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헤어지는 이유에 대하여
그 일이 어찌나 충격이었는지 그 때 우리가 뭘 먹고 있었는지도 기억이 난다. 나는 전날 먹다 남은 피자 세 조각을 돌려 콜라와 함께, 형은 자주 사먹는 반찬가게에서 사온 김치찌개와 데운 즉석밥. 식탁에서 대화가 사라진 건 좀 됐다. 식사를 마친 형은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리 그만하자. ……라고. 그리고 내가 대답할 틈도 없이 말을 이었다. 오늘이 십오 일이니까 말일까지 짐 빼서 나가줘.
뭐가 발단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너무 황당하면 말도 나오지 않는다던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됐다. 형이 그릇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씻으러 들어갈 때까지 나는 멍하니 아무 말도 못했다. 왜요? 갑자기 무슨 말인데요. 그렇게 따졌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친 거다. 통보에 가까운 말을 내뱉고 형은 잠깐 나를 바라봤다. 대답을 요구하는 것처럼. 그 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냥 우리 사이에 그런 게, 끝이라는 게 있을 줄 몰랐으니까.
사랑? 물론 했다. 오래 되어 무뎌지긴 했지만. 형을 만난 건 오년. 같이 살기 시작한 건 사년 남짓. 기광이 형은 영화미술을 하는 사람이었다. 처음 만났던 건 영화 촬영이 끝난 기념으로 열렸던 자그마한 술자리. 여름의 한가운데였지만 그리 덥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막 군대에서 제대해 복학을 하느냐 마느냐가 인생의 최대 고민이었던 나를 꼬여낸 건 친구이자 고딩 때 사귀었던 전여친이었던 애였다. 사귄 기간이 길지도 않았고 워낙 성격이 털털 했던 터라 오히려 사귀었던 시기를 서로 흑역사처럼 여기게 된 사이였다.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그 애는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연출부의 막내가 되었단다.
내가 여기에 끼어도 돼? 이미 내 몫의 수저를 세팅하며 그렇게 묻자 그 애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썹을 들썩였다. 모르는 얼굴이 떡하니 앉아있으니 여기저기서 누구냐 물어왔다. 제 친구요. 연출감독님이 친구 한 명쯤은 불러도 된다고 하셔서. 나는 술자리를 제법 좋아했다. 술보다는 사람들이 허물없이 어울리는 그 분위기를. 술을 들이킨 사람들은 평소보다 긴장이 풀려 느슨해진다. 어깨에 잔뜩 들어간 힘을 풀고 실없이 허허 웃는다. 그렇게 주고 받는 실없는, 어쩌면 그렇게 포장한 진중한 이야기들을 듣는 걸 좋아했다.
한두 잔 들어가자 목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차가운 손등을 뺨에 비비고 있는데 문득 멀리서 시선이 느껴졌다. 두 테이블 정도 떨어진 곳에 단정한 얼굴을 한 남자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할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술잔을 비워낸다. 그리고 말을 걸어오는 옆을 향해 잠깐 웃어주고 다시 나를 바라봤다. 고개를 갸웃하자 피식 웃는데, 그렇게 웃는 사람은 처음 봤다. 행복에 겨워 환하게 웃는 것도 아닌데, 그저 눈을 살짝 접고 입꼬리는 씩 올라갔을 뿐인데 온 주위가 갑자기 환해지는 거다. 단단히 취했나본데.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게 처음이었다, 형과 나의.
삼일인가 지났을까 다시 그 애를 만났다. 이사하는 걸 돕기로 해서. 내가 청소를 하고 짐을 풀면 그 애가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해가 지고 밤이 되자 저녁으로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먹고 있는데 불쑥 말을 꺼냈다.
‘너 영화미술에 관심 있었던가?’
‘갑자기 뭔 소리야.’
‘이감독님이 그러던데? 네가 감독님 번호 궁금해할 것 같다구.’
이감독님이 누군데, 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쩌다보니 번호를 받게 됐다. 뭐라고 문자를 해야하나 몇날며칠을 망설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잠에 늦게 들고만 싶은 숱한 밤 중 어느 하나의 밤. 취한 것도 아니고 결심이 선 것도 아니었는데 불쑥 문자를 보내게 됐다. 손동운입니다. 답장이 올까 싶었다. 이미 새벽 두시를 넘긴 시각이었으니까. 새벽에만 생기는 알 수 없는 용기였다. 이게 흑역사가 되느냐 아니냐는 답장에 따라 달린 거였고. 삼분쯤 지났을까. 받은 답장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몇 살이에요?
그 뒤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도중에 손으로 폰 자판을 치는 게 답답해서 노트북을 꺼내들었다. 잠깐 눈을 마주친 게 전부였던 만남이었는데 어쩌다보니 내 개인사를 내가 먼저 줄줄 말하고 있는 거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는 정말 홀렸다는 말 이외에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형이 보낸 답장들을 보며 형이 어떤 표정으로 어떤 모습으로 답장을 적고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식사 약속을 잡았다. 다음날도 아니었다. 해가 뜬 오늘 점심에 보자고 말을 던졌다. 거절이 돌아올까 무서웠는데 형은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며 그러자고 했다. 그리고 점심에 보려면 이제 자야겠네 라며 대화를 끝냈다.
첫사랑을 시작한 사춘기 소년도 아닌데 나는 그 대화를 끝내고도 잠들지 못했다. 잠이 오지 않아 샤워를 했다. 영화라도 보자 싶어 아무 영화나 틀었는데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아 그대로 창을 꺼버렸다. 그리고 형과 나눈 대화를 다시 처음부터 읽어내렸다. 약속시간을 두 시간 앞두고 다시 샤워를 하면서 생각했다. 이런 사랑도 있구나.
점심은 형이 산다고 했다. 뭘 좋아하느냐 묻길래 아무거나 잘 먹는다고 했다. 형이 고른 메뉴는 샤브샤브였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좀 의외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가게에 먼저 도착해 입구를 서성이고 있자 저 멀리서 동운아 하고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동운아, 라니. 물론 문자를 주고 받으며 말을 놓긴 했지만 저렇게 스스럼 없이 부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표정관리가 안 됐는지 형이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내 미련 없이 가게 문을 밀며 말했다. 들어가자.
‘전공은 언론정보학과랬나?’
‘네.’
‘전공 맞춰서 일하려고?’
‘아직 그거까진 잘 모르겠어요.’
‘그래, 천천히 생각해도 되겠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도저히 어떤 말로 대화를 시작해야할지 몰라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실제로는 되게 조용한 타입인가봐? 톡으로는 말 되게 많더니. 그리곤 폰 자판을 두드리는 시늉을 하며 씩 웃는다. 몇 년 전 일인데도 첫만남의 미소와 이 때의 형의 웃음은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아마 평생을 따라다닐 게 분명했다.
음식이 나오고 대화가 좀 더 이어졌다. 형은 꽤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었다. 형이 어른이라는 게 그제야 실감이 났던 것 같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는 다소 취업 상담 같은 대화를 주고 받았다. 긴장이 풀리자 대화에 농담을 종종 섞을 수 있게 됐다. 그 때마다 형은 다정하게 웃어줬다.
식사가 마무리 될 즈음에 나는 꼭 해야 하지만 하지 못했던 말을 가까스로 꺼냈다. 왜 번호를 줬어요? 우리 그 때 눈 마주친 것밖에…… 없지 않았나. 신나게 톡을 하고 밥까지 얻어먹은 주제에 꺼내기엔 너무 어이없는 질문이었나. 말을 하는 도중에서야 그런 생각이 들어 조금 자신 없게 말을 끝마쳤다. 형은 방금 건져올린 고기를 입 속으로 밀어넣으며 나를 봤다. 기분 나빠하는 얼굴은 아닌 것 같은데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그거야 당연히 마음에 들어서지.’
