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나의 여름

용준형x이기광x윤두준

by. 동면백곰 (@mythrukawagw)

준형은 어머니가 재혼 이야기를 꺼내왔을 때, 좋다/싫다 하기 보단, 걱정이 앞섰다. 어릴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고생하시던 어머니가 제 앞에서 처음으로 수줍게 웃으시면서 재혼 여부에 대해서 물어볼 때의 얼굴이 너무 좋아서, 괜찮다고만 했다. 정말로 사랑에 빠진 소녀 마냥 웃는 어머니의 얼굴이 너무 예뻐보여서, 준형은 웃으면 대답을 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새아버지가 될 사람과 만나니, 잔뜩 긴장한 나머지, 미간을 찌푸리고 있자, 키가 크고 우람한 덩치에 비해서 긴장한 그가 연신 이마에서 땀을 닦아 낸다. 조금은 촌스러운 듯한 그의 행동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다정했고, 준형 자신에게 무척이나 신경쓰는 듯 했다. 그런 그의 행동에, 준형은 속으로 참 잘 되었다라고 안도했다. 그는 준형의 어머니보다 5살이나 어린, 꽤나 유명 로펌의 변호사. 재혼도 아닌, 초혼의 남자. 번듯한 직장.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큰 키와 어울리는 선이 굵은 남자다운 얼굴이였다. 그래서 준형은 걱정이 앞섰다. 그의 어머니는 재혼이고, 고등학교를 재학 중인 아들이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그 집에서 반대하고, 또 괴롭힐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당연히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첫 상견례로 그 집으로 초대받았을 때, 긴장으로 몇일을 밥도 못 먹고 자지도 못했다. 

 

그의 차로 들어온 동네는 보기만 해도 부자동네였다. 아파트 단지에서만 살던 자신들과는 정말 차원이 달랐다. 차에서 내려서 준비된 선물이 든 종이 봉지를 들고 있는 자신의 손이 부끄럽게까지 느껴졌다. 과연 여기서 사는 사람들은 무엇이 필요할까? 긴장한 어머니의 얼굴에 걱정이 배가 되어버렸다. 초인종을 누르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잘 손질된 잔디가 깔린 정원이 나왔다. 그리고 거기에 세팅된 테이블과 접시들, 몸을 분주하게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를 보고 살짝 웃으면서 인사를 해 온다. 정말로 영화에서 나올 만한 집의 풍경이였다. 그래서 준형은 더욱 긴장이 되었다. 

 

집에서 나온 남자는 그와 비슷한 몸집과 키를 가지고 있었고, 그와 아주 닮았다. 고등학생인 준형도 가끔 텔레비전에서 본 얼굴이다. 그는 꽤나 유명한 대학교에서 존경받는 유명한 법학교수였다. 그 뒤를 따라서 나오는 여성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하얀 얼굴에 반짝이는 갈색 눈을 반달로 접으면서 자신들을 반기는 그녀의 모습에 준형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감이 풀려버렸다. 테이블에 앉았는 데, 그가 자꾸 대문쪽을 바라보았다가, 집을 바라보고, 안절부절한 얼굴이였다. 

 

"막내는요?"

"아.. 좀 사정이 생겼구나.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우아하게 발성되는 그녀의 말에 어머니는 괜찮습니다 하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는 한숨을 쉬고선, 준비된 물잔에 손을 옮긴 그는 웃으면서, 미안하고 다시 사과를 했다. 준비된 음식이 나오고, 다정하시고 친절하신 그의 부모님의 말에 결혼은 착착 진행되었다. 어머니의 재혼인만큼, 최대한 어머니를 배려해서, 준비되었다. 여유가 있는 집은 마음의 여유도 가진 듯했다. 준형은 자신이 생각했던 집의 분위기보다 훨씬 따뜻하고 좋은 그의 가족이 모두 마음에 들었다. 물론 끝까지 얼굴을 내밀지 않은 그의 막내동생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나의 여름]

                             - 동면백곰

 

"용용!!! 너 지각이야!!!"

