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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어른이 되어

윤두준x이기광

by. 필로 (@p0215_GK)

평소와 다름없이 가볍게 타자를 두드리는 소리,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 간간히 전화를 받는 소리,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 등 따분하고 지루한 업무적인 소음이 가득한 사무실에서 기광은 잠시 한숨 돌리려 인터넷 창을 클릭했다. 늘 그렇듯 인지도 있는 연예인들의 사진이 메인이거나 혹은 게임광고일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처음 마주한 것은 바로 ‘당신의 소년에게 투표하세요!’ 라는 문구와 꽤나 인기 있을 것처럼 생긴 소년들의 사진. 누군가에게 따로 묻지 않아도 그게 요즘 젊은 사원들이 입을 모아 떠들던 인기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홀리듯 클릭한 배너를 타고 공식 홈페이지를 쭉 둘러보는데 하나같이 개성 넘치는 얼굴들이 같은 교복을 입고 다른 매력을 어필하고 있는데도 그 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얼굴들이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뒤이어 재생되는 프로그램의 예고 영상에서는 아직 어린티를 벗지 못한 얼굴들이 서로 마주보며 웃거나, 울거나, 혹은 어딘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장면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런 얼굴들 위로 익숙한 얼굴들이 비춰졌다, 웃고, 울고, 화내고, 싸우던 아주 그리운 얼굴들이. 서둘러 인터넷 창을 끄고 다시 업무 창을 띄웠는데 어쩐지 마음이 붕 뜬 느낌이었다. 마음 속 구석으로 밀어 넣고 애써 모른 척 하던 무언가가 팍, 터져버린 느낌이었다.

 

 

 

“너도 연습생이라며?”

 

처음 마주한 얼굴은 여느 또래와는 다른 느낌의 좀 더 성숙해 보이는 분위기였다. 뜬금없는 질문과 함께 나돈데, 하며 덧붙이며 옆자리에 털썩 앉던 녀석에게 알아, 하고 답하니 그때서야 고개를 돌려 얼굴을 제대로 마주했다.

 

“알아?”

 

웃음기 어린 얼굴은 진짜로 아냐는 식의 표정이 아니었다. 서로가 모를 수 없었다. 작은 학교 안에, 전교에서 딱 두 명 있는 연습생. 그것도 작은 기획사도 아니고 이름을 대면 고개를 끄덕이며 알법한 대형 기획사 연습생. 서로 악수하며 인사한 적은 없어도 여기저기서 이름이 들려오니 자연스레 서로의 존재를 인지한지는 한참 오래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확인받는 질문과 답의 이어지는 것은 직접 대면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알아, 윤두준. 하고 대답하니 좀 더 활짝 웃으며 맞아, 이기광.하고 그가 답했다.

 

아,걔?, 혹은 쟤 로 부르다가 처음으로 서로의 이름을 소리 내어 말하는 순간이었다.

 

 

벌써 오후의 반이 지나가 모두가 나른해져 있을 때쯤 막내와 인턴이 없다 싶더니 두 손 가득 간식거리를 사들고 들어왔다. 모두가 환호하며 테이블로 모여들었다. 뭘 사온건지 커다란 비닐봉지에서 이것저것 꺼내는 것을 옆에 서서 가만 보고 있으니 나갔다온 두 사람에게서 열기가 훅 끼쳤다. 기분 나쁜 냄새가 난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밖이 얼마나 뜨거운지 알 수 있을 법 한 여름의 열기를 몸에 담아 끌고 온 느낌이었다.

모든 주전부리가 꺼내어지고 각자 한자리씩 잡아 모여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거나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젊은 사원들 사이에서 아까 봤던 인기프로그램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오늘 완전 기대하고 있어요, 일주일 어떻게 기다렸나 몰라.”

“진짜, 나 그래서 약속도 안 잡았잖아.”

 

“오늘 거기에 윤두준 나오는 것 같던데.”

 

윤두준, 그 이름 하나에 들고 있던 커피를 내려놓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주변에 있던 사원들도 하나 둘씩 윤두준? 하고 되물었다. 처음 말을 꺼낸 사원이 고개를 붕붕 끄덕이며 신이 나서 말을 줄줄 이었다.

