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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선

  양  이  손

  요  기  동

선  섭  광  운

 

 

 

 동운이 입구에 들어서자 봄비가 부슬거리는 아침을 연상시키는 맑고 부드러운 선율이 들려왔다.

 

 Brahms Intermezzo in A major, Op.118, No.2.

 

 브람스가 작곡한 여섯 개의 피아노 소품곡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2번 간주곡이다. 클래식 바라더니. 클래식한 분위기의 바가 아니라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바라는 의미였나. 물론, 전자의 의미로 받아들인대도 틀릴 것은 없어 보였다. 은은한 조명과 잔잔한 음악. 넓은 간격으로 놓인 예닐곱 개의 원형 테이블과 가장 안쪽에 놓인 기다란 바 테이블. 그 뒤로는 온갖 종류의 술이 벽면 가득 진열되어 있었고, 오른쪽 벽면을 덮은 스크린 위로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영상이 영사되고 있었다. 그가 누르는 건반의 음과 귓속으로 흘러드는 음이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이 곡을 연주하는 당사자인 듯했다.

 

 하필이면 이런 곳을 약속 장소로 잡다니, 이 형도 참.

 

 동운이 피식 웃으며 익숙한 뒷모습이 보이는 바 테이블 쪽으로 다가갔다. 바 테이블 앞에 홀로 앉아 있던 요섭은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는지 뒤를 돌아보다가 동운과 눈을 마주치곤 씩 웃었다.

 

 “동운아.”

 “형.”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네, 저야 뭐. 늘 비슷하죠.”

 

 동운이 요섭의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다른 교향악단으로 옮겼다는 얘기 들었어. 오디션 본 거야?”

 “네, 관심 있던 오케스트라에서 마침 첼리스트를 새로 뽑는다고 해서요.”

 “실력 좋네. 몇 명 안 뽑았을 텐데, 떡하니 붙고.”

 “형한테 그런 소리 들으면 민망한 거 알아요?”

 “나한테? 왜? 내가 피아노 관둔 지가 언젠데.”

 “그래도요.”

 

 동운이 시무룩한 얼굴로 요섭을 바라봤다. 그 꼴이 꼭 비에 젖은 강아지 같아서 요섭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정작 관둔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네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뭐‥. 그건 됐고. 뭐 좀 마실래? 내가 살게.”

 “그럼, 전 형이랑 같은 걸로 할게요.”

 

 어느새 평소의 표정을 되찾은 동운이 말했다.

 

 “너 정말 알기 쉽구나.”

 

 요섭이 동운을 흘겨보고는 바텐더를 불러 요섭이 마시는 것과 같은 술을 주문했다.

 

 “그런데 형, 왜 바에서 보자고 했어요? 술도 잘 안 마시는 사람이.”

 “그냥.”

 “그냥이요?”

 “그래, 그냥. 가끔은 이런 날도 있는 거지.”

 “그러는 너야말로 왜 보자고 했어? 어쩌다 보니 약속 장소도 내가 정하고, 술도 내가 사지만, 먼저 만나자고 한 건 너잖아.”

 “저도 그냥요.”

 “흐음, 그래?”

 

 요섭이 동운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동운은 제 심연까지 꿰뚫어 볼 듯한 그 집요한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황급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희가 꼭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만 만날 수 있는 사이는 아니잖아요?”

 “뭐, 그렇긴 하지.”

 

 요섭이 동운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누가 봐도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동운은 애써 무시하며 때마침 나온 술 한 모금을 머금었다. 삼키지 않아도 코끝에 닿는 지독한 알코올 향과 입안으로 퍼지는 씁쓸한 맛을 통해 독한 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술도 잘 안 하는 사람이 무슨 이런 독한 술을. 동운이 미간을 살짝 좁히며 입 안에 남은 술을 꿀꺽 삼켰다. 마치 불에 타는 듯한 감각이 식도를 타고 삽시간에 화르르 번져나갔다.

 

 그 뒤로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요즘 하는 일이 어떤지부터 시작해서 직장 동료들이 어떻고, 클래식계가 어떻고, 누가 이직을 했고, 누가 결혼을 했는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러한 이야깃거리가 슬슬 떨어져 간다고 느낄 때쯤, 동운은 조심스럽게 새로운 화두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내내 애써 비껴가던 이야기였다.

 

 “형, 기사 봤어요?”

 

 막 술잔에 입을 대려던 요섭이 움직임을 멈추고 동운을 바라봤다. 화두를 던진 채 요섭을 응시하는 동운의 눈에서는 어딘지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요섭은 그런 동운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이내 술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그래.”

 “그럼, 술집에서 보자고 한 것도….”

 “그건 아니야.”

 “뭐가 아니에요. 제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네가 무슨 얘길 하고 싶은지 아는데, 그거 아니라고.”

 “네에, 뭐, 형이 그렇다면야 그런 거겠죠.”

 

 동운이 술로 목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기광이형 참 대단하네요.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이라니.”

 “그 녀석 실력도 있고, 무엇보다 한번 마음먹은 건 뼈를 깎아내서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잖냐.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지.”

 “맞아요. 그 형 겉으로는 유해 보여도, 아니, 실제로도 유한 사람이었지만, 자기 자신에 관해서만큼은 타협이라는 게 없었으니까요.”

 “덕분에 잊고 살기는 더 힘들어졌네요.”

 

 동운의 마지막 말에 요섭이 픽 하고 웃었다. 그것이 동의의 의미인지, 아니면 동운이 알지 못하는 다른 어떠한 의미인지, 동운은 알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맘때였네요.”

 “뭔 소리야, 갑자기.”

 

 도무지 맥락을 알 수 없는 말에 요섭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물었다.

 

 “형이랑 기광이형이랑 함께 보냈던 마지막 학기요.”

 “아, 그게 벌써… 4년 전이던가.”

 

 그렇게 말하는 요섭의 시선이 허공을 더듬었다. 그리운 것을 보는 눈빛으로. 그 시선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동운은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역시 같은 것을 보고 있었으므로.

 

 4년.

 그래, 4년이다.

 

 4년 전 가을.

 

 요섭과 동운, 그리고 기광이 함께 보냈던 마지막 계절이었다.

 

 

 

1

 

 

 계절의 변화는 몇 번을 겪어도 신기하다. 다가오는 계절은 서서히 다가오는 듯하다가도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음악에 비유하자면 Largo(매우 느리게, 풍부한 표정으로)로 연주되던 곡이 갑자기 Presto(매우 빠르게)로 연주되는 느낌이랄까. 장황하게 서두를 열었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덥더니 그새 날씨가 쌀쌀해졌다. 별생각 없이 평소처럼 얇은 셔츠 한 장만을 걸치고 집을 나온 동운은 얼마 못 가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집을 다시 들르기에는 빠듯한 시간이었지만, 그대로 학교에 갔다가는 감기 환자 직행 루트를 탈 게 뻔했다. 그렇게 나온 지 1분 만에 집으로 돌아간 동운은 장롱을 열어 아무거나 가장 먼저 손에 잡히는 외투를 꺼내 입고 황급히 집을 나섰다. 다행히 지하철이 제때 와준 덕에 예상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학내 카페에서 커피라도 사 갈까.

