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날의,
양요섭x이기광
by. 익명
겨울에 태어난 너에게는 여름의 내음이 풍겼다. 나는 ‘냄새’를 잘 맡았는데, 음식의 냄새 이런 거라기 보단 ‘비 온 뒤 공원의 냄새’, ‘새벽 공기 냄새’, ‘노을 진 오후 놀이터 냄새’ 이런 것 말이다. 너와 이어폰을 나눠 낀 채로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 내가 말했다. ‘너한테 여름 냄새나.’ 너는 열려 있는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흔들리는 내 앞머리를 정리해주며 답했다. ‘나 겨울에 태어났는데.’ 왜 너에겐 여름의 향기가 물씬 풍겼는지, 잘 모르겠다. 더운 여름 날, 조금 열린 창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 꾀병으로 조퇴했던 11시, 우리밖에 없던 버스, 이어폰에서 나오는 GoGang 의 Tell Me IF You Can, 눈을 감고 노래를 듣던 너, 나를 바라보던 너의 눈빛, 딱 오늘 같은 날만 계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해, 나는 그 해만을 기다렸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18살’이 되고 싶었다. 숫자가 간지난다고 해야 하나, 나에게 18이라는 숫자의 나이는 멋있게 느껴졌다. 고2. 중학교에서 갓 올라온 17살과 성인이라고 봐도 무방한 나이 19살 그 사이에 있는 18살. 나는 그 어중간함 또한 참 좋았다. 내가 봤던 19살들을 생각했을 때, 내가 마지막 학창시절을 걱정 없이 즐길 수 있는 나이. 나는 18살이 되었다.
반 배정에서 1학년 때 친했던 친구들과 떨어졌다. 나는 문과고, 친구들은 이과였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큰 문제없이 살아왔던 터라 새 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그저 이번 문과 반에 무서운 선생님이 담임으로 배정됐다는 소문이 들려서 두려울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18살이 된다는 설렘과 담임선생님에 대한 걱정으로 2학년을 맞았다.
“ 온다!”
문과는 8,9,10반 이었는데 교무실과 정 반대편이었다. 문과 세 반의 남자애들이 모두 창문에 다닥다닥 매달렸다. 다름이 아니라 그 무서운 선생님이 복도 끝에서 문과 반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모두가 그 선생님의 발걸음에 집중했다. 제발 우리 반만 아니길. 선생님은 8반을 지나쳤고 9반도 지나쳐 10반, 그러니까 우리 반으로 들어왔다.
“ 자리에 앉아라.”
나는 내 1년을 이렇게 보내나, 하는 생각에 슬퍼졌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우울해하던 찰나, 앞문이 열렸다. 짙은 갈색머리를 한 남자애가 들어오더니 선생님에게 인사를 했다. 선생님은 “ 아, 그래. 이리로 와.” 하며 그 아이를 가운데로 불러왔다. 나는 지각생인가, 하고 첫 날부터 제대로 찍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전학생이라고 소개했고, 전학생은 교실을 한 번 훑더니 꽤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 양요섭이라고 해. ”
누구랑 앉아야 하나 고민할 필요도 없이 선생님은 자리를 정해오셨다. 어떤 방법으로 자리를 정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너와 짝이 되었다. 전학을 와 처음으로 대화한 사람이어서인지 짝꿍이어서인지 너는 유독 나하고만 친했다. 쟤는 뭔가 좀 달라. 승우가 너에 대해 늘 하는 말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그렇다고 놀기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무엇이든지 적당히, 눈에 띄지 않을 그런 평범한 애. 그런데 너는 누구보다도 눈에 띄는 존재였다. 모두가 닮고 싶어 하는. 그런 관심들에 비해 넌 학교생활에도, 친구를 사귀는 것에도 별 감흥이 없어보였다. 그런 너의 눈빛이 살아날 때는 노래를 부를 때였다. 장난으로 신고식이라며 노래를 시켰을 때, 당연히 안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너는 무덤덤히 일어나 노래를 불렀다. 정준일의 안아줘. 그 뒤로 남자애들은 툭하면 ‘안아줘’를 부르고 다니곤 했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소문이 나서 선생님들은 반 아이들이 졸려할 때면 너에게 노래를 시켰다. 나는 항상 너가 부르는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추가시켰다. 또 너는 이따금씩 나에게 노래를 추천해주었다. 내 귀에 이어폰을 꽂아주며 “ 들어봐. ” 하는 너의 그 한마디가 나는 그렇게도 좋을 수 없었다. 너가 들려주는 노래마다 왜 다 좋은 건지.