 

“요즘 아이돌들은 다방면으로 잘해야 한다고 해서 연기수업 같은 것도 해보나 봐요.”

“그래서 윤두준?”

“네. 그, 윤두준이 데뷔하기 전에는 원래 아이돌 연습생이었대요.”

“아, 진짜? 연기 엄청 잘하잖아.”

“잘하죠, 진짜 아이돌 안하길 잘한 것 같아요, 아무튼 나이대도 적당하고 요즘 완전 핫 하고 그래서 나온다니까 완전 기대하는 중이에요”

 

사람들은 가끔 자신이 해당되지 않는 곳에서 저도 모르게 잔인해지는 경우가 있다. 기광은 그 사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안하길 잘했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 가수가 하고 싶어서, 노래가 부르고 싶어서. 윤두준은 가장 놀고 싶을 시간에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가, 얼마나 많은 좌절을 맞이하면서 어떤 기분으로 그 길을 포기했을지. 모르기 때문에 잔인한 말을 서슴없이 하는 걸지는 몰라도 알고 있는 기광은 도저히 웃을 수 없었다.

 

 

 

 

 

열여덟, 어리다면 어리고 다 컸다면 다 컸을 그 나이에 우리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까만 길을 달리는 중이었다. 열심히 걷고 뛰다보면 언젠가는 그 끝에 원하는 꿈이 있을 거라 믿으며 어느 곳으로 달리는지, 느린 건지 빠른 건지 가늠하지도 못한 채로 그저 길이라고 믿는 그 곳을 열심히 가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함께 있던 친구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비우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나 역시 언제 자리를 비워야 할지 모른다는 부담과 학교로 돌아오면 따라가기 힘든 진도와,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다른 길을 가고 있고, 혹시 잘 못된 길을 가는 건 아닌지에 대한 압박 속에서 우연하게 만난 우리는 서로에게 유일한 안식처였다.

 

같은 길을 가고 있지만, 다른 곳에 속해있고, 다른 것을 배우지만, 결국 같은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은 단순하지만 안정감 있게 다가왔다. 각자의 소속사에서 함께 웃던 친구가 자리를 비워서 모두가 우울해 하는 그 분위기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다른 환경의 사람, 분명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학교에 나오면 나만 동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밑도 끝도 없는 곳에서 유일하게 같은 기분 일 사람. 그게 바로 윤두준이었다.

 

윤두준은 언제나 데뷔하면, 을 입에 달고 살았다.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데뷔하면, 하고 나중으로 밀어두었고 평소에도 데뷔하면 좋겠지, 하는 듯한 말을 자주 했다. 그 만큼 정말 간절했고, 노력했다. 우리가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공유하는 것이 늘어나고 서로의 눈이 마주치는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우리는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히면서도 서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더운 여름의 객기였는지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감정의 폭발이었는지, 땀이 맺힌 손으로 망설이다 내 손을 잡아 왔을 때에도 윤두준은 데뷔하면, 하고 말을 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윤두준은 내 손을 더 꽉 잡으며 어딘지 비장하기까지 한 목소리로 우리, 꼭 데뷔하자고 말을 했다. 그 후로도 윤두준은 데뷔후의 일을 종종 언급했다.

그때부터는 각자의 데뷔하고 난 뒤가 아니라 ‘우리’의 데뷔 후 일들이었다. 다른 팀으로 데뷔를 하더라도 같은 무대에 서고, 그 무대가 어땠는지 감상도 말해주고. 같은 프로그램에 패널로도 나가보고 인터뷰하면서 꼭 서로 언급도 해보고 사소하지만 우리가 그 안에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우리 미래에 꼭 함께 있자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아 나는 윤두준이 미래를 꿈꾸는 것을 가만히 듣는 게 좋았다.

 

사람이 없는 골목에서 눈치를 보며 손을 잡아보고, 역에서 헤어지고, 밤에는 시간이 남는 쪽이 찾아와 저녁을 핑계로 여전히 습한 밤공기를 쐬며 걸어보는 시간들을 지나 우리에게도 기회는 찾아왔다.