 

 급하게 집을 나서던 아까 전의 모습은 거짓인 듯 동운의 머릿속은 온통 갑자기 생긴 여유 시간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결국 카페에 들르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학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동운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운아.”

 

 이 목소리는,

 

 “형.”

 

 역시

 기광이형이다.

 

 기광을 본 동운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정확히는 기광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부터라고 해야 할까. 동운아, 한마디에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한 입꼬리는 두 눈이 기광을 확인하고 나선 거의 귀에 걸릴 지경이 되었다.

 

 “누굴 꼬시려고 그렇게 멋있게 차려입었어?”

 

 장롱에서 가장 먼저 손에 채이는 옷을 입었는데, 그게 트렌치코트였을 뿐이다. 트렌치코트가 대단한 옷도 아니고, 멋져 보인다면 그건 옷걸이 덕분이겠지. 하지만. 동운은 문득 형을 놀려주고 싶어졌다.

 

 “형이요.”

 

 그러나 형은 한 수 위였던 모양이다.

 

 “그래? 어떡하지. 연하는 내 취향이 아닌데.”

 

 당황할 거란 동운의 예상과는 달리 기광은 눈까지 접어 웃으며 능청스레 말했다. 그런 기광을 보고 김이 빠진 동운은

 

 “네에, 그러시겠죠.”

 

 하며 입술을 비죽이다가 뒤늦게 울컥해서는

 

 “애초에 형한테 취향이랄 게 있기는 해요? 양요섭밖에 모르면서.”

 

 하고 푸념인지 따지는 건지 모를 말을 늘어놓았다.

 

 “양요섭이 뭐야, 형한테.”

 

 기광이 멋쩍은지 괜한 것을 걸고넘어진다. 말을 돌린답시고 한 말이 또 동운의 속을 긁어놔서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고 말았다.

 

 “지금 그게 중요해요?”

 

 이 형은 왜 오늘따라 속을 긁어놓는 말만 골라서 하는 건지. 남의 속도 모르고 허허 웃는 얼굴이 얄미워서 한 번 흘겨보곤

 

 “몰라요. 저 갈래요.”

 

 그대로 기광을 두고 강의실로 향했다.

 

 “어딜 가, 동운아. 어차피 우리 같은 수업이잖아.”

 

 그대로 혼자 가게 둘 형이 아니지만.

 

 

*

 

 

 결국 두 사람은 나란히 강의실에 도착했다. 동운은 일찍 도착해서 아직 사람이 얼마 없는 강의실을 보고서야 뒤늦게 기광한테 정신이 팔려 커피를 깜빡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어쩔 수 없지. 이제 와서 사러 나가기도 귀찮으니. 깔끔하게 단념한 동운이 기광을 돌아보며 형, 어디 앉을까요? 하고 물어보려던 그때, 기광이 동운의 소매를 슬쩍 잡고는 어딘가로 이끌었다. 그 뒤를 순순히 따르며 가고 있는 방향을 바라보니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작고 동그란 뒤통수. 요섭이었다.

 

 구석진 자리에 있어서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이 형은 어느 틈에 찾아냈는지.

 

 기광이 익숙한 듯 요섭의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동운 역시 익숙하다는 듯 기광을 따라 그 옆자리에 앉았다.

 

 “왔어?”

 

 악보를 보고 있던 요섭이 고개를 들고 기광과 동운을 차례로 쳐다보며 말했다.

 

 “응.”

 “형, 일찍 왔네요.”

 “어, 교수님이 아침밖에 시간이 안 된다고 하셔서 이른 아침부터 연구실 가서 면담하고 왔어.”

 “졸연 때문에요?”

 “응. 근데….”

 “네?”

 “동운이 트렌치코트 뭐야. 가을 남자네.”

 

 요섭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동운이 질색하며 하지 말라고 하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기광이 한발 빨랐다.

 

 “그치. 아까 내가 뒤에서 걸어가는 거 봤는데, 그러고 첼로 케이스까지 메고 가니까 화보가 따로 없더라고. 키도 훤칠하니, 드라마에 나오는 음대생 같던데?”

 “형들, 뭐, 오늘 저 놀리려고 모의했어요? 아까부터 왜 그래요, 진짜?”

 

 동운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아까? 뭐? 기광아, 너 오기 전에 동운이한테 뭐 했어?”

 “응? 아니? 나는 옷 멋지게 입었다는 얘기밖에 안 했는데?”

 “그렇다는데, 동운아?”

 

 좋아하면 닮는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지 똑같은 얼굴로 천연스레 웃는 두 형을 보고 동운은 그만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네네, 다 제가 잘난 탓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자긴 이제 지쳤다는 듯 책상으로 엎어지는 동운을 보고 요섭과 기광이 마주 보며 웃었다. 비록, 한 명의 희생자가 있었지만, 평화로운 날이었다.

 

 

 

2

 

 

 엄밀히 말하자면 동운을 매료시킨 것은 첼로가 아니었다. 첼로는 단지 그 일부였을 뿐. 동운은 현을 이용하여 소리를 내는 악기, 다시 말해 현악기로 분류되는 악기라면 뭐든 좋았다. 바이올린도 첼로도 비올라도. 심지어는 가야금이나 거문고도. 현악기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강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했다.―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다른 악기는 그렇지 않으냐고 물을 수도 있겠으나 어디까지나 동운이 느끼기에는 현악기가 유독 그러했다.―그렇다면 현악기의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것일까. 이들은 음색도 연주 방법도 저마다 조금씩 다른데, 어떤 점이 이토록 강하게 나의 마음을 잡아끄는 것일까. 동운은 오래도록 이 질문에 관해 고민했다. 그리고 끝내는 나름의 답을 찾아냈다. 사람의 마음에도 현이 있고, 악기의 현이 진동할 때마다 그 현도 함께 진동하는 것이라고. 활로 문지르든 손가락으로 뜯든 연주자가 현을 진동시켜 소리를 낼 때, 연주자가 뒤흔드는 것은 악기의 현만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현까지도 함께 뒤흔드는 것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말에 ‘심금’이라는 말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마음 심 거문고 금. 심금을 울린다는 것은 곧 마음의 현악기를 울린다는 것. 어쩌면 옛날 사람들은 일찍이 알았던 것이 아닐까. 우리의 마음에도 현이 있다고.

 

 언젠가 첼로가 왜 좋으냐는 질문에 동운은 이처럼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이야기를 다 들은 기광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동운아, 너는 음악을 할 게 아니라 작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형, 지금 저 음악 못 한다고 돌려 까는 거죠.”

 “에이, 설마. 그만큼 네 이야기가 감명 깊었다는 거지.”

 “수상한데요.”

 

 동운이 눈을 가늘게 뜨고 기광을 빤히 쳐다봤다. 기광은 그 표정이 웃겼는지 쿡쿡대며 웃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럼 다른 악기들도 있는데 하필 첼로를 선택한 이유는 뭐야?”

 “글쎄요. 연주하는 모습이 가장 멋있어 보였나?”

 “그게 뭐야-.”

 

 기대와 다른 싱거운 대답에 기광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런 기광을 보는 동운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그래서,”

 “응?”

