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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ye My Dear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끊임없이 울려대는 초인종 소리에 기광은 귀를 틀어 막았던 베개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아직 나는 너를 보면서 웃어줄 수가 없다고.

 

짜증이 아니었다.

 

미련.

 

진득진득 엉켜대는 미련과 굼뜬 애정이 아직도 속에서 자글자글 끓어올라 기광을 괴롭혔다.

 

그럼에도 우리는 안녕을 고해야 했기에.

 

 

Good-bye My Dear

W. Big Pot

 

 

화면이 켜진 인터폰은 무시하고 곧장 현관 앞에 서서 헝클어진 머리칼을 정리하며 마른 얼굴을 몇 번이고 쓸어내렸다. 괜찮아 보여야 했다. 아니. 괜찮아야만 했다.

 

얼굴을 쓸어내리던 손이 툭, 떨어짐과 동시에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그만큼의 한숨을 뱉는다. 눈을 길게 감았다 뜨고 축 쳐진 눈꼬리에 힘을 주었다. 목 뒤로 설움의 덩어리를 삼켜내고 입술을 물었다 놓으며 현관의 손잡이를 잡는다. 차가운 감각이 손끝을 타고 기어 올라와 몸이 떨렸다.

 

밑바닥에 나직하게 고여 있던 공기와 달리,

 

"암호를 대."

 

현관에 바싹 달라붙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 죽을래? 빨랑 열어라.

 

성질머리하고는.

 

조금 더 시간을 끌어볼까, 하다가 인내심으로 겨우 억누르고 있는 폭발 직전의 목소리를 듣고 입술을 삐죽이며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새를 못 참고 벌어진 틈으로 밀고 들어오는 팔이 꽤나 신경질적이었다.

 

"장난해? 초인종을 몇 번이나 눌렀는지 알아? 전화는 왜 안 받아?"

"좀 봐주라. 아직 시차적응도 못 했어어-."

"그러니까 비번을 왜 바꾸냐고.“

 

 

길게 늘어뜨리는 말 끝에 성질이 조금 누그러지나 했는데,

 

 

"안 그럼 네 맘대로 들락날락할 거 아냐."

 

 

로퍼를 벗다 말고 치켜뜨는 눈에 살기가 가득한 것을 보고 주춤, 뒤로 조금 물러섰다가 얼른 몸을 돌려 거실로 향하자 흐흥, 하는 코웃음과 탁탁거리는 실내화 소리가 뒤에 붙어 기광을 따라왔다.

 

 

"금방 쫄거면서 왜 말을 그렇게 못되게 하냐."

"안 쫄았거든? 그리고 여기서 살 거야? 내가 있는데 비번이 왜 필요해."

 

 

두준이 손에 들고 온 브리프 케이스와 마트 봉투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냉장고를 열어 찬거리를 익숙하게 정리하는 동안 기광은 소파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그의 등을 눈으로 좇았다.

 

 

주방에서 혼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두준을 보자 1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는 모습에 흐-, 실없는 웃음이 새었다가도 금방 우울해졌다.

 

 

"안 될 건 뭐야. 대학 때도 같이 살았는데."

"그게 벌써 언제적이야."

"짜증나게 자꾸 선 그을래?"

"선 긋는 게 아니라아,"

 

 

맞는 걸 아니라고 해서 그런가 먼지가 낀 것처럼 목이 칼칼해져 잔기침을 하자 두준이 거실로 오다 말고 도로 냉장고를 열어 생수병을 꺼내 컵에 물을 따라 건넸다.

 

 

"그게 선 긋는 게 아니면 뭐야."

 

 

꿀떡꿀떡 급하게 삼키다 채 넘어가지 못한 물이 턱을 타고 흐르자 이번에도 기광보다 반 박자 빠르게 움직인 손이 턱에 대롱대롱 매달린 물방울을 슥, 훑어내고 검지손가락을 튕겨 아프지 않게 이마를 톡, 쳤다.

 

 

"아!"

"엄살은. 저녁 먹었어?"

 

 

소파를 두고 원목 테이블에 앉은 두준이 무릎을 세워 앉은 기광의 발목을 잡아 주욱-, 끌어당겨 제 다리 사이에 기광의 다리를 끼워 넣었다. 나란히 앉는 것보다 마주 보고 앉는 것이 더 좋다던 그의 이상한 습관이었다.

 

 

"시차 땜에 이 시간에 먹으면 속 아퍼."

"그래도 배 안 고파?"

