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질은 이제 그만!
“두준아… 좋아해…….”
조, 조, 좋아해…. 떨리는 눈에 힘을 주고 겨우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건……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이다.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아무리 말을 해봐도 듣는 건 화장실 안의 나 뿐이다. 창피하다. 수치스럽다. 그것보다도, 연습만 이백사십번 째 하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하다.
“좋아… 좋아해아아악!!”
그대로 무릎을 꿇어 변기를 붙잡고 커버 위로 대가리만 존나 박아댄다. 좋아해!! 좋아해!!! 미친 사람처럼 울면서 머리를 박다가 변기 끌어안고 엉엉 운다. 이 변기가 두준이었으면…….
이기광의 시선
두준이를 좋아한지 어언 1년…. 매일 변기에 머리를 박고, 이불에 마구 발차기를 해대고, 한밤중에 울면서 달리기를 하지만 아직까지 실제로 고백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같이 그렇고 그런 짓을 하는 꿈도 꾸는데, 왜냐고? 그건……
"윤두, 오늘 축구 콜?"
"안 돼, 오늘 지인이 만나기로 했어."
두준이가 지인이와 사귀기 때문이다. 박지인! 하나뿐인 나의 소꿉친구이자 소울메이트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절친인 그 박지인과 말이다! 동그란 눈에 긴 생머리, 큰 키와 길쭉한 팔다리, 거기에 우수한 성적, 친화력까지! 지인이는 나랑 정반대다. 그 말인 즉슨, 나는 두준이의 취향이 전혀, 전혀 아니라는 거다. 두준이와 지인이가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주먹이 입으로 들어갔다. 드라마의 주인공 마냥 주먹을 물고 혼자 눈물 삼켰다. 두준이가 웃으며 지인이의 어깨를 때릴 때에는 너무 고통스러워 그냥 시선을 돌려버렸다. 부럽다. 부럽다!!
두준이를 좋아하게 된 이유?
사실 별거 없다. 3월에 새 학기가 시작하고, 난 딱 한 달 뒤에 전학 왔다. 아빠의 출장이 끝나고 원래 살던 동네로 오게 된 건데, 몇 년 사이에 많이 바뀌었더라. 낯선 아이들 틈에서 겨우 찾아낸 게 지인이었다. 눈물의 재회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한 달 사이에 모든 무리가 형성되었고 나는 어디에도 낄 틈이 없었다. 그냥 조용히 다니자- 싶어서 지인이와 밥이나 먹으며 점심시간에는 혼자 책을 읽었다. 누군가의 눈에는 왕따처럼 보였을 수도 있지만 나는 괜찮았다. 별생각 없었다. 그 날도 똑같았다.
날씨가 좋아서 운동장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사실 책이라고 해봤자 만화책이었다. 주인공을 응원하며 흥미진진하게 페이지를 넘기는데, 바람이 불었다. 훅 끼치는 모래바람에 잠시 고개를 돌리고 기침을 했다. 그 사이에 축구공이 날아왔고, 난 몰랐다. 손에 타격감이 느껴져서 책을 떨어뜨렸다. 아픈 손을 붙잡고 고개를 들었을 때, 거기에 두준이가 있었다. 한 손에는 축구공을, 한 손에는 내 만화책을 들고 서 있었다. 땀에 젖은 머리와 모래범벅이 된 유니폼. 미안함에 어쩔 줄 모르던 얼굴.
“안 다쳤어? 미안해, 이거 네 거지?”
“어? 응…….”
“나도 이거 보는데. 걔 죽을 때 완전 슬프지 않아?”
“윤두준-! 빨리 와!!”
“어-! 그럼 나 간다.”
그게 두준이와의 첫 대면이었다. 모래가 묻은 만화책을 다시 건네받고 멀어져가는 두준이의 뒷모습을 보며 한 생각은……… 아, 스포 당했다.
