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트다
답청당 안마당에서 잔치가 열리면 기광은 사랑채로 몸을 피한다. 오늘은 조금 더 빨랐다. 어제 내린 봄비로 떨어진 기온에 몸이 으슬거리기도 했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요섭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연유다. 늘 요섭과 나란히 도망을 왔었는데. 혹시나 먼저 와 있지는 않으려나 기대했던 어깨가 축 늘어진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아마도, 어쩌면, 아니면. 오만가지 생각들이 넘쳐나는 듣그러운 속으로 사늘한 얼굴을 하고 자리 보존을 해 봐야 필시 만냥판인 잔치에서 옥에 티만 될 뿐이다. 아니, 어쩌면 한마디씩 거들어대는 사람들의 말에 깔려 캑 하고 죽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오늘은 이 집 도련님의 생일잔치였으니까. 요섭이 없는 생일 잔치는 처음이다. 저 많은 화월리 사람들 중에 그저 딱 한 명이 비었을 뿐인데 왜 전부가 사라진 것처럼 허전하고 쓸쓸한 걸까. 그래서 죽상을 하고 서고에 앉았다. 꺼내든 책도 영 재미가 없다. 세 시간 동안 아직 다섯 장도 넘기지 못할 만큼.
「안 아프니까 이제 나 보러 올 거야?」
「……」
「다쳐서 못 온 거지?」
「……」
「응? 올 거지?」
「……너 빨리 나아라.」
그 후로 열흘이 지났다. 해끗해끗하던 매화가 꽃망울이 활짝 터트리는 동안 양요섭은커녕 요섭의 그림자조차도 볼 수가 없었다. 저도 실은 이 상황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저 입 밖으로 내기가 두렵고 인정하는 것이 바자워 숨기고만 있을 뿐. 그래서 정답도 알고 있다. 버티는 것. 이별에 부딪히는 건 노상 갑작스럽게 찾아오지만 모든 일에는 결국 끝이 있으니까.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다. 슬픔을 눈물로 쏟아내고 고통을 토해내다 보니 사라지고 싶던 세상에서 어찌어찌 살아는 졌다. 그런 것이다. 지금이야 대문 앞에 저를 오도카니 세워놓고는 홱 하니 잔걸음으로 멀어져 가던 요섭이 섧고 또 섧다지만, 시도 때도 없이 떠올라대는 그 동그란 뒤통수도 곧 불투명해진다. 이제는 엄마의 얼굴이 설풋한 것처럼, 그렇게 될 것이다.
생각해 보면 늘 그랬다. 요섭이 좋다면 저도 좋고 요섭이 싫다면 저도 싫었다. 친구 하자고도 요섭이 먼저 말했으니 친구 하지 말자고도 요섭이 먼저 하는 게 옳다. 그리고 양요섭이 이기광이 싫다면 이기광도 이기광이 싫다. 그렇게 되어 버리면 될 일이다. 영원히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을 책을 붙들고 기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얘 연심아, 사진 좀 보여 다오.”
금옥의 목소리다. 금옥은 연심의 단짝으로 출가 전 철대문 집에 살 적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답 청당에 출근 도장을 찍었었다. 연심은 저와 있을 땐 까마득한 손윗사람 같지만 금옥과 함께라면 소녀같이 곧잘 까르르 웃곤 해서 금옥이 놀러 오는 것이 좋다. 연심이 바쁠 적에는 일도 척척 도맡아 했는데, 행랑채 식솔들이 둘뿐인 남매가 다 도련님만 보필하고 있으면 그 댁 일은 누가 하냐며 급료라도 받아 가라고 던지는 농말을 해서 겨우 알았다. 요섭과 금옥이 남매라는 것을. 그래서, 더 좋았다.
아침부터 종일 붙어있었으면서 아직까지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이불채를 든 두 개의 그림자가 조잘거리며 사랑채로 점점 가까워 온다.
”보여주면 어디 닳는다니? 서방님 좀 보재두.”
“그 서방님 소리 좀 하지 마라.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니?”
기척이라도 할걸. 기광은 그제서야 달빛에 몸을 숨기며 후회를 했다. 숨으려고 한 것이 아닌데 숨은 것이 되어 버렸다. 저가 들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듣지 않아야 할 것 같은데, 그럼 마음이 이는데도 발이 묶여버렸다.
“내가 뭐 틀린 말 했니? 곧 혼인할 사이인데. 됐다, 직접 보러 가련다. 어차피 공의 관사나 의원에 가면 될 일 아니니.”
“너, 선생님께 폐 끼쳤담 봐!”
“들어봐라 연심아. 아버님 수술 때 만났던 보조가 공의가 되어 두 사람은 고향마을에서 재회한다. 운명을 직감한 남성의 열열한 구애로 둘은 결국 결혼에 골인하게 되는데! 아아, ‘러브스토리’보다 낭만적이지 뭐야.”
“너도 참 객쩍다.”
“울 연심이는 피부가 고와서 녹원삼을 입어도 예쁠 텐데, 혼례가 가을이니 활옷이 좋으려나?”
“그 목소리 좀 낮추래두.”
웨딩드레스. 기광이 작게 혼잣말을 읊조린다. 전에 팔촌 결혼식 때 보았다. 형님이 사모관대(紗帽冠帶)에 비단 목화(木靴) 대신 검은 양장을 하고 꺼먼 구둣발로 혼례를 치렀을 때 문중 어르신들은 말세라며 돌아앉아 크게 역정을 내셨었지만, 구름옷 같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사뿐히 선 색시가 선녀인가 싶어 기광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곱고 예쁜 연심 누나가 입으면 더 곱겠지, 싶었다. 울 연심 누나도 연지 찍고 활옷 입고 꽃가마를 타는 대신에 저런 흰 깃옷을 입어도 좋겠다고, 그럼 저도 멋들어진 양장을 하고 가서 힘껏 손뼉을 쳐 주겠노라 다짐도 했었다.
그런데 저 모르는 새에 혼삿날까지 잡혔다는 말을 들으니 축하는커녕 서글픈 마음뿐이다. 가슴병을 오래 앓아서일까. 내 속은 참으로 좁구나. 자의든지 타의든지 그 자리에 붙박이로 남았으면 스스로 감당을 해야만 하는데. 헤어짐이란 그런 것인데. 연습도 해 보았으면서, 가는 사람 발끝에 미안함이라도 차이면 어쩌려고 미련퉁처럼 구는 것일까. 보내는 것이 한두 번도 아니면서. 바보같이. 행여 누구에게 그 옹졸한 속내라도 들킬까 싶어 기광은 고양이걸음으로 사랑채를 나섰다.
“연심아. 내가 참말로 좋아서 그래. 울 연심이가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을 가니 고생이 끝이요, 도련님이 서울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시니 그놈의 기침병도 끝이오. 어르신이 2층 양옥도 해 주셨다 안 했니. 그 높다는 서울 하늘 아래서 우리 도련님, 선생님, 너 셋이서 그림같이 살 걸 생각하면 내 마음이 어찌나 가든한지 몰라.”
이기광이 아프다. 또.