초조한 마음에 물이라도 마시자 싶어 컵에 물을 따르는데 태연한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손을 삐끗해 바지에 물을 대신 먹였다. 괜찮아? 형이 놀라 일어서려는 걸 만류하고 냅킨을 뽑아들었다. 좀 쪽팔린데 또 이상하게 좋아서 표정 관리가 안 됐다. 내 얼굴을 보고 커졌던 형의 눈이 다시 사르르 접혔다. 너 진짜 귀엽다.
사귀자는 말을 꺼낸 사람은 없었다. 근데 그 이후로 몇 번 형이 불러내서 나갔다. 전부 밥 약속이 아닌 술자리였다. 형과 나는 늘 맥주 두 병에 소주 한 병을 나누어 마셨다. 그렇게 마시면 난 딱 취하기 직전이 된다. 형은 취한 건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멀쩡해보이고. 그렇게 술자리를 끝내고 나와 밤거리를 산책하듯 걸었다. 몇 번째 만남이었을까. 열은 안 넘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어느 날은 술자리 이후에 형 집에 가게 됐다. 그렇게 형이랑 처음 자기도 했다. 가을의 중턱이었다. 이제 우리 사귀는 거겠지. 서로 말하지 않았어도 둘 다 똑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일 년 뒤에는 동거를 했다. 중간에 본가가 한 번 이사를 해서 통학 시간이 편도 두 시간이 되니 학교 다니기가 힘들어졌다. 자취방을 구한다는 말에 형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제안했다. 형 집으로 들어올래? 방 하나 남아. 그렇게 월세 절반을 내고 살게 됐다. 당연히 학생인 내 처지엔 과분한 집이라 집안일은 자연스레 내가 하게 됐다. 만류하는 형에게 나 그렇게 양심 없는 놈 아니라고 답하자 형은 웃었다. 야, 내 친구들은 나한테 양심 없대. 대학생 만난댔거든.
형은 스물여덟 나는 스물둘. 좀 차이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근데 형이 워낙 동안이라 자각은 안 됐다. 노트북으로 영화를 틀고 볼 때면 형은 꼭 내 몸을 끌어안고 시선만 화면을 뚫어져라 보곤 했다. 그럼 품 안에 있는 형이 얼마나 작은지 새삼 알게 됐다. 어떻게 이 사람이 내일모레 서른이지. 이상해. 솔직히 겉보기엔 형이라는 생각도 안 든다. 작고 귀여운 사람.
의외로 라이프 스타일이 맞는 편인지 우리 간의 큰 트러블은 없었다. 싸운 적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싸움의 대부분은 서로 지친 상태에서 나는 울컥하고 형은 한숨을 쉬는 식이었다. 늘 형이 먼저 사과를 해왔다. 내 잘못에도 형이 미안하다고 했다.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형은 그 말을 남기고 출근을 하고 나는 철없이 저녁 같이 먹어요 하고 문자를 보냈다. 양심 없이 형이 사주는 걸 얻어먹고 집에 돌아오면 그 날은 같이 침대를 썼다.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형은 금방 잠에 들었다. 그런 형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 후회가 밀려오곤 했다. 왜 그랬을까 하는. 근데 형은 하루가 지나면 싸운 게 꿈이라도 된 것 마냥 평소대로 돌아왔고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할 타이밍을 놓친다.
헤어지자고 말한 날 이후로 형은 일부러 나를 피해 늦게 들어오거나 일찍 들어왔다. 나를 보아도 내가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앉아 늘 노트북을 두드렸다. 바쁜 척은 아닌 것 같았다. 상업영화의 미술감독을 맡게 되었단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다만 하지 않아도 될 행동까지 하며 날 의도적으로 피하는 건 맞았다. 형에 대해선 내가 잘 안다.
안녕하세요. 인사팀입니다. 귀하는 지원하신 D 물산의 인턴모집에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문자를 읽는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 너무 기뻐서도 아니고 놀라서도 아니다. 그냥 타이밍이 거지 같은 건지 오히려 잘된 건지 알 수가 없었기에.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서 신청한 인턴에 덜컥 붙었다. 그러고보니 상황이 이렇게 되기 전까지는 자기소개서며 면접준비며 꽤 치열하게 하긴 했다. 형이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그래서 몰랐나. 형은 이런 거 잘 모른다면서도 자기소개서도 검토해주고 면접에 입고 갈 옷도 세트로 맞춰줬다. 마지막 선물이었을까. 심란한 마음으로 일단 방 구하는 어플을 깔았다. 나가랬으니 나가야지. 이왕이면 형이 없을 때 짐들을 챙겨 없던 사람인 것처럼 훌쩍 떠나고 싶었다. 형이 조금은 상실감을 느껴줄까 싶어서.
그런데 가끔 세상이 나한테만 장난치는 것 같을 때가 한번씩은 있다. 그게 지금이었다. 나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손톱을 물어뜯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해.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해. 이게 맞는 거야? 근데 방법이 없어. 눈이 뻐근해져왔다. 손바닥으로 눈두덩이를 꾹꾹 누르는데 도어락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형이 들어왔다. 거실에 떡하니 있는 나를 보고도 심드렁한 얼굴로 지나친다. 솔직히 상처받았다. 근데 지금은 그깟 상처에 슬퍼할 때가 아니었다.
“형.”
“…….”
형은 대답없이 몸을 돌렸다.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뜻으로 가만히 기다려주는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침만 꼴깍 삼키며 말이 없자 형이 어깨가 들썩일만큼 깊게 한숨을 쉬더니 내 앞으로 다가와 테이블 건너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부탁이 있는데요.”
“뭔데.”
“저 인턴 준비하던 거 기억나요?”
“응.”
갑자기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오냐는 듯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순순히 대답을 한다. 이미 말을 꺼낸 이상 빙빙 돌리기보다 직구로 꽂는 게 낫겠지 싶어 말을 쏟아냈다. 당연히 우리의 이별할 거라고 생각 못한 나는 학교와 집, 이제는 형만의 집인 이 오피스텔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의 회사를 지원했다. 인턴은 당장 내달부터 시작이다. 인턴이 끝나면 학교도 마저 다녀야 하고. 근데 문제는 지금이 학기가 시작한지 한달을 애매하게 넘긴 시점이라는 거다. 학교 근처 회사 근처에 당장 들어갈 방이 없었다. 가지고 있는 돈을 최대한으로 계산하고 교통편을 최대한 멀게 잡아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형의 집에서 나가면 회사를 다니는 동안 출퇴근 시간이 왕복 네 시간이라는 소리였다. 미친 상황이었다. 가능할 리가 없었다.
“돈은 낼테니까 졸업할 때까지만 살게 해달라고?”
내가 이해하게 맞니. 이 어린놈의 자식아. 딱 이 표정으로 형은 나를 쳐다봤다. 어이가 없다는 듯이. 형은 짜증스러운 숨을 뱉고 머리를 쓸어올리며 말했다.
“우리 헤어진 거 알고 있는 거지?”
“그냥 룸메이트라고 생각해주시면…….”
형은 시선을 돌렸다. 쪽팔리는 일이라는 걸 안다. 구질구질하다는 것도.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아직까지 이별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은 내 입장에서는 그 결정을 다시 재고해보라는 무언의 요구이기도 했다. 음…… 표정을 보아하니 형에게 먹혀들진 않은 것 같지만.
나는 형을 잘 안다. 형이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 나를 매섭게 내칠 리가 없다. 출퇴근도 출퇴근이지만 정이라는 것도 무시 못하잖아? 나랑 다시 몸 부대끼고 살면 사그라들었던 감정이 다시 샘솟을지 어떻게 알아? 내가 매달릴 건 이거밖에 없었다. 일석이조. 유일한 것치고 효과는 굉장한 방법이긴 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한 달 줄게.”
“네?”
“너 내가 왜 헤어지자고 한 건지 이유는 짐작이나 가니.”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형은 기대도 안 했다는 듯이 테이블에 올려두었던 가방과 폰을 주섬주섬 챙기며 일어섰다.