 

먼저 찾아온 건 내 쪽, 그룹은 아니고 솔로로 출격할 사람을 고르는 데 내 이름이 언급되었다. 한창 솔로가수의 주가가 치솟을 때라 시기를 맞춰 회사에서도 트렌드에 맞춰 남자솔로를 출격하기로 한 것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남성스러운 이미지 보다는 이미지 변신이 쉬운 소년 같은 분위기의 연습생들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오래 연습생 생활을 했고, 실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 사이에 올라간 내 이름은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전부 빠지고, 한손으로 꼽을 만큼 적어진 수에서도 여전히 후보로 거론되었다. 이름하야 데뷔조가 된 순간이었다.

 

곧 데뷔를 이룰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의 부풀어있던 생활은 채 오래가지 못했다. 나보다도 어린 연습생이 최종 데뷔로 선정되는 순간 큰 절망감이 밀려왔다. 나이가 좀 더 적을 때는 형들이 먼저 데뷔를 하는 게 당연하다 뒤로 밀리더니, 이제는 트렌드에 맞춰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데뷔를 시키는 게 좋다니, 설상가상으로 이미 데뷔한 아이돌들의 대학 특례 입학 건이 시끌시끌하게 터진 뒤라 곧 현재 고3은 물론, 곧 고3이 되는 연습생들까지도 모두 데뷔에서 멀어진 상태였는데 눈앞에서 놓친 데뷔의 꿈이 아득하게 멀어지다 못해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그런 나를 붙든 것도 윤두준이었다.

 

“기광아.”

“응.”

“포기하지마.”

“....”

“부탁이야.”

 

왜 나보다 윤두준이 더 울 것 같은 표정이었는지 그때의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윤두준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않고 한동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축 쳐진 어깨가 꼭 나를 비추는 거울마냥 꼭 나 같아서 내가 먼저 손을 뻗어 숙여진 머리를 안았다. 괜찮아, 하고 내가 내뱉은 말에 왜 내가 위로를 받았는지. 내가 윤두준의 등을 토닥이고 있었음에도 왜 누군가 나를 가만히 토닥여주는 느낌이 들었는지는 지금도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나를 토닥이는 사람이 꼭 윤두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내가 다시 평소와 다름없이 연습을 재개했을 무렵, 윤두준에게도 데뷔의 기회는 찾아왔다. 공개오디션 프로그램, 지금처럼 체계적이진 않지만 소속사에서 괜찮은 애들을 추려 팬덤을 형성시킨 후에 심사를 거쳐 최종 데뷔 팀을 완성해내는 것으로 당시에는 상당히 도전적인 방식이었다. 윤두준은 당연하게도 프로그램 출연진에 이름을 올렸고, 학교도 빠져가며 열심히 촬영하게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윤두준은 방송에 얼굴이 나왔다. 포털사이트에서는 아주 조금씩 윤두준의 이름이 거론되거나 기사가 실리는 등 연습생으로써는 당연히 처음해볼 경험들에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당연하게도 윤두준의 얼굴을 보는 시간은 줄었지만 그럼에도 나 역시 윤두준이 방송에 나오는 것이 좋고, 못 보던 모습을 접하는 즐거움에 크게 개의치 않았는데 딱 하나, 잊지 말았어야 할 것이 있었다.

윤두준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이미 데뷔 조를 결성한 뒤 그 들을 알려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아니라 데뷔 조를 추리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는 것.

 

그것을 잠시 망각한 나는, 떨어졌어. 라는 문자 한통을 보내고도 며칠 뒤에나 학교에 나온 윤두준의 얼굴을 보며 눈물을 쏟아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말하는 재주도 없고, 위로받는 듯 한 느낌을 주는 재주도 없어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서러움에 윤두준의 얼굴을 보자마자 도망쳐 나와서는 혼자 화장실에서 펑펑 울었다. 나보다도 더 열심히, 밝게 데뷔를 꿈꾸던 녀석이 모두가 보는 곳에서 데뷔를 놓쳤다는 게 새삼 억울하고 잔인하게 느껴졌다.