 “형은 바이올린이 왜 좋은데요.”

 “나?”

 

 기광은 저가 던진 질문이 다시 제게로 돌아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내가… 바이올린을, 좋아하나‥?”

 

 기광의 말이 태엽 풀린 인형의 움직임처럼 느릿하게 뚝뚝 끊어졌다.

 

 이상한 말이었다. 기광이 바이올린을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기광 본인이 가장 잘 알 터였다. 게다가 동운이 느끼기에 기광은 동운이 아는 사람 중 가장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바이올린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니.

 

 “뭔 소리예요, 형. 형이 바이올린 좋아하는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동운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동운을 바라보는 기광의 얼굴은 마치 정물처럼 한없이 고요했다.

 

 “…그래, 난 바이올린이 좋아.”

 

 그것은 꼭 자기 자신에게 하는 다짐 내지는 자기 자신에게 거는 주문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다음에 이어진 말은,

 

 “하지만 가끔 그 현이 내 목을 조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

 “동운아, 너는 고조되는 음에 쫓기는 듯한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어?”

 “…”

 “나는 가끔 그러는데,”

 “그럴 때면 가끔은…”

 

 “그냥 도망치고 싶어져.”

 

 

 

3

 

 

 “형, 대위법 너무 어려워요.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동운이 수업 자료들이 널브러져 있는 피아노 뚜껑 위로 엎어지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러게, 4학년 되고 들으라니까.”

 

 피아노 옆 간이 의자에 앉아 악보를 정리하던 요섭이 말했다.

 

 “그치만 형들 막학기니까 수업 같이 듣고 싶었는데, 같이 들을 수 있는 과목이 이것밖에 없었는걸요.”

 “그리고 4학년 돼서 듣는다고 별반 다를 것 같지도 않은데요.”

 

 동운의 말에 요섭이 피식 웃었다.

 맞는 말이었다. 대위법은 4학년도 어려워하는 과목이었다.

 

 “뭐, 그렇긴 하지. 솔직히 나도 교수님 설명이 이해 안 될 때가 많아.”

 “거짓말. 형은 기악과 수석이잖아요.”

 “수석이라고 뭐 다 아냐? 나도 똑같은 학부생일 뿐이야.”

 “아, 네에.”

 

 동운이 건성으로 대꾸했다. 누가 들어도 믿지 않는다는 말투였다. 진짠데. 억울하네. 요섭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왜 기광이한테 안 가고 나한테 왔어?”

 “저는 뭐 기광이형하고만 노나요?”

 “솔직히 맞잖아.”

 “…”

 “…실은, 아까 기광이형한테 먼저 갔었는데요.”

 “역시 기광이한테 먼저 갔었구나.”

 

 요섭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동운을 쳐다본다.

 

 “네…. 근데 연습실 창문으로 보이는 형 얼굴이 너무 심각해 보여서 차마 노크를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형한테 온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그거네? 꿩 대신 닭.”

 “에이, 아닌 거 알잖아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맞구만.”

 “형, 그냥 좀 넘어가 줘요. 알잖아요. 요새 기광이형 졸연 얼마 안 남아서 예민한 거.”

 

 동운 말마따나 기광의 졸업 연주가 머지않았다. 기악과는 11월 셋째 주에 졸업 연주회를 하니 이제 겨우 한 달 정도를 남겨둔 셈이다. 그리고 그 말은 곧 요섭의 졸업 연주 역시 한 달밖에 남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왜 기광이 핑계를 대? 그리고 나는 졸연 안 하냐? 여기 내 연습실인 건 알지?”

 “아니, 기광이형보다는 형이 무던하니까….”

 

 동운은 말을 하다 말고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내 무언가 떠오른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면 둘이 바뀐 것 같아요.”

 “뭐가.”

 “처음 만났을 때는 형이 조금 더, 뭐랄까, 압박에 시달리는 듯한? 여유가 없는 느낌이었는데,”

 “요새는 기광이형이 더 그래 보여요.”

 

 동운의 말에 내내 까딱거리던 요섭의 손가락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래?”

 “네….”

 

 “기광이가 고민이 많은가 보네….”

 

 

*

 

 

 똑똑-.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기광이 누구세요? 하고 묻자 문이 빼꼼 열리더니 그 사이로 작은 머리통 하나가 들어온다.

 

 “나야.”

 

 요섭이다.

 

 “바빠? 연주 소리는 안 들리길래 노크해봤는데.”

 “아, 괜찮아. 무슨 일이야?”

 “잠깐 머리 좀 식힐까 해서.”

 

 이번에는 문틈 새로 캔 커피 두 개가 들어와 흔들린다. 그 순간 눈이 마주친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씨익 웃었다.

 

 두 사람은 각자 캔 커피를 하나씩 들고 같은 층에 있는 테라스로 나갔다. 테라스 난간 앞에 서니 학교 전경은 물론 학교 주변 풍경까지 모두 한눈에 들어왔다. 그 광경에 새삼스레 압도된 두 사람은 잠시 말을 잊은 채 저 멀리 건물 사이로 넘어가는 태양과 어스름이 젖어 드는 지평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음대 건물이 학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기에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기광은 무거운 바이올린 케이스를 메고 학교를 오를 때마다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음대 건물을 이 위에다가 지을 생각을 했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은 그 사실에 조금 너그러워질 것 같기도 했다. 조금, 아주 조금.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은 평화로운 고요를 깨뜨린 것은 다름 아닌 캔 뚜껑 따는 소리였다. 옆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소리에 꿈에서 깨듯 퍼뜩 정신을 차린 요섭이 옆을 돌아보자 커피는 마시지 않은 채 요섭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기광이 보였다. 그것이 어떠한 신호임을 눈치챈 요섭은 피식 웃으며 제 몫의 캔 뚜껑을 열었다. 그대로 캔 커피를 슬쩍 기광 앞에 들이밀자 기광이 씩 웃으며 자기 캔을 갖다 댄다. 짠-. 경쾌한 소리와 함께 두 캔이 부딪쳤다가 떨어진다.

 

 “캬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기광이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말했다. 요섭은 두 손으로 커피를 쥐고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까 동운이가 연습실에 왔다 갔는데,”

 “너한테 먼저 갔다가 네 표정이 너무 심각해 보여서 나한테 왔다더라.”

 “아‥, 동운이한테 미안하네.”

 

 기광이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요새 많이 불안해?”

 “응?”

 “요새 너,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보여.”

 “아….”

 

 기광이 난간에 팔을 기대고 먼 곳을 응시했다. 뭐라고 운을 떼야 할지 고민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음‥, 그러니까 나는 남들보다 늦게 음악을 시작했잖아. 남들은 이르면 예닐곱 살부터도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나는 열여섯 살에 처음으로 활이라는 걸 잡아봤단 말이야. 뭐, 그래도 처음에는 괜찮았어.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뿐이었거든. 그런데 대학에 들어와서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더 높은 곳을 목표하게 되니까 자꾸만 내가 남들보다 늦게 음악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원망스럽게 느껴지는 거야. 대학밖에는 더 넓은 세상이 있고, 높은 곳 위에는 언제나 더 높은 곳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더욱이 그랬어. 내가 노력한다 한들 절대적인 시간의 차이를 좁힐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아무튼 그래서 그런지 요즘 들어 자꾸 조급해지네. 안 그러려고 노력은 하는데.”