 

방밖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준형은 한숨을 쉬면서, 방문 옆에 있던 가방을 쥐었다. 학교를 가지 않아도 신경쓰는 사람 하나 없다. 교수가 제 이름을 아는 것도 아니고.,그런데, 저 보호자 행색을 하는 놈은 어떻게 스케줄을 알아냈는 지, 1교시인 날은 저렇게 아침에 학교를 가라고 깨운다. 방문을 열자, 손가락이 보일락말락하는 긴팔 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모자, 마스크까지 중무장 한 기광이 학교 가자하고 외친다. 저 놈이 저런 중무장을 보니, 드디어 여름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워줄께! 얼른 나와!!"

"됐어. 버스타도 안 늦어. 아픈 놈이랑 같이 있기 싫어”

 

고개를 흔들던 그가 갑자기 기침을 한다. 역시 이번 여름에도 기광은 여름감기를 피하지 못한 모양이다. 말랐음에도 체력은 좋은 저놈의 유일한 약점은 바로, 여름 감기. 준형이 기광을 처음 만났어야 했던  바로 그 상견례 때도, 여름 감기, 어머니와의 만남 이후, 그 좋던 우애에서, 매해 걸리는 감기조차 잊게 만들어서, 기광이 준형의 어머니와의 결혼식을 그렇게 반대했다고 하다. 그건 물론 어머니가 결혼하신 후 알게되었다. 

 

그렇게 얼굴도 몰랐던 기광이 삼촌이 되고 나서, 단 한번의 여름도 그냥 지나간적이 있었다. 이젠 익숙해져버린 준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리고 그를 집에서 쉬게 하려고),  괜찮다고 손을 흔들면서, 집을 나가려고 하자, 기침을 하는 그가, 딱 달라붙는다. 

 

"저리꺼져. 감기 옮아."

"너 내차 안 타고 가면, 내가 뽀뽀 한다!"

 

그가 준형의 팔에 팔장을 끼고선 눈을 동그랗게 말면서 말을 한다. 준형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현관을 나가는 폴짝 뛰어서 나가는 기광의 셔츠가 나풀거린다. 하여간 생긴건 그렇게 안 생겼는 데, 은근히 고집도 있고, 은근히 손도 많이 간다. 준형은 나중에 집에 오는 길에 감기약을 사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저녁에 다른데 가지 말고, 곧장 집에 와. 오랜만에 같이 보양식하자."

"오늘은 안돼. 공연있어."

"진짜?? 나 갈래!!!"

"오지마."

 

꽤나 차갑게 말하는 준형의 말은 전혀 듣지 않고, 공연공연하고 외치던 기광이 기침을 두어번 더 한다. 슬쩍 운전하는 그의 옆모습을 보니, 모자 아래로 살짝 땀이 나는 것 같다. 매해 같은 감기증상이다. 기침 다음에는 오한 그리고 나선 몸살까지 병행하는 기광을 알아서, 집에서 좀 쉬지 하고 튀어나오려는 말이 어색할까봐, 준형은 잠시 멈짓했다. 

 

"나 너희공연 너무 좋아. 막 방방뛰고, 재밌어"

"그래도 오지마."

 

준형은 시큰둥한 말투에 비해서, 크루에 대한 자부심은 컸다. 경기도지역에서는 유명한 크루에 속해 있는 준형은 특유의 랩핑실력과 랩스타일에 꽤나 많은 여성팬을 보유하고 있었다. 같이 활동하는 친구나 형들 중 유명인도 몇 있다 보니, 공연이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와서 구경을 했고, 같이 뛰고 호흡하면서 즐기는 게 준형이 빠진 힙합의 매력이였다. 

 

하지만, 그런 곳에 아픈 기광이 온다니,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물론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많았다. 거기다가 무대가 끝나고 나서, 기광이 활짝 웃으면서, 엄지 손가락을 펴면서 대단해!! 하고 칭찬해 줄때의 모습이 좋았지만, 그래도 아픈 기광이 오는 건 반대였다. 

 

"학교 잘 다녀오세요!! 나중에 공연장에서 봐."

 

기광의 말에 고개를 흔들며, 고집쟁이하고 나즈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자, 3교시의 인문대쪽 건물이다. 하여간 어디하나 꼭 틀린다. 헐랭이다. 준형은 손은 두어번 흔들면서 그를 보냈다. 수업에 들어가 봤자, 공연 생각이 날걸 알기에 준형은 그냥 동아리 방쪽으로 향했다. 