“내가 왜 헤어지자고 했는지 이유 생각해서 답안 작성해봐. 그럼 한 달 지나고도 같이 사는 거 고려해볼게.”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람? 대답 없이 형의 모습만 바라보자 형은 싫음 말고 하며 방으로 들어가려는 듯 등을 돌렸다. 황급히 일어나 형의 어깨를 잡았다. 형은 그대로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다 살짝 몸을 비틀어 내 손을 털어냈다. 우와. 이거 타격 좀 큰데.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형의 시선이 내 눈빛에 와닿는 게 보였다. 형은 미동도 없는 표정으로 내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까도 말했듯이 이건 최후이자 유일의 선택지다. 내게 거절할 수 있는 힘 같은 건 전혀 없었다. 형은 내 대답을 듣고도 한참이나 나를 바라봤다. 그리곤 갑자기 허탈하게 웃음을 터뜨린다.
“나도 참 어이없다. 그치.”
그렇지 않다고 말을 보태려는데 형이 내게서 한 발자국 멀어진다. 한숨을 쉬며 등을 돌려 들어가는 형을 보며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다시 동거가 시작됐다. 물론 예전과 같은 알콩달콩 사랑이 쏟아지는 동거는 당연히 아니다. 형은 그대론데 나만 눈치를 보기 시작한 상황이지. 당연하다. 어찌보면 나는 룸메이트 보다는 세입자에 가까웠으니. 거기다 굉장히 싸게 세를 들어온 세입자.
나는 형의 방에 들어가지 않고 형도 내 방에 들어오지 않는다. 거실에 누군가가 있으면 다른 하나는 방에 들어가거나 부엌에 있는 식탁에 앉아 일을 봤다. 집에서도 해야할 일이 많은 형이 불편하게 일하는 게 싫어 밖을 배회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없는 인맥을 끌어모아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했다. 새벽 늦게 들어가도 가끔은 형이 일하고 있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형은 도어락 소리에도 현관을 쳐다보지 않는다. 노트북을 할 때만 쓰는 안경을 쓰고 일에 집중하고 있다. 속이 쓰라렸지만 나도 바빠지면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버티고 견뎠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있는 나와 달리 형은 시간이 들쭉날쭉했다. 영화 작업만 시작했다하면 새벽에 나가 오후에 들어오거나 하루종일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허다했다. 우리가 사귀는 사이일 땐 형에게 일일이 보고를 받았다. 오늘은 자정 안에 들어가겠다. 오늘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아. 아침에나 들어가겠다. 기다리지 말고 자.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형을 기다릴 이유도 없었고 다음날 일곱 시에 일어나 출근할 준비를 해야했으니까.
남이 되는 과정. 확실히 무뎌지고 있는 것 같긴 했다. 인턴으로 출근한지 일주일만에 자각했다. 이렇게 닳기도 하는구나. 생각에 잠긴 동안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녹아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먹기 싫어? 바밤바 무시해?”
“네?”
“정신을 빼놓고 있네. 뭐 고민 있냐?”
“아뇨. 아닙니다.”
녹아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남은 걸 한 입에 넣고 막대를 근처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양요섭 대리님의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 포장지도 슥 빼어 같이. 점심식사를 마친 대다수의 사람들이 담배를 피울 때 양대리님과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첫날 담배를 피우러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 속에서 난감한 기색을 표하던 나를 끌고 온 게 양대리님이었다. 담배 안 하는구나. 나랑 아이스크림이나 먹자. 남들은 담타도 있는데 우리는 아타 좀 가지면 안 돼? 답이 없어도 혼자서 조잘조잘 잘 떠드는 양대리님에게서 받아든 첫 아이스크림은 메로나였다.
‘원래 담배 안 해?’
‘아, 끊었습니다.’
‘언제?’
‘……군대 다녀와서요.’
형이 담배 냄새를 싫어했다. 머리가 아프다고 찡그리는 표정이 보기 싫어 담배는 금방 끊을 수 있었다. 잠깐 아련해진 눈빛을 알아챘는지 양대리님이 픽 웃었다. 아픈 과거 들춰낸 건 아니지? 맞아도 어쩔 수 없어.
양대리님은 친화력이 좋았다. 그렇다고 허허실실한 건 아니었다. 자기가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에겐 확실히 퍼주는 스타일이랬다. ……본인 피셜로 그렇게 말했다. 아무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 카테고리에 내가 들어간 모양이다. 인턴 나부랭이에게 관심 없는 사람들과 달리 나를 챙기는 게 느껴졌다. 내 편 하나 있는 게 좋으면 좋았지 나쁠 일은 없다는 걸 알아서 입 다물고 얌전히 따랐다.
“바밤바 싫었냐고.”
“싫어하진 않고 많이 안 먹어봤어요.”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뭐 고민 있는 거면 말해. 나 그런 거 잘해.”
“뭘요?”
“연애 상담. 완전 고수야.”
“……아닙니다. 그런 거.”
“저녁이나 먹자.”
아니라는데 듣는 체도 안 하고 자리로 쏙 들어간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저녁을 같이 먹게 됐다. 순살 치킨을 시키고 생맥주를 한잔씩 시켰다. 강냉이를 집어먹는데 어쩐지 긴장이 풀려 넥타이를 풀어냈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일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몸의 힘이 쫙 빠진 느낌이 들어 괜히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서사 좀 읊어봐. 뭘 알아야 상담을 하지.”
“무슨 상담이요?”
“이거 상담비로 너한테서 뜯어먹는 건데 그렇게 모른 척 하면 너만 손해야.”
“이런 건 보통 사수가 사주는 거 아니에요?”
“난 보통 사수가 아니거든.”
웃는 얼굴이 얄밉지는 않아 웃음이 샜다. 장난스러운 눈빛이었지만 믿음이 가는 얼굴이라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얼마 전에 헤어졌는데 헤어진 이유를 모르겠어요. 없어보이게 매달려서 다시 동거하게 됐다거나 헤어진 이유를 찾아내는 게 과제라는 이야기는 안 했다. 한심해보일까봐.
“갑자기 헤어지자고 한 거야? 얼마나 사귀었는데?”
“오년이요.”
“오래 사귀었네. 그럼 갑자기가 아닐텐데. 전혀 낌새 없었어?”
“사실 제가 최근엔 좀 바빴어서 낌새가 있어도 몰랐던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었는데?”
그 질문에 어쩐지 곧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 때 명랑한 알바생이 테이블 가운데에 놓인 샐러드와 강냉이를 밀어내고 치킨을 올려두었다. 맥주 금방 갖다 드릴게요.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테이블에 시선을 고정한 채 생각했다. 형이 어떤 사람이냐고. 어떤 사람. 형은 나한테…….
“……야, 너 울어?”
코를 따라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별에 슬퍼하고 형의 냉대에 아파할 틈조차 없었다는 걸. 형이 어떤 사람이냐니. 말로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걸 어떻게 몇 마디 말로 표현할 수가 있겠어. 대리님과 알바생이 당황해하는 게 머리 위로도 느껴졌는데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울지 않으면 또 울지 못할 것 같아서. 모든 건 타이밍이니까. 내 울음도 타이밍에 맞게 터진 것뿐이다.
냅킨을 뽑아다 눈물을 닦고 있으니 대리님이 어이없게 웃는 게 느껴져 조금 민망했다. 다 울었으면 먹어. 포크를 집어들고 치킨을 먹기 시작했다. 잠시 정적이 흐르는 동안 코를 훌쩍이는 소리만 맴돌았다. 만취한 것도 아닌데 대뜸 울어본 건 처음인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 말 없이 먹기만 했다.
“나는 다 이해해. 원래 사람이 그래. 십년을 알고 지낸 사이보다 일주일 알고 지낸 사이가 편할 때도 있는 거고 그렇지.”
“그런가봐요.”
“많이 힘든가본데 다시 잡지 그래?”
“…….”