 

 말을 마친 기광이 민망한지 요섭을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시작한 시기가 뭐가 중요해.”

 

 그때까지 가만히 기광의 얘기를 듣고 있던 요섭이 말했다.

 

 “기광이 너 앞으로도 계속 바이올린 할 거 아니야?”

 “음, 아마도 그렇겠지?”

 “그런데 뭐가 걱정이야. 네가 바이올린을 언제 시작했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계속하느냐 마느냐지. 결국 마지막에 남는 사람이 승자라는 말도 있잖아.”

 “…”

 “있지, 나는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피아노를 시작했지만….”

 

 요섭이 말을 하다가 말았다.

 

 “했지만‥?”

 “으응, 아니야, 그래서 더 네가 대단하게 느껴진다고.”

 

 요섭이 엷게 웃으며 말했다. 기광은 어물쩍 넘어가는 요섭이 수상했지만, 굳이 걸고넘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달리 생각해보면,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는데도 벌써 여기까지 왔다는 건 그만큼 재능이 뛰어나다는 뜻 아닐까?”

 “그런가.”

 “그렇다니까.”

 “고마워, 요섭아.”

 

 기광이 해사하게 웃었다.

 

 “…너, 우리가 처음으로 대화했을 때 기억나?”

 

 기광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요섭이 말했다.

 

 “네가 다짜고짜 내 연습실로 찾아와서는 같이 합주하지 않겠냐고 물었잖아.”

 “당연히 기억하지. 그때가 내가 네 피아노 연주에 처음으로 반했던 순간이니까.”

 

 기광의 시선이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듯 허공을 찬찬히 더듬었다.

 

 “그때가 아마 3월 중순이었지. 대학에 입학한 지 한 달도 채 안 됐을 때.”

 “교수님이 다음 주까지 합주 파트너를 정해 오라고 하셨는데, 누구랑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이 많던 차였어. 그때 나는 아직 동기들이랑 그렇게 친하지 않았거든.”

 “아무튼 그렇게 연습실 복도를 지나가다가 어떤 방문을 지나쳤는데, 이상하게 유독 거기서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이 귀를 사로잡는 거야. 너도 알지. 우리 학교 연습실 방음 잘 안 돼서 복도에 소리 다 울려 퍼지는 거. 그런데 그 순간에는 신기하게도 그 피아노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어. 분명 여러 음악이 엉켜 있는데도 그 피아노 선율만이 오롯하게 들려오는 거야.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그 방문 앞에 가만히 서 있었어. 연주가 끝날 때까지 한참을.”

 “그러고 연주가 끝나고 나니까 문득 연주자가 누군지 궁금해지더라. 그래서 창문으로 슬쩍 들여다봤는데 웬걸 나랑 같은 수업을 듣는 동기였던 거야. 그 순간 얘를 꼭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다짜고짜 노크를 하고 들어가선 물었지. 나랑 같이 합주하지 않겠냐고. 그때 네 얼빠진 표정을 네가 봤어야 했는데.”

 

 기광이 쿡쿡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그때 이야기는 갑자기 왜?”

 “그때 결국 같이하기로 하고 나서, 네가 나한테 웃으면서 잘 부탁한다고 그랬잖아. 방금 네 웃는 얼굴이 꼭 그때 얼굴 같아서 그때 생각이 났어.”

 “그때 내 얼굴이 어땠는데?”

 

 어땠냐고?

 

 “그건 말이지.”

 

 그 봄날의 햇살처럼 찬란해서 영영 해가 뜨지 않는대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어.

 

 “비밀이야.”

 

 요섭이 씨익 웃었다.

 

 

 

4

 

 

 언젠가 요섭의 연습실에 앉아 악보를 구경하던 기광이 물었다.

 

 “이 악보는 뭐야?”

 

 기광이 펼쳐 보인 악보는 여느 악보들과 달리 마디가 존재하지 않았고, 음표 역시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이리저리 정신없이 흩어져 있었다.

 

 “아, 그거.”

 “그건 John Cage의 작품집 Etudes Australes의 악보야.”

 “John Cage가 그 사람이지? 4분 33초 동안 아무 연주도 하지 않는 ‘4분 33초’를 작곡한 사람.”

 “응.”

 “그런 사람 작품이라니까 악보가 이런 것도 이상하지는 않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데?”

 “그 작품은 남반구 별자리 지도를 바탕으로 음을 배열해서 작곡한 거라고 하더라. 그래서 제목도 ‘남방의 연습곡’이래.”

 “그럼 음표 하나하나가 별이고, 악보 전체가 하나의 별자리 지도라는 뜻이야?”

 “그런 셈이지.”

 

 기광은 악보를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요섭의 말을 듣고 나니 정말 악보 전체가 별이 흩뿌려진 밤하늘처럼 보이는 듯했다.

 

 “별을 악보에 담다니 낭만적이다.”

 “한번 들어볼래? 음악성과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요섭이 기광이 들고 있던 악보를 가져가 보면대 위에 올려두고, 건반 위로 양손을 가볍게 올렸다. 곧이어 요섭의 손가락이 움직이며 연주가 시작됐다.

 

 솔직히 말하자면 악보를 봤을 때부터 짐작하긴 했으나 아주 듣기 좋은 음악은 아니었다. 음이 연속되며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는 다른 음악들과 달리 이 곡은 음이 제각기 따로 놀며 뚝뚝 끊어졌다. 규칙은커녕 마디조차 없는 음악답게 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한마디로 종잡을 수 없는 곡이었다. 그러나 지도에 붙박인 별의 분포에 어떠한 규칙이 있는 게 아니었으므로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연주가 이어지고 이리저리 튀는 음도 듣다 보니 어쩐지 편안해져 기광은 벽에 머릴 기댄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들으니 음 하나하나가 별들의 반짝임처럼 느껴졌다. 별빛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지는 찰나의 순간. 그렇다면 음마다 강약과 서스테인이 다른 것은 별들이 저마다 조금씩 다르게 반짝이는 것을 표현하려 한 것일까. 기광은 저마다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반짝임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별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했다.

 

 “요섭아, 우리 나중에 남반구로 별 보러 가지 않을래?”

 

 요섭의 연주가 끝나고 눈을 뜬 기광이 말했다.

 

 “거기서 이 곡을 들으면서 하늘이랑 악보랑 비교해보는 거야. 어때? 재밌을 거 같지 않아?”

 “남반구 어디?”

 

 가만히 기광의 말을 듣던 요섭이 물었다.

 

 “글쎄, 호주…?”

 “그래, 좋아.”

 

 그것은 두 사람이 언제까지고 함께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5

 

 

 시간은 빠르게 흘러 졸업 연주회 당일이 되었다. 동운은 공연 시작을 30분 남기고 대강당에 도착했다. 대강당 로비는 자기 가족이나 친구를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 사이사이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동운의 동기와 후배들이 보였다. 올해 졸연 도우미들이다. 동운은 작년 졸연에서 도우미를 했기 때문에 올해는 제외되었다. 덕분에 요섭과 기광의 무대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잘된 일이었다. 동운은 입구 앞에 놓인 리플릿을 챙겨 들고 객석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 꽃다발을 무릎 위에 조심히 내려놓고 리플릿을 펼쳤다. 올해 졸업 연주회에서 연주를 선보이는 학생들의 사진과 이름, 연주곡이 차례로 나와 있다. 동운의 시선이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요섭과 기광의 사진으로 향했다.