 

수업을 다 빼먹고 공연 세팅을 위해서 학교에서 좀 떨어진 곳의 클럽으로 왔다. 오늘 공연 마무리를 위해서 그런지 클럽은 비어있었고, 이미 세팅을 하는 선배들이 보였다. 한 두시간 세팅을 하고 리허설을 마치고, 공연 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남아서, 담배를 피고 들어오자, 사람들이 이미 한둘씩 들어온다. 슬쩍 커튼을 사이로 관객석을 보자, 핑크 모자가 보인다. 저건 분명히 기광이다. 핑크색 모자를 쓴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옆에는 하얀셔츠차림의 윤두준이 보였다. 일을 하다가 왔는 지, 넥타이 없이 팔을 걷어 올린 하얀색 와이셔츠의 두준을 공연을 보러온 여자들이 힐끔힐금 쳐다본다. 하지만 두준의 관심은 기광에게 오로지 있는 듯했다. 평상시와 같이 기광의 어깨를 감싸는 두준의 팔 그리고 다른 손에는 맥주 병이 들려있었다. 옆에 있는 기광에게 몸을 거의 기댄 체, 그의 입이 움직인다. 오로지 핸드폰을 바라보던 기광의 눈 아래로는 하얀 마스크가 보인다. 몸을 두어번 움칠거리는 걸 보니, 기침을 하는 듯했다. 그러자, 두준이 몸을 더 숙여서 기광에게 밀착한다. 두준의 행동에 살짝 몸을 비틀면서, 핸드폰을 쥐고있던 기광에게서 , 문자가 온다. 

 

[나 왔어 ^_^ 잘해!! 화이팅~~]

 

너무 기광의 말투라서 피식 웃고는 답장을 보냈다. 핸드폰을 쥐고 있는 기광이 얼굴을 올려서 두준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하더니,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린다. 준형 자신의 문자를 받고는 눈을 휘감는다. 입술은 보이지 않지만, 피식 웃는 모습이 저절로 그려졌다. 웃는 기광을 본 두준 역시도, 기광의 핸드폰을 들여다 본다 준형은 기분이 나빴지만, 어떻게 할수 없었다. 

 

[그래도 너무해! 잘 보고 가!! 라고 말해주면 안돼? 힝 ㅠ_ㅠ]

[안 그래도 두준이는 맥주도 못 먹게 해 ㅠㅠㅠㅠㅠ 힝]

 

연이어 문자를 하던 기광을 보던 두준이 웃으면서, 자신은 맥주  한목음 마셔버렸다. 발끈한 기광이 그를 바라보면서 뭐라고 하는 지, 마스크가 연속으로 움직인다. 두준은 웃으면서, 어깨를 두른 그 손으로 기광의 머리를 만지작 만지작 거린다. 그 모습이 꼴보기 싫어서 미간을 찌푸리자, 크루리더가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제 곧 무대가 시작된다. 그가 보고 있다니 조금은 긴장이 된다. 

 

 

 

“와.... 진짜 너가 가사 쓴거 맞아? 너 같은 놈의 머리에서 그런 가사가 나오는 게 신기하다”

 

성공적으로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과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다 보니, 공연이 끝나고 한시간 반이 지나버렸다. 크루들 막 짐을 싸고 치우는 데, 낮은 두준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의 말에 뭐?하고 반박하자, 기광이 웃으면서 콜록거리면서, 팔굼치로 그의 허리를 두어번 친다. 핑크색 모자에 하얀 마스크. 겨우 보이는 눈이 살짝 빨갛다. 저러다가 쓰러지겠다 싶었다. 

 

"공연 다 봤음, 집에 가지 뭘 기다려?"

"매정한 놈. 내가 공연 끝나고 바로 가자고 했잖아."

 

두준이 말을 하면서 쯧쯧거리면서 그의 어깨를 잡고, 출구쪽으로 향한다. 그러자 끌려가던 기광이 손을 뻣어서 흔든다. 그리곤, 잠시 멈짓하더니, 두준의 팔에서 빠져나와, 자신쪽으로 뛰어온다. 