냇가 근처에 쓰러져 파리해져있는 녀석을 다행히도 발 빠른 우식이 형이 발견해서는 의원으로 둘러업고 내달린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잔칫상이랑 제사상을 함께 차려낼 뻔했더라며 사람들은 며칠을 수군거렸다. 사흘 밤낮을 열이 펄펄 끓고 해딱해딱거리면서 심하게 앓아대는 통에 읍내에 있는 큰 병원에서도 애를 먹었단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집에 가고 싶다며 생전 않던 고집을 부려서 어쩔 수 없이 데려는 왔다만. 문제는,
“이제는 사람이 들피지고 있단다.”
곡기를 끊었다는 거다. 먹지를 못하는 건지 먹지를 않는 것인지, 아무것도 입에 넣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 큰일이 나려고. 그 바보 같은 게.
“먹어야 기운을 차릴 터인데 먹질 못하니 어쩌면 좋다니. 네가 좀 들여다봐라.”
왜 겁도 많으시면서 밤길을 헤맸을꼬. 엄마의 한숨을 뒤로하며 요섭은 방문을 나섰다. 마루에 걸터앉아 섬돌 옆에 놓인 성냥갑 두 개를 가만히 바라본다. 내일까지 학교에 가져갈 쥐꼬리를 담아놓은 것이다. 한 개는 내 것 한 개는 이기광 것. 아마 그 녀석 것은 이번에도 필요가 없지 싶다. 빨랫줄에 걸려있는 책보도 한 번 보았다. 저것도 이제 올해로 끝이다. 중학교에 가거들랑 매형이 책가방을 사 준다 약속을 했었지. 교복처럼 까맣고 반들반들한 놈으로다가. 그러니까, 중학교에 가면. 중학교에. 주먹을 꽈악 쥐고 이마에 핏발이 설 만큼 어금니를 질끈 악물었다. 뒤축에 손가락을 넣어 신을 단단히 신고 쏜살같이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을 나선다.
잠시 후. 멀어지던 발소리가 돌연 방향을 바꾸더니 닫혔던 문이 다시 반쯤 열린다. 고개만 빼꼼히 들이민 요섭이 소리쳤다. 엄마 나 오늘 늦어요.
애기들 분유통 만한 유리병 속에서 노르스름한 액체가 또옥또옥 떨어져 가느다란 줄을 따라 기광의 팔 안쪽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별 이상한 것도 다 있다. 저건 우주인이 인간을 잡아갔을 때 하는 거 아닌가. 이기광은 되게 쬐그만데 저 약이 다 들어갈 데나 있을지 모르겠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았더니 인기척을 느낀 기광이 해끔한 얼굴로 부스스 눈을 뜬다.
“어? 요섭이다.”
“응.”
“우와 대답도 하네. 꿈인가 봐.”
“왜 꿈이야.”
“왜냐면. 진짜 요섭이는 이제 나 보러 안 오니까.”
가짜 요섭이 안녕. 아직도 달뜨는지 뜨거운 입김을 뿜으며 할근댄다. 힘겹게 눈을 깜박이면서도 시선을 떼지 않고 웃는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아서 요섭은 몇 번이고 애먼 천장을 올려다보아야 했다.
“……진짜야.”
“에ㅡ 거짓말.”
“맞대두.”
속고만 살았냐고 한소리 할까 하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대신 마주 보며 모로 눕는다. 이불 밖으로 나와있는 차가운 손을 살살 애만지다 꼭 잡으며 말했다. 봐봐, 진짜지.
“그렇네. 진짜 요섭이네.”
기광도 몸을 돌리며 다른 손을 요섭의 손 위로 포갠다. 저보다 손가락이 한 마디는 작아서 겨우 반이 조금 넘게 가려지는데도 늘상 손을 잡으면 다른 손으로 제 손을 감싸온다. 그럼 그 위에 또 요섭이 손을 올려서 네 개의 손을 빈틈없이 엇갈려 잡는다. 이렇게 너의 체온과 나의 체온이 온통 만나면 우리는 아무리 고요한 암야라도 두렵지 않았다.
“요섭아. 연심 누나가 공의 선생님이랑 혼인을 할 거래. 잘 됐지?”
“그래.”
알고 있었구나. 기광이 억지웃음을 지어 보인다. 역시 요섭의 예상이 맞았다. 속이 시끄러운데 잔치랍시고 답청당이 북새를 이루고 있으니 조용한 곳을 찾다가 달빛을 헤맸으려니 했다. 이 바보가. 훤히 보이는 낮에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그 깜깜한 밤에 겁도 없이, 밤바람은 또 얼마나 시린데. 면박이라도 줄까 했더니만 기광이 크게 심호흡을 한다. 기침이라도 나오나 싶어 얼른 몸을 일으키려는데 손을 힘주어 잡아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온통 어둠인데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곧게 저를 바라보는 시선을 요섭도 피하지 않았다. 기광이 말했다. 요섭아 있잖아.
“나도 서울에 간대.”
간대. 마치 남 이야기하듯이. 덤덤하게. 그래서 요섭도,
“응.”
하고 말았다. 의연한 사람에게 대고 괜찮니 어쩌니 들썽거릴 수는 없지 않은가. 괜한 기우였나, 주제넘은 걱정이었을까, 그간의 고민은 다 헛것이었나. 머릿속에는 수많은 물음표만 떠다닐 뿐 정답은 보이지 않았다.
“밥 먹자.”
그래서 그 순간 기광의 끼니를 떠올린 자신에게 안도했다. 순식간에 내리찍은 무거운 공기가 막 숨통을 조이려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익숙하게 어둠을 더듬어 구석에 놓여있는 소반을 찾는다. 덮개를 여니 아직 채 식지 않은 흰 미음과 간장 종지 하나가 놓여있었다. 상 한쪽 끝을 살짝 들어 소리가 나지 않게 끌어서 보료 옆에다 바짝 붙였다.
“일어나.”
“......”
그런데 대답은커녕 쳐다도 보지 않는다. 시르죽으니 그렇겠지. 내가 일으켜줄게. 안아 일으켜줘야겠다 싶어서 다가갔더니만 뻗은 팔을 잡아오기는커녕 반대편으로 부스스 돌아누워 버렸다. 그렇게 등을 보이고는 포옥 한숨만 쉬고 있다. 평소라면 죽어라 싫더라도 제가 먹자고 하면 먹는 시늉이라도 하는데 오늘은 전에 없는 고집을 부린다.
“기광아.”
“......”
“조금만 먹자, 응?”
집에서 예까지 뛰어오는 동안 딱 한 가지의 생각만 했다. 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기에 애를 며칠이나 굶겼을까. 그리고 문을 열고 기광을 보았을 때는 화가 치밀었다. 저 얄따란 팔에 자리가 어디 있다고 시퍼런 주삿바늘을 몇 개씩이나 꽂아 놓았지, 하고. 그래서 요섭은 한 치도 물러날 마음이 없었다. 얼러서 안된다면 화라도 내겠다고, 그래서 기연히 밥을 먹이고 말겠다고 애초부터 작정했다. 뭐, 저에게 하는 것을 보니 간대로 먹어 줄 것 같지는 않다만.
