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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와 낙엽수의 어떤 역학관계

 허위의 녹음이 벗겨지고, 밑천 까지는 계절이 왔다. 풍족한 햇살 밑에서는 다 같은 녹색이다가, 볕이 결핍되면 그제야 붉어지든 노래지든 바래지든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한결같은 푸름을 유지하고 있는 이파리들이 있었다. 그 녹빛 밑에만 서면 나는 별수없이 초라해지곤 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은, 점점 간절기가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민낯의 계절은 길어봐야 좋을 게 없다. 과정은 경시되고 극단의 결과만이 중시되는 모양새가 계절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게 환영할만한 현상이라고는 못 하겠지만 어쨌거나 나에게는 그랬다.

 

 안다. 이건 다 내가 뒤틀리고 꼬여버린 인간인 탓이다. 이게 다 그 시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넘어와버렸기 때문이겠지.

 

 그러니까 이제는, 더 미뤄둘 수 없는 일이었다. 더이상 그럴 명분도 없었고. 해서 입사 이래 아주 긴 휴가를 내버렸다.

 

 

 

 상록수와 낙엽수의 어떤 역학관계

 

 w. 기작소

 

 양요섭 X 이기광

 

 

 

 

 평일 두시경의 고속도로는 아주 뻥뻥 뚫렸다. 이렇게 마음놓고 악셀을 밟아본 게 얼마만인지 모를 정도로. 회사와 집이 같은 색 노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탓에 뽑아놓고도 자주 타지 않던 차라서 그런 말이 살짝 민망하긴 했지만. 여튼간에 13년만에 향하는 고향길은 더 빠르고 효율적인 루트로 재정비가 된지 오래였다. 나라가 관여해야 고쳐지는 길조차도 이렇게나 변해버렸는데 그 동네는 또 얼마나 몰라보게 바뀌어 버렸을까. 검색하니까 주택들이 모조리 식당이나 카페화 되어 여행객들의 SNS 성지가 되어버렸던데. 평균연령 55세를 자랑하던 그 노후된 동네가 젊은이들의 핫플이 되어버리다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수도권 북부 외곽에 위치한 그 동네에는 중턱 둘레를 도는데 한시간도 안 걸리는 작은 산 하나가 있었다. 갖가지 낙엽수들이 한가득 살고있는 그 산은 여름이 지나고 잎들이 물들면 그렇게 시끄러울 수가 없었다. 어르신들은 화려하게 단풍든 그 광경이 그렇게도 장관일 수가 없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감탄하셨지만, 나에게는 그게 마치 색소들끼리 치고박는 무질서의 잡음처럼 들렸다. 옥신각신하다 멍들어버린 뻘겋고 누런 맨살이 뭐가 그리 자랑이라고 당당히 내놓는건지. 그놈의 단풍들만 보면 귓가에 이명들이 번져서 나는 제발 좀 닥쳐달라고 귀를 틀어막아버리곤 했다. 혀도 없는 잎이 무슨 죄가 있다고.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이게 다 내 집구석 때문이었다. 음소거도 못하는 귀 찢어지는 공간. 지치지도 않는지 그 집 사람들은 눈만 뜨면 싸워댔다. 부부 한 쌍과 슬하의 사형제가 거실을 제한 방 두칸짜리 집에서 지지고볶고 살려니 어느정도는 필연적인 소음이긴 했지만 해도해도 너무했다. 부부의 두 입은 쌍방 따발총이었고, 그 전쟁터에서 멘탈 터지는 동생들도 하루가 멀다하고 밀고 차고 뺏으면서 악을 써댔으니 내가 공허하리만치 적막한 곳을 찾아가는 것은 후천적으로 새겨진 본능이었다. 그 본능 따라 다다른 곳이 또 그 산이었다는게 코미디긴 했지만.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던데 가을의 그 산은 어떻게된게 밖에서보면 아비규환이요 속에 들어가보면 묵묵한 우주인건지 불가사의가 따로없었다. 물론 새벽 시간 한정이었지만. 여튼, 언젠가부터 나는 그 산 중턱의 둘레길을 한두바퀴 뛰는 것으로 하루를 여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꼭두새벽부터 기상 전쟁에 귓청이 뜯어지면 하루종일 머리가 지끈거려 될 일도 안 되고 그랬으니까.