이미 끝난 사이에 헤어진 이유까지 알아내야 한다는 말을 해야 하는지 망설여졌다. 망설임을 읽어낸 얼굴에 의문만 가득해 결국 우물쭈물 털어놓았다. 실은 동거를 하고 있었는데요. 헤어지고 나서 바로 인턴 합격 문자가 와서요. 당장 방을 구할 수가 없어서 졸업할 때까지만 돈 내고 살면 안 되냐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조건이 있다고 우리가 헤어진 이유가 뭔 것 같냐고 알아오라고 했어요.
대리님의 얼굴에 황담함이 스쳤다. 그러다 곧이어 실례라는 걸 알아챘는지 목을 가다듬고 입에 묻은 맥주 거품을 닦아냈다. 팔짱을 끼고 테이블에 올려둔 대리님이 말을 고르는 듯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야, 근데 그러면 너한테 마음이 아예 떠난 건 아니지 않을까?”
“…….”
“싫어서 헤어지자고 한 거면 같이는 못 살지. 거기다 이유까지 알아오라고 한 거면 오히려…….”
“…….”
“음, 뭐. 아무튼 아예 싫어진 건 아닌 것 같은데. 근데 네 애인도 진짜 특이한 사람 같다.”
대리님은 하려던 말을 끊고 급하게 마무리 지었다. 남들이 보기엔 이상한 게 당연하지만 저 특이하다는 어감이 마냥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형이 이상한 사람은 아닌데. 그냥 형은 착해서 나를 내쫓지 못한 것일텐데. 이 상황에 그런 걸 일일이 꼬투리 잡으면 좀 그렇겠지 싶어 얌전히 치킨을 먹었다.
내가 계산하려고 했는데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대리님이 이미 계산을 끝냈단다. 문 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대리님께 왜 그랬냐 물으니 어이가 없단 듯 오히려 미간을 찡그린다. 우는 애한테 어떻게 얻어먹어. 그 말에 웃음이 터지니 눈을 가늘게 뜬다.
“너 일부러 울었냐? 안 내려고?”
“그런 거 아닙니다.”
“이제 들켰으니 다음부턴 못 써먹는다.”
“아닌데 진짜로.”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대리님과 톡을 계속 주고 받았다. 도어락을 치면서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자 ㅇㅇ 이라는 심플한 답이 돌아왔다. 참 신기한 분이야. 폰에서 시선을 떼고 집에 들어서는데 형의 신발이 보였다. 부엌에서 음료수라도 가져온 모양인지 머그컵을 들고 있는 형과 눈이 마주쳤다. 잠깐 어색한 공기가 흘렀지만 의외로 형이 먼저 말을 건넸다.
“……왔어?”
“네.”
“밥은 먹었고?”
“네.”
“……그래.”
컵을 들지 않은 다른 손으로 뒷목을 문지른다. 뭔가 할 말이 있어 머뭇거리는 모양새라 얌전히 신발만 벗고 형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형은 말을 뱉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거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하는 중이었는지 노트북 화면이 켜져있었다. 커피를 옆에 내려둔 형이 자리를 잡고 앉는 걸 보며 나도 내 방으로 향했다. 양대리님의 고민 상담이 꽤 효과가 있긴 한 모양이었다. 아예 마음이 떠난 건 아닐 거라는 말 때문인지 미묘하게 끊긴 대화가 썩 실망스럽진 않았던 것 같다. 양대리님한테 진짜 밥 한 번 사드려야겠다.
씻고 나오는데 형이 무선 이어폰을 끼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야, 안 돼. ……서운은 개뿔. 나 지금 영화 두 개 들어갔다니까? 바빠. 너랑 통화할 시간도 없어. 다음에. ……애냐? 그만 징징대. 넌 일 안 바빠? 일 좀 열심히 해. ……그리고 집에 같이 사는 사람 있어. ……그냥 그렇게 됐다니까? 끊는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는 척 하며 대화를 엿들었다. 누굴까. 생각나는 얼굴이 없었다. 이름도 떠오르지 않았다. 새삼 형의 지인들에 대해 아는 바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게 실감이 났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남자끼리 사귀는 건데 함부로 떠들고 다닐 수도 없지. 그냥 친한 동생으로 소개한 적은 몇 번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형은 친구랑 논다고 나를 뒷전으로 둔 적은 없던 것 같다. 일하느라 바빴지. 나는 친구들이랑 놀러도 가고 여행도 가고 할 거 다 했는데. 형은 그 나이 때는 원래 그런 거라며 늘 이해해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연애를 하는 동안 나는 어떤 상황에서든 손해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과연 형도 그랬을까? 방으로 향하며 형을 돌아봤다. 일에 몰두한 듯 찡그리고 있는 표정에선 아무 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내가 느끼는 상실감과 허망함. 후회와 그리움. 그리고 밀려드는 자책감. 형도 전부 느끼고 있는 걸까?
갑작스레 건네받은 청첩장에 쓰인 날짜를 보니 실소가 나왔다. 야, 누가 청첩장을 일주일 전에 돌려. 그러면서도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청첩장의 금빛 각인을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가을은 가을이구나. 고기를 집어먹으며 그 애가, 그러니까 내 전 여친이자 나랑 형을 이어준 장본인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다. 거기 뷔페 괜찮대. 밥 먹으러 와. 연출 경력을 찬찬히 쌓은 그 애는 작년에 단편영화를 하나 찍어 작은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 그 기세를 몰아 작년과 올해에 걸쳐서 찍은 독립영화 하나가 그 애를 주목할만한 신인감독 베스트 파이브에 이름을 올리게 해줬단다. 축하한다는 내 말에도 지나치게 덤덤한 얼굴로 그랬다. 더 해봐야 알지. 여기 반짝하고 사라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감독이든 배우든. 남편은 그 독립영화를 찍다 만난 배우라고 했다. 원래 연극이랑 뮤지컬만 하던 사람인데 어떻게 인연이 닿아서 영화를 찍게 됐다고.
“운명이란 게 있긴 한가봐.”
“왜?”
“전남친 앞에서 할 말이 아니긴 한데, 미안.”
“괜찮아. 우리가 무슨 그런 절절한 사이도 아니고.”
“그 사람을 만난 지 세 번도 안 돼서 이 사람이랑 결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신기하지?”
“…….”
“이러다 헤어지면 웃기겠다.”
뭐라고 대답할지 망설이는 사이에 먼저 자조적인 농담을 꺼내 나도 그냥 웃고 말았다. 잘 살아. 행복하게. 굉장히 미련이 철철 남은 전남친처럼 들려서 내뱉고 나서 잠깐 멈칫했는데 그 애는 그것보다 더 놀라운 화제를 꺼냈다.
“너 이감독님이랑 연락해?”
“어?”
“그분이 나 처음 일할 때 같은 팀도 아닌데 엄청 챙겨주셨거든. 초대하고 싶은데 연락 안 한지 좀 돼서 머릿 수 채우려고 부르는 것처럼 보일까봐 좀 그러네. 그 때 너 연락 안 해봤어?”
연락했지. 그래서 엄청 가까워졌고 할 거 다 하고 헤어졌지.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서 대답을 머뭇거리자 더 채근하지는 않는다. 혹시 연락 되면 전해줘.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차로 삼십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 형과 함께 형의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같은 집에서 나가는데 따로 움직이는 것도 웃긴 모양이라. 운전은 내가 하겠다고 했더니 별 말 없이 키를 넘겨줬다. 형의 몸에 맞춰있던 탓에 좌석이 많이 좁아 이리저리 맞추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백미러를 조절하며 창 밖을 내다보는 형을 흘끗 쳐다봤다. 말을 어떻게 꺼내야하나 한참 망설인 게 무색하게 형은 순순히 가겠다고 했다.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지만 형도 우리 만남의 다리를 놓아준 사람이 그 애라는 걸 알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형은 하품을 하며 좌석을 뒤로 살짝 젖혔다. 결혼식이 열한시였는데 형은 새벽 여섯시에 들어왔다. 어쩌다보니 일찍 깨어 티비를 보고 있던 내게 답지 않게 부탁도 했다. 미안한데 아홉시에 깨워주라. 꼭 옛날로 돌아간 듯한 대화에 나는 멍하니 있다가 형이 들어가고 나서야 닫힌 방문에 대고 그러겠다 대답했다. 상당히 피곤해보였다.