 

"..흠흠..형이 너 공연하고 맛난 거 사주라고 했는 데,.그건 내일하고, 콜록콜록 오늘은 맴버들이랑 좋은 시간 보내."

 

겨우 입을 땐 기광의 목소리가 거칠다. 그리고 내미는 손에 억지로 카드하나를 쥐어준다. 보니, 자신의 신용카드다. 마스크와 모자 사이에 보이는 그의 눈이 씽긋 웃으면서, 손을 한번 더 흔들고는 출구쪽에서 기다리는 두준에게로 갔다. 다시, 아주 자연스럽게 어깨에 자신의 팔을 걸치곤, 자신쪽을 끌어 당기는 뒷모습을 보았다. 꼴보기가 싫어서, 오늘 회식은 이 카드로 쓸까 생각하다가, 조심히 자신의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공연 이후에, 형들의 집에서 결국 외박을 했다. 술도 술이지만, 두준과 함께 있는 기광을 볼 자신이 더이상 없어졌다. 크루 형집에서 자도, 그렇게 편하지는 않았다. 아침에 해장도 하고, 오후 수업까지 착실히 듣고나서, 약속한 저녁을 먹기 위해 4시가 조금 넘어서 집에 도착한 준형은 불쾌해졌다. 아파트 단지 게스트 주차장에 곱게 세워진 차의 주인 때문이였다. 어제 자고 갔나? 아님, 그냥 일찍 온건가? 온잡생각이 머리를 뒤 흔들때 쯤, 현관, 들어가자, 역시나, 두준이 어이 하고 인사를 한다. 넥타이와 그의 정장 자켓을 식탁 의자 위에 걸쳐져있다. 양복 색을 보니, 어제 자고 가진 않았는 모양이다. 하얀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은 그가 한숨을 쉬면서, 컵을 들고 선, 물을 마저 마신다. 어제와는 비슷했지만, 피곤함이 여력해보인다. 준형의 눈에는 식탁 위에 올려진 유명 죽집 로고가 박힌 종이백이 띄였다. 그 옆에 가지런히 올려진 약봉투가 눈에 보였다. 준형은 제가 집에 올때 약국에 들려서 기광이 잘 먹던 포도맛 어린이 감기 약병을 슬그머니 뒤로 숨겼다. 지친듯 두준은 식탁 의자를 빼서, 앉아버렸다. 한숨을 쉬면서, 머리를 두손으로 집은 두준이 고개를 숙였다. 준형은 기광을 보려고, 그의 방쪽으로 향했다. 두준이 집에 있는 건 기광이 정말로 죽을 듯 아파서 전화를 했던 지, 아님, 두준이 걱정되어서 온것, 단 두가지. 이래저래 기광이 아프다는 것이다. 걱정이되어서 문고리에 손을 데자, 두준의 낮은 목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지금 막 잠들었어."

 

들어가지마와 같은 어투의 말이였다. 그의 경고따위가 준형의 고집을 막을 수는 없었다. 무시하고 문을 살짝 열자, 그의 방이 눈앞에 나왔다. 마감이라 몇일 째 엉망인 책상 맞은편에 있는 침대에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침대 옆에 걸어둔 링겔이 눈이 띄였다. 아.. 그렇게 아팠나? 몸이 작은 동물 마냥,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그의 모습이 정말로 작아 보였다. 조금 더 가까이서 보려고, 발을 떼자, 어느새 온 두준이 문고리에서 떼지 못한 준형의 손을 낚아 채선, 문을 닫아버린다. 

 

"진짜 금방 잠들었어. 깨우지 마."

“…”

"어제밤부터 아팠나봐. 공연을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오늘 아침 재판 끝나고 오니깐, 쓰러져 있었어. 응급실 데려가려다가 거기 복잡하니까, 그냥 의사부른거야. 금방 해열제 맞고 잠든거니깐 깨우지 마"

 

날카로운 그의 음성이 거실을 울렸다. 왠만해서 여유로운 두준의 말에 가시가 잔뜩 박혀있다. 아니, 어쩌면 저게 진짜 두준의 말투 일수도 있다. 협박하는 듯한 낮은 톤의 목소리, 직설적인 말투. 검사 두준은 기광을 제외한 모든이에게는 차갑고, 냉정했다. 준형의 탓하는 듯한 그의 음성에 준형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문을 닫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저녁시간 쯤 되어서 자신의 방에서 나온 준형은 보이지 않는 두준의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기광의 문을 살짝 열었다. 