상을 번쩍 들고서는 발치로 뱅 돌아 기광이 돌아누운 쪽으로 가서 마주 앉았다.
“너 먹어야 돼.”
다시 돌아누웠담 봐. 또 저리로 갈 테니까. 갈앉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끊어서 말했더니 그제야 두 눈이 요섭을 향한다.
“너 안 먹으면, 나 집에 안 간다.”
한 입이라도 먹어야 갈 거야. 그전까지 예서 꼼짝 않고 있을 거니까 두고 봐. 요섭은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 석상처럼 자리를 잡았다. 방울져 떨어져 내리는 노란 약물 소리가 귓전을 울릴 만큼 둘은 한참을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럼 안 먹을래.”
잠시 후. 침묵을 깬 것은 기광이었다. 조금도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대답에 요섭은 저도 모르게 큰소리로 되물었다. 뭐라고?
“안 먹는다구.”
“그게 무슨 말이야.”
“저거 치워. 안 먹을 거야.”
“이기광.”
“안 먹어. 이따도 안 먹고! 내일도 모레도 안 먹을 거야!”
기광은 끊어질 듯한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면서까지 안간힘을 다 해 소리를 질러댔다. 도대체 왜 그러는데. 참고 있던 요섭도 슬슬 부아가 나서,
“왜 고집부리는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눈물이 왈칵 나올 것만 같다. 왜. 왜 그러는데. 다 저를 생각해서 그러는 건데 왜 사람 마음도 몰라주고. 내가 몇 밤을 지새웠는데, 내가 저 때문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데, 얼마나 큰 걸 포기하려고 하는데. 알아달라고 하지도 않았잖아. 그냥 하던 대로만 해 주면 되는데. 내가 제 떼받이도 아니고, 평소에는 부리지도 않는 떼를 왜 이 중요한 시기에, 이런 막중한 일에다가 부리는 건데. 그것도 하필이면 제 몸을 볼모로 잡고서. 도대체 나더러 어쩌라는 건데. 내가 저를 얼마나. 얼마나.
요섭의 고함에 잠시 토끼 눈을 하던 기광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요섭이 집에 가지 마! 안 먹으면 안 간다믄서!”
아.
“서울은. 서울은…… 디게 멀단 말야.”
너를.
“그럼…… 이제 못본단 말야!”
정말 어쩌면 좋지.
머릿속이 엉망진창이다. 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 속에서도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저가 잘못을 했다는 자각. 제 어머니의 작고(作故) 이후 기광은 극도로 인간관계의 변화를 두려워했고 그것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요섭이었다. 그런데 제가 망쳐버린 것이다. 사력을 다 해 참고 있던 어린 가슴을 달래주기는커녕 들떼려버렸다.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할 만큼 이별이 두려운 기광에게 밥이 무슨 대수겠는가. 심호흡을 하고 못난 마음을 가다듬은 후 기광에게 다가가 앉았다. 자세를 낮추고 다시 손을 잡는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소리 질러서 미안해.
“그리고 서울은. 큰 병원에 가는 거래. 너 치료하러.”
가보고 싶던 박물관도 가보고 궁궐 구경도 하고. 그럼 좋을지도 몰라. 기껏 달래겠답시고 떠올린 말의 행색이 초라하기가 그지없다.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려니 고작 구색 맞추기도 되질 않는다. 이담엔 뭐라고 해야 되지. 아랫입술을 꽉 깨무는 사이 기광이 말했다.
“요섭이는 내가 서울 갔으면 좋겠어?”
나는 싫은데. 맞춰오는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아. 마음이 얼얼하다. 이기광이 울면 늘 이렇다. 심장에 생채기가 난 것처럼 아리고 거기에 또 칼바람이 드는 양 쓰라리다. 손끝까지 파들대며 늘킬 바에야 싫으면 싫다고 말이라도 해보지, 안 가면 안 되냐 떼라도 써 보지.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일랑 꿀꺽 삼켜서 속에다 고아 둔다. 선한 성정에다 자식 된 도리도 하지 못하는 병약함이 죄라고 제 아버지를 거스르는 말 따위를 할 수 있었을 리가 없었다. 이기광은 원래 그렇다. 제 병이 죄라도 된 양. 그래서 그 긴 시간 동안 투정 한 번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요섭에게도 그랬다. 뭐가 그렇게 미안하다고 늘 미안해, 미안해. 아픈 저가 제일로 고생스러울 걸 맨날 미안해, 미안해. 요섭아 미안해.
떨리는 손을 잡고 살며시 흔들며 울지 마, 했더니 흔드는 대로 흔들리면서 운다. 이렇게 여려서 어떻게 그런 델 보내지. 서울은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곳이라는데 괜찮을까 몰라. 손끝으로 훔쳐내도 마뜩지가 않아서 옷소매를 잡아 올려다가 눈물을 꾹꾹 눌러 닦아주었다.
“연심 누나랑 가는데두 싫어?”
“싫다구, 흑.”
“서울에는 큰 책방도 있는데?”
“그래도 나는, 흡, 여기가, 좋아.”
“왜?”
“끅, 서울엔, 요섭이, 흐윽, 네가 없잖아. 흐앙ㅡ”
아이고. 결국 터져버렸다. 그럼 너도 가. 나 하나도 안 괜찮단 말이야. 너도 서울 가. 또 생떼를 쓴다. 달래기는커녕 더 울려버렸다. 어째 유독 크게 터진 울음이라 했더니만 금방 가냘픈 목에서 쌔액쌔액 쇳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팔에 주사를 놓으러 왔던 간호사 선생님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그 모습을 보더니 허둥지둥이다. 괜찮아요. 미지근한 물 좀 가져다주세요. 요섭은 익숙한 손길로 얼른 기광을 일으켜 앉혀서 이불을 크게 말아 품에 안겨주고 제 어깨에 머리를 기대게 했다. 그리고 구부린 등을 천천히 쓸어주기 시작했다. 밭은 숨 사이사이로 애처로운 흐느낌이 비집고 든다. 너 없음 싫어. 너랑은 이별하기 싫어.
“쉬ㅡ 그래, 그래. 숨 들이 마시고, 내뱉어라. 그렇지. 쉬ㅡ 한 번만 더 하자. 들이 마시고……”
한차례 폭풍을 넘기고 쇳소리가 잦아들면 숨이 한결 편안해지는 시간이 온다. 계속 신경이 쓰였던 주삿바늘이 꽂힌 채 힘 없이 뒤로 구부리고 있던 가느다란 팔을 곧게 펴 주었더니, 눈을 감은 채 제게로 뻗어온다. 물 잔을 들려주니 서두르지 않고 곧잘 물을 마신다. 이제 한시름 놓을 수 있다. 이마에 송글한 땀을 훔쳐내며 그제야 허리를 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환기를 위해 열어놓은 문틈으로 들어오는 빛줄기에 어두웠던 방 안이 어느새 깨어나있었다. 잠시 발길을 끊은 사이 방 구조도 조금 바뀌었다. TV가 사라지고 화류농 옆으로 삼단으로 된 작은 장식장이 들어섰다. 맨 아랫단에는 한눈에도 진귀해 보이는 청자가 하나. 그 윗단에는 기광의 어머님 사진과 작은 소나무 분재가 하나. 그리고 맨 꼭대기에는. 흰 화병에 고이 담긴 홍매화 가지 하나가 고요하고 찬연하게 만개해 있었다.