“좀 잘래요? 시간 여유 있으니까 차에서 좀 자다가 들어가도 되고.”
“아,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제가 깨워드릴게요. 형 많이 피곤해보여서 그래요.”
“아냐. 괜찮다니까.”
그렇게 말하고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돌려버린다. 말없이 앞만 보고 운전하는데 색색 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온다. 신호가 걸린 틈에 형을 돌아보니 고개를 거의 옆으로 꺾은 채로 잠이 들어있었다. 고개 아플 것 같은데. 신호가 언제 바뀔지 계속 흘깃대며 형이 깨지 않게 조심조심 고개를 돌려주었다. 깰 줄 알았는데 깨지도 않고 얌전히 고개만 떨어진다. 진짜 피곤하긴 했나보네.
얼마 안 가 식장에 도착했지만 아직 식까지는 사십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이십분만 더 자라고 냅두자 싶었다. 불편할까봐 조심조심 벨트도 풀어줬다. 벨트를 풀기 위해 가깝게 다가선 형에게 희미한 향수 냄새가 났다. 앞머리는 조금 길었고. 피부는 여전히 아기처럼 뽀얗고 깨끗하다. 속눈썹은 길고 콧대는 오똑했다. 거의 변한 게 없었다. 내가 아는 이기광이다. 몇 년을 가장 가까이에서 봐왔던, 이기광. 어쩐지 코끝이 찡해졌다. 애써 고개를 털며 밀려드는 감정들을 무시했다. 핸들을 붙잡고 몸을 기대 고개만 돌리고 그렇게 이십분동안 형만 쳐다봤다.
“이감독님! 오랜만이에요!”
“그러게요. 결혼 축하해요.”
“어떻게 잘 모시고 왔네?”
“응.”
신부대기실에서 친구들이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형과 들어섰다. 신이 나서 형부터 찾는 얼굴이 꼭 어릴 때 좋아하던 선생님을 다 커서 만난 제자 같았다. 다른 팀의 막내였으면 대화를 나눈 기억은 많이 없었을텐데 뭐가 그렇게 좋은지 그 애는 자꾸만 형에게 말을 붙였다. 제가 꼭 부르고 싶었거든요. 동운이랑 연락 계속 하고 지내셨구나. 다행이에요. 진짜.
“우리 남편이랑도 인사 하고 가. 너 보고 싶대.”
“네 남편이 날 어떻게 알아?”
“결혼 전에 연애 사정 다 까기로 서로 합의 봤거든. 당연히 결혼식까지 온 전남친은 네가 유일하니까 말했지.”
“야, 그걸 말했어? 남편 얼굴 어떻게 보라고.”
우리 사이에 사귀었다는 사실은 거의 농담거리에 가까웠는데 옆에 형의 놀란 얼굴을 보자 아차 싶었다. 이제까지 그냥 친구라고만 설명했지 사귀었다는 말은 안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당황한 것도 잠시 이제 그런 걸 설명하고 이해시킬 사이가 아니라는 사실이 차갑게 가슴에 박혀들었다. 그래서 의아해하는 형의 표정을 애써 무시하고 할 농담 안 할 농담을 다 쏟아냈다. 그러다 불쑥 그 애가 말했다.
“넌 결혼 언제 하려고?”
순간 당황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형을 봤다가 눈을 마주치고 급하게 눈을 돌렸다.
“나 아직 졸업도 안 했거든?”
“아, 맞다. 그러네. 너 승윤이 기억나?”
“채승윤? 학생회장했던?”
“어. 나 지난달에 걔 아들 돌잔치 갔었잖아. 거기다 나까지 결혼하니까 이 때가 결혼할 나이라고 생각하게 되네. 걔나 나나 좀 이른 건데.”
형 앞에서 하기엔 여러모로 불편한 얘기였다.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하나 머리를 굴리며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신부 의자 옆에 있는 조형 꽃잎을 만지작거리며 그 애가 웃었다.
“넌 꼭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면 좋겠다.”
“야, 결혼식에서 전남친한테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하냐.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다.”
“아니, 진심이야. 너 되게 좋은 애잖아.”
“근데 그렇게 좋은 애랑 왜 헤어졌냐?”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형을 생각하면 이 대화를 빨리 끝내고 싶은데 추억에 잠겨 내게 좋은 말을 해주려는 그 애에게 끝내자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최대한 장난스럽게 넘겨보려고 했다. 그 애는 핀잔과도 같은 물음에 픽 웃으며 입술을 비죽였다.
“설레지가 않으니까 그랬지. 난 설레지 않는 사람이랑 연애 못 해.”
“…….”
“……저기 밖에서 친구들이 들어오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그 불편한 대화를 끝낸 건 형이었다. 형 말대로 문을 기웃거리는 여자들 몇 명이 보인다. 들어가면 안 될 분위기라 망설이는 게 느껴져 얼른 뒤로 물러 잘하라는 말만 남기고 대기실을 나왔다
“둘이 사귀었어?”
“아, 말 안 했었나요.”
형이 먼저 말을 꺼낸 건 의외였다. 놀랐지만 모르는 척을 했다. 형은 응, 하더니 더 말이 없었다. 누구보다 헤어진 사이에 선을 지키고 있었으니 더 이야기를 꺼내는 게 선을 넘는 거라고 생각했겠지. 답답했다. 형, 그 선 하나 넘는다고 아무도 뭐라고 안 하거든요.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꾹 내리눌렀다. 그렇게 대화가 끊겼다.
그 애가 장담한대로 뷔페 음식들의 때깔은 정말 죽여줬다. 하지만 먹는 동안 나도 형도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어서 맛은 잘 느끼질 못했다. 사람들이 몇 번이나 왔다갔다 하는 걸 보니 맛이 있나보다 싶을 뿐이었지. 형은 두번째 접시에 담아온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깨작이다 포크를 내려놓았다. 나도 들고 있던 나이프를 두고 형과 눈을 맞췄다.
“너 더 먹을 거면 먹어.”
“아녜요. 다 먹었어요.”
“너 남편분 뵙는다며. 나 먼저 차에 가있을까?”
“아, 그냥 신혼여행 다녀와서 만나자고 하면 돼요. 어차피 사람 많아서 정신 없을텐데.”
“그래도 얼굴만이라도 비추고 와.”
결국 내미는 손에 차키를 쥐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을 갈아입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는 두 사람을 찾아내어 짧게 인사를 나눴다. 급하게 가봐야 한다는 내 말에 여행 끝나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까지 잡았다. 나도 남편될 사람이 궁금하긴 했으니 순순히 번호 교환을 하고 돌아섰다. 뷔페가 지하였던 터라 계단을 올라야 했다. 일층에는 또 사람들이 북적였다. 위에 뜬 전광판에는 이미 식이 끝난 그 애 부부를 제외한 세 쌍의 부부 이름을 띄우고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발 디딜 틈 하나 없는 곳을 비집고 나왔다. 웃는 사람들과 축복하는 사람들. 그 틈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이상하게 느껴졌다.
자고 있을 줄 알았던 형은 운전석에 앉아 통화를 하고 있었다. 운전석 근처에서 기웃대는 나를 발견했는지 폰을 붙잡은 채로 차에서 내렸다. 폰을 들지 않은 다른 손으로 폰을 톡톡 건드리며 주차장 구석으로 향한다. 그게 전화를 하고 오겠다는 뜻임을 알아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 탔다. 핸들을 잡고 깊게 한숨을 쉬었다. 기분이 이상하고 명치께가 답답하다. 체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인생에서 가족을 제외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꼽으라면 주저 않고 형과 그 애를 말할 수 있었다. 근데 왜 그 둘과 함께한 이 시간이 이토록 불편하게 느껴질까. 이러한 불편함에 이젠 익숙해져야 하는 걸까. 저 멀리서 형이 걸어오는 게 보인다. 저 사람이랑 멀어지는 게 당연해질 거라고? 이걸 감내해야 한다고?