 

 그 둘레길을 나 혼자 쓰는거였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나같은 애가 한명 더 있었다. 나는 이어플러그, 개는 이어폰. 귓구멍에 꽂아넣은 건 달랐지만 체구도, 보폭도, 뛰는 속도도 고만고만 비슷해서 자주 눈에 걸렸다. 처음에는 그게 은근히 거슬렸는데 그것도 오래 못 갔다. 몇 번 걔가 눈물바람으로 뛰고 있는 걸 봐버렸으니까.

 

 우리 집을 포함한 그 산 뒷편 집들은 볕이 잘 들지 않아 집값이 쌌는데, 걔는 그 산의 앞편 비싸고 양지바른 집들 중 가장 경관이 좋은 삼층짜리 양옥집에 살았다. 그 집은 한 쌍의 노부부와 세 쌍의 아들부부가 분가하지 않고 함께 모여사는 보기드문 대가족 집이여서 근방에서는 꽤 유명한 집이기도 했다. 걔는 그 집의 유일한 외손자였다. 원래부터 그 집에서 쭉 살았던 건 아니고, 여덟 살에 그 집의 막내딸이던 어머니를 여읜 뒤 아버지가 그 집 대문앞에 떨궈놓고 사라졌단다.

 

 그 집에는 억장이 무너지는 사건으로, 남말하기 좋아하는 제삼자들은 역시 반대하는 결혼은 하는거 아니라는 증명만 굳히며 맞아맞아 하고 박수만 짝 쳐댈 뿐이었다. 그런 걸 듣고 또 역시 침묵은 금이라는 증명만 굳힌 나도 참 어지간했다.

 

 

 

 삼층짜리 양옥집 외손자랑 친해진 건 의외로 사소한 계기였다. 앞에서 한참 달리던 그 녀석의 이어폰이 나뭇가지에 걸리면서 엉켜버린 걸 내가 풀어주면서였다. 그때 재빠르게 눈물을 훔쳐내던 그 손길을 나는 아직도 선연하게 기억한다. 무슨 감정의 눈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흐트러진 감정을 정돈해내는 속도가 기가 막히게 능숙해 보여서. 쓸데없이 말 많은 가족들의 과도한 정보량에 넌덜머리나 남에게 별 관심 없이 살던 내가 처음으로 타인애게 호기심이 생겼던 순간이었으니까.

 

 -너는 손이 야무지구나? 나는 이런거 풀려면 한참 걸리는데. 고마워. 내 이름은 이기광이야. 너는 이름이 뭐야?

 

 손이 야무진 건 사실이었다. 동생들이 육탄전을 벌이다가 옷이나 단추 같은게 튿어지면 수선해주는 담당은 늘 나였을 정도로. 그 때문에 엄마는 터무니없이 염치없는 꿈을 꾸셨다. 나보고 의사가 되란다. 물론 비단 손재주 때문만은 아니고 형제들 중에 건질만한 머리가 나밖에 없기는 했다. 아빠가 수틀릴 때 날 혼외자로 몰아 엄마를 몰아세우는 구실이 되기도 했을 만큼. 그치만 엄마는 너무 양심이 없었다. 제대로된 책상도 없이 한 방에 형제 넷을 한꺼번에 우겨넣고 무슨 공부를 하라는 건지. 과정은 대충 뭉뚱그리고 결과만 낼름 날로 먹으려는 심보가 너무 괘씸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순순히 그러겠다 대답했다. 따로 세워둔 목표도 없었고 무엇보다 그래야 더 말이 길어지지 않았으니까.