비공개적으로 데뷔 조에서 떨어진 것과 공개적으로 데뷔에서 멀어진 건 천지차이다. 윤두준에게는 앞으로 그 꼬리표가 한동안 계속 붙을 거다. 데뷔를 해도 붙을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이 참을 수 없이 서러웠다.

 

내가 울음이 잦아들고 숨을 고르고 있을 때쯤 어떻게 알았는지 화장실로 날 찾아온 윤두준은 곧장 내가 있는 칸 앞에서 내게 말을 했다.

 

“나 포기 안해”

“......”

“괜찮아”

“......”

“그러니까 울지마.”

 

윤두준은 자기가 더 힘들어야할 상황에서도 나를 위로했다. 나는 그 것이 더 화가 나고 서러워서 더 큰소리로 내가 대신 울어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팀장님도 좀 만 더 어렸으면 여기 프로그램 나가셔도 될 것 같은데”

 

사원한명의 장난스러운 말에 온 시선이 기광에게 쏠렸다. 덕분에 옛날을 생각하던 기광이 단숨에 현실로 이끌려와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다.

 

“저요?”

“네, 팀장님 요즘 아이돌 보다 훨씬 잘 생겼잖아요”

 

주변에서 맞아,맞아. 하는 추임새들이 따라온다. 에이, 비행기 태워줘도 아무것도 안나와요. 하며 웃음으로 무마하려해도 한번 터진 화제는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덧붙이며 커졌다.

 

“진짜 제가 팀장님 얼굴이었으면 아이돌 했다, 데뷔했다!”

“그럼 전 1호 팬 할래요.”

 

나도 하고 싶었어요, 그거. 아이돌. 그렇게 말할 수도 없는 기광은 그저 어색한 미소를 띄우며 쏟아지는 말을 전부 견뎌냈다. 가볍게 던진 말들이 덮어두었던 과거의 미련을 들쑤시는 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계속 가벼운 표정이었다.

 

“이팀장님 여기 프로그램 나갔으면 진짜 1등, 센터감이에요.”

“내가 투표했다. 맨날 했다.”

“난 보러 갔을 것 같아~”

 

한번 터진 미련은 계속해서 기광을 괴롭혔다. 예전에도 이런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있었더라면 우리는 순탄히 데뷔할 수 있었을까. 같은 생각이 구질구질하게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아이돌이 아니라 배우로 데뷔한 너, 연습생을 그만두고 도망치듯 너와 모든 인연을 끊어낸 나. 후회로만 남은 그 모든 게 꿈처럼 사라지고 우리가 갈망하던 그 무대에 우리는 올라가 볼 수 있었을까. 부질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상상들을 했다.

 

 

 

 

각자의 꿈이 한번씩 무너지고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지만 평소와 다른 날을 지내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연습을 하러가고 여전히 가까운 곳에서 함께 있었지만 각자 말 없이 다른 생각을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서로가 다른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무슨 생각인지 굳이 묻지 않았다. 그 무렵의 나는 조급함에 미뤄뒀던 공부를 다시 붙잡았고, 윤두준은 멍하니 창밖을 보는 시간을 많이 보내곤 했는데 그 역시 뭔가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

 

공부를 아주 놓은 건 아닌지라 곧 수업을 따라가는데 무리 없이 공부할 수 있었지만 연습생생활과 병행 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되면서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윤두준 역시 선택을 한 것 같았다.

 

“나,아이돌은 그만두려고”

“그럼?”

“회사에서, 나 연기 배워보래.”

 

윤두준은 그렇게 말 하며 웃었다. 나는 웃지 못했고 윤두준은 그런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털어놨으니 너도 말하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말할까, 말까. 수백 번도 고민했다. 부모님은 좋아할 거고, 회사에서도 큰 미련은 없을 텐데 유독 윤두준에게 말하기 어려웠던 것.

 

“나 그만두려고.”

“.......”

“못하겠어.”

“기광아”

“안할래.”

 

윤두준은 짐짓 충격 받은 얼굴로 내 이름을 한번 부른 다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르고 고르는 것 같았다. 내가 딴생각을 하는 건 알아도 이렇게 완전히 그만 둔다는 생각까지는 미처 못한 건지 윤두준은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연기..”