 

 양요섭

 기악과 피아노전공

 R.Schumann

 Symphonic Etudes Op.13

 

 이기광

 기악과 바이올린전공

 Pablo de Sarasate

 Zigeunerweisen

 

 요섭은 슈만의 Symphonic Etudes Op.13를, 기광은 사라사테의 Zigeunerweisen을 졸업 연주곡으로 선택했다. 두 곡 모두 까다로운 곡이었다.

 

 잠시 후 객석의 불이 꺼지고 졸업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기광은 세 번째 순서였고, 요섭은 마지막 순서였다. 두 사람 모두 실수 없이 자신이 준비한 곡을 멋지게 연주하며 대학생활을 아름답게 마무리 지었다.―물론, 학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으므로 진짜 마지막은 아니었지만, 음대생 입장에선 졸연이 끝나면 다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그렇게 오랫동안 준비했던 졸업 연주회가 마무리되고, 동운은 요섭과 기광을 찾아 로비로 나갔다. 로비 한편에서 요섭과 기광이 지인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두 팔에 꽃다발을 한아름 안은 채였다. 동운 역시 그들에게 다가가 준비해온 꽃다발을 안겨주며 졸연을 무사히 끝낸 것을 축하했다. 미리 졸업을 축하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요섭과 기광이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광란의 뒤풀이가 이어졌다. 형들을 따라 간 뒤풀이 장소에서는 먼저 도착한 사람들에 의해 이미 술판이 한창이었다. 졸업 연주가 아쉬운 사람도 만족스러운 사람도 있었지만, 어찌 됐건 커다란 관문 하나를 통과했다는 성취감과 졸연을 무사히 마무리했다는 안도감, 그리고 약간의 허무감이 뒤섞여 다들 이성의 끈이 느슨해진 결과였다. 요섭과 기광 역시 그것은 별반 다르지 않았는지 두 사람도 평소보다 빠르게 많은 양의 술을 마셨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덩달아 분위기에 취해 정신없이 술을 마시던 동운은 어느 순간부터 요섭과 기광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누나, 기광이형이랑 요섭이형 어디 갔는지 알아요?”

 “아니, 모르겠는데?”

 

 동운이 누나라고 부른 사람이 답했다.

 

 “아까 둘이 같이 나가던데.”

 

 옆에 있던 다른 선배가 말했다.

 

 “어, 나도 봤어.”

 “근데 걔네 나간 지 꽤 되지 않았냐.”

 

 또 다른 선배들이 끼어든다. 때마침 담배를 피우러 나갔던 선배들이 돌아와 누군가 그들에게 묻는다.

 

 “야, 앞에서 양요섭이랑 이기광 봤어?”

 “아니. 없던데. 왜, 걔네 여기 없어?”

 “어, 한참 전에 나갔는데 아직도 안 들어오네. 앞에 있는 줄 알았더니 없다 그러고.”

 “얘네 혹시 튄 거 아냐?”

 “그럴 수도.”

 “와, 배신자네.”

 

 선배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동운이 휴대폰을 챙겨 들고 일어나며 말했다.

 

 “저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요.”

 “둘한테 하려는 거지?”

 “네.”

 “혹시 튄 거면 배신자라고 전해줘라.”

 “네, 그럴게요.”

 

 동운이 시끌벅적한 술집에서 나와 기광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신호음 끝에 들려온 소리는,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며…. 전화를 끊은 동운이 이번에는 요섭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요섭 역시 전화는 받지 않았다. 동운은 기광과 요섭에게 [형들 어디예요]라고 메시지를 남기고는 다시 술집으로 들어갔다. 동운이 들어가자 선배들의 시선이 동운에게 집중된다.

 

 “동운아, 둘 어디래?”

 “전화 안 받던데요.”

 “둘 다?”

 “네.”

 “와, 얘네 정말 튀었나 봐.”

 “의리 무슨 일.”

 “다른 것도 아니고, 졸연 뒤풀인데 너무하다.”

 

 동운의 말에 저마다 한마디씩 말을 얹는다. 결국 두 사람은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라도 해주길 바랐지만, 전화는커녕 메시지 답장조차 없었다.

 

 그런 둘과 연락이 닿은 것은 다음날인 토요일 저녁이었다. 정확히는 둘이 아닌 하나지만. 두 사람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동운은 저녁을 먹고 두 사람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기광에게 먼저 걸었지만, 기광은 여전히 받지 않았다. 동운은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고는 요섭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지고 이 형도 안 받는구나 하고 끊으려는 찰나에 신호음이 뚝 끊겼다.

 

 -어, 동운아.

 

 잠이라도 자다 깬 건지 수화기 너머로 평소보다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왜 전화 안 받아요.”

 

 동운이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아, 미안미안. 전화 온 줄 몰랐어.

 “그럼, 부재중전화 확인하고 다시 전화했어야죠.”

 -그땐 시간이 너무 늦어서….

 “그럼, 문자는 왜 답장 안 하는데요.”

 -어제 나 술 많이 마신 거 알잖아. 정신이 없었어. 미안해.

 “뭐, 그건 그렇고. 어제 기광이형이랑 같이 나갔죠?”

 -…어.

 

 요섭이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뜸 들일 이유가 없는 전혀 대답인데. 동운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둘이 대체 어디 갔었어요? 결국 끝까지 안 돌아오고. 형들 누나들 원성이 자자했던 거 알아요?”

 -아, 둘이 뭐 얘기 좀 하느라….

 “그럼, 먼저 간다고 얘길 하든가요.”

 -원래는 잠깐 쉬고 다시 들어가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기광이형이 그때 이후로 연락이 안 되는데, 형 뭐 아는 거 있어요?”

 

 그 순간 수화기 너머로 정적이 흘렀다.

 

 “여보세요? 형?”

 -아, 미안. 기광이랑 연락이 안 된다고‥?

 “네.”

 -그거 말이지…. 아마 나 때문일 거야. 미안하다. 네가 기광이 좀 잘 챙겨줘.

 

 요섭이 한층 더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네? 그게 갑자기 뭔 소리예요. 둘이 뭔 일 있었어요?”

 

 당황한 동운이 급하게 물었지만,

 

 -미안. 이만 끊을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동운이 심란한 얼굴로 통화가 종료된 휴대폰 화면을 바라봤다. 기광이 전화를 안 받는 게 요섭 때문일 거라니. 대체 지난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요섭의 말에 기광이 더욱 걱정되기 시작한 동운이 기광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역시나 신호음만 길게 이어질 뿐이었다. 기광이형 괜찮은 건가. 동운이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그러나 걱정하는 사람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기광은 주말이 끝날 때까지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

 

 

 월요일 아침. 동운은 주말 내내 연락이 되지 않던 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강의실 앞에서 기광을 마주쳤다.