 

 

두준은 고개를 가로젓는 기광을 보다가 조금 높이 있는 허벅지에 뺨을 대고 엎드렸다. 이쯤 되면 손가락이 머리카락에 얽혀야 맞는데 힘을 주어 소파 끝을 꾹 눌러 잡은 기광의 손이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하얗게 질려가는 손끝이 서러웠다.

목이 멘다.

 

 

억지로 침을 삼켜 울컥울컥 올라오는 설움을 눌러 내리고 질린 손을 그러쥐자 그제야 반대편 손이 조심스레 뒤통수에 닿아왔다.

 

 

"계속 미국에 있을 거야? 왜 자꾸 길어져. 1년이라며."

"계약 연장하자고 해서 생각해 본다고 했어."

"그냥 들어오면 안 되냐?"

 

 

애초에 한국을 떠났던 이유도 두준이었다. 그의 손이 닿은 목덜미에 화닥화닥 열이 오른 지 근 10년 만의 결심이었다.

 

그 결심을 더 굳혀야 할 때가 왔는데 다시 돌아오라니.

 

"왜 이래. 결혼도 할 놈이."

 

전화로 갑작스레 전해 들은 결혼 소식에 기광은 "어, 축하해." 담담했었다.

 

 

"결혼하면 꼴랑 반년에 한 번 너 보러 가는 것도 눈치 보일 거 아냐. 그러니까 네가 여기 있어. 그리고 집도 언제까지 이렇게 방치할 거야. 한 번씩 내가 들여다보니까 이 정도지 너 계속 그렇게 나가 있으면......"

 

 

잔소리를 하다 말고 몸을 일으켜 멍해진 얼굴을 보던 두준이 기광의 무릎을 잡으며 "이기광. 기광아." 이름을 조심스레 불렀을 때, 그제서야 침잠하던 호흡이 수면 위로 튀어 오른다.

 

 

"어?"

"많이 피곤해?"

"아니. 어, 아, 결혼 준비는 잘했어?"

"몰라. 관심 없어."

 

 

그의 심드렁한 대답에도,

 

 

"꼭 남의 일처럼 말한다."

"남 일이지. 조건 보고 구색 맞추는 결혼인데. 아, 그 얘긴 됐고 당장 한국 들어와. 왜 그 말엔 대답 안 해."

"일 그만 두면 뭐 먹고 살라고."

"내가 책임질게."

 

 

기대하고 싶게 만드는 야무진 대답에도 짜증이 났지만,

 

 

"와이프가 퍽이나 좋아하겠다."

"아직 결혼 안 했는데요. 왜 이렇게 나를 보내려고 하지?"

"내가 보내는 거냐? 니가 가는 거지."

"나 그냥 결혼하지 말까?"

"뭐래."

"너 따라 미국 가서 살까봐. 니가 나 데려 갈래?"

 

 

대형견처럼 온순하게 올려다보는 눈빛에 한숨처럼 웃음이 났다.

 

 

"지가 하기 싫은 걸 왜 날 꼬득여."

"알면 좀 넘어와라."

"넘어가면, 뭐, 데리고 살 거야?"

 

 

웃다가도 금방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는 기광을 삐딱하게 바라보던 두준이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키며 기광의 손을 잡고 방으로 향했다.

 

 

"일단 한 침대에 누워보고 결정할까, 자기야?"

"짜증나게 하지 마라.“

 

톡 쏘는 말에도 신이 나서 큭큭대는 두준의 뒤를 쫓아가는 기광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묻어났다.

 

"근데 자고 가게?"

"어. 피곤해."

"집에 가서 편하게 자지."

"너랑 잘 거야."

 

 

이건 또 왜 떨어져 있어.

 

 

발에 걸린 베개를 톡톡 털어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고 기광을 침대 위에 조심히 굴리고는

 

 

"엉덩이 들어봐. 옳지, 말 잘 듣네."

 

 

엉덩이 아래 깔린 이불을 빼내어 어릴 때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온몸을 폭 덮어주다가 얌전히 손을 타는 기광을 보며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꾸역꾸역 눌러 내렸다.

 

 

아직도 왜 이렇게 애 같냐.

귀엽게스리.

 

 

“왜 웃어.”

"티 나?"

"음흉하게 웃던데."

"생각하는 대로 드러나는 편이라."

 

 

질색하는 얼굴을 보자 하루종일 가라앉아있던 마음 한 켠이 되려 툭, 튀어올라 기분이 좋아진 두준은 침대로 뛰어들어 이불째 기광을 안아버렸다.