 

 그보다 그 녀석의 이름은 이기광이었다. 그새 눈물기 싹 거두고 힘차게 웃으며 제 이름을 말하는 그 얼굴이 어슴푸레한 새벽에도 얼마나 눈부셨는지 모른다. 여름으로 다시 회귀했나. 이렇게나 일찍 동이 터버리게. 싶었을 만큼. 그 앞에 돌려주는 양요섭이라는 이름은 또 왜 그렇게 열없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다음날 나는 집구석을 뒤져 찾은 조그마한 집게 하나를 주먹에 꼭 쥐고 좀 이르게 나왔다. 그런데도 부지런한 이기광은 나보다 먼저 와 달리고 있었다.

 

 -기광아!

 

 열 보 정도 앞선 뒷통수에 대고 전날 처음 들은 이름을 외치는게 의외로 너무 자연스럽게 돼서 그날은 나조차도 놀랐었다. 이어폰을 꽂은 귀로도 용케 그 소리를 들어준 이기광은 뒤돌아 멈춰서서 그저 가만히 나를 기다려줄 뿐이었다. 그 앞에 서서 나는 잠깐동안 그 눈을 살폈다. 싹 말라 보송한 눈이었다. 그 후로도 쭉, 그 눈에선 다시는 습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쏭달쏭한 마음으로 나는 이기광의 남아도는 이어폰 줄을 갈무리해서 바지 주머니에 집게로 고정시켜줬다.

 

 -줄 너무 긴거 쓴다.

 

 뭐, 그런 식으로 가까워진 거다.

 

 

 

 -너는 왜 새벽부터 뛰러 나와?

 -체력관리 못해서 아프면 어른들한테 민폐잖아.

 -성실하네.

 -너는 왜 귀를 막고 뛰었어?

 -조용하고 싶어서.

 -너 그럼 우리집에 올래? 거기 완전 절간인데.

 

 뿐만 아니라 이런 식으로 나는 삼층짜리 양옥집까지 구경해볼 수 있었다.

 

 이기광의 말대로 거긴 우리집보다 식구는 더 많은데 사람들이 진짜로 딱 필요한 말만 했다. 묵중한 할아버지와 근엄한 할머니, 그리고 그걸 빼다박은 이기광의 외삼촌들까진 그렇다 쳐도 숙모들까지 말이 없는게 신기했다. 서재를 두고도 온 집안을 꽉 채울 만큼 책이 많은 학자 할아버지 덕에 독서가 가족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향유하는 취미라는 것도 신기했다. 그래서 그 집엔 안정이라는 게 있었다. 어떻게 이런 집이 있을 수가 있지 주눅이 들면서도 그 집에 가면 귀가 쓰라리지 않아서 자꾸만 찾게 되었다. 심지어 옥상도 넓어서 날 선선한 날이면 볕 받으면서 공부하는 별미도 맛볼 수 있는 집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내집 돌아가는 사정에 어두워지고 있었다.

 

 처음으로 그 옥상에서 함께 공부하던 날, 이기광은 몇 개 가져가라며 할아버지의 안 쓰는 문진들을 죄 모아온 상자를 내밀었다.

 

 -이런거 막 줘도 되냐.

 -여기서 문제집 펼쳐놓고 있을거면 필요할 걸? 허락 받아왔으니 걱정 말고 골라.

 

 진짜로 유용하긴 했었다. 시도때도없이 나부끼는 바람을 버텨내기엔 책장은 너무 얇고 가벼웠으니까.

 

 -그럼 니가 하나만 골라줘.

 

 다 같은 문진인데 아무거나 막 꺼내지 왜 난 굳이 그걸 골라달라고 했을까. 더 말도 안 되는 건 이기광은 그걸 무려 삼십 분을 넘게 고민하더라는 거다. 그리고 마침내 내게 건너온 문진은 옥으로 만든 둥그런 문진이었다. 청아하고 투명하게 빛나는 게 딱 이기광스럽다고 여기면서 나는 그 문진을 꼬옥 감싸쥐었다. 묵직한 것이 꼭 가슴까지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30분 정도 늦음]

 

 어느 날은 약속된 시간에 옥상에 올라갔는데 이기광은 없고 이런 쪽지만 달랑 붙어있었다. 늦음이라는 글씨 뒤에는 생전 처음 보는 이모티콘도 그려져 있었는데 그 모양이 정말 임팩트가 세서 한동안 광대가 얼얼했었다.