 

 “형!”

 

 동운이 기광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어, 동운아.”

 

 기광이 슬쩍 손을 들어 인사했다. 주말 내내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기광은 멀쩡해 보였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주말 동안 전화 왜 안 받았어요?”

 “미안. 그냥 좀 정신이 없었어.”

 “뒤풀이 때도 요섭이형이랑 말도 없이 사라지고.”

 

 동운은 말을 해놓고 아차 싶었다. 역시나 기광의 얼굴이 한순간에 어두워진다.

 

 “미안….”

 “아, 아뇨, 괜찮아요. 그냥 투정 좀 해본 거예요. 주말 동안 연락이 안 돼서 걱정했는데, 이렇게 봤으니까 됐어요.”

 

 동운이 기광의 기분을 되돌리기 위해 애쓰며 말했다.

 

 “자, 들어가요.”

 

 동운과 기광이 함께 강의실로 들어갔다. 저 앞에 요섭이 먼저 와서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평소라면 기광은 당연하게 그 옆자리에 가서 앉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 기광은 요섭과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동운은 묻고 싶은 것이 아주 많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기광의 옆자리에 앉았다. 기광이 먼저 말해주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묻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을 나서며 기광이 동운에게 물었다.

 

 “동운아, 이따가 저녁에 형 자취방에서 술 한 잔 안 할래? 자고 가도 괜찮아.”

 “그러죠, 뭐.”

 

 동운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

 

 

 “이러고 있으니까 우리 기숙사 같이 썼을 때 생각나네요.”

 

 동운이 식탁 위에 놓인 캔맥주와 과자 봉지를 보며 말했다.

 

 기광은 동운의 기숙사 첫 룸메이트였다. 과 선배인 기광은 동운을 알뜰살뜰 잘 챙겨주었고, 동운 역시 그런 기광을 잘 따르면서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 과정에서 기광과 친한 요섭과도 자연스레 친해지게 되었고, 해가 바뀔 무렵 세 사람은 매일같이 붙어 다니는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원래부터 그랬던 두 사람 사이에 동운이 끼게 된 것에 가깝지만.

 

 “그러게. 그때도 이렇게 방에서 단둘이 술 마시고 그랬는데. 기숙사 음주 금지여서 술 가방 안에 몰래 숨겨 가지고 들어갔다가 다음날 또 다 마신 캔 몰래 숨겨 가지고 나와서 밖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랬잖아.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까지 해가며 술을 마셔야 했던 건지 모르겠어. 하지 말라고 하니까 괜히 더 하고 싶었던 걸까.”

 

 기광이 쿡쿡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네가 기숙사 얘기하니까 생각난 건데, 1년 지나서 기숙사 나와야 했을 때, 왜 같이 자취하자는 제안 거절한 거야? 본가 멀어서 통학 힘들다고 맨날 불평하면서. 내가 룸메로서 별로였나?”

 

 기광이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뇨. 그럴 리가요.”

 “그냥, 기숙사 1년 사니까 부모님도 보고 싶고, 집밥도 그립고 해서 그런 거예요.”

 

 사실, 그것은 핑계였다. 부모님이 보고 싶었던 것도 집밥이 그리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무렵 동운은 기광에 대한 마음을 갓 자각하고 혼란스러워하던 상태였다. 동운은 그런 상태에서 기광과 함께 살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제 마음도 숨기고 있는 마당에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리가.

 

 두 사람은 그렇게 지난 추억에 젖어 맥주 몇 캔을 까 마시고는 자려고 누웠다. 동운은 기광이 요섭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저를 불렀다고 생각했으나 그때까지도 기광은 요섭에 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동운은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하고 눈을 감았다.

 

 그대로 설핏 잠이 든 동운이 다시 눈을 뜬 것은 새벽이었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3시 30분이었다. 동운이 자세를 고쳐 누우며 다시 자려고 하는데, 그때 동운의 시야에 침대 위로 불쑥 튀어나온 작은 머리통이 들어왔다. 기광이었다. 기어코 동운에게 침대를 양보하고는 그 옆에 이불을 깔고 누웠는데, 여태 자지 않은 건지 아니면 동운처럼 자다가 깬 건지 아무튼 침대에 기대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형, 안 자요?”

 

 동운이 살짝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아, 그냥, 잠이 안 오네.”

 “졸리면 잘 테니까, 더 자.”

 

 그렇게 말하는 형의 뒷모습이 유난히 외로워 보였기 때문일까. 낮의 결심이 무색하게 결국 동운이 먼저 묻고 말았다.

 

 “형, 요섭이형이랑 무슨 일 있었죠.”

 “…”

 

 기광은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금방이라도 흩어질 듯 희미한 목소리로 서두를 뗐다.

 

 “실은…”

 

 졸연을 마쳤다는 생각에 한껏 들떴다고 한다. 술도 들어갔고, 공기는 기분 좋게 서늘했고, 마침 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간 감춰왔던 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고.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미안이라는 간결한 한마디였고, 기광은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기광은 담백하게 사실만을 전달했지만, 그랬기에 더 슬프게 들렸다. 기광이 생략한 말들 속에 얼마나 많은 마음이 담겨 있을지 동운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광의 이야기가 의아하게 느껴졌다. 동운은 기광을 좋아했기에 기광이 요섭을 좋아한다는 사실 역시 알아챌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동운이 기광을 좋아했기에 요섭 역시 저와 같은 마음으로 기광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동운이 기광을 보는 눈으로 기광이 요섭을 보았고, 요섭 역시 같은 눈으로 기광을 보았으므로 절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동운은 막연히 생각했다. 언젠가는 두 사람의 마음이 맞닿는 날이 올 거라고. 그날이 비로소 자신의 긴 짝사랑이 끝나는 날이 될 거라고. 그런데 요섭은 왜 기광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은 걸까.

 

 “…그냥 그런 이야기야.”

 

 내내 뒷모습만 보이던 기광이 동운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 순간 동운은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을 끝까지 묻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또, 묻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얼굴을 볼 줄 알았다면. 그 얼굴을 본 내 마음이 이렇게까지 아픈 줄 알았다면.

 

 

 

6

 

 

 띵동-.

 

 설핏 잠이 들었던 기광이 초인종 소리에 눈을 떴다. 기광은 열이 끓어 몽롱하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짚으며 현관으로 나갔다. 누구세요 하고 묻는 목소리에 힘이 없다.

 

 “나야.”

 

 목소리를 알아들은 기광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기광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문을 열었다.

 

 문 앞에 한 손에 봉투를 든 요섭이 가만히 서 있었다. 기광이 비켜서자 요섭이 집으로 들어오고, 곧이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이야.”

 “아픈데 또 혼자 끙끙 앓고 있을 것 같아서 약이랑 죽 좀 사 왔어.”

 “아픈 거 어떻게 알았어.”

 “강의실에서 계속 기침하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냐?”

 

 그 말에 기광이 허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너 중요한 일 치르고 나면 꼭 한 번씩 크게 아프잖아. 긴장 풀려가지고. 평소에는 그렇게 튼튼하면서.”