그 뒤부터는 대사를 읽어도 집중이 안 됐다. 정신이 붕 떠서 멍하니 그림만 보다가 결국 책을 덮고 운동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신나게 뛰어다니는 두준이. 골을 넣고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제 발 저린 사람처럼 놀라서 자리를 떴다.
분명히 그게 계기였다. 한 번 의식하기 시작하니, 계속 신경 쓰였다. 하루종일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듣는 건 고역이자 행복이었다. 나는 칠판에 눈을 고정하면서도 계속 두준이를 의식했다. 뒤돌아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시계 보는 척 돌아보며 두준이를 훔쳐봤다. 그게 성공하니 기분이 좋았다. 순식간에 활기가 돌았다. 몇 번이나 두준이를 훔쳐보고, 대화를 엿듣고, 우연인 척 운동장에 따라 나가고, 복도에서 마주치고, 방과 후 수업도 같은 걸 신청하고, 심지어는 학원까지 따라서 등록했다. 두준이는 생각보다 공부를 잘해서 상급반이었는데, 나는 우기고 우겨서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수업은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냥 두준이만 보다가 나왔다. 엄마가 알면 뒤집어질 일이었다.
두준이를 보려고 일부러 밥도 느리게 먹고 가방도 느리게 싸고 뒤에서 느리게 걸었다. 지인이는 답답하다며 가슴을 퍽퍽 내리쳤지만 굴하지 않았다. 느리게 움직여야 두준이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토커 같지만 상관없었다. 두준이를 볼 수만 있다면.
“야, 지인아, 끝나고 뭐해? 노래방 갈래?”
“아 나 오늘 약속 있어.”
두준이잖아. 윤두준이잖아! 알면서 확인차 물어본 내가 찌질하게 느껴졌다. 그래… 잘 만나고……. 스르륵 사라지려는데 지인이가 날 붙잡았다. 내일은? 내일은 별로 안 가고 싶어…. 뿌리치고 다시 스르륵 사라졌다.
두준이는 지인이를 왜 좋아하는 걸까. 궁금하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눈치로 알게 된 건, 내가 전학 오기 전부터 두준이와 지인이가 친했다는 거다. 어디까지 친했는지는 모르지만 내 예상에 항상 같이 다녔던 것 같다. 내가 전학 와서 떨어지게 된 것 같은데… 그럼 나를 배려한답시고 둘이 따로 만나는 건가? 아, 왠지 비참해졌다. 베개를 퍽퍽 때리다가 핸드폰을 들어 지인이한테 카톡을 보냈다.
[집 들어가기 전에 잠깐만 만나자]
[ㅇㅋ]
지인이는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달려나갔다. 한껏 꾸미고 다니는 애가 웬일인지 낮에 본 모습이랑 똑같았다. 데이트한 거 맞나? 그냥 평소 같네. 그건 미뤄두고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겨우 용기를 내서 지인이에게 물어봤다.
“너… 두준이랑 사귀어?”
“……뭐?”
“사귀는구나…….”
“뭔 소리야… 안 사귀어.”
“거짓말하지 마!”
울었다. 거짓말 안 하고, 눈물 뚝뚝 흘리면서 흐끅흐끅 울어댔다. 두준이랑 지인이랑 나 몰래 사귀고 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감정이 막 북받치는 거다. 이 배신자들…. (사실 두준이랑은 친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무튼) 배신자들…… 너네 진짜 미워… 사귈 거면 당당하게 사귀든가…… 꼭 날 이렇게 기만해야 돼? (한 적 없다.) 억울해서 끅끅대면서 울었다. 억울할 것도 없는데 억울했다.
“하… 기광아,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아, 아무것도 모르는 애기는 그냥 빠져 있어라, 어? 나중에 다~ 알게 돼.”
“도대체 뭘? 나도 알고 싶다고!”
“아, 전화 오네. 그럼 누님은 이만. 그만 울고 자라. 내일 눈 붓는다?”
“두준이지! 윤두준이지!!”