 

 디귿 두 개는 두 눈 삼아 엎어놓고 한 개는 입 삼아 눕혀놓은 모양새로 햇살처럼 웃고 있는 이모티콘. 어떻게 얜 디귿 세 개만 가지고 자화상을 그려내지?

 

 내 생에 가장 빠르게 흘러갔던 삼십 분이었다. 문제집 펼쳐놓고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그 말도 안 되는 이모티콘만 줄창 그려넣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으니까. 뒤늦게 올라와 그 페이지를 보고 경악하던 이기광 표정도 참 귀여웠다.

 

 -이게 다 뭐야?!!

 -너 나중에 이런 거 개발하는 걸로 먹고살아도 되겠다. 대박 귀여워.

 -취향 참 희안해.

 

 머리털 나고 본 이모티콘 중에 가장 엉망진창이면서 매력적인 이모티콘을 제 손으로 창조해놓고도 이기광은 전혀 나를 이해하지 못 하는 듯 했다.

 

 -나 여기다가 이거 새겨도 돼?

 

 그런 걔 앞에서 나는 속없이 2절까지 하고야 말았다.

 

 

 

 그간 너무 집과 격조했나보다. 보다못한 집이 내 뒷덜미를 잡아끌어 무릎꿇린 것이다.

 

 아버지가 기어이 경찰서 신세까지 지게 되었단다.

 

 온몸에 피가 싹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청천벽력은 아니었다. 그냥 올 것이 온 것이었음에도 그랬다. 없는 형편에 지독하게 싸워대면서도 동생들 줄줄이 낳아놓은것까진 어떻게 어떻게 받아들여 살고 있었지만, 그 고성 속에서 이따금씩 걸러지지 않고 귀에 달라붙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판돈이니 보증이니 손을 떼니 자르니 하는. 차라리 천치였으면 좋았으련만 어린 귀에도 그게 무얼 말하는지 너무 잘 알아져서 처음엔 한동안 아무것도 못 삼키고 들어가는 족족 게워내기도 했었다. 그런 집구석에서 엄마는 의사 엄마를 꿈꿨고 동생들은 너무도 철이 없었고 아빠는 너무도 나약했다. 목표가 없었던 게 아니었다. 어떤 계획도 세울 수가 없었다. 무얼 꿈꾸더라도 망쳐질 미래가 먼저 보였다. 인생은 나만 잘 한다고 잘 풀리는게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내 가족들은 너무 경거망동했고 그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평생을 조마조마하며 도미노 쌓을 내 삶이 진작부터 허망했다.

 

 아빠가 밖에서 뭘 하고 다니는건지 알았어도,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같은 성인인 엄마도 못 끊어주는걸 내가 무슨 수로. 언젠가 크게 한 번 터질거라 끊임없이 대비태세를 갖추면서도 그 불안과 긴장과 귀가 터질듯한 이명을 끌어안고는 도무지 제정신으로 살아지지가 않아서 나도 모르게 밖으로 나돌아졌던 건데, 그 곳에서 이기광을 맞닥뜨리고 나는 진짜로 그런 것들을 까먹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리석게도. 덕분에 기껏 갖춰놨던 대비책이 다 도루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실의 뒤에 따라온 건, 방금의 것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낙망이었다. XX경찰서라고 했다. 그 곳이라면, 이기광의 큰외삼촌이 계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직장이었다.

 

 어쩐지 그 근래 삶이 나한테 유난히 관대하다 했다.