 

 

"아, 또 뭔데."

"기광아."

"왜."

 

 

신경질 잔뜩 난 목소리에도 푸슬푸슬 웃는 바람에 콧잔등이 간질간질했다.

 

 

"나랑 살자."

"...... 장난 그만해."

"장난 아닌데."

"됐고 얼른 씻고 와. 나도 졸려."

"이기광."

"응."

"우리 결혼할래?"

 

 

어이가 없어서 웃음 밖에 안 나오네.

이걸 받아 줘야 돼, 말아야 돼.

 

 

"프로포즈가 존나 멋대가리 없어. 탈락."

"얼굴만 잘생기면 됐지 프로포즈까지 멋있어야 돼?"

"아-, 좀 그만 귀찮게 하고 얼른 가 씻어."

 

 

씻고 올 동안 잘 생각해 봐.

 

 

이불 속에서 아둥바둥대는 몸을 한 번 더 꽉 끌어안고 난 다음에야 두준은 욕실로 향했고, 방을 빠져나가는 두준의 뒷모습을 보다가 이불을 끌어 올려 슬쩍 코끝을 문지른 기광이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베개를 품에 안고 조심스레 소파로 향했다.

 

 

한 침대 같은 소리하네.

 

 

담요를 덮고 떨어지는 물소리에 맞춰 눈을 천천히 깜빡이자 노곤노곤 말랑해진 머리가 스물셋의 두준을 떠올렸다.

 

 

- 조소과예요?

- ...... 공간디자인이요.

- 어휴, 공구 보니까 거기도 만만찮게 막노동이네요. 공디면 중문 가세요? 좀 도와드릴까요?

 

 

봄날의 다정함이 시작이었다.

 

 

- 눈 못 뜨는 게 꼭 갓 태어난 강아지 같다.

- 뭐?

- 귀엽다고.

 

 

손으로 차양을 만들어주며 웃던 여름날의 다정함은 발끝을 움츠러들게 했고,

 

 

- 오다 주웠다.

- ...... 진짜 오다 주운 걸 주네.

- 야, 예뻐서 따 온 거야. 너 주려고.

 

 

중앙도서관 옆 단풍이 예뻐 네 생각이 났다던 가을날의 다정함은 아직도 책 사이에 곱게 끼워져 마음을 간질였으며,

 

 

- 어으, 춥다.

- 어디 갔다와?

- 붕어빵 먹고 싶다며. 너 씻는 동안 가서 사 왔지.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다 스쳐 간 한 마디에 맨발로 눈길을 나선 겨울날의 다정함은 입 안을 데일 만큼 뜨거워서, 그래서 그를 만나고 기광의 사계절은 온통 두준이었다.

 

 

 

- 이기광. 나는 더 이상 너를 견딜 수가 없어. 내가 감당이 안 돼.

 

 

그리고 엉망으로 취한 서른둘의 윤두준이 안겨 울던 또 다른 가을날,

 

팽팽했던 끈을 먼저 놓기로 결심했던 그 날로 시간이 가까워졌을 때, 한껏 소리를 죽여 침실로 향하던 발소리가 신경질적으로 탁탁거리며 거실로 방향을 틀었다.

 

 

"말 죽어라 안 듣지."

"들어가서 편하게 자."

"내외하냐? 일어나."

"실랑이 할 기운없어."

 

 

시계도 없는 집안에는 숨소리만 가득했고, 기광은 눈을 떠 두준을 살피고 싶었지만 졸음이 잔뜩 내려앉은 눈꺼풀은 제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 때, 담요가 풀썩이며

 

 

“.....?! 야, 좁아!”

“그러게. 좁네. 옆으로 누워봐.”

 

 

커다란 몸이 소파를 비집고 들어오자 한없이 무겁기만 했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뭐하냐?”

“그러게 얌전히 침대에서 기다리고 있음 좀 좋아."

 

 

목과 베개 사이로 팔을 끼워 어깨를 감싸 안고 다른 팔로 허리를 감으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이미 눈까지 감아버린 두준이었다.

 

 

“안 불편해?”

“별로.”

"사실 내가 불편해. 침대 가서 편하게 자. 일하고 왔잖아.”

“집주인 거실에다 재우고 침대에서 자면 잠이 오겠어?”

“여기서는 잠이 오냐?”

“오겠냐?"

"아 그니까 왜,"

"너랑 이러고 있는데."