툭. 기광이 다시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다. 요섭은 얼른 손을 올려 그 등줄기를 스르르 어루만진다. 참 이상한 일이다. 분명히 달래는 것은 요섭인데, 달래지는 것 또한 저였다. 품에 안은 작은 몸의 찬찬하고 규칙적인 숨소리만으로 요섭은 영혼의 평안을 얻었다. 헌데 그러다가도 덜컥, 맞닿은 어깨에서 뜨끈하게 열이 오르는 것이다. 갑자기 뜀박질이라도 한 양 들먹거리고, 속에서 초록이 아느작아느작. 노오란 나비 한 마리가 온몸을 팔랑이며 날아라도 다니는 듯 이곳저곳이 간질간질.
그렇구나. 너에 대한 나의 향심(向心)은 그저 나보다 손발이 한 마디는 작은 아이를 보살핀다는 수준의 단순한 인정이 아니었구나. 요섭은 지금껏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이 감정에게 처음으로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드디어 단안(斷案)이 섰다. 나도 고집은 있다. 애초에 답은 여기 있었는데 괜히 저가 어물쩡거린 탓에 작은 속만 끓게 했다. 내가 미안해. 있잖아. 나야말로 네가 없으면.
마음밭에서 불어오는 포근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요섭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침부터 답청당 행랑 마당이 소란스럽다. 정확히는 한참 농사 준비로 바쁜 인파 틈에서 한 사람만 유독 골이 나 있다고 하는 것이 맞았다. 답청당 식구들은 바쁘게 손을 놀리면서도 죄 이기죽거리고 있는데 팔짱을 끼고 선 정심만 그 쇠꼬챙이 같은 성질을 부려대고 있는 것이다.
“집을 나가겠다는 거여요. 그래서 그것이 무슨 말이냐 했더니 답청당에 들어가겠다 안 해요!”
며칠 전 느지막이 대문을 열고 들어온 날부터 희한하게 정심의 눈치를 살살 살피기에 저것이 무슨 일을 쳤구나 싶어 의심을 하고 있었는데, 어제 드디어 사달을 냈단다. 무슨 장수라도 되는 양 무거운 공기를 휘감으며 턱하니 무릎을 꿇더니만 시기를 봐서 집을 떠나겠다 통보를 해 왔다며. 저는 앞으로 답청당에서 살아갈 것이며 제 어미에게는 일언반구 말도 없었던 위인이 어르신께는 이미 허락도 구해놓았다고 당당히도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 덕에 화딱지가 나서 꼴딱 건밤을 새우고 답청당을 찾았건만 이 집 어르신은 아침 일찍 서울로 출타를 하신 참이었으니 애먼 박 씨와 길자만 희생양이 되었다. 저번에는 구슬만 뽑으면 오만 것들이 다 가는 중학교를 안 간다고 떼를 써 속을 뒤집더니 대체 왜 그러나 몰라. 정심이 한숨을 푹푹 내쉰다.
“참말로 가가 답청당에 담사리를 온대유?”
박 씨가 야실대는 것이 한 수 거들 모양이다. 정심이 금시초문이라는 듯 에누리 없이 말하라며 채근을 했더니 목을 한 번 가다듬고는 만담꾼이라도 된 양 흥에 겨웠다. 고놈이 얼마 전부터 춘복 할배댁에 뻔질나게 드나들기에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머슴살이 방법을 전수해달라 애걸복걸을 했다고 하더란다. 첨엔 치기거니 싶어 대강 어울려 주었는데 이르면 일러주는 대로 답싹 배워서는 머위며 곰취며 길러내는 것이 기특해 할배도 막 감화한 참이라며. 한 번은 너 이러는 거 느 엄마는 아시냐 물었더니 어물쩍 말을 돌려댔다면서, 거기까지 말한 박씨가 내 이럴 줄 알았슈, 이럴 줄 알았다니깐유! 하며 야지랑을 떨었다. 이번에는 배를 잡고 깔깔대던 길자가 입을 연다. 딱한 정심만 애먼 가슴을 치며 헛입을 놀리고 있다.
“근데 어째 다따가 춘복할배를 찾아갔대? 답청당 머슴이 되려믄 답청당엘 오지?”
“할배가 머슴살다 그 집 아가씨랑 혼인을 했잖아유. 그게 참말이냐고 재차 묻더니만 그렇담 지두 머슴이 돼야겄다 했다는디유?”
“요섭이 고것이 연심이를 좋아했나?”
“그래유?”
“지금 무슨 망발을 하고 계셔요!! 어르신이 언제 환가(還家)를 하시는지 답이나 구해다 주셔요. 저도 담판 짓기 전까지는 못 돌아가네요!”
요섭이 이놈 자식은 아침부터 어디를 간 거야. 평상에 자리를 잡고 앉는 정심을 힐금거리며 길자와 박씨가 쿡쿡 마주 웃었다.
“우리 왜 숨어?”
기광이 방싯거리며 요섭의 귓가에 속살거린다. 말갛고 예쁘네. 서울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제 아버지의 말이 약보다 나았는지, 요 며칠은 기력도 좋고 얼굴에 생기도 돈다. 어르신도 결단을 내리셨다, 기광을 위해 서울에 있는 의사를 모셔오기로. 그래서 요즘엔 서울 출입이 잦으시다.
요섭아아ㅡ. 손가락으로 팔을 쿡쿡 찔러온다. 사랑채에서 나란히 엎드려 책을 읽고 있었는데, 연심 누나가 엄마가 왔다며 귀띔을 해 주기에 얼른 기광의 손을 잡고 내달려 별당으로 왔다. 책장 옆 구석으로 들어가 무릎을 바짝 세우고 웅크려 앉았더니 저를 따라서 꼭 똑같은 모양으로 앉아서는 물어오는 것이다. 왜 숨냐구.
“엄마한테 혼나니까.”
“요섭이 말썽부렸어어?”
“......아니야. 너도 혼날 걸.”
“나도? 왜에?”
그런 게 있어. 혼난다는 말에 깜짝 놀라며 큰 눈을 껌벅거리는 게 귀여워 피식 웃음이 터졌다. 요섭이 세웠던 무릎을 펴고 앞으로 다리를 쭉 뻗었더니 이번에도 똑같이 저를 따라 다리를 뻗는다.