“.....”

“열심히 해.”

“.....”

“응원할게.”

 

내가 말을 끝내고 먼저 자리를 뜰 때 까지도 윤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명 한번 켜보지 못한 우리들의 무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겨울이 지나 반이 갈려 마주하는 시간은 더 적어졌다. 지나가다 마주칠 때면 윤두준은 내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들썩였지만 나는 모르는 척 돌아가곤 했다. 연습실대신 학원을 다니고, 핸드폰대신 책을 손에 쥐고서는 지나온 시간을 수습하기에도 바빴다. 날카로운 고3의 시간들이 지나가고 나는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에 붙었다. 학원이며 과외며 정신없이 코피 터져가며 공부한 덕이었다. 윤두준은 그 즈음부터 학교엔 나오지 않았다. 소문으로는 어디 연영과에 붙었다고 했다. 나는 졸업식에서 몰래 윤두준을 찾았으나 그는 보이질 않았고 나는 졸업과 동시에 핸드폰 번호를 바꾸었다. 정신없이 대학을 다닐 때 쯤 윤두준은 작은 단역으로 방송에서 얼굴을 비추다 내가 군대 갈 때쯤 비슷하게 자취를 감추었다. 다시 내가 제대를 하고 취업을 함과 동시에 그는 공중파 방송에 꽤 비중 있는 역할로 등장했고, 그 드라마가 히트를 치면서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조연에서 주연급을 꿰차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시원시원한 마스크에, 흔치않은 연기력. 게다가 성격까지 좋다는 소문까지 도니 금방 호감형 배우로 자리를 잡았다. 작품을 고르는 것마다 대박을 터트리니 그를 부르는 곳들이 많아졌다. 아주 초반에 그가 아이돌 연습생을 했다는 게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금방 다른 것들에 사그라들었다. 나는 그런 윤두준의 모습을 보면서 질투나 동경 그런것과는 다른 감정을 느껴야만했다.

 

 

 

 

대충 간식시간을 마무리하고 남은 오후시간을 또 바쁘게 보내니 퇴근시간이 훌쩍 다가와 있었다. 원래 직급을 가진 사람이 쓸데없이 오래 남아있으면 민폐인지라 기광은 빠르게 퇴근 준비를 하며 모두 즐거운 주말을 보내란 말과 함께 자리를 피했다. 나가는 기광의 뒤로 팀원들은 신나서 하나둘씩 자리를 정리했다.

 

 

“아, 역시 우리 팀장님 센스~”

“진짜로. 다른 팀은 맨날 집 안가고 망부석처럼 앉아있는 상사 때문에 눈치 본다는데 우린 복 받았어.”

“헐 대박!”

“왜, 뭐야 왜”

“요 앞에 지금 윤두준 촬영 나왔대요.”

“헐 진짜?!”

“대박”

 

 

 

 

기광은 주차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1층 로비로 향했다. 회사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에 들릴 심산이었다. 집 근처에도 편의점은 있지만 차에서 내려 또 편의점까지 걸어 가는 게 귀찮으니 걷고 있을 때 겸사겸사 볼일 보는 게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나오니 시끄럽게 사람들이 몰려있어 잠시 시선을 던진 기광은 곧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근처에 소속사나 잡지사가 몰려있어서 그런지 연예인들이 촬영 오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오늘도 또 누군가가 와서 인터뷰를 한다던가 소속사에 들른 누군가겠거니 하고 미련 없이 등을 돌린 기광의 돌려 세워진 건 순식간이었다.

 

꺄악 꺅 하는 소음이 갑자기 크게 들렸다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어느새 뛰다 싶이 끌려가며 기광은 얼떨떨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붙잡혀 끌려가는 순간에 나오던 팀원들하고 마주친 것 같은데.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멈춘 탓에 크게 휘청 였다. 그런 기광의 어깨를 붙잡아 주는 손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방송으로 많이 보고 오래보고, 계속 봤던 얼굴이 코앞에 나타나있다. 여전히 잘생겼고 키는 좀 더 큰 것 같고. 손은, 여전히 뜨겁고.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는데”

“.....”