“어디 아파? 안색 너무 안 좋은데.”
“……괜찮아요.”
차에 올라타자마자 형이 말을 걸어왔다. 괜찮다는 내 말에도 걱정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하더니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나가버린다. 어디 갔을지 뻔해서 더 속이 답답해졌다. 체한 게 맞다. 재킷을 벗어 뒷좌석에 두고 넥타이도 풀어냈다. 와이셔츠의 가장 윗단추로 풀어내고 숨을 몰아쉬었다. 토독. 토도독. 잠깐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 있는데 무언가 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가늘게 뜨고 확인하니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이내 비가 쏟아졌다. 미치겠네, 진짜. 얼른 차 문을 열고 나가 트렁크에서 장우산 하나를 꺼내들었다. 폰으로 지도를 켜 근처 약국을 검색하고 비를 피해 뛰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었다. 가까운 약국은 오 분 정도 걸어야 했다. 빗줄기가 더 세졌다.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어?”
한 손으로는 불투명한 비닐 봉투를,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를 가리며 뛰던 형의 앞에 뛰어들었다. 머리를 가린 게 무색하게 머리카락은 흠뻑 젖어있고 자켓에는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혀있다. 당장 끌어안고 싶었다. 춥고 연약해보이는 형을 끌어안고 온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형도 나도 그게 안 될 거라는 걸 안다.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를 믿고 저지르기에 간이 크지도 않았다. 하고 싶은 말들을 꾹꾹 눌러 삼키고 겨우 형과 차에 돌아왔다. 얼른 히터를 틀었다. 형은 젖은 옷을 뒷좌석에 던져두고 차에 두고 다니는 수건을 꺼내 머리를 탈탈 털었다. 형을 빤히 쳐다보자 시선이 느껴졌는지 나를 돌아본다.
“아, 너 이거 먹어. 소화제랑 활명수. 너 딱보니까 체한 것 같은데 이것 좀 먹고 속 풀리면 가자.”
“……모르겠어요.”
“모르긴 뭘. 너 체하면 맨날 그러던데.”
“형이랑 내가 왜 헤어져야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활명수의 병뚜껑이 열렸다. 그걸 내게 내밀어야 하나 잠깐 망설이던 형이 내게 병을 건네준다. 내가 잡으려 하지 않자 억지로 손까지 끌어다 쥐어준다. 그리고 앞을 보며 한숨을 쉰다.
“내가 바빴던 거, 그래서 형한테 신경 못 쓴 거 다 알아요. 근데 그걸 알아도 우리가 헤어질 이유가 뭔지는 도저히 모르겠어요.”
“…….”
“형도 마음 남아있는 거 맞죠? 안 그러면 같이 살자는 말에 그렇다고 할 리가 없잖아요. 내 말 틀렸어요?”
“넌 뭐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데. 헤어지자고 했을 때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인 거 너잖아.”
“그거야 그 때는 너무 놀라서…….”
“너 헤어지자는 말 듣고 그 말에 대해 먼저 묻고 나선 거 이번이 처음인 건 알아? 네가 정말 아니라고 느꼈으면 진작 말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
“그 때는 너무 놀라서 뭐라고 말 못 했다고? 그럼 내가 헤어진 이유가 뭐인 것 같냐고 물었을 때는 왜 가만히 있었어?”
형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면서도 동거는 계속 하겠다며 헤어진 이유를 알아오라고 하는 형이. 그런데 형도 마찬가지였던 거다. 형은 내가 이해가 가질 않았던 거다. 당시에 잡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별 말 없다가 갑자기 터뜨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당연했다. 카페인을 갑자기 들이킨 것처럼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형의 말 하나하나가 다 맞는 말이라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너도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줄 알았어. 이제와서 왜 그러냐고 하는 건…… 솔직히 좀 이해하기 힘들어.”
“……그 이유란 게 뭔데요? 전 모르겠어요.”
“…….”
왜 갑자기 그 애의 얼굴이 떠올랐을까. 설레지 않는 연애는 못 한다던 그 애의 말이. 어떤 한 사람이 잘못한 게 아닌 이상 장기연애의 끝은 대부분 그게 아닐까. 설레지 않고, 특별하지 않고, 지루해지는 그런 연애. 형의 입에서 너한테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는 그 말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 울고 말걸. 그럼에도 덜덜 떨리는 입술은 자꾸만 형을 몰아붙이는 말만 늘어놨다.
“내가 이거 못 맞추면 집 나가야 해요?”
“동운아.”
“형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제는 전애인 된 사람 계속 끼고 사는 게?”
“손동운, 그만해.”
“싫어요. 이유도 모르고 형이랑 이런 식으로 지내기 싫다고요.”
형은 화내는 법을 모르니까. 늘 어른스럽게 참고 넘기니까. 그만하라는 말도 그냥 이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뿐이지 내 발언을 진심으로 막는 건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형의 표정이 구겨졌다. 내게서 시선을 돌리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창 너머를 보며 입술을 깨문다. 한참을 말이 없던 형이 창문을 히터를 끄고 창문을 아주 조금 내렸다. 그 좁은 틈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고 빗방울이 튀었다. 형은 아무 말 없이 창문을 바라보다 무겁게 말을 꺼냈다.
“내가 다 참는 것처럼 느껴지지.”
“…….”
“내가 더 어른이라서 그러는 거 같지? 근데 아니야.”
“…….”
“널 좋아해서 노력한 거야.”
쿵.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말하는 건 더 이상 그러지 않을 거라고 선고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심장이 빨리 뛰었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하라는 말은 못한다. 이유를 알고 싶다고 우긴 건 나다. 내가 벌인 일은 이제 내가 책임져야 한다.
“동운아.”
“…….”
“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너 좋아했어.”
“…….”
“그게 전부야.”
“……근데 왜 헤어져요.”
손끝이 바들바들 떨린다 싶더니 결국 눈을 비집고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형은 침착한데 나만 운다. 아, 진짜 미치겠다. 그 때부터 오년이나 지났는데 변함없이 애새끼 같은 내 자신이 질린다. 형도 그럴까? 그래서 내가 이제 싫어진 걸까. 더 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 내가 지겨워진 걸까.
“집에 가자.”
“…….”
“약은 먹고.”
그렇게 말하고 좌석을 젖혀 팔짱을 끼고 눈을 감는다. 난 바보처럼 울기만 하다가 손에 들린 활명수를 들이켰다. 집에 가는 삼십분이 무거웠다. 약효가 하나도 없었다. 당장 토할 것 같았다. 어찌저찌 집에 도착은 했는데 주차장에 들어서려는 나를 만류하고 형이 비상등을 켜고 아파트 앞 상가건물 쪽에 차를 대라고 했다. 일이 생겨서 작업실로 가봐야 한다고 말은 하는데 이게 정말인지 나를 피하는 말인지 알 길이 없어 핸들을 꼭 쥐고 내리지 않으려고 했다. 입이 조금이라도 벌어지면 엉엉 대성통곡을 할 것 같아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꾹 이로 짓누르고 있었다. 형은 그런 모습을 보고 난감하다는 듯 눈을 굴리다 차에서 내렸다. 비는 거의 다 그쳤다.
“내가 택시타고 갈게. 가서 소화제 먹고 좀 쉬어.”
“…….”
“들어가.”
형이 앉아있던 자리엔 부스럭거리는 봉투만 남아있었다. 마음이 아프다. 찢어질 만큼.
“독하다, 걔도.”
“…….”
“음, 걔라고 하는 건 좀 그런가? 네 전애인도.”
“…….”
“근데 내가 연애 상담 많이 해봐서 아는데 걔 없으면 안 된다 울고불고 하는 것도 잠깐이긴 하더라.”