이번 해는 정말 더위가 일찍 찾아왔다. 4월의 후반인데도 거의 모든 학생들이 하복을 입었다. 너는 하복이 참 잘 어울렸다. 덥다는 학생들의 원성에도 에어컨은 아직 이르다는 행정실의 공지 때문에 우리는 선풍기로 버텨야 했다. 따분한 문학시간, 점심을 먹고 난 5교시,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너풀너풀 거리는 커튼, 딱딱-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선풍기, 칠판에 적혀가는 분필소리. 모든 것들이 내가 잠을 잘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잘 거야?” 책상에 쭉 뻗은 한 쪽 팔을 베개 삼아 누운 나의 앞머리를 넘겨주며 너가 물었다. 너는 내 머리를 자주 만지곤 했는데, 누군가 머리를 만지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이상하게도 너가 손길에는 기분이 좋았다. 너는 “ 앞머리가 너무 길어, 잘라야 겠다.” 하고 중얼거렸다. 나는 감은 눈을 뜨지도 않고 말했다. “ 응. ” 계속 흘러내리는 내 앞머리를 만지던 너는 행동을 멈췄다. 나는 게슴츠레 실눈을 뜨곤 너를 쳐다봤다. 너는 피식 웃고는 선생님의 필기를 받아 적었다. 너가 조금 더 쓰다듬어줬으면, 했다.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너는 유일하게 문학시간을 좋아했다. 과학이 너무 싫어 문과를 온 나는 문학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그 글을 쓸 때 작가의 심정을 어떻게 알아. 문학을 열심히 듣는 걸 보고 나는 조금 의아해서 물어봤다. 그러자 너의 대답은 “ 그냥. ” 이었다. 그냥, 너가 나에게 자주 하던 말. 너라면 정말 ‘그냥’ 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너는 우리 집에 놀러오는 걸 좋아했다. 너가 올 때마다 너의 팔을 잡곤 수다를 멈추지 않는 엄마가 부담스러울 법한데 꽤나 열심히 맞장구를 치는 너의 모습은 귀엽기도 했다. 우린 놀았다, 보다는 휴식을 취했다, 가 더 적합했다. 주로 얘기하기 바빴는데 내가 얘기하면 너는 들어주는 패턴이었다. 나는 오늘 있었던 일, 엄마 얘기, 작년에 놀았던 얘기, 우리 학교 애들 얘기, 등등 나는 말을 많이 하는 편도 아닌데 너와 함께 있으면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너는 나를 쳐다보며 가끔씩 고개를 끄덕여주거나 내 머리를 만졌다. 언제는 작년에 성준이가 허세부리다가 다친 얘기를 하며 웃음이 터지자 너는 조금 이골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너무 내 얘기만 했나, 생각하고 있는데 너가 말했다.
“ 너는 항상 걔네랑 놀았던 얘기 할 때만 웃어서 조금 짜증나. ”
항상 나보다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던 너가 그런 어린아이 같은 말을 하니까 나는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 내가 그랬나? 그래서 너 삐진 거야 지금? ”
자기가 한 말이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너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묻자 너는 고개를 들더니 내 얼굴을 잡고 말했다.