 

 

 

 도착한 곳에서 내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광경은, 구석 소파에서 짜장면을 그릇째 들고 게걸스레 먹어치우고 있는 아버지였다. 요섭이 왔니? 경찰복 단정하게 차려입은 이기광 외삼촌 목소리는 뭐가 또 그렇게 자상해서 나를 더 변변찮게 만드는건지.

 

 오면서 최악의 최악까지 각오했건 게 무색하게, 그저 단순한 폭행 사건이었다고 한다. 같이 싸운 아저씨들과는 어찌저찌 합의 잘 해서 다들 돌아갔고 아버지만 저기 덩그러니 남겨졌다고.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옛 말 틀린 거 하나 없었다.

 

 잔뜩 엉켜 산발이 된 머리, 멍과 상처와 먼지로 떡이 된 얼굴, 뜯겨지고 찢어져 넝마가 된 셔츠.

 

 여기 착실하게 일하는 또래 아저씨들을 보면서도 느끼는게 없는지 당사자는 거기서 시켜준 짜장면을 너무도 맛나게 잡수시고 계셨는데, 수치와 자괴는 모조리 다 내 몫이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 뒤따라오는 건 양심의 통증이었다. 경찰서에선 그저 중년 남성들간 술김의 개싸움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나는 모르지 않았다. 그 아저씨들은 아빠랑 같이 도박하는 아저씨들이었다. 그러니까 합의가 그렇게 일사천리였지. 어차피 지질한 치부를 들킬대로 들켜버린 마당에 은폐할 건 또 뭔가 싶기도 하고, 며칠간 괴로워하다 무슨 패기였는지 결국 나는 경찰서를 다시 찾아가고 말았다.

 

 -어쩌지, 계장님 오늘 쉬시는 날인데.

 

 기껏 부린 패기 흔들리게 쉬는 날이실 건 또 뭐람. 아예 망설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나는 한번 굳힌 결심은 어지간해선 못 되돌리는 인간이었다. 이기광의 주변 사람들에게만큼은 떳떳하고 싶었고, 비록 피가 섞인 사람이긴 했지만 그 인간과 나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보여야 했다. 유야무야 넘어가는 마음으로는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살거고 피 떨어지는 자존심 가지고 평생을 살고 싶지도 않았다.

 

 처음으로 이기광 아닌 다른 사람을 목적으로 찾은 그 집 대문 앞에 서서 한동안 그저 서있기만 했다. 그러다가 초인종을 눌렀다. 드릴 말씀이 있어 왔다는 나를 아저씨는 조용히 듣는 귀 없는 옥상으로 이끌었다.

 

 그날 나는 사실대로 내가 아는 것을 다 털어놔버렸다. 그 아저씨들 사실 도박하는 아저씨들이고 아버지도 다르지 않아요. 아저씨는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그때 아저씨는 그저 내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고는 알고 있었다 하시면서 지금까지는 벌금형으로 끝나겠지만 꼬리가 길어지고 뒤에 있는 거물들과 잘못 엮이면 가장 뒤집어쓰기 좋은 쪽은 아버지일거라며 이제 그만 손을 터시는게 좋을 것 같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다 알면서 눈감아준 거였다. 그동안 여기 뻔질나게 드나들며 제 조카와 가까이 지내는 나를 보며 아저씨는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를 어떤 눈으로 봤을까. 제 아버지는 점점 화마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그 아들은 천지분간을 못 하네. 하며 얼마나 애잔하게 혀를 찼을까.

 

 -왜 봐줘요? 아저씨가 뭔데 눈감아줘요? 법이 그래도 된다고 했어요?

 

 언제부터 내가 그렇게 정의로운 인간이었다고, 꼴에 같잖은 허세를 부리는 내게 아저씨는 차분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요섭이는 이렇게 용기있고 멋진데, 아저씨는 아직 한참 모자란가부다. 아들이 우리 조카 친구라는데, 팔이 안으로 굽더구나. 근데 아저씨 힘도 여기까지일거야. 더 늦기 전에 아버지만큼은 발 빼셔야 돼.