“…….”
“이제 가을인데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그러기 딱 좋잖아. 그러니까 너도 슬슬 접는 게 맞지 않을…… 야, 알았어. 알았어. 울지 마!”
차에서 온갖 신파 드라마를 다 찍고 있던 무렵 전화가 울렸다. 양대리님이었다. 야, 너 그 게임 한다고 하지 않았냐? 하지만 대답 대신 내가 울먹이자 기겁하며 나를 불러냈다. 술이나 사줄까. 묻는 말에 체해서 그건 좀 힘들겠다고 했더니 가지가지 한다는 표정으로 공원에 데리고 갔다. 나무의 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그네에 다 큰 청년 둘이 앉아 연애 상담을 하고 있었다. 접으라는 대리님의 말에 울컥 눈물이 차오르자 기겁을 하며 말을 철회한다. 대리님이 턱을 괴고 앉아 나를 바라보다 픽 웃었다.
“걔가 그렇게 좋냐?”
“……네.”
“근데 왜 등신 같이 굴었어.”
대리님에게 형이 했던 말까지 복사 붙여넣기처럼 옮겨줬다. 대리님은 형이 좋은 말로 돌려돌려 말한 걸 한 단어로 요약해 내게 직구로 던졌다. 등신. 차라리 형도 이렇게 시원하게 말해줬다면 나았을까? 아니, 그랬으면 지금의 우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형의 그런 점을 좋아했으니까. 주말에 사수를 불러내서 연애 상담이나 하고 말이야. 너 진짜 발랑 까졌어. 알아? 어느 새 신발을 벗고 그네에 올라탄 대리님이 앞뒤로 신나게 그네를 움직이며 말했다.
“상담도 아니지. 맨날 불러다 질질 짜고만 있어.”
조금 어휘가 거칠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내 잘못은 맞는데 몇 년을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고 갑자기 등신이니 질질 짠다느니 하는 말은 좀…… 그렇지 않나?
“내가 물어봐줘? 그 이유?”
“예?”
“앞장 서.”
갑자기 그네를 멈춘 대리님이 신발에 발을 욱여넣으며 내 팔을 잡아끈다. 내가 타고 온 차까지 끌고 온 대리님이 고개짓을 하며 문을 열지 않고 뭐하냐는 듯 나를 쳐다봤다. 그 기세에 눌려 문을 열긴 열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이게 대체 뭐하는 거예요, 대리님. 운전을 하면서 겨우겨우 그 말을 꺼내자 대리님은 오히려 인상을 쓰며 답했다. 이래야 끝나지 않겠냐.
“형 집에 없을 수도 있는데…… 아까 일 때문에 나갔거든요.”
“집에 들어왔겠지.”
“아니, 간 지 얼마 안 된 거라…….”
“일이 있는 게 아니라 부사수님이 너무 우셔서 핑계 댄 거 아닐까요?”
엘레베이터가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멈췄다. 대리님은 엘레베이터에서 내려 양옆으로 위치한 문을 번갈아보다가 나를 쳐다봤다. 어디냐는 뜻이겠지. 이걸 알려줘 말아 잠깐 고민하다가 오른쪽으로 몸을 틀어 문 앞에 다가섰다. 도어락을 하나하나 누르고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문고리를 확 열어제낀 양대리님이 불쑥 문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외친다.
“이기광!”
대리님이 그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라는 말 대신 닫히려는 문 안에 얼른 발을 끼워넣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쪽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현관에 선 형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대리님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설명을 요하는 눈빛에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형.
“이 집을 이렇게 와보네. 진짜 친구네 집 한번 오기 너무 힘들다.”
“야, 너 뭐야?”
“뭐긴 뭐야. 손동운이 말 안 해? 회사에서 알게 된 사수가 너무 착하고 친절해서 밥도 사주고 상담도 해준다고?”
“뭐?”
“아니, 형. 양대리님 어떻게…… 아세요?”
집에 사는 우리 둘만 어리둥절해서 굳어있고 정작 손님인 양대리님은 자연스럽게 집을 휘젓고 다닌다. 식탁에 놓인 정수기에서 야무지게 물 한 컵을 내려받은 양대리님이 의자를 하나 빼어앉고는 우리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뭐해, 안 앉고.
요약하자면 형과 양대리님은 고등학교 동창이고 형이 남자 좋아하는 사람인 건 진작 알아 내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했다. 당연히 누군지는 몰랐고. 나라 사랑 부사수 사랑이었던 대리님은 열린 마음으로 가르치며 친하게 지내려고 했던 인턴이 매일 죽상을 하고 다녀서 상담을 해준 거였는데 상황이 맞아 알아보니 둘이 연인인 걸 알았다는 이야기였다. 나도 형도 입을 떡 벌린 채 대리님이 하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말 안 한 이유? 간단하지. 너네 둘이 깨진 줄 알았으니까. 깨진 상태에서 나같이 애매하게 서로 엮인 지인 있으면 더 곤란한 거 알지? 그래서 숨긴 거야. 근데 둘이 다시 동거할 줄은 몰랐고.”
그렇게 말하며 대리님이 형을 흘겨봤다. 야, 너는 말로는 헤어지자고 해놓고 미련 있다는 티를 그렇게 내냐. 오렌지 주스를 쭉 들이키며 형에게 핀잔을 줬다. 미련이 있다는 티? 나만 몰랐어? 놀란 눈으로 형과 대리님을 번갈아보자 형이 대리님의 어깨를 퍽 소리가 나게 쳤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얜 똑똑하게 생겨서 은근 멍청하더라. 싫어서 헤어진 거면 들어와서 살겠다는 말에 그러라고 하겠냐? 물론 이기광이 좀 바보같다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한테 무르긴 한데 암만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않겠냐고.”
“…….”
“솔직히 난 함께 알고 지낸 세월이 있어서 이기광 편이긴 했는데…… 얘가 내 앞에서 자꾸 우니까 안쓰러워서 마음이 가더라.”
“자꾸 울어?”
민망해하며 시선을 피하던 형이 허리를 바짝 펴고 일어나 나를 바라봤다. 치킨집에서 형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펑펑 울었다고는 쪽팔려서 말을 못하겠어서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대리님은 우리 사이에 끼었던 게 어지간히 질렸던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숨기고 싶어하는 게 빤한 치부까지 들춰냈다.
“어. 너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니까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뚝뚝 흘리더라니까. 솔직히 그거 보고 좀 마음 고쳐먹긴 했지.”
“……어떻게요?”
“이 자식들 생각보다 진심이네.”
대리님이 고개를 한번 까딱였다.
“난 솔직히 너 별로 안 좋아했거든. 너랑 사귀고 나서 이기광이 약속도 안 잡아, 집에도 못 오게 해……. 난 완전 잡혀사는 줄 알았지.”
“야.”
“근데 이렇게 서로 좋아서 죽고 못 사는 사이인 줄은 몰랐다, 야.”
컵에 담긴 오렌지주스를 굴리며 대리님이 피식 웃었다. 상상 이상으로 민망하고 쪽팔려서 입 닫고 가만히 있었더니 대리님이 식탁 위에 애매하게 놓인 내 손과 형의 손을 끌어다 마주잡게 하고는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너네는 대화를 좀 해야 돼. 손 안에 잡힌 형의 손을 슬쩍 쓸어보았다. 대리님을 노려보던 형이 슬쩍 나를 바라봤다.
“무슨 이야기부터 할까. 손동운이 이기광 이야기에 울었다는 건 이미 했으니까 이기광이 손동운 때문에 이사 가려던 거 미뤘다는 이야기 할 차롄가?”
“야!”
“네가 헤어지고 나서도 거기에 뭐라고 말을 안 하길래 진짜로 헤어지려고 하고 집 내놓고 이사가려고 했단다. 지금보다 더 작고 작업실이랑 가까운 데로. 근데 그러면 너 학교랑 회사 다니기 힘들어지니까 그냥 계약 또 했대.”