“ 질투하는 거야. ”
당황한 나는 얼굴이 화악- 달아오름을 느껴서 들키지 않기 위해 너의 손을 떼어냈다. 하지만 마땅한 대답을 찾아내지 못해 애꿎은 손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이상하게 너도 말이 없어서 고개를 살짝 들자 너는 의중을 알 수 없는 눈동자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 왜, 왜. ” 나의 물음 아닌 물음에 너가 입을 떼려는 찰나에, “ 애들아, 수박 먹어! ” 하고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너가 하려고 했던 말이 궁금했지만 엄마가 나가고도 다시 말을 잇지 않는 너에게 나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너는 나에게 말로, 눈빛으로, 손길로 말해 오고 있었다. 나는 애써 모른 척하며 저 밑에서 올라오는 감정들을 꾹꾹 누르기에 바빴다. 하지만 예고도 없이 들어오는 너의 말들, 눈빛, 손길 그 모든 게 나를 점점 흔들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날도 나에겐 벅차고 무거운 마음이 커지고 있는 날이었다. 점심 식단이 맛이 없었다. 나는 장난삼아 너에게 “ 우리 점심도 맛없는데 학교 째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 하고 물었고, 너는 “ 그래. ” 하고 대답했다. 우린 선생님께 ‘어제 같이 저녁을 먹었는데, 배탈이 난 것 같아요.’ 하며 꾀병을 부려 조퇴를 했다. 너나, 나나 선생님께 밉보인 전적이 없어서인지 백퍼센트 거절당할 거라는 나의 예상과 다르게 쉽게 허락이 떨어졌다. 다른 친구들은 맛없는 밥을 먹고, 지루한 수업을 들을 텐데 나는 벗어났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뭐먹지? 하고 잔뜩 신이 난 나의 물음에 너는 너가 먹고 싶은 거 먹자. 하고 대답했다. 나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은 방문턱이 닳도록 가놓고 정작 너의 집은 가본 적이 없다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 너네 집 갈래! ” 하고 말하자 너는 꽤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 응? 너는 맨날 우리집 왔잖아. ” 너는 잠시 고민하더니 나의 조름에 못 이긴다는 듯 알았다고 대답했다. 45번 버스를 타니 출근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더워서 손부채질을 하고 있자 너는 위에 달린 에어컨을 나를 향하게 해주곤 창문도 열어주었다. 또 너의 무의식적인 다정에 나는 에어컨 바람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기 바빴다. 너는 이어폰을 꽂아 노래를 틀더니 내 귀에도 한 쪽을 끼워주었다. 그 순간 너에게서 한 여름의 내음이 났다.
“ 너한테 여름 냄새 나. ”
너는 바람에 흐트러지는 내 앞머리를 정리해주며 말했다.
“ 나 겨울에 태어났는데. ”
꽤나 처절한 남자의 목소리가 귓속을 어지럽혔다.
so tell me if you can hear me you've been waiting for.
너는 원룸에 혼자 살고 있었다. 매트리스에 베개와 이불, 작은 상, 선풍기, 빨랫대, 행거. 원룸에 있는 것들은 이게 다였다. 혼자 사는지 몰랐던 나는 꽤 당황했고, 그런 나를 안다는 듯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혼자 살았어. 어릴 때부터.’ 라고 말했다. 너는 먹을 게 없다며 시켜먹자고 했고 나는 그저 응. 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생각들이 나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내가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아무 말도 없자 우리 둘 사이에는 어색한 기운이 맴돌았다. 무슨 말을 꺼내고 싶은데, 꼭 울 것만 같았다. 왜? 나도 모르겠다. 피자를 먹는데 속이 꽉 막혀 넘어가질 않았다. 그렇게 두 조각을 먹고 나는 너의 집을 나왔다. 데려다주겠다는 너를 한사코 거부하며 홀로 나왔다. 남겨진 너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왜 혼자 살아?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전학 오기 전에 너는 어땠어? 나는 뭐가 두려워서 너에게 물어보지 못했던 걸까. 분명 너는 나에게 말해줄 준비가 되어있었는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발걸음을 돌려 너의 집으로 돌아갔다. 쿵쿵쿵 두드리는 문소리에 문을 연 너는 나를 보고 잠시 놀라더니 웃으며 나를 안았다. “ 나 듣고 싶은 게 많아. ” 울먹이는 내 목소리에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얘기를 듣는 내내 나는 울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너의 눈을 마주보기 위해 참고 또 참았다. 얘기를 하는 동안 내 손을 잡고 손등을 톡톡 두드리고 있던 너는 얘기가 끝나자 우는 나를 보고도 놀라지 않고, 그저 안아서 등을 토닥여주었다. 왜 우는지 묻지 않는 너를, 그동안 혼자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냈을, 아니 지금도 견디고 있을 너를 내가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나는 너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무서웠고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너를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너를 좋아한다고 인정하는 것도, 너가 나를 만나기 전 힘들게 살아온 얘기를 듣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나를 좋아한다고 계속해서 표현해오던 너를 모른 채하고, 너가 궁금하지 않은 척 했던 내가 바보 같았다. 나는 그동안 외로웠을 너의 상처를 함께 슬퍼해주고, 위로해주고 싶다. 너가 더 이상 아프지 않게, 외롭지 않게. 다, 정리가 되었다. 그동안 너의 마음을 그리고 내 마음을 피하는 나를 알았던 너는 나를 기다려주었다. 이제는 너를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다. 나의 고백에 너는 나를 꽉 안으며 말했다.
“ 기광아 정말, 좋아해. ”
내가 좋아하는 계절 여름, 유난히 더웠던 18살의 여름, 여름 내음이 나는 너.
여름날의,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