상황이었으니까.] 배려심도 넘치네, 내 남자.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근데 지금도 꼭 그때마냥 떨려 죽을 것 같아.] “...왜 떨리는데?” 나 지금 불안한데. 형이 말하려는 게 혹 이별은 아닐까 걱정이 돼. [지금부터 고백을 하나 더 할 거거든.] “무슨 고백?” 난 지금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아. [미래를 생각해봤어. 너 없는 내 미래를.] 정말... 하려는 말이 그걸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야. 내 빛은 너고, 앞으로도 난 너야.] “....어?” 기광은 순간 멍해졌다. 이게 무슨 말이지? 아무리 생각하고, 필터를 여러 개를 거쳐 보기를 거르고 걸러도 ‘프로포즈’라는 답밖에 안 나오는데. 지금 이 형이 나한테....? [사랑해, 이기광.] 기광이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동운은 한 마디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기광은 핸드폰을 귀에서 떼지 못한 채 굳었고, 그 사이에 동운은 꽃다발을 들고 카페 안으로 성큼 발을 디뎠다. 기광의 옆쪽에 무릎을 꿇은 동운이 기광의 팔을 내렸다. 기광의 시선은 자연스레 동운에게로 향했다. 기광은 고개를 푹 숙여 양손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가렸다. 그런 수줍은 기광의 모습조차 웃어넘긴 동운이 기광의 손에 쪽, 뽀뽀했다. 간지러어... 기광의 중얼거림에 다시 쪽, 입 맞춘 동운이 환하게 웃었다. “나랑 평생 같이 살자, 광아.” 기광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운은 기광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안개꽃다발. 죽을 때까지 사랑할게, 이기광.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게 평생을 걸었다.

각 작품의 저작권은 작품의 창작자에게 있습니다. 무단 도용, 복제 금지입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