기광의 상경이 치료도 치료지만 도련님을 끝까지 모시고 싶다는 연심의 고집이었다는 말을 들으니 모르면 몰라도 알게 된 이상 저도 손을 놓고만 있을 수 없겠다 싶었다. 어린 것이 대수인가. 요섭이 연심보다 약 먹이기나 기침 발작 달래기는 천배 만 배 나았다. 하지만 공것을 바랄 수는 없으니 담사리가 되어서 답청당 안에 살며 이 집 일도 하고 기광의 수발도 들어주면 되겠다, 그러다 춘복 할배처럼 혼인을…… 아니, 오래오래 둘이 살면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귀가하시기를 기다려 느지막이 사랑채에 찾아가서는 답청당 어르신, 그러니까 기광의 아버님께 이 집 머슴이 되겠다고 말했더니 그저 허허 웃으시는 거였다. 머위며 곰취를 제 손으로 길러낸 것, 지게 지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 수세미를 파종해 놓은 것들을 죄 늘어놓아도 그저 끄덕 끄덕 이요, 저가 얼마나 기광을 잘 돌보는지를 기승스레 주장해 보아도 그저 잔잔한 미소 뿐이었다. 어리석다 혼을 내지도 왜냐고 묻지도 않으셨다. 그저 침묵의 시간을 조금 흘려보낸 후 기광이가 복이 많구나 네가 나보다 낫다, 라며 뜻모를 말만 하셨다.
“너 담 주부터 다시 학교 간다.”
“진짜? 어떻게 알았어?”
“어르신께 들었어.”
그러고는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기광이도 이 못난 어른도, 였던가. 머슴이 아니라 귀한 손으로서 별채를 내어 줄 테니 언제든 와서 살아도 된다고도 먼저 말씀하셨다, 여쭈기도 전에. 그렇게 기거 허락도 엉겁결 받아버렸다. 여하튼 그것이 다였다. 아직까지 무슨 영문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결론적으로는 해결이 된 것 같다. 근데 참 여기가 별채였네. 요섭이 괜히 방 안을 한 번 둘러보았다. 이번에도 기광이 요섭의 시선을 좇아 고개를 돌렸다.
“너 공부 열심히 해야 돼.”
“왜?”
“난 읍내에 있는 중학교 갈 거란 말야.”
“그럼 나도 갈래!”
“그러니까 열심히 해야 된다구.”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활짝 웃는 기광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귀여워. 한 담장 안에 한 식구로 살면서 이거랑 찰싹 붙어 있으려고 했더니만 틀렸네. 잠깐만. 손님으로 살아도 한 지붕 아래이니 식구는 식구인가. 잘 모르겠다. 이따 서고에 가거들랑 찾아봐야지. 그나저나 뭔가 터분하다 했더니만 예서가 뭔지 알아낸다는 것을 또 깜박했었네.
그날. 막 장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뒤에서 요섭아 하고 부르시더니, 나는 요섭이가 머슴보다 예서로 들어온다면 좋겠구나, 하셨다. 갑자기 불린 이름에 다른 말이라도 들을까 싶어 떨어진 심장을 부여잡고 도망치듯 나와버린 터라 무엇인지 묻지도 못했다. 대체 예서가 뭐지. 한문은 豫壻가 맞나. 어렵다. 에이, 나중에.
“근데 요섭아 우리 문도 열면 안 돼?”
“왜 답답해?”
응. 기광의 짧은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요섭이 발딱 일어나 뒤쪽으로 난 문을 활짝 열었다. 별채는 완연한 녹음이 한창인 후정(後庭)을 곧장 등지고 있다. 바람결에 실린 싱그러운 풀 내음이 깊이를 더해가고 엊그제 첫 날갯짓을 했던 나비들도 제법 우아하게 공중을 노닌다. 저쪽 구석에 갈아엎어 붉은 흙이 드러난 곳은 수세미를 심을 자리다. 비옥하고 빛도 잘 드는 데다 어차피 다 크면 이 집 도련님이 드실 테니 이만한 자리가 없다. 헌데 씨앗이 말썽이다. 하라는 대로 모판에 흙을 깔고 배양토를 올려 씨를 뿌려놓았건만 영 소식이 없다. 생각하니 한숨부터 나온다. 춘복할배 말로는 일주일이면 된다 했었는데 벌써 보름이 지났다. 첨부터 너무 욕심을 낸 걸까 아님 정성이 부족했을까. 저건 꼭 내 손으로 모락모락 잘 키우고 싶었는데. 포기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진득하게 더 기다려 주어야 하는지, 모든 것이 처음인 요섭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어?”
툇마루로 나가 모판을 내려다보던 요섭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왜? 기광이 쪼르르 다가와 요섭이 하는 대로 마루 끝을 잡고 아래께를 내려다본다.
“저것 봐.”
딱딱한 껍질을 뚫고 움튼 파릇한 새싹이 거뭇한 배양토 위로 배죽배죽 뽀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기광이가 드디어 싹텄다.”
“기광이?”
“춘복 할배가 그러더라. 예쁜 이름 지어놓고 예쁘다 예쁘다 하면 참말로 예쁘게 자란다고.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네 이름을 붙였지. 봐봐. 우리 기광이 동글동글 연두스름한게 참 예쁘다.”
이렇게 자그마해도 금방 우리 키를 넘는다더라. 수세미가 기침에 좋다니까 여름까지 잘 키워서 다 크걸랑 너 다 줄게. 많이 먹고 아프지 말자. 요섭은 신이 나서 말을 잇는데 기광은 묵묵부답이다. 아예 뒤로 물러나 자세까지 고쳐 앉아서는 손바닥으로 한 번, 손등으로 한 번. 그렇게 번갈아가며 양손으로 제 볼만 꾹꾹 누르고 있다.
“기광아. 너 열나? 볼이 빨개.”
“……”
“나 좀 봐봐, 열나는 거 아냐?”
“……나 갈래.”
“지금? 안돼, 아직 울 엄마 있을걸!”
그래도 갈래. 기광이 발딱 일어나 방을 가로질렀다. 요섭도 얼른 뒷문을 닫고 그 뒤를 따른다. 신발을 채 신지도 않은 채로 내달렸다. 신기하게 숨이 가쁘기는커녕 가슴팍으로 밀려들어오는 공기가, 달다. 이기광 뛰지 마. 뒤에서 외치는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온다. 요섭은 발이 빠르니까 기광을 금세 따라잡아서는 양팔을 벌리고 제 앞을 막아설 것이다. 그럼 얼른 그 가슴팍에다 귀를 대볼까, 혹시 나처럼 살랑이고 있는지.
다스한 햇살을 머리에 이고 뭉근한 바람에 녹아든 매화 꽃눈개비를 너와 함께 맞는다. 내딛는 발끝마다 달큰한 향기를 피워내면서.
The end.
움트다
양요섭x이기광
초록색 대문 앞 조막만 한 뒤통수가 웅크렸다.
그제 저녁밥상을 들이던 연심 누나가 얼굴에 화색을 띄우고는 공의(公醫)가 말하기를 이틀만 밭은 기침이 없거든 슬슬 산보를 해 보자 하였다며 어쩐지 이번에 받아온 새 약이 의원의 것보다 몇 곱절의 값은 된다더니 약발도 꼭 그만치 인가 봐요 했었다. 잘 됐네요 도련님 장하셔요 도련님 하며 목구지를 해대는 고운 마음을 맞잡으며 웃어 보이기는 했지만 제 병세에 큰 기대는 없었던지라 쌉쌀한 입안을 숭늉으로 연신 가셨더랬는데.