 

침대위에서 누워있는 하얀 와이셔츠 차림의 등이 보이자 표정이 바뀌었다.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방을 들어가서 보자, 두준의 품에서 자고 있는 기광이 눈에 들어왔다. 더운지 땀을 흘려서 머리가 꼬블꼬블 말렸다.  동그랗게 말려서, 두준의 오른팔에 베고 자고 편안해 보이는 기광의 얼굴이 하얗다 못해서 창백해 보였다. 단 하루만에 이렇게 핼쓱해 보일 수가 있나? 모여진 손등에, 밴드 두개 붙어있다. 이것도 매년 있는 링겔자국이다. 두준의 왼쪽 팔이 그의 어깨를 감싸고 있다. 왠지모를 그 질투심에 배까지 아프다. 문을 닫고, 자신 손에 잡힌 어린이 용 시럽 감기약을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집안에 있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집을 나서버렸다.

 

 

 처음 기광과 두준의 관계를 알게 되었던 작년 이맘때 쯤이였다. 준형이 대학에 들어가자 마자, 부모님은 미루고 미루던 미국으로 유학을 가셨다. 그리다 보니, 준형의 보호자는 자연스럽게 기광이 되었고, 혼자 살던 기광과 함께 집을 구해서 들어오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어서 보호자가 필요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어린 아들을 두고 가는 어머니는 흔쾌히 허락한 기광에게 고마워했다. 그렇게 대학생 생활은 시작되었다. 

 

힙합동아리에 들어가서, 공연도 몇번 따라가고, 즐기기 시작한 그 여름 어느날, 선배 집에서 술을 퍼마시고, 랩을 좀 쓰다가 자고 가라는 그의 말보다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이 먼저라서, 택시를 불렀다. 경사가 꽤 되는 골목 앞에서 내려주신 기사 아저씨께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선, 피곤함 반, 술기운 반으로 비틀 거리면서 골목을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저기 언덕 위쪽, 골목 끝 가로등 아래 있는 두 인영을 보았다. 갑자기 그 중 키가 큰 사람이, 확 껴 안고 격정적으로 키스하는 걸 보고, 헉스 소리를 내면서 슬쩍 몸을 숨겼다. 왠지 그래야 할 꺼 같았다. 그리고 얼마뒤에, 사랑한다는 고백이 이어지고, 한놈이 걸어오는 걸 봤다. 그리고 눈을 마주쳤는 데, 그게 윤두준이였다. 

 

"쥐새끼처럼 뭘 그렇게 훔쳐봤냐?"

 

피식하고 비웃는 듯한 두준의 행동에, 준형의 기분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를 처음 본 건 기광을 처음 본 그날과 같았다. 어머니의 결혼식날, 꺼이꺼이 우는 기광 옆에서 괜찮다고 어깨에 손을 올리고서, 그를 감싸면서, 다정하게 달래주는 남자였다. 둘이 친해보여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 데, 그저 우정이라고 하기엔, 조금 과해보였다. 같은 고등학교, 같은 대학교, 비슷한 군복무시간들, 비슷한 졸업시기라서 15년을 넘는 우정을 자랑한다라고 말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지금도, 명백하게 다른 직업군에 있음에도, 거의 매일 만나는 듯한 그들의 행동이 이상해보이긴 했는 데, 그걸 눈으로 보니,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둘이 친구 맞어?"