더 말하지 말라고 막는 건 의미 없는 일이라 생각했는지 형은 귀가 빨개져서 고개를 떨군다. 갑작스레 쏟아진 정보가 거짓말인 것 같아서 눈만 깜빡이고 있자 턱을 괸 대리님이 눈짓한다. 그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니? 라고 말하는 것처럼. 근데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다.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나한테 정이 떨어진 게 헤어지자고 말한 이유가 아닐까 싶었으니까. 완전 정반대의 상황에 눈만 도로록 굴렸다. 그리고 겨우겨우 목소리를 짜냈다.
“그럼 형이 대체 헤어지자고 한 이유가 뭐예요?”
“…….”
“제가 뭐 잘못한 거 있어요?”
“그게 아니라…….”
형이 말끝을 흐린다. 표정을 보아하니 대리님은 대충이라도 알고 있는 듯 했고. 그 어른스러운 형이 헤어지자고 할 이유가 대체 뭐지? 손은 붙잡고 있다는 자각도 없는지 형은 나와 손을 꼭 잡은 채로 고개만 돌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대리님을 향해 턱짓을 한다. 잠깐 나가 있으란 뜻이란 걸 나도 알고 대리님도 알았다. 대리님은 편의점이라도 다녀오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일어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동시에 정적이 찾아왔다.
“어머니…… 반찬 주러 종종 오시는 거 알지?”
“우리 엄마요? 네, 그건 알죠.”
갑자기 엄마 이야기가 왜 나와? 형이 실없는 소리를 꺼내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나는 의문을 끌어안은 채로 잠자코 대답을 했다.
“저번에 왔을 때 그러시더라. 동운이 너 애인 없냐고.”
“네에?”
“모아둔 돈은 있으니까 일자리 잡자마자 결혼 했으면 좋겠는데 통 애인 소식이 없는 거 같다더라고.”
“엄마가요?”
“예전엔 여자친구가 끊이질 않았는데 최근에선 누구 사귄단 소릴 못 들은 거 같다셔서…….”
형이 난감한 듯 눈을 굴렸다. 더 말해도 되나. 어디까지 말해야 하나. 이런 걸 고민하는 것처럼. 나는 상상도 못한 타이밍에 튀어나온 엄마의 존재에 천천히 대화를 곱씹으며 형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너 남자랑 사귀어본 건 내가 처음이라며.”
“……그쵸.”
“내가 괜히 너 데려다가…… 네 앞길 망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그게 대체 무슨 소리예요?!”
너무 어이가 없어 의자가 뒤로 발랑 넘어갈만큼 힘을 주고 일어났다. 목까지 시뻘개진 형이 나를 올려다본다. 나름 합리적인 결단이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민망하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지금 결혼 걱정하는 우리 엄마 때문에 내가 결혼도 못할까봐 나랑 헤어지자고 마음 먹었다는 거야? 내 얼굴이 심하게 황당해보이긴 했는지 형 역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를 바라봤다.
“근데 네가 헤어지자는 말에도 별 말 없이 받아들이길래 나는 너야말로 무슨 헤어지자는 말 기다린 줄 알았거든?”
“아니, 너무 놀라서 그랬죠. 형은 항상 나한테 잘해주고 다정했는데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면 나는 당연히 내가 잘못한 게 있는데 기억을 못하는 건 줄 아니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해도 그러려니 받아들이니까 진짜 집만 필요한 줄 알았어, 난.”
“아, 미치겠다. 형 엄마 말 그렇게 새겨들을 필요 없어요. 엄만 내가 고딩 때부터 일찍 결혼하라고 한 사람인데.”
그냥 엄마의 입버릇 같은 거였다. 나도 처음엔 진지하게 들었다가 십년이 넘도록 들어와서 이제는 심드렁해진. 그렇다고 엄마가 진지하게 내 결혼을 위해 맞선을 준비하거나 한 적도 없다. 정말 별 거 아닌 이야기였는데 형에게는 당사자인 나보다 더 진지하게 와닿는 이야기였던 거다. 너네는 대화를 좀 해야 돼. 자리에 없는 양대리님이 옳았다. 맥이 풀림과 동시에 뚱한 표정으로 눈치를 보는 눈 앞의 형이 좀 귀여워졌다. 지금 끌어안으면 안 되겠지. 실실 입꼬리가 올라가려고 한다. 그걸 눈치 챈 형이 눈을 가늘게 뜬다.
“너 결혼할 생각 없어? 나야 가족들이 다 아는 사실인데 넌 아니니까 앞으로 말 나올 수밖에 없을걸.”
“결혼할 생각은 당연히 있죠.”
“…….”
그것 보라는 듯 입술을 비죽이는 모양새에 나도 모르게 자리를 옮겨 슬쩍 다가갔다.
“근데 한국에선 못 하고.”
“뭐?”
“에이, 알아들었으면서.”
형의 팔을 끌어다 확 잡아당겨 품에 안았다. 야, 잠깐만. 어딜 허락도 없이. 몸을 버둥거리는 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지만 모른 척 했다. 너무 그리웠으니까. 하루에도 수십 번 안고 싶은 걸 꾹 참아왔다. 형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듯 얼굴을 파묻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형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 이상의 반항은 없었다. 그게 뭘 의미하는 건지 알아 형의 뒷목을 한손으로 감싸안고 몸을 떨어트렸다. 형이 나를 올려다보다 눈을 내리깔았다. 형의 입가로 천천히 고개를 가져다대려는 순간.
“놀고 있네. 야, 안 떨어져?”
……양대리님이다. 맥주와 과자가 잔뜩 들어있는 봉투를 손목에 걸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우리 둘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다. 형이 나를 홱 밀었다.
“당장 한 시간 전만 해도 울고 불고 난리를 치더니…….”
쯧쯧. 혀를 차며 대리님이 우리 둘 사이를 가르고 봉투에서 맥주며 과자며 척척 꺼내놓기 시작한다. 입으로 볼멘소리가 쉴 틈 없이 나온다.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너네 둘 사이에 그렇게 껴서 고통 받았냐. 한 놈은 말만 하면 울어 한 놈은 말만 하면 우울해져. 그렇다고 절친에 후배인데 안 들어줄 수도 없고. 이렇게 붙여놓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걸 괜히 나만 고생했어. 응.
“아, 말 진짜 많네. 너 도어락은 어떻게 풀고 들어왔어?”
“아까 손동운이 가리지도 않고 치던데? 91266330이 무슨 뜻이냐?”
“그거 저희 처음 사귀기로 한…….”
“됐어. 말하지 마. 말 안 해도 짜증난다, 벌써.”
진저리가 난다는 듯 으으 소리를 내며 양대리님이 맥주 하나를 땄다. 형과 내가 선 채로 양대리님을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자 짜증스럽게 고개를 모로 꺾는다. 뭘 봐. 안 마셔? 그제야 허락을 맡은 아이들처럼 의자를 빼고 앉았다.
근데요, 대리님. 뭐. 형도 아직 마음 남아있는 거 알았으면서 아까 저한테 접고 다른 사람 만나보라고 했어요? 뭐? 진짜? 니네가 하도 양옆에서 서라운드로 징징대니까 그럴 거면 헤어지라고 한 거지. 근데 이제 보니까 너네는 그냥 평생 너네끼리 지지고 볶고 다 하면서 사는 게 낫겠다. 둘이 아주 똑같아. 야, 근데 이기광 나 이제 너네 집 자주 와도 되지? 손동운 때문에 내 아지트 오지도 못하고. 여기가 왜 네 아지트야. 손동운 들어오기 전엔 내가 거의 살다시피 했으니까 아지트지. 고등학교 때부터 네 집이 내 집이고 내 집도 내 집이었는데. 너 진짜 눈치 없다. 몰랐냐? 너 쫓아내려고 손동운한테 같이 살자고 한 거야. 헐. 형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듣는 저는 뭐가 돼요…….
우리가 헤어지는 이유에 대하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