윤두준이잖아아-!! 나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미련 없이 닫힌 지인이의 집 문을 보고 있다가 훌쩍이며 돌아섰다. 그리고 울다 지쳐 잠들었다…….
윤두준의 시선
“잘 들어갔어?”
[엉. 아, 오다가 기광이 만났는데.]
“뭐?! 무, 무슨 얘기 했어?”
[그냥 뭐…… 내일 비 오니까 우산 챙겨가라고….]
“아…….”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다가 금방 전화를 끊었다. 끊고 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아, 진전이 없다.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이기광을 더 안답시고 박지인과 따로 만나기 시작한 지 수개월… 박지인에게 쏟아부은 밥값만 얼마란 말인가. 그렇게 돈과 시간을 들였건만, 여태까지 진전은 전혀 없고 그냥 박지인과 수다나 떨다가 헤어지는 기분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내 인생에서 처음이라 이 모든 게 낯설게만 느껴졌다. 처음에는 내 감정조차 부정했다. 박지인과 원래 아는 사인가? 독서를 많이 하네. 책을 좋아하나? 앞머리가 긴데 눈은 안 찌르나? 크게 웃지를 않네. 목소리가 궁금하다. …… 그냥 단순한 호기심인 줄 알았다. 전학생이니까, 낯선 애니까. 아무리 힐끔거려도 1초의 시선조차 주지 않아 괜히 더 애가 탔다. 살면서 이렇게 궁금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기회가 왔을 때, 보기 좋게 바보짓 했다.
“나도 이거 보는데. 걔 죽을 때 완전 슬프지 않아?”
미친 거 아니야……? 내가 말하고 내가 놀랐다. 손에 땀이 나고 얼굴이 빨개지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당황스러운 표정의 이기광을 보며 침을 꼴깍 삼키다가 친구 놈이 부르는 소리에 겨우 자리를 뜰 수 있었다. 미쳤나 봐 미쳤나 봐 미쳤나 봐. 무슨 얘기를 하고 온 거야. 이상한 애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돼서 이기광을 흘끔거렸다. 무심하게 책을 넘기는 모습을 보며 조금 안심하다가 그대로 공 밟고 넘어졌다. 신나게 웃어젖히는 친구들에게 느끼는 쪽팔림보다, 이기광이 못 봐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평소에는 뒷자리를 좋아하지 않지만, 처음으로 뒤여서 좋다는 생각을 했다. 이기광의 까맣고 동그란 뒤통수를 마음껏 볼 수 있다니. 내게 수업시간은 천국과 같았다. 칠판을 보는 척, 턱을 괴고 이기광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이기광이 시계를 보려고 뒤 돌면 급하게 수업에 집중하는 척했다. 안 들켰겠지?
점심시간이 되면 이기광은 박지인과 급식실로 향했다. 박지인, 이 부러운 녀석…. 몰래 박지인을 째려보면 박지인은 얄밉게 메롱-했다. 개 얄미워. 밥도 느릿느릿, 걸음도 느릿느릿. 모든 게 다 느린 이기광. 나는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항상 이기광보다 먼저 자리를 떴는데 그게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박지인과 따로 만나서 이기광의 얘기를 들었다. 원래 여기에 살고 있었구나. 조용한 편이구나. 만화책을 좋아하는구나. 공부를 못하는구나. 편식을 많이 하는구나. 그렇구나.
“좋냐?”
질린다는 박지인의 표정을 보며 실없이 웃기만 했다. 좋다, 어쩔래. 그러면 박지인은 우웩, 하면서 토하는 시늉을 했다. 박지인이 설렘을, 사랑을 알 리가 없었다. 얘는 바보니까. 아무리 얘기해도 듣기 싫다고 고개만 저어댔다. 공감 능력이 상실된 건지도 모른다. 박지인은 지금도 턱을 괴고 빨대만 쪽쪽 대며 무심하게 말했다.
“그럼 고백해.”