그런데 그 쪼만하고 쓴 것이 참말로 요술이라도 부렸는지 보료 위에서 맥없이 쳐져 있던 몸이 어제는 대청에, 오늘은 대문 밖에 서 있는 것이었다. 턱에 받치는 숨도 없겠다 내친김에 냇가의 징검다리도 폴딱 뛰어넘고 비탈길도 달음박질치며 한달음에 찾아왔더니만. 무에 그리 급하다고 잘도 내달릴 땐 언제고 외가닥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그 새종치 같은 다리가 흙바닥에 질질 끌리는 게 아닌가.
이래서는 어른들이 역정을 내실 터인데, 아직 구경도 못한 새 교실일랑 갈 생각도 말라며 야단이 날 터인데, 천장에 붙은 서까래만 하나 둘 셋 세었다가 약을 먹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방에 가만히 누워서 하루가 갔나 이틀이 갔나도 모르고 이리저리 뒤척이기만 해야 할 터인데. 덜컥 겁이 나서 가슴팍에 고인 무거운 숨을 턱턱 두드려 보았지만 고 작은 손으로 연신 토닥이고 문지르며 들이 마셔라 내뱉어라 해 보아도 눈물만 후두득 떨어질 뿐 마뜩지가 않는 것이었다. 결국 내 가슴인데 영 내 맘대로 안된다 내 숨인데 또 내 뜻대로 안된다 하다가 그것조차 힘에 달려 지쳐버렸는지, 털썩. 작은 그림자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들썩이는 몸에서 배어 나오는 송곳 같은 바람 소리만 쌔액쌔액 인적 없는 골목을 울리고 있을 때였다.
"밖에 누가 오셨소? 에그머니나! 도련님 예서 뭣하고 계신대요!"
"아주…머ㄴ......"
반가운 얼굴에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고 싶은데. 접힌 다리니 웅크린 등허리니 도통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아이고 요섭아! 얘 요섭아!!!"
어른에게 예를 차리지 않으면 만무방이나 다름이 없다고 할아버지께서 항상 말씀하셨었는데. 기별도 없이 찾아와서는 민폐까지 끼치고 말았으니 저가 딱 이 씨 집안의 얼굴에 먹칠을 한 셈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반성하고 뉘우쳐도 시원치가 않거늘 없으면 어쩔까 걱정했던 요섭이 집에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니 나는 참으로 버릇이 없구나, 라고. 익숙하게 저를 들쳐올리는 단단한 큰 손에 매달리며 기광은 생각했다.
“요섭아.”
“……”
“요섭아아ㅡ”
요섭은 등을 돌려 않아 기광의 부름에 들은 체를 않고 있었다. 원체 새살스러운 요섭의 어미인 정심은 시쁜 일에도 사사건건 목청을 높이며 요섭을 찾아대는지라 열 번을 불리면 콧방귀도 뀌지 않는 것이 아홉 번은 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찌 된 까닭인지 제 이름이 들리자마자 등골이 서늘해져서는 다듬던 나물도 내던지고 맨발로 대문 밖으로 튀어 나갔던 요섭이었다.
“요서바아ㅡ”
“이기광. 너 이불 차내지 마라.”
깔딱대며 파리하게 죽어가는 걸 토닥이고, 부비고, 안고. 벽장에 넣었던 솜 이불을 꺼내다 감으며 겨우 살려놓았더니만 뜨끈한 아랫목에 망부석마냥 앉아 몸을 지지지는 않고 자꾸 덧덮은 이불을 젖히면서 저를 불러대는 것이 여간 못마땅한 것이 아니었다. 품에 안고 있을 적에는 새털 같은 몸집에 서러움이 터져서 이기광 너 괜찮아만 져봐라 왜 사람 간을 콩알만 하게 만드냐며 으름장을 놓을 테다 벼르고 별렀거늘, 배식배식 웃어오는 말간 얼굴을 보니 배알도 없는 제 입꼬리가 자꾸 씰룩거려 괜한 심통까지 더해진 참이었다.
“어? 붕대!”
저는 아직 숨소리는 드리없는 데다 입술도 파르라니 핏기가 다 올라오지도 않았으면서 흰 천 조각이 감긴 요섭의 왼쪽 다리를 보더니 금세 팔자 눈썹을 한다. 이까짓 거 제 가슴 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요섭이 다리 다쳤어어ㅡ?”
말꼬리를 늘여가며 되레 저를 걱정하는 게 울컥해서,
“이기광.”
“어쩌다 그랬어?”
“너 울 집에 와도 돼?”
그래서. 괜히 가시눈을 했다.
어른들이 그랬다. 이가(李家)가 우리 땅을 밟지 말고 남한 땅에 살아 보시오 하면 월북을 해야 한다고. 농이 섞인 말이겠지만 요 주변의 부잣집들을 모조리 뽑아 모개 놓아도 답청당(踏靑堂)의 뒤뜰도 채우지 못할 거라는 것 정도는 요섭도 알았다. 설립자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학교니 병원이니 회관이니 덩실한 건물들의 현관마다 붙은 커다란 사진에는 답청당의 어르신이 계시다는 것, 동네 대부분의 산과 전답의 지주가 답청당이라는 것, 읍내에 있는 극장도 거기까지 실어 나를 버스도 죄다 답청당의 소유라는 것,
“으응?”
“말하고 왔어?”
“그게……”
“허락받았냐고.”
그런 궁궐 같은 높은 꽃담 안에서 태어난 금지옥엽 6대 독자가 바로 이기광이라는 것.
“……아니.”
그 귀하디 귀한 것의 병약함이 이 씨 문중의 유일한 근심이라는 건 요 근방 사람이라면 삼척동자라도 아는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5년 전 삼사월에 제 어머니가 폐병으로 세상을 뜬 후부터 꿍꿍 앓기 시작하더니, 특히 봄만 되면 서리병아리처럼 더욱 빌빌대는 통에 답청당의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실 날이 없었다.
“걱정하실라.”
그리고 이곳 화월리(花月里)에서 유일한 양 씨(梁氏)네 집 사내아이의 가슴속도 매한가지였다. 캑캑대는 기침 소리에 한 번, 쌔액대는 목구멍의 쇳소리에 또 한 번. 기광의 앓는 소리만으로도 작은 심장이 철렁대고 요동치다 꾸물꾸물 타들어가는 것이었다.
“일어나.”
“요섭아……”
“일어나래두.”
저번에는 열 닷새, 이번에는 아흐레. 이제 겨우 바람 할미가 막 왔다 간 참인데 이번 봄에만 벌써 두 번을 앓았다. 그걸 두고 떠버리들은 답청당의 화주(華胄)가 세상에는 금줄을 잡고 나오더니 명줄은 썩은 동아줄을 잡았다며 슬슬 입방아를 찧어대기 시작했지만 원래 말질하는 놈들은 바른말은 쏙 빼고 하는 법이다. 이기광은 나을 것이고, 이제든 저제든 낫기만 하면 된다.