 

 

두준이 흘려보내는 가볍고, 또 무거운 말들에 휩쓸리지 않도록 깨금발을 들어 겨우 버티는 일은 여전히 버거웠다.

 

 

"윤두준."

"응."

"두준아."

"왜, 기광아."

"내일 김치찌개 해줘."

 

 

비장한 목소리로 "윤두준." 부르길래 이번에는 조금 다른 말이 나올까 설렜는데 한다는 말이 꼴랑 김치찌개.

 

 

두준은 허탈하게 웃었다.

 

 

윤두준.

두준아.

 

 

네 입에서 나오는 내 이름 석 자가 우리가 가진 애정의 깊이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임을 알면서도 쉽게 놓아지지가 않는다.

 

 

목구멍에서 치닫는 울음을 참기 위해 두준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 맡겨 놨냐?"

"난 엄마 밥보다 니 밥이 더 맛있더라."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맨날 이거 먹고싶다 저거 먹고싶다 존나 부려먹어, 예쁘지도 않은 게."

"내가 왜 안 예뻐."

"사실 예뻐."

"아, 짜증나."

"나는 니가 짜증낼 때 제일 좋더라."

"변태새끼."

"어떻게 알았대."

"10년을 봤는데 그 것도 모를까."

"...... 내가 그동안 너한테 뭘 했는데."

 

 

진득하게 내려다보는 눈빛에 기광은 움찔했다.

 

 

"......"

"우리 아직 아무 것도 못 해봤는데."

"너랑 나랑 할 게 뭐 있어."

"해볼까? 그동안 못한 거?"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맞닿았던 무릎이 틈을 벌리고 들어오며 나란했던 다리가 얽혔고, 두준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윤두준!!!"

 

 

다급한 부름에 가쁜 호흡이 입술 위에 좁은 틈을 두고 쏟아진다. 가슴을 밀어내는 주먹을 손으로 쥐었다.

 

 

"두준아."

"...... 그래."

"윤두준."

"알았으니까, 알았으니까 제발 내 이름 좀 그만 불러."

 

 

괴로운 듯 두준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하나, 둘, 셋, 넷,

 

침묵이 둘 사이를 뚝, 뚝,

떼어 놓는다.

 

 

"...... 두준아."

"...... 안 되겠다. 갈게."

 

 

두준이 몸을 일으키자 기광의 눈이 반질반질해졌다.

 

 

"너무 늦었는데."

"그치. 아무래도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지. 근데 네가 원하는 게 이거 아니야?"

 

 

두준의 지친 목소리에 이번에는 기광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조용히 두준의 손을 잡아끌어 현관 앞에 세워둔 기광이 주방으로 되돌아가

 

 

"여기."

 

 

가져온 브리프 케이스를 내밀자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두준은 기광에게서 가방을 낚아채 집어던지고 그의 어깨를 두 손으로 꽉 잡았다.

 

 

"이게 네 대답이야?"

"간다며."

"...... 한 번은, 좀 잡혀주면 안 돼?"

 

두 눈에 뻘겋게 핏줄이 선다.

 

"한 번 정도는 그냥!!!"

 

언성이 높아졌다가,

 

"좀 넘어와 줄 수 있잖아."

 

울음을 머금는다.

 

"너나 나나 선 하나 넘지 못해서 여태 우리가 이 모양인 거야."

"두준아. 그만,"

"시발, 시작도 못 했는데 뭘 그만해!!! 숨긴다고 숨겨져? 알면서도 겨우 버틴 결과가 이거야. 여기서 더 나빠질 게 뭐 있어. 기광아, 어떻게, 지금이라도 한 번 넘어볼래, 우리?"

 

 

뒷목이 잡히고 입술 닿았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팔을 무시하고 허리를 끌어 안아 당기자 버티는 몸이 뒤로 기울었다.

 

 

"싫다고!!!"

 

 

매섭게 날아오는 손에 턱을 치이면서도 두준은 기광의 뒷통수를 감쌌다.

 

 

쿠당탕-.

둘의 몸의 바닥에 나뒹군다.

버석하게 마른 시간이 초침을 따라 길게 흐른다.

 

 

"여태 잘 지내다가 갑자기 왜 이러는데."

 

 

참지 못하고 새는 울음에 두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가 그동안 어떻게 참았는데 여태 잘 지냈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해. 그래서, 너는 괜찮았어?"

"......"

"하루 아침에 도망치 듯이 떠났으면서 그동안 잘 지냈다는 말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나와!!!"

"......"

"결혼하지 말라면 안 해. 진심이야."