 “…”

 “여하튼 그래서 동운이한테 너 좀 챙기라고 연락했더니 자기 지금 지방에 있어서 못 간다잖아. 그래서 이렇게 왔어. 아직 밥 안 먹었지? 일단 이 죽 좀 먹자. 그래야 약을 먹지.”

 

 요섭이 식탁에 봉투를 내려놓았다. 봉투 안에서 잘 포장된 죽과 약, 그리고 1.25리터짜리 이온 음료가 나왔다.

 

 “죽 덜어 먹는 게 낫겠지? 어디 보자, 그릇이….”

 

 달그락거리며 부엌 찬장을 뒤지는 요섭의 뒷모습을 보며 기광은 아픈 게 몸인지 마음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양요섭 진짜 나빴다.”

 

 요섭이 멈칫했다.

 

 “미안하다고 거절한 건 너잖아. 그런데 왜 이러는데?”

 “걱정되잖아.”

 “차놓고 걱정은 돼?”

 “친구니까….”

 

 그렇게 말하는 요섭은 등을 돌리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기광이 요섭의 얼굴을 볼 수 없듯이 요섭도 기광의 얼굴을 볼 수 없으니. 기광은 지금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친구? 그래.”

 “그럼, 친구로서 부탁하는데, 나가주라 제발.”

 

 기광의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그래. 죽 식기 전에 꼭 먹고. 약도 잘 챙겨 먹어.”

 “간다.”

 

 요섭은 그 말만을 남긴 채 집을 떠났다.

 요섭이 떠나고 혼자 남겨진 기광은 그제야 무너지듯 울었다.

 

 

*

 

 

 “형, 아팠다면서요. 못 와서 미안해요.”

 

 동운이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냐, 괜찮아. 많이 아픈 것도 아니었는데, 뭐.”

 

 기광이 싱긋 웃었다. 동운은 그런 기광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요섭이형 왔다 갔죠?”

 “…응.”

 

 기광의 얼굴이 한순간에 어두워졌다. 기광은 어딘가를 응시하며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마치 독백처럼 말했다.

 

 “동운아, ‘마음대로’라는 말은 참 이상하지 않아?”

 “마음만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없는데, 왜 마음대로라는 말이 생겼을까.”

 

 그것은 동운 역시 해답을 알고 싶은 질문이었다.

 

 

*

 

 

 그로부터 며칠 뒤, 동운은 한 선배로부터 기광의 유학 소식을 전해 듣고 기광의 연습실을 찾았다.

 

 “형, 독일로 유학 간다는 얘기 들었어요.”

 “아, 그걸 벌써 들었어? 소문 참 빠르네.”

 

 기광이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동운은 그런 기광을 잠시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요섭이형은 이 사실 알아요?”

 “너도 아니까 요섭이도 알지 않을까.”

 

 기광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형, 바보 같은 질문인 건 알지만, 요섭이형 때문에 유학 가는 건 아니죠. 막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해서 도피성으로.”

 

 동운의 말을 들은 기광이 푸흡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정말 바보 같은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음대생이 유학을 얼마나 많이 가는데.

 

 “동운아, 너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냐? 바보 같은 질문인 걸 안다니 다행이긴 한데.”

 “뭐, 그래도 일단 네 질문에 답해주자면, 내가 요섭이를 많이 좋아하긴 했지만, 차였다고 해서 인생의 중대사를 홧김에 정할 만큼 충동적이지는 않아. 유학은 꽤 오래전부터 생각하던 거였어. 여태 얘기 안 한 건 확실해질 때까지 말을 아끼고 싶어서 그랬던 거고.”

 

 기광이 담담하게 말했다.

 

 “형, 유학 가면 보고 싶어서 어쩌죠.”

 “어차피 나는 이제 졸업이잖아. 한국에 있어도 지금처럼 자주 만날 수 없는 건 똑같을 거야.”

 “같은 땅덩어리에 있어서 보고 싶으면 바로 만날 수 있는 거랑 한 번 만나려면 비행기 타고 10시간 넘게 날아가야 하는 게 어떻게 같아요?”

 “하긴. 그렇긴 하네.”

 “나도 동운이 네가 많이 보고 싶을 거야.”

 

 

 

7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흘러 졸업식 날이 되었다.

 

 “졸업 축하해요, 형.”

 “고마워, 동운아.”

 

 학사모를 쓰고 졸업 가운을 걸친 기광이 해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기광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동운의 시야 끝에 마찬가지로 학위복을 입은 요섭이 걸렸다.

 

 “어? 요섭이형이다. 기광이형, 요섭이형이랑 셋이 사진 찍어도 괜찮죠?”

 

 기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날이 있다. 평소 소원하던 친구와도 절친한 친구처럼 반갑게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고, 함께 사진을 찍는 날이. 그리고 그런 날들은 대개 한 가지 의미를 공유한다. 바로 ‘마지막’이라는 의미를. 마지막이라는 것은 정말 신기하다. 마지막이라는 감상이 드는 순간 평소 하잘것없이 여겼던 것마저 애틋하게 느껴지고 만다. 사소한 것에도 그런데, 하물며 대학 생활 전부를 함께 보낸 친우는 어떨까. 비록, 그 친구가 나를 뻥 차버렸다고 해도 사진 한 장 정도는 남기고 싶은 법이다. 마지막이니까.

 

 “요섭이형!”

 “우리 같이 사진 찍어요!”

 

 동운의 외침에 저 멀리 있던 요섭이 기광과 동운을 돌아보았다. 곧이어 요섭이 다가오고 세 사람은 음대 건물을 배경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기광이 가운데 섰고, 요섭과 동운이 그 양옆에 섰다.

 

 “거기 학위복 입은 두 분, 좀 붙어 봐요! 하나도 안 친해 보이네.”

 

 사진을 부탁받은 사람이 요섭에게 기광 쪽으로 더 붙으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에 요섭이 기광 쪽으로 한 발짝 더 붙어섰다. 낙낙한 졸업 가운 소매 속에 감춰졌던 요섭과 기광의 손이 잠시 손등을 맞대며 스쳐 지나간다.

 

 사진을 다 찍고 멀뚱히 서 있던 세 사람 사이에 흐르는 정적을 깬 것은 동운이었다.

 

 “어, 저기 상현이형도 있네. 형들 저 잠시 사진 찍고 올게요.”

 

 그 말을 끝으로 동운은 붙잡을 새도 없이 빠르게 멀어졌다. 요섭과 기광은 그것이 동운의 작은 배려임을 알았다. 함께 사진을 찍자며 요섭을 부른 것도. 상현 핑계를 대며 자리를 비운 것도.

 

 “졸업 축하해.”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요섭이 먼저 말을 걸었다.

 

 “너도 졸업 축하해.”

 

 기광이 엷은 미소를 띠고 말했다.

 

 “독일에 있는 음악원 붙었다며? 대단하네. 잘 다녀와.”

 “…가면 안 올 거야. 물론, 가끔은 들어오겠지만.”

 “그렇구나…. 그럼, 그곳에서 잘 지내라고 해야겠네.”

 “응.”

 

 기광이 짧게 답하는 듯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너는 아직 어떻게 할지 못 정한 거야?”

 “응, 아직.”