“조금만 있자, 응?”
“내가 들쳐업고 가리?”
“한 시간만, 응? 아니, 30분만.”
……라고 생각했었는데. 근간의 사정 때문에 시간이 원(願)이 된 연유로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수가 없어졌다. 그러니까, 이기광은 빨리 쾌차를 해야만 한다. 더는 아프면 안 된다 이 말이다.
“너 예서 이러고 있으면 나도 꾸지람 들어.”
답청당에서 요섭의 집까지는 온통 흙바닥의 에움길인데다가 사로(斜路)가 하나, 뒤뚝거리는 디딤돌 다섯 개를 뛰어넘어야 하는 냇가가 하나라 요섭의 잰걸음으로도 쉬지 않고 적잖게 이십분은 걸린다. 아직 조석(朝夕)으로 바깥에 살바람이 부는데 그 찬 것이 저 가슴팍에라도 들면 또 사달이 날 게 뻔하니, 모질게 해서라도 해가 기울기 전에 얼른 제 집에 들여놓는 게 상책이다.
“알겠어…..”
미안해. 그제서야 부스스 일어나는 기광의 눈가에서 그렁그렁 고였던 서러움이 툭하고 떨어져 내린다. 요섭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업혀.」
제 앞에 쭈그려 앉은 등은 분명 요섭의 것이 맞았다.
「오르막이라 힘들어. 이퉁 부리지 말고 손이라도 잡자.」
제게 내밀어온 커다란 손도 요섭의 것이 맞았다.
「요섭아. 다리 언제 다쳤어?」
「요전에.」
「많이 아파?」
「안 아파.」
손바닥에 전해오던 체온도 참말로 요섭이 맞았는데. 그런데, 아니었다. 일전(日前)에 만난 요섭은 제게 한없이 다정하고 서그러운 평상시의 양요섭과는 달랐다. 기별 없이 간 것이 화가 났을까 허락 없이 간 것이 화가 났을까. 아님 그냥 저를 보러 간 것이 언짢던 걸까. 등을 돌리고 않아 눈길 한 번을 주질 않고 불퉁스럽기만 해서, 그렇게 보고 싶었던 요섭의 얼굴은 정작 담지도 못한 채 눈에 눈물만 잔뜩 괴어 돌아오고 말았다.
“머위 좀 드셔보세요. 천식에 이게 그렇게 좋다대요.”
“……”
“첫 농사에 첫 수확이라니 얼마나 몸에 좋겠어요.”
도련님. 생선 가시를 바르던 연심의 손이 멈췄다. 중학교를 다닐 적에 부친이 풍을 맞아 하루아침에 가세가 기울어 답청당으로 식모를 살러 온 연심은 기광의 엄마의 덕으로 고등학교도 나오고, 서울의 큰 병원에서 아버지의 수술까지 마칠 수 있었다며 은혜를 갚는다는 명목으로 기광의 곁에 남아 수발을 들어주는 친 누이 같은 사람이다.
“밥을 넘기기가 힘드세요? 죽을 끓여 올까요?”
아니 그냥 뭣 좀 생각하느라. 기광이 말끝을 흐린다. 아닌 말로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기광이 며칠을 누워있든 하루도 거르지 않는 요섭이었다. 기침이 심한 날에는 저를 방에 들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헛걸음을 마다 않고 찾아와서는, 안마당에 서서든 대청마루에 올라 앉아서든 방문에 대고 얼른 나아라 내일 또 올게 하며 소리라도 치고 가곤 했었는데.
공의 선생님이 새 약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편치 않은 곳이 있거든 잘 적어놓거라 하시더니 이게 그것이려나. 아까부터 자꾸 가슴께가 아릿하다.
“저기……누나.”
“예 도련님.”
“긴 병에는 효자도 없다잖아요. 친구는…… 더하겠지요?”
“어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열 손가락에서 딱 하나가 모자란 밤을 홀로 누워 천장만 보고 있으니 진정으로 제 중한 병세에 뼈가 저렸다. 그간은 곁에 바람이 들 일이 없으니 깨달을 겨를 또한 없었을 뿐이다. 또래 아이들이 고렇듯 이리저리 뛰어놀길 좋아하던 요섭의 까만 살결이 언제부턴지 노르스름은커녕 점점 희어져갔다. 비석 치기나 공차기 대신 기광과 새소년과 어깨동무를 읽고, 냇가에 멱을 감으러 가는 대신 사랑채에서 축음기로 경음악을 들은 탓이었다. 그런데도 그 무던한 성품으로 기광을 한 번도 아픈 사람 취급을 않았다. 저와 지내는 하루해가 끔찍이도 길고 지루했을 터인데 긴 병에 골골대는 동안 군말도 한 번을 않았다. 친구가 되자던 그날부터 이제까지. 꼭 같은 얼굴로 곁을 내어 주었다.
마름인 박 씨 아저씨가 그랬다, 요즘 춘복 할배네 집에 갈 때면 항시 요섭이 있더라고. 단박에 기광은 어떤 장면 하나를 떠올렸다. 좋은 친구를 사귀었으니 기침이 다 낫거들랑 같이 가자며 해 같이 웃던 요섭이 춘복 할아버지의 손자인 준구와 함께 들판을 가르며 눈부신 햇발에서 뛰노는 모습이었다. 어쩐지 접때 본 요섭의 살결은 썩 거뭇거뭇했었다.
올봄에 요섭은 6학년이 되었다. 머지않은 개화를 위해 양지의 옥토(沃土)에서 도담도담 저를 곧게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기광은 어떠한가. 여전히 언 땅속에 노박이로 있지 않은가. 그랬다. 저는 병자였다. 저는 해를 보고 뻗어가기는커녕 봄볕에 서서 반의 반나절도 버티지 못한다. 왜냐면 병자니까. 비를 양분으로 살을 찌우기는커녕 비가 묻어오는 소리만 들어도 숨이 헐떡거린다. 왜냐면, 이기광은, 병자이니까. 제 주제가 무어라고 언감생심 나란히 자라날 생각을 했을까. 저는 꽃은커녕 싹이나 볼 수 있으려나. 어쩌면, 이미 곯아버린 것은 아닐까.
“흑……”
볼을 타고 흐를 새도 없이 곧장 바닥을 적히는 눈물에 놀란 연심이 황급히 상을 미뤘다. 준비도 없이 왈칵 터진 눈물이라고 그새 잔 숨을 몰아쉬는 도련님을 연심이 능숙하게 달래보지만 오늘따라 쉬 진정이 되지 않는 것은 기광이 자꾸만 딴 생각을 하는 까닭일 것이다.
「쉬ㅡ 괜찮아. 숨 들이 마시고, 내뱉어라. 기광이 잘하네. 한 번만 더 하자. 들이 마시고, 내뱉어라. 옳지 잘한다. 쉬ㅡ 쉬ㅡ」
요섭의 그것이 더 따뜻하고, 요섭의 그것이 더 다정하다. 제 머리가 닿았던 가슴팍이 아쉽고 제 등을 쓸어주던 큰 손이 그리웠다. 이 손이 그 손이라면 작히 좋을까. 연심 누나 대한 미안쩍음인지 미련퉁이 같은 저에 대한 미움인지. 기광은 자꾸만 더 서러워진다.