“막상 이렇게 만나니까 뭐부터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눈은 기광에게서 떼질 않는다. 두준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입술만 달싹였다. 그런 두준을 가만히 보던 기광이 먼저 입을 열었다.

 

“보고 싶었어.”

 

그 말에 두준의 눈이 크게 뜨였다가 세상이 무너진 것 처럼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올곧게 두준을 바라보는 기광과 다르게 두준의 고개는 툭 떨어졌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는데”

“.......”

“왜 네가 먼저 해...”

“.....”

“그때도, 내가 먼저 하고 싶었는데, 네가 뭘 하던, 응원 한다고,내가, 먼저.. 하고 싶었는데.”

 

열여덟의 여름과 오랜 시간을 지나 스물여덟의 여름에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두준은 여전히 열여덟의 소년 같은 느낌이었다. 방송으로 볼 때는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는데.

 

“왜 한 번도 연락 안했어?”

“.........”

“네가 번호를 바꿔버리는 바람에 나는 너를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는데”

“.......”

“네가 좀 더 찾기 쉬우라고, 연락하기 쉬우라고 이 악물고 뜨려고 노력했는데”

“....두준아”

“왜 한 번도 안했어.”

“.......”

“나만 아직 미련이 남은거야?”

 

“아니”

 

기광의 말에 두준의 고개가 그제야 들렸다. 눈에 띄게 흔들리는 듯 한 얼굴로 기광의 다음 말을 재촉했다.

 

“나도 미련이 아주 많이 남았는데, 그 미련이 너에 대한 미련인지, 나에 대한 미련인지 알 수가 없어서.”

“.........”

“아는데 너무 오래걸렸어”

“........”

“내가 꿈을 포기 한 것도, 네가 배우를 하는 것도 다 괜찮은데 딱 하나.”

“.......”

“그냥 너랑 같이 못 이뤘다는 그 사실에 미련이 남더라고”

 

 

“그때에는 후회하기 싫어서 도망쳤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그냥 후회 조금하더라도 도망치지 말걸 그랬다.”

“그럼, 알았으면 찾아왔어야지, 내가 이렇게 기다렸는데..”

“그때 너한테 도망친 것 때문에, 네가 나를 미워 할 줄 알았어.”

 

아, 진짜. 하며 두준은 손등으로 눈을 벅벅 문질렀다. 금새 붉게 달아오른 두 눈에 물기가 그렁그렁했다.

 

“내가 왜 널 미워해.”

 

그러면서 또 아이 씨, 하더니 눈을 또 문지른다. 그런 두준의 행동에 웃음이 터진 기광이 푸흐흐, 웃자 두준이 아 왜 웃어, 하며 살짝 토라진 척을 했다. 여전히 눈을 문지르는 두준의 손을 잡아 끌어내린 기광이 그 손을 가볍게 쥐었다.

 

“혼자 어른이 되 버린 줄 알았는데 아직 애네,애.”

 

“마지막으로 본 게 열아홉 이니까 그때부터 다시 해. 나 스물, 너 스물, 우리 아직 애야.”

 

뭐야,그건. 참다못해 기광이 웃음을 계속 터트리자 토라 진척 입을 삐쭉이던 두준도 결국 웃었다. 손에서 땀이 나는 것도 모른 채 한동안 웃기만 하던 둘이 어느 정도 웃음이 잦아들자 그때서야 서로의 모습을 제대로 살폈다. 과거와 비교해 달라진 점 들을 눈에 꼭꼭 담아두다가 시선이 마주쳤을 때 두준이 기광에게로 한발자국 다가섰다.

 

“아직 애라면서.”

“스물이면 알 거 다 아는 어른이야.”

“완전 떼쟁이.”

 

상관없어,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 두준이 고개를 숙여 기광에게 입 맞췄다. 서로가 없던 지난 시간을 세기라도 하듯 조심스레 닿은 것과는 다르게 금세 잡아먹을 듯 깊숙이 들어오는 두준에게 밀려 주춤 하는 기광의 허리를 잡아 당기자 기광이 두준의 등을 감싸 안았다.

 

소년들이 어른이 되어 함께 마주한 첫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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