 

처음 둘의 관계를 의심했을 땐 준형이 고등학생 때였다. 그때 기광은 웃으면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건 기광이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을 피하는 일종의 스킬이였다. 이기광이 그럼 그렇지 하면서 그때는 그냥 지나갔는 데, 왠지 답답해졌다. 그리고 그 키스를 보고 나서야, 두사람의 관계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준형은 뼈 아픈 여름을 보냈다. 밥은 들어가지 않았고, 작업을 하고 나면, 항상 슬픈 이별곡이 나왔다. 그때 준형은 비로소 자신이 기광을 짝사랑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가족이라는 둘레 안에서, 삼촌과 조카라는 조금은 말도 안되는 관계에서 나오는 그런 사랑은 아니였다. 좋은 삼촌역이라도 하겠다면서 데려가 패션 편집샵이나 식당을 데려가서 사고 싶은 것을 다 사줄께 하고 말하면서도, 막상  가격을 보면, 어린아이 같이, 우와 이게 이렇게 비쌌어? 하고 말하면서 그의  순수한 멍청함이 좋았다. 엄마처럼은 아니지만, 자신을 챙겨주고, 때론 톡으로, 때론 말 없이 그저 공연이나 영화를 보러 가자고 말하는 그의 위로가, 준형에게 그 누구와도 비교 될수 없을 만큼의 위로가 또는 힘을 주기도 하였다. 그가 나온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하지도 않았던 공부를 하기 시작할 때도 준형은 사랑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저 가족애라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게 사랑이였다.  키스를 목격한 이후, 준형은 결국 좋아한다라고 말도 못해보고 차인꼴이 되어버렸다. 

 

그게 벌써 일년 전 일이였다. 그 사건 이후에, 준형은 기광에게서 조금은 멀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크루사람들과 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 수록 기광이 눈에 밟혔고, 좋아하는 마음은 그저 커져만갔다. 결국 그렇게 집을 나와서도 크루형 집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준형은 한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딱 일주일이다. 그것만 버티면, 준형은 두준이 없는, 오롯이 저와 기광의 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술과 가사들로 가득한 일주일이 흐르자, 몸을 추스려서 집으로 들어갔다. 

 

이상하게 집엔 아무도 없다. 쓸쓸해진 준형이 거실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렇게 한시간 두시간이 흘려서 12시를 넘겨버리자,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외박을 해도, 자신에게 꼭 이야기를 했는 데, 하면서, 조금 걱정되는 얼굴로 기광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는 다. 두준에게 연락을 할까 하다가, 그냥 두사람이 같이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는 차에, 띠리릭하면서 잠금이 풀어진다. 잔소리를 하려고 선 준형 앞엔 기광을 엎은 두준이 나왔다. 

 

"비켜.

 

기광의 방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간 두준은 조심스럽게 기광을 침대에 올려 두곤 허리를 두어번 친다. 다정하게 이불을 덮어주면서, 볼을 두어번 두들이 두준이, 이제 진짜 보양해야겠다. 너 너무 가벼워. 하면서 웃으면서 기광을 타박을 한다. 그걸 문밖에서 보던 준형은 범접할 수 없는 두준의 행동에 아무말 없이 그저 질투심에 그들을 바라보았다. 준형의 눈을 읽은 것인지, 그래 간다 가. 하면서 기광의 방의 문을 닫고 나가는 두준의 행동이 오랜만에 마음에 들었다.  그가 나가자마자 문을 걸어 잠그고, 닫혀있는 기광의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두준이 한 것처럼, 그의 뺨에 손을 가져갔다.

 

"난 니가 삼촌인게 너무 싫다."

 

마음에 있던 소리가 튀어나가자, 준형은 잠시 손가락을 멈추었다. 보드라운 그의 뺨에 닿는 자신의 손가락은 타는 듯했다. 나즈막하게 두준의 이름을 부르는 기광의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겠다. 생각만큼이나 부드랍고 따뜻한 입술이였다. 살짝 전해오는 알카한 술맛.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본능적으로 손을 올려서, 자신의 머리를 만지는 작은 손길에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던 그의 손. 그리고 나서야 그의 작은 눈이 살며시 떠진다. 

 

“...아...”

 

기광의 까만 눈과 마주친 준형은 놀란 상태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준형은 이때까지 마음에만 두었던 고백을 하고 싶었다. 사랑한다고, 정말로 너무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공허한 두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없었다. 그저 그렇게 준형이 기광의 방을 나가는 걸로 끝이 났다. 