 

 그러고선 내 어깨를 툭툭 두들기고는 먼저 뒤돌아 내려가는 뒷모습이 얼마나 돌게 근사해보였는지 모르겠다. 진짜 어른이라는게 존재하기는 하는 거였구나. 모든 어른들이 다 내 부모님 같은 건 아니구나. 조카 생각해서 본분조차 잊어주는 아저씨 앞에서 내 꼬이디 꼬인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보인 게 죽게 부끄러워졌다. 그러면서 화가 났다.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거지. 왜 이렇게밖에 못 살지.

 

 등신처럼 질질 짜면서 계단을 내려오는데, 막 올라오던 이기광과 마주쳤다. 쪽팔려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 반, 얘랑도 이젠 마지막이겠구나 하며 애틋한 마음 반. 두 가지 마음이 양쪽 눈에서 쉴새없이 쏟아지는데, 그런 내게로 고즈넉하고 온화한 품이 다가와 등을 감쌌다. 그래. 쪽팔려도 마지막이니까. 언제 또 여기서 울어보겠어. 원없이 울고 미련 없이 뒤돌아서자. 그 조그마한 품을 내 눈물로 옴팡 적시면서 나는 속으로 고하고 또 고했다. 셀 수도 없는 작별인사들을.

 

 

 

 다 울고 곧장 집으로 온 나는 신발 벗기가 무섭게 온 가족들 보는 앞에서 보란듯이 식칼을 꺼내들고 두 엄지를 제외한 여덟 손가락을 마디 따라 망설임 없이 그어버렸다. 아버지 저 이제 의대 못 가요. 누구 때문에 방금 포기했어요. 그러니까 아버지도 저 때문에 뭐 하나는 포기하세요. 한 번만 더 노름판 기웃거리면, 이거 여기로 가요. 피묻은 칼날을 목 부근으로 집어올리며 내가 악을 쓰니까 그제야 얼어붙기라도 한 듯 조용해지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얼마나 허탈했었나.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엄마는 며칠간 말이 없다가 아버지를 데리고 홀연히 사라지셨다. 고작 칼질 두번으로 고쳐질 중독이 아니란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자식새끼 장기를 팔아넘기는 한이 있어도 못 끊는게 중독이라고 했다. 나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아버지와 싸워온 엄마도 물론 알고 있었겠지. 그러나 제대로 알아버리면 완전히 본인 일이 되어버리고 마니까 미래의 의사 엄마라는 아편 같은거라도 주워드셔야 사실 수 있었을 거다.

 

 [아빠는 엄마가 선택한 사람이니 죽을때까지 엄마가 책임질게. 염치없지만, 동생들.. 부탁한다. 미안해.. 아주 많이..]

 

 통장 두어개와 인감, 그리고 함께 놓여진 짤막한 쪽지를 보며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귀에 피날 만큼 말많은 집구석에서 입 하나 줄여보겠다고 굳게 닫고있던 입 엄마한테만큼은 열어봤어도 어쩌면 유일하게 마음이 통할 수도 있었을건데. 아빠의 무게를 엄마 혼자만 지게 한 게 돌아버리게 죄스러웠던 자식새끼는 눈물도 흘릴 수 없었다.

 

 그 이후로는 어떻게 세월이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눈코뜰새 없이 살았던 것 같다. 동생들 데리고 무턱대고 떠나와서 막내까지 졸업시킨게 막 대리 달때쯤이었으니까. 이명 같은 게 끼어들 틈도 없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동생들이 슬슬 앞가림을 하기 시작하니까, 삶에 공백이 속속들이 생겨났는데 나는 그럴때 뭘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몰랐다. 헬스장 수영장 골프장 닥치는대로 끊어놓긴 했지만 몸만 바빠봤자 소용없었다. 사는게 막막했을땐 뇌가 두서없이 꽉꽉 들어찬 짐가방 같았는데 가방이 텅 비어버리니까 자꾸만 13년 전 가을을 채워담는 것이다.