괜찮아. 옳지 이기광 잘한다. 쉬ㅡ 쉬ㅡ.
망태기에 곰취를 가득 채우고 나서야 요섭이 허리를 편다. 굳은 땅에 곡괭이질을 할 때만 해도 찬바람에 몸이 떨렸는데 이제는 제법 봄이 여물었는지 후텁지근하니 이마에 땀이 흐른다. 마주 보이는 산에도 드문드문 초록이 올라오고 있다. 자세히 보니 얼핏 사람 얼굴 같기도 한 것이 오늘 바른 생활 시간에 배운 ‘바위 거인’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어어니스트는 예언대로 바위 거인을 만났을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요섭이 세차게 도리질을 한다. 남은 이야기보다 제 옆에 남은 곰취가 먼저였다. 통상 지게질로 한 번에 내려가면 될 일이지만 요섭에게는 아직 빈 지게도 설어서 망태기에 실어 몇 번을 날라야 한다. 농사일은 태산만 같이 그지없는데 요즘은 공부랑 글 읽기가 왜 이리 재미난 것인지. 지딱지딱 일을 하고 집에 가거들랑 호롱불 아래서 남은 걸 읽어야지. 찬물로 세수를 해서라도 절대 곯아떨어지지 않아야지. 산자락을 내려가는 요섭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곰취구나. 향이 참 좋다.”
뒷문으로 들어와 곧장 반빗간으로 왔더니 때마침 광에서 나오던 찬모(饌母) 길자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식재료라면 바자위게 고르기로 정평이 난 사람에게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다.
“잔칫날이 코앞이라 반빗간이 영 귀살스럽지만 대충 앉아라. 내 냉차라도 한잔 내올게.”
“네.”
엉덩이에 묻은 흙먼지를 대충 털어내고 분주한 사람들을 피해 쪽마루에 앉으니 응당 장이니 기름이니 하는 부엌에서 풍겨대야 할 음식 냄새는 커녕 이름 모를 향취가 깊숙이 폐부로 들어왔다. 그렇지 않아도 뒷문에 손을 얹을 때부터 코끝에 감기던 것이 궁금하였던지라 요섭은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저거다. 백매(白梅). 요섭의 시선이 머무른 곳에 꽃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름값처럼 녹음이 잔뜩 우거진 이곳에서 꽃을 피우는 유일한 녀석이라 꽃망울이 나올 적부터 질 때까지 답청당의 사내아이의 총애를 받는 복 많은 나무다. 올봄에는 이다지도 곱고 탐스럽게 흐드러져 무덕진 향기를 내뿜고 있으니, 하루가 멀다 하고 대청에 자리를 잡고 앉아 ‘곱다’를 연발했겠구나. 기광의 휘어진 눈매를 상상하며 요섭은 살며시 웃었다.
“자 마셔라. 오늘 연심이는 말미를 냈다. 곰취는 내가 잘 전해주마.”
“네.”
포목전에 간댔지. 얼마 전부터 금옥과 연심은 주단(綢緞)을 보러 읍내에 간다고 한껏 들떠 있었다. 그러니 뻘대추니마냥 볼거리를 쏘다니다 한나절은 족히 걸려야 돌아올 것임이 틀림이 없다.
“해필 도련님도 만식 아저씨랑 의원에 가셨네. 얼굴도 못 보고 서운해서 우짤까.”
“아…네…...”
요섭이 제 옆에 바짝 놓인 망태기를 만지작거린다.
“그나저나 또 일등을 했다면서? 우리 경서도 너만 같으면 얼마나 좋을꼬.”
“경서도 갈쳐주면 곧잘 해요.”
“그것은 네가 잘 갈쳐서 그런 것이지. 경서도 네가 학교 선생님보다 낫다고 그러지 않니.”
“그 정도는 아니에요.”
“겸손하기도 해라, 기특도 허지. 요섭이는 나중에 뭐가 될 거냐. 교사? 판검사? 의사? 너는 뭐가 좋으냐?”
“……모르겠어요.”
“그래 뭐든 어떻냐, 어차피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인데! 화월리에서 높으신 분이 났다고 잔치를 열어야지. 이 아줌마가 음식을 하마! 출셋길에 오른다고 아줌마를 잊으면 안 된다, 알았지?”
덩실덩실 팔을 흔들며 춤을 추는 몸짓을 하던 길자가 사뭇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농사일일랑 그만해라. 안달에도 괭이질을 하다 석각(石角)에 찍혀 다리에 생채기가 났다면서. 너는 그저 공부나 하면 돼. 네 엄마도 걱정하더라. 알겠냐?”
“……”
엊그제 피딱지가 떨어진 왼쪽 다리가 욱신거린다. 길자 아주머니는 맡겨놓은 양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에둘러댈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시선이 부담스러워 손에 쥔 냉차만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때마침 저쪽 산꼭대기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요섭은 남은 냉차를 홀딱 입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발딱 일어났다. 바쁘실 텐데 이만 가 볼게요.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그래, 해가 지기 전에 얼른 가거라. 이쪽도 얼른 마무리를 해야 쓰겠다.”
“고생하세요.”
찬모님. 부족일꾼 하나가 길자를 부른다. 요섭에게 손인사를 하다 말고 불려간 길자가 찬마루에서 식재료를 손질하던 일꾼들과 큰 소리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잠깐의 휴식이 무색하리만큼 금세 잔치 음식의 정리와 저녁상의 준비를 위해 반빗간이 부산스러워진다. 동태를 살피는 듯 연신 뒤돌아보며 곁눈질하던 요섭의 찬찬하던 걸음이 조금씩 빨라진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아가, 쑥 말린 것 좀 가지고 갈……”
채반에 한가득 쌓여있는 마른 쑥을 메만 지다 말고 길자가 황급히 요섭을 불렀지만, 이미 저만치 멀어진 뒤였다.
“잔치 때는 안마당이랑 행랑채는 정신 사납다고 뒷문을 두드리는 애가 무슨 바람이 들어서 저리로 간대. 아까부터 망태기는 뭘 저리도 애만지고 있고……”
저마다 솟은 굴뚝에서 홍연(紅煙)을 뿜어내고 보랏빛 하늘을 줄지어 날아가는 새들의 날갯짓 소리만 은연히 너울대는 저녁나절에, 투명한 구름 장막 뒤편에서 기우스름히 누워가던 석양이 기다란 인영 하나를 대청마루에 드리웠다. 한 발 한 발 흐르다 세살문살 앞에 머물러서는 무엇을 꺼내는 양 분주한 몸짓이더니 한참을 잔잔히 고여 있는다. 사랑채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가물가물하다 금세 사라져버렸지만.
산사의 타종 소리가 안뜰을 명명히 울려가는 가운데, 수줍은 그림자가 내리덮었던 마루 한구석에 보푼 꽃망울을 품은 발그레한 홍매화 가지 하나가 조용히 놓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