 

결국 한숨도 못 잔, 준형은 방에 들어가지 않고, 거실에 멍하게 앉아 있었다. 아침해가 뜨는 것을 보던 준형은 기광의 방문이 열리는 것을 바라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검정색옷을 입은 기광은 준형을 힐끔 보고는, 여행용 케리어를 끌고 열려진 방문을 다시 닫았다. 지금 무슨일이 일어나는 지는 모르지만, 기광이 떠날꺼라는 건 확실해졌다. 결국 준형은 기광의  다리를 잡고서 울며 부탁했다.  

 

"가지마. 내가...내가 잘못했어.

"......."

"내가.. 내가 다 잘할테니까, 가지마..제발"

"............

"내가 바꾸면 돼. 내가"

"용준형. 이러지 마

 

준형은 처음으로 아주 매정한 기광의 표정을 보았고, 그의 다리를 놓아 줄수 밖에 없었다. 차가운 까만 눈동자. 그가 느끼는 혐오감, 그리고 모독감,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단순히 몇일만 기다리면 기광에게서 무슨 연락이라도 올 줄 알고, 나름데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래도 가족인 자신에게로 돌아와서 무어라고 할 줄 알았는 데, 그가 집을 떠나고 3일 되던 날 전화를 하니, 이미 끊겨진 번호라고 말한다. 문자도, 톡도 다 읽지 않는다. 결국 걱정되어, 기광이 일하는 출판사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는 데, 그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일주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결국 자존심따위는 버리고, 법원 앞에 서서 두준을 기다리기로 했다. 두준은 준형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주먹을 휘날려버렸다. 상관없었다. 기광을 찾을 수만 있다면, 하지만 두준 역시도 기광의 행방을 모른다고 했다. 수없이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그의 멱살을 잡고 두준의 얼굴을 보았을 때, 준형은 그 역시도 자신이 한 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닭았다. 

 

부모님은 아실까 하고 어머니께 여쭙자, 아.. 그건 아버지랑 통화해 하시곤, 전화기를 넘겨주셨다. 아버지는 곤란해하시면서, 미안하다고만 말씀하셨다. 그가 미안한 건 뭘까? 알아도 알려줄수 없다는 것, 아니면, 나와 그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아는 건 아닐까? 과연.. 그는 뭐가 미안한 걸까?

 

그렇게 준형은 늦여름 감기를 앓았다. 추운데 몸에서 자꾸 땀이나고,  자면 기광이 웃는 모습이 보였다. 다시 예전과 같이 자신을 깨워주고, 자신에게 차를 태워주고, 자신과 함께 편집샵에서 옷을 고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꿈을 몇날 몇일을 꾸자, 정말 미친놈처럼 그 더운 여름을 보냈다. 그렇게 방황하던 준형의 모습에 어머니의 조언으로 군대를 거론했고, 그는 여름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군대를 갔다. 갑작스런 결정에 크루 맴버들은 아쉬워했지만, 자신이 원하던 얼굴은 결국 훈련소를 들어가는 그날까지도 볼수 없었다. 휴가가 있어도 그냥 부대 근처에 있다가 복귀했고, 간간히 한국에 나오신 부모님을 뵈려 나간 걸 제외하면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다. 계절이 바뀌고 여름이 오면 준형은 또 다시 감기에 걸렸다. 군의관도 손을 쓰지 못해, 민간인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몸은 추워서 오들오들 떨어도 땀이 나 듯, 기광을 마음에서 거부하면 할 수록 더 크게 비집고 들어왔다. 눈앞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그때, 비로소 준형은 기광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그렇게 추수철이 오고, 나뭇잎 색이 변하면서, 눈이 무릎을 덮을 만큼 오면서, 다시  꽃이 피고, 지고.....  나무들이 푸르러 질때쯤, 준형은 제대를 했다. 