 

 몰래 지켜보던 이기광 눈물로 시작해 이어폰 줄, 집게, 문진 같은 것들을 지나 이기광 품에서 나 혼자 끝내버린.

 

 그 중에서 지금까지 내게 남아있는 것은 문진 뿐이었다. 엉망진창 이모티콘이 새겨진 옥빛 문진. 작정하고 베어버렸던 손가락은 분명 일부 감각을 상실했는데 가끔씩 이유 모를 통증이 들이닥치곤 했다. 그럴 때 몇 번 만지작거리면 진통제보다 더 잘받는 처방이 되어주곤 했던 옥 덩어리.

 

 텅빈 내 손에 이런 것까지 쥐어준 이기광에게 나는 어떻게 하고 떠나왔나. 그 품에 안겨 보잘것 없는 눈물을 떨궈내면서 나만 혼자 작별했지, 그리고서 말도 없이 사라져버린 나를 두고 이기광이 무얼 느꼈을지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아니, 겨를이 없었다는 건 핑계.

 

 나는 이기광이 새벽 어스름에 숨어 몰래 울곤 했던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 녀석이 왜 멀쩡히 살아있는 생부 냅두고 외가에서 살아야 했는지. 사명조차 저버릴만큼 이기광의 외삼촌은 왜 그렇게 조카에게 끔찍했는지. 이기광의 아버지는 깡패 양아치였고, 쥐죽은 듯이 조용하던 집의 유일한 말괄량이 막내딸은 그저 조잘거리는 제 이야기에 언제든 귓구멍 열어주는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깡패 양아치에게 제 모든 것을 던졌고, 준비도 없이 야생으로 나온 온실속 화초는 오래 살지 못했고, 깡패 양아치는 자기 하나만 믿고 집을 뛰쳐나온 아내보다 행님이라는 사람에게 더 껌벅 죽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 행님의 실형까지도 대신 살아주려는 사람이었고, 하나뿐인 아들보다는 제 충성심을 증명하는게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는 것.

 

 -우리 엄마도 너처럼 무음을 사랑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용한 게 꼭 좋은 거기만 할까? 우리 엄마는 아빠를 사랑했었던 게 아니라 그냥 외로웠던 것 같아. 아무도 말 걸어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엄마가 말 걸면 아빠는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들어는 줬는데, 아빠 용건은 그 아저씨한테만 있었거든.

 

 새벽 산길 벤치에 앉아 그런 말들을 참 찬찬하게도 늘어놓는 미명 속 이기광은, 낙엽수밖에 없는 이 산의 유일한 상록수였다. 제 밑천을 다 드러내보이고도 여전히 푸릇푸릇하고, 싱그러웠고, 빛이 났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내 이야기를 그렇게 덤덤히 털어놓을 자신도, 그 앞에서 그토록 당당할 자신도, 그런 식으로 한결같을 자신도.

 

 그래서 듣고도 귓구멍을 막고 있었나보다. 열고 담아버리면, 내 가짜 엽록소가 탄로날 것 같았으니까.

 

 내게 매달려있는 지질하고 구질한 이파리들을 그대로 인정하고 나니까 저절로 운전대에 손이 갔다.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찾아는 봐야 했다. 전할 말이 너무 많았다.

 

 완전히 SNS용 동네가 되어버린 그 곳에서 내가 내집보다도 더 자주 찾던 삼층짜리 양옥집은 할아버지의 헌책방 컨셉의 북카페로 탈바꿈해 있었다. 그 앞에서 사진 찍겠다고 줄까지 선 사람들을 보며 묘하게 서글퍼지기도 하면서 나는 이제는 루프탑 공간이 되어버린 그 시절의 옥상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그 계단에서 참 겁도 많고 이기적이었던 나를 직시하는게 첫번째 과제가 될 것이었다.

 

 이젠, 이 민낯의 계절 속에 평생을 갇힌대도 상관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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