 “그렇구나. 그럼, 네가 어디서 무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서든 건강하게 잘 지내길 바랄게.”

 “응, 고마워.”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마주 보고 웃었다. 비록, 희미한 웃음이었지만.

 

 

 졸업식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광은 독일로 떠났다. 그곳에서도 동운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2년쯤 지나서는 끊겼다.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바빠지며 갈수록 연락이 뜸해졌고, 그렇게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을 뿐이다. 한편, 요섭은 졸업 후 국내에서 잠시 활동하는 듯하더니 이내 클래식계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동운이 간간이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고, 그런 요섭에게서 다시 연락이 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기광과 연락이 끊겼을 무렵이었다.

 

 

 

.

.

.

 

 

 

 “내내 연락 없다가 1년 반 만에 대뜸 연락해서 하는 말이 나 피아노 관뒀다라니, 형은 그때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를 거예요. 안 그래도 소식이 없어서 걱정하던 차였는데, 수석 졸업까지 한 사람이 피아노를 관뒀다고 하니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미안.”

 

 요섭이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동운은 그런 요섭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좋아했으면서 왜 포기했는지.”

 “뭘?”

 “둘 다요. 피아노도 기광이형도.”

 “형이 재능이 따라주지 않는 운 나쁜 케이스였으면 또 몰라. 수석이었잖아요. 그리고 기광이형이 형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동운아, 너는 첼로를 연주하는 게 문득 두렵게 느껴진 적이 있어?”

 “나는 언제부턴가 피아노를 치는 일이 무섭게 느껴졌거든. 피아노가 좋은 만큼 피아노를 잘 치고 싶은 욕심도 커지고 잘 쳐야 한다는 부담감도 커져서 어느 순간부터는 피아노 앞에 앉아 있으면 숨이 턱 막혔어.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데도 건반을 누르기가 무서워서 결국 한 곡도 치지 못한 적도 있었지. 나중에 가서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만 남아서 피아노를 치는 일이 전혀 즐겁게 느껴지지 않더라. 웃기지. 피아노를 치는 건 분명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는데.”

 

 그때까지 가만히 요섭의 말을 듣고 있던 동운이 말했다.

 

 “그런 점에서 형이랑 기광이형은 닮았네요. 기광이형도 도망치고 싶다고 한 적이 있거든요. 분명, 그 형도 바이올린이 너무 좋아서 그랬던 거겠죠.”

 “그래, 하지만 나는 도망쳤고, 기광이는 도망치지 않았지.”

 

 요섭이 동운의 두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아무튼 그래서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무렵에는 이미 피아노를 관둬야겠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어. 그런데 기광이는 내 피아노 연주를 좋아했잖아. 내가 피아노를 관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기광이가 나한테 실망할까 봐 그게 너무 두려웠어. 혹시라도 내게 실망하는 얼굴을 보게 된다면, 무너져 버릴 것만 같았지. 그래서 기광이한테서도 도망쳤어. 우습지. 겁쟁이라고 욕해도 좋아.”

 

 요섭이 씁쓸하게 웃었다.

 

 “…저는 형이 겁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포기한 채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잖아요. 저야말로 첼로를 그만둘 용기가 없어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리고 기광이형 일은… 형이 그럴 줄 알았으면, 제가 기광이형한테 더 들이대볼걸 그랬어요. 그랬으면 마음 약한 기광이형이 받아줬을지도 모르잖아요.”

 

 동운은 그렇게 말하며 싱글싱글 웃었다. 그런 동운을 보며 요섭은 피식 웃고는 이렇게 말했다.

 

 “안 그랬겠지만.”

 “네.”

 

 동운이 술로 목을 축이고는 우측의 스크린을 응시했다. 이제 스크린 위로는 한 여성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영상이 영사되고 있었다. 동운은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면 저희는 현악기의 현 같네요.”

 “서로 맞닿지 못하는 게.”

 “그러게.”

 

 두 사람의 시선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크린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시선은 바이올린 연주가 끝나고 나서야 스크린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형은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돼요?”

 

 동운이 화제를 돌렸다.

 

 “나? 앞으로도 계속 곡 작업하겠지?”

 “근데 지금은 좀 쉬고 싶어서 여행 가려고.”

 “여행이요? 어디로요?”

 

 동운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호주.”

 “호주요? 호주로 정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요?”

 

 “그냥, 별이 보고 싶어서.”

 

 

 

.

.

.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 게 어때.”

 

 이탈리아에서 열린 콩쿠르에서 우승이라는 쾌거를 거두고, 잠시 쉬고 싶다고 말하는 기광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기광은 오랜 고민 없이 바로 비행기 티켓을 끊었고, 그렇게 날아온 곳이 바로 이곳, 호주였다.

 

 그러나 중요한 대회를 마치고 긴장이 풀린 탓인지 여행하러 온 보람도 없이 몸살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호텔 방에 박혀 꼬박 이틀을 내리 앓는 동안 기광은 이럴 때마다 곁에 있어 주었던 누군가를 떠올렸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진다는 말은 사실인지 마음의 걸쇠가 느슨해진 틈을 타서 지난 기억들이 범람했다.

 

 그렇게 지난 기억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틀을 보낸 기광은 호주에 온 지 사흘이 지난 오늘 밤에야 호텔 방 밖으로 나왔다. 그대로 호텔을 나선 기광은 호텔에서 조금 떨어진 야트막한 언덕을 찾았다. 이 근방에서 하늘이 가장 잘 보인다는 곳이었다. 그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언덕 꼭대기에 오르자 드넓은 하늘이 보였다. 먹물을 쏟아부은 듯 새카만 하늘 위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별들. 오로지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적도를 넘어 이 먼 호주까지 날아왔다.

 

 기광은 언덕 위에 앉아 Etudes Australes의 악보를 무릎 위로 펼쳤다.

 

 ‘그 작품은 남반구 별자리 지도를 바탕으로 음을 배열해서 작곡한 거라고 하더라. 그래서 제목도 ‘남방의 연습곡’이래.’

 

 그 언젠가 이 곡에 관해 소개해주던 요섭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한번 들어볼래? 음악성과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

 

 기광은 지금은 들을 수 없는 요섭의 연주 대신 휴대폰에 저장된 음원을 재생했다. 잠시 후 높이도 강약도 서스테인도 모두 다른 음들이 휴대폰 스피커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그 소리를 가만히 들으며 하늘과 악보를 비교하고 있자니 기광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이 궁금해진다.

 

 너도 이 풍경을 봤을까.

 끝내 지켜지지 못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요섭아, 우리 나중에 남반구로 별 보러 가지 않을래?’

 

 그리고 그 순간 기억에 없던 대사 한 줄이 갑자기 추가된다.

 

 “‘남방의 연습곡’이네요.”

 

 그것은 기광의 등 뒤에서 들려온 것이었다.

 

 “좋아해요, 이 곡?”

 “저는 좋아하는데.”

 ‘그래, 좋아.’

 

 자꾸만 멋대로 추가되는 대사의 목소리가 기광의 기억 속 그것과 꼭 닮아있어서

 그 순간 기광은 답안을 보지 않고도 질문의 답을 알아내고야 만다.

 

 너 역시 나와 같은 풍경을 보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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