 

준형은 비밀패드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와 자신의 생일을 합쳐 놓은 비밀번호를 누르자, 초록불이 나오면서 문이 열린다. 준형의 제대를 알고, 어머니가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특별히 부탁했다고 해서인지, 집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아버지의 학회로 제대때 한국을 못 나오신 부모님께 다음에 오시면, 뵙자고 말씀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냉장고를 열자 물병이 가지런히 세워져있다. 작은 병하나를 꺼내서 마시고 얼굴을 드니, 기광의 방문이 보였다. 살짝 아주 살짝 문을 열고 기광의 방을 문밖에서 바라보았다. 기광이 사라지고 나서, 이 방에서 사라진건 하나도 없었다. 이 방의 주인만 사라졌다. 마치 돌아올 주인을 기다리는 듯한 방은 두해가 지났음에도 여름의 향기를 가득 품고 있었다. 조심하게 방으로 들어간 준형은 책상에 이미 바래서 누렇게 변해버린 종이를 바라보았다. 악필이였던 그의 글씨는 알아볼수 없는 글자들로 나열되어 있다. 그 반대쪽의 침대를 지나자, 옷방문이 보였다. 유달리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화장실을 개조해서 만든 옷방의 문을 열자, 그의 향기에 질식할 듯했다. 준형은 그의 옷 앞에 섰다. 한때, 기광과 함께 같이 갔던 편집샵에서 샀던, 그에게 어울리는 핑크색 셔츠였다. 손가락으로 살짝 구기듯이 그 셔츠를 잡자, 기광의 냄새가 자신의 코에까지 도착했다. 그의 셔츠를 잡고, 품에 안아버렸다. 가까이에서 나는 향기와 함께, 남자답지 않게 스킨쉽이 많았던 그와 처음 포옹한 순간이 기억나, 준형은 무릎을 꿇고 그 자리에 앉아서 울어버렸다. 2년이라는 시간은 기광을 잊기에는 터문 없이 부족하였다. 

 

크루 선후배와 제대 축하 파티를 거하게 하고, 보고 싶은 얼굴이 있어서 택시에 몸을 넣었다. 집에 가도 없다는 걸 알지만, 여기서는 볼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택시를 탔다. 택시비를 건내드리며 감사하다고 말을 하고 언덕을 조금식 오르자 취기가 올라왔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몇년전 자신이 보았던 광경이 눈에 떠올랐다. 키스를 하던 두사람. 그리고 숨어버린 자신의 모습까지 마치 영화를 보듯 떠올랐다. 자리에서 엉엉 울수 밖에 없었다. 만약에 그때, 자신이 마음을 접어버렸더라면… 이렇게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 자신의 모습도, 그리고 어디에 있는 지 모를 기광의 마음도 모두 자신의 잘못 같아서 아이처럼 울기만 했다.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기광의 방문을 열고, 침대에 누웠다. 

 

눈을 떠서 다시금 패배자가 된듯 한 얼굴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콜록콜록 나오는 기침을 보니, 어제 먹었던 술집이 조금 춥다고 했는 데 감기에 걸려버린듯했다.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물을 한번 마시고는 쇼파에 앉았다. 언제 걸렸는 지도 어떻게 걸렸는 지도 모르지만, 마치… 자신의 그를 만난 그 사건처럼. 그리고 자신이 그를 사랑하게 된 그 감정처럼… 

 

다시 눈을 뜨자 다시 밤이 되었다 한숨을 쉬면서, 자신이 쇼파에 누워 덮고 있던 담요를 내려다 봤다. 아.. 아주머니가 오셨다가 가셨구나 하면서, 부엌으로 갔다. 어디서 온지 모르는 죽집 봉지를 내려다 보자, 조금은 식은 죽이 보였다. 아까 아주머닌가 싶어서 죽을 꺼내어 딸려온 플라스틱 스푼으로 몇입 먹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약을 땄다. 기광이 아플때, 자신이 사왔던 그 시럽약이였다.  포도맛 어린이 시럽약. 한번 웃으면서, 반통 정도를 마셨다. 그리고 물로 입을 한번 행구고, 다시 기광의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누웠다. 잠이 드는 것 같았다

 

눈을 다시 떴을 땐, 말도 안되는 장면이 나타났다. 자신을 내려다 보는 얼굴이 익숙했다. 아까까지 꾸웠던 꿈의 연장선인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과 눈이 마주친다. 차분하게 가라 앉은 검정색 머리, 반달로 휘어접히는 눈과 오똑한 코. 매력적이게 큰 입술에 이어가는 턱선까지, 그건 분명히 기광이였다. 

 

"오랜만이다. 용준형"

 

그렇게 나의 여름이 돌아왔다.

 

각 작품의 저작권은 작품의 창작자에게 있습니다. 무단 도용, 복제 금지입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