섬세함이라곤 없는 녀석…….
“안 돼.”
“왜 안 돼.”
“차이면 어떡해.”
“등신…….”
그래, 웃어라. 한심하게 쳐다봐라. 실컷 비웃고 놀려라! 박지인이 아무리 욕지거리를 뱉어도 괜찮았다. 왜냐면 진짜로, 진짜로 용기가 없거든. 누굴 좋아하는 것도 처음인데 고백이라니. 절대 못 하지. 코코아를 마시며 속으로 눈물 삼키는데 박지인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성공할 거야.”
“네가 어떻게 알아.”
“이 누님만 믿어.”
“…….”
누님은 무슨……. 전혀 믿음직하지 않았고 엄청나게 의심스러웠지만, 박지인의 확신이 넘치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괜한 바람이 들었다. 이상했다. 무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는데, 왠지 될 것 같았다. 정말로 성공할 것 같았다. 박지인은 귀신처럼 이걸 읽고 테이블을 내리치며 고개를 쑥 뺐다. 아오 깜짝이야.
“고백할 거지?”
거기서 어떻게 안 한다고 해……. 결국 한다고 했다. 완전히 분위기에 휩쓸린 거다. 생각해 보면 내가 박지인보다 더 바보 같았다. 줏대라고는 없으니…. 아무튼 나보다 더 신나서 시끄럽게 구는 박지인을 진정시키느라 혼났다. 박지인은 게이 절친 두 명이 사귄다니 너무 행복하다며 방방 뛰어댔다. 개 쪽팔렸다.
박지인은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밀어붙이기만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달라고 해도 맨날 바쁘다며 피했다. 언제는 이기광이 새우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알레르기가 있었다. 고백은커녕 애를 죽일 뻔했다! 박지인이 있으니 되던 것도 안 되는 느낌이었다. 성공할 수 있겠지? …성공할 수 있을까? 갑자기 불안해졌다. 자신감도 떨어졌다. 같은 반 남자애가 다짜고짜 고백해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그렇지만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부딪혀 보는 거야. ……일단 우산부터 챙기고.
“두준아~! 비도 안 오는데 우산은 왜 챙겼어? 응?!”
“너 진짜…….”
보기 좋게 속았다. 그렇게 신나는지, 내가 우산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박지인의 입을 막다가 몰려드는 반 아이들에 결국 포기했다. 박지인은 아침부터 배가 찢어져라 웃어댔고 이기광은… 눈만 꿈뻑였다. 아씨, 쪽팔려.
박지인의 멱살을 아무리 짤짤 흔들어봐도 금방 답이 나오지 않았다. 네가 고백하라며, 네가 부추겼잖아! 어떻게 하냐고! 박지인은 손가락을 턱에 대고 한참이나 고민을 하다가 드디어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큰 소리를 냈다.
“봄에! 벚나무 아래에서 하는 거야, 어때? 기광이 생일도 마침 봄이고! 딱이네!”
“그럼 내년까지 기다리라고?”
“내년이래봤자, 얼마 안 남았잖아. 그럼 지금 할래? 전화 걸어줘?”
“아니, 야! 미쳤어? 얘는 진짜…!”
박지인은 그냥 이 모든 상황이 재밌는 게 분명하다. 얘냰 쟨쨰~! 하고 내 말투를 흉내 내며 푸하하 웃는 얄미운 박지인을 뒤로 하고 핸드폰만 두드렸다. 고백… 고백하는 법… 친구한테 고백… 같은 반 애한테… 고백 방법 추천……
“뭐냐? 지식인? 야, 야, 지식인 믿지 마. 차라리 날 믿어!”
“널 못 믿어서 검색하는 거야….”
“한 번만 믿어 보라니까? 기광이가 좋아하는 거, 부모님께 물어봐 줄게.”
“……진짜?”
……나는 박지인한테 못 이길 운명인가 보다.