"...... 가. 더 늦기 전에."

"제발, 지금이라도 나를 좀 잡아."

 

 

왼쪽 어깨가 축축하게 젖어들수록 기광은 되려 담담해졌다.

 

 

"식장에서 봐."

 

 

오랫동안 기광의 위에서 흐느끼던 두준의 몸이 천천히 멀어졌다. 가방을 집어들고 발을 로퍼에 꾸역꾸역 밀어넣으며 현관 앞에 선다. 젖은 얼굴을 몇 번이고 쓸어내린다.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떨리는 숨을 뱉는다. 입술을 깨문다.

 

 

그리고,

 

 

"오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힘없이 늘어진 몸 위로 빳빳한 종이를 툭, 던진다.

 

 

현관의 손잡이를 잡는다.

붙잡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진득진득 엉켜대는 미련과 굼뜬 애정이 아직도 속에서 자글자글 끓어올라 한참만에 문을 연다.

 

 

안녕.

 

 

인사도 없이

피어난 감정처럼,

 

 

안녕.

 

 

인사도 없이

로퍼 소리가 아득해진다.

 

 

완벽한 적막.

 

 

기광은 눈을 가렸던 팔을 들어 종이를 펼친다.

 

 

≪가을의 낙엽색처럼 처음엔 다른 색으로 만났지만 함께 해 나가며 물들어가겠습니다. 한 가지 색이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어울리는 색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윤기훈 김수영의 장남 두준

이석필 서지숙의 차녀 재희

 

 

“2022년 10월 2일.”

 

 

센서등이 꺼지고, 그제서야 기광은 숨을 죽여 울었다.

 

 

발소리를 감추고 돌아와 현관에 이마를 대고 선 두준을 눈치라도 챈 듯이.

 

 

 

 

D-DAY

 

 

 

 

시간보다 한참을 먼저 왔으면서도 들어가지를 못하고 결국 식이 끝난 식장 앞에 멍하게 서 있었다.

 

"야."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기광이 돌아보자 두준이 그의 손목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마치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목덜미에 닿은 입술과,

 

 

도망가자.

지금이라도.

 

 

속삭이는 목소리는 친구의 것이 아니었지만.

 

 

"두준아."

 

 

내 이름이 이렇게 싫었던 적이 있던가.

 

두준은 마른 등을 감싼 손가락에 더 힘을 주었다.

 

"......"

"잘 살아."

"...... 그래."

 

 

두준이 환하게 드러난 이마를 기광의 어깨에 대고 섰다가 손목을 잡고 계단실로 향했다.

 

 

"본 중에 오늘이 제일 멋있다."

"최악이네. 매일 이렇게 입고 다녔으면 진작 꼬셨을 텐데."

"웃기지도 않아."

"오늘이라도 손 잡고 도망갈 줄 알았는데 코빼기도 안 보이대?"

"오든 말든 알아서 하라며."

"진짜 안 올 줄 몰랐지."

"...... 늦은 거야."

"알 만해. 이 앞에서 한참동안 못 들어오고 있었겠지."

"비밀이 없어."

"너에 대해 모르는 게 어딨어, 내가."

"너무 알아서 문제야, 우리는."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을 서로에 대한 애정과 갈망까지도.

 

 

"아니. 우리는 서로를 너무 아꼈던 게 문제야. 이기광. 나는 네가 오늘을 평생 후회했으면 좋겠어."

"......"

"마음에도 없는 행복하란 소리, 나는 안 해. 그리고 기광아."

 

 

나는 내 인생의 페이지마다 너를 빽빽하게 꽂아둘 거야. 너를 알고 가장 붉고 짙었던 순간부터 가장 파랗고 시렸던 순간까지 빠짐없이 전부 다 책갈피로 꽂아두고 평생 펼쳐볼 거야.

 

 

"두준아."

"내 마음대로 될 거면 진작 그만 뒀어. 그러니까 그만 두라는 소리 하지 마."

 

 

망설이던 기광은 두준의 허리를 감쌌고,

두준은 기광의 머리카락에 입술을 묻었다.

 

 

이만하면 된 거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쩌면 앞으로도 우리는.

 

 

붉게 변한 가지 끝이 기광의 어깨 너머 창 밖으로 보인다. 차가워진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버티던 붉은색 이파리 하나가 내도록 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

 

 

안녕.

 

 

이제야 고하는 우리의 인사.

 

 

Good-bye.

Good-bye, My Dear.

 

 

Good-bye My Dear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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