박지인의 시선
학교에서 제일 큰 벚나무 아래, 윤두준과 이기광이 서 있다. 만개한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자 둘의 위로 예쁘게 떨어졌다. 나는 몰래 숨어서 둘을 지켜보며…… 답답해 뒤지는 중이다! 아오 빨리 좀 하라고! 그거 말하기가 그렇게 어렵나? 윤두준 쟤는 왜 이렇게 뜸을 들여? 이기광은 왜 눈도 못 마주치고 바닥만 보고 있어?! 마음 같아서는 그냥 내가 가서 억지로 등을 밀어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속 터지는 나와 달리 너무 긴장한 윤두준은 손에 땀이 나는지, 바지춤에 손바닥을 닦다가 겨우 입을 뗐다.
“그동안… 하고 싶었는데 못 한 말이 있어.”
시작한다! 시작한다! 좀만 더! 용기를 내! 마구 떨리는 이기광의 눈동자를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왜 내가 긴장되냐.
“나……”
나 뭐!!
“나…, 나 너 좋아해.”
“……어?”
“반은 달라졌지만… 우리 사귀지 않을래?”
반이 달라진 건 왜 말해…! 답답하면서도 속 시원했다. 드디어 케케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에 시원한 웃음과 함께 눈물이 나왔다. 엥? 왜 내가 우냐…. 흩날리는 벚꽃 아래서 끌어안고 있는 둘을 보며 나는 남몰래 눈물 훔쳤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들 장가보내는 기분이네…. 뭐, 내가 없었으면 저 등신들은 끝까지 삽질만 하다가 끝났을 테지만. 뿌듯한 마음으로 무릎을 털고 일어났다. 뒷일은 둘에게 맡기기로 하고…….
…
…
…
……그랬는데! 그랬는데!!
“왜 계속 우리 반에 있냐고오-!!”
“기광이가 여기 있는데 그럼 어떡해.”
“두준아…….”
지랄들 하고 있네……. 러브러브 눈빛의 둘을 뒤로하고 주먹을 바들바들 떨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냅두는 건데…. 윤두준은 혼자 다른 반이라 슬프다며 쉬는 시간, 점심시간마다 우리 반으로 왔다. 익숙하게 이기광의 짝꿍을 밀어내고 옆자리에 앉아 이기광과 수다를 떨었다. 무슨 애들이 말이 저렇게 많은지… 맨날 보면서도 맨날 서로 할 말이 많아서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졸라 시끄러웠다. 이기광 짝꿍한테도 민폐였다. 근데 걔는 처음에만 좀 짜증 내더니 지금은 적응했는지 옆 반에서 친구 만들어서 지내고 있다. 참나.
“…그래서 어제 엄마가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또 너랑 논 거 아니냐고 그러는 거야.”
“슬슬 어머님께 인사드릴 때가 됐나?”
“인사는 무슨 인사야!”
“왜애, 미리미리 인사드리고 점수 따놓는 거지.”
진심으로 토 쏠렸다. 점심으로 먹은 미트볼이 올라올 것 같아서 제발 그만해달라고, 정 안 되겠으면 나한테 안 들리게 카톡으로 해주면 안 되겠냐고 빌었다.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진심이었다. 이 꼴을 1년 내내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지금 당장 전학 가고 싶었다. 그만하든지, 이기광이 윤두준 반으로 가든지 해달라고 애원했다. 나의 절규에 이기광은 웃기만 했고 윤두준은… 들은 척도 안 했다. 내가 얘네를 왜 도와줬을까…….
“그래도 나는 지인이한테 엄청 고맙다? 지인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스토커로 신고당했을걸.”
“뭐, 박지인이 많이 도와주긴 했지.”
아 또 갑자기 감동……
“지인아, 나중에 또 도와줘야 돼.”
“나중에? 나중에 나 말고 누구!”
“아니 그게 아니라…….”
“야 박지인, 도와주기만 해! 어?!”
오늘부로 너네랑은 절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