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탄압의 봄

00:00 / 02:33

탄압의 봄

 

w. 기작소

 

양요섭 X 이기광

 

 

 

 

우리는 집이 없었다. 가정부 아주머니의 아들인 양요섭은 부엌에 딸린 곁방이, 운전기사의 아들인 나는 차고지에 딸린 창고방이 몸 의탁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부모님이 같은 고용주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는 그런 식으로 만났다.

 

열 밤만 자고 나면 다시 데리러 온다며 수녀원에 다섯 살의 나를 떨구고 떠난 아버지는 열 밤이 지나고도 나타나지 않았다. 뭐, 어차피 그 말을 믿은 것도 아니었어서 굳이 열 밤을 세며 아버지를 기다린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내가 열 살이 되던 해, 믿을 수 없게도 아버지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얼떨떨했다. 정말이지 꿈에서라도 상상해본 적 없었어서. 수녀님들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등장에 기쁨과 반가움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먼저 찾아왔지만, 어쨌든 다시 아버지와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설레지 않았다고는 못 하겠다.

 

비록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따라온 곳이 남의 집 창고방이긴 했어도 유일한 가족과 헤어지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집 살 돈도 없어 남의 집에 얹혀 살아야 할 정도로 가난하면서도 내 손을 다시 잡아준 아버지는 누가 뭐래도 나한테는 슈퍼맨 그 이상이었다.

 

그런 내 슈퍼맨은 다른 애의 것이었다. 내 또래의 이 집 도련님. 운전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아버지로 두고도, 나는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 소유의 차가 없었기 때문에. 친절히 뒷좌석 문까지 열어 도련님을 태우고 사라지는 차 뒤꽁무니만 바라보면서 그저 속으로만 몇 번 투덜거려보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양요섭은 그런 나의 등교메이트였다.

 

"앞으로 우리 학교 같이 다니자."

 

아주머니께서 도련님 아침 먹이고 제 손에 급하게 챙겨준 토스트를 내 입에다가 넣어주면서 양요섭은 그렇게 내 인생에 들어왔다.

 

 

 

이제는 더이상 아버지가 슈퍼맨이 아닌, 그저 삶으로 낡아가는 한 명의 중년으로 보이기 시작할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아버지 생신이었다. 걔를 상석에 모시고 운전석에 몸을 싣는 아버지의 모습은 이미 몇 년 동안 수없이 봐와서 이제는 다 무뎌졌다 생각했는데, 그날은 유독 그 모습이 참기 힘들었다.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아들이 처음으로 끓여본 미역국을 제대로 맛볼 짬도 없이 남의 아들을 등교시키기 바쁜 이기사의 쪼그라든 어깨가 못 견디게 초라했다. 원단과 원단 사이를 단단히 여미고 있는 내 교복의 봉제선이 철창 같이 느껴졌다. 빨리 꽃 피우고 열매 맺어 수확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그때까지도 나는 아버지의 가느다란 가지에 무겁게도 매달린 꽃봉오리에 불과했고, 혹자들이 청춘이라 일컫는 내 나이가 그토록 속터졌던 적이 없었다.

 

매일을 한 살이라도 젊어지기 위해 닥치는대로 별별 시술을 다 감행하는 이 집 사장님, 사모님에게 내 나이 몇 살을 팔아서라도 성인이 되고 싶을 정도였으니 말 다한 거지 싶다. 덜덜거리는 똥차라도 상관없고 코딱지만한 단칸방이라도 좋으니 이 지긋지긋한 임대인생에서 벗어나 내 차, 내 집에서 그저 아버지와 자유롭고 싶었다. 그치만 무력한 나는 입술을 피나게 짓씹으며 멀어지는 외제차를 노려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또 우유 배달을 하러 간 모양인지 하필이면 그런 순간에 옆에 양요섭도 없었다. 그래도 옆에 그 녀석이라도 있으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데. 대충 기다리다 자기 안오면 일이 늦어지는 것이니 지각하지 말고 먼저 가라고 미리부터 언질을 받았지만, 그날만큼은 그냥 지각해도 상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땅바닥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돌멩이들을 발끝으로 이리저리 건드리면서 녀석을 기다리고 있던 내 앞에 양요섭은 의외로 일찍 나타났다.

 

"타."

 

왠 처음 보는 자전거를 데리고.

 

"훔쳤어?"

 

새거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얘 처지도 나와 별반 다를 것 없는데 이런건 또 어디서 구해왔나 싶었다. 배달일 할때 잠깐 대여해 쓰는 자전거랑은 딱 봐도 다르게 생겼는데.

 

"넌 나를 뭘로 보고. 지각하기 싫으면 빨리 타."

 

뭐, 일단은 타래서 탔다.

 

"꽉 잡아."

 

꽉 잡으라니 꽉 잡았고. 그래도 내 두 팔이 못 미더운 건지 양요섭은 휘감긴 내 양팔을 붙잡고 제 허리에 더 바짝 묶었다.

 

"오늘부턴 양기사가 모시겠습니다 도련님!"

 

뭇 영화 속에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충성스런 부하의 말투를 흉내내며 양요섭이 제법 크게 소리쳤다. 아, 씨발. 얘 내 뒷모습 다 지켜보고 있었다. 비단 그날 뿐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쭉. 그게 아니면 그렇게, 그렇게 내 속을 나보다도 더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그렇게 가슴 떨리는 방법으로 날 위로해줄 수 없는 것이었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드럽고 치사해 보이기만 했던 세상은 이제 내 시야 밖으로 밀려났다. 더 드러워져 보라지. 그래봤자 나한테는 양기사 있다!

 

"여기 나 말고 딴 애 태워주기만 해 봐."

 

온 몸이 터져버릴 것만 같아서 내가 뭐라고 지껄이는지도 몰랐다. 그냥 나보다 쪼끄만 주제에 쓸데없이 넓은 등짝도, 물컹물컹한 또래 애들과는 달리 탄탄하게 잘 잡힌 이 허리도, 나한테만 허락된 특권이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욕망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양요섭의 마른 날개뼈에 얼굴을 묻고 속으로 한 마디 더 덧붙여봤다.

 

나도 니 자전거만 탈 테니까.

 

"너 하는거 봐서. 출발한다!"

 

말은 그렇게 해도 양요섭의 속 또한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녀석의 너른 등짝에서 내 가슴팍으로 건너오는 세찬 고동이 바로 그 증거였다. 양요섭의 경쾌한 페달질과 함께 우리가 탄 자전거가 거리를 갈랐고, 그제서야 봄바람이 들리고, 만개한 봄꽃내음이 맡아졌다. 아까까진 그렇게 청춘을 씹어놓고, 이제는 또 그 기간이 조금 길어져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런게 청춘이라면.

 

 

 

 

운이 좋게도, 나는 양요섭과 갈라지지 않고 고3때까지 같은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좀 더 오래 양기사의 도련님으로 살 수 있었으나 불운하게도 같은 반이 되어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래도 종종 체육복을 빌릴 수 있다는 거 하난 좋았다. 같은 더부살이 인생, 우리는 작은 신체사이즈마저 똑같아서 체육복마저 알맞았다. 양요섭의 체향이 묻은 체육복을 입고 뛰면 함께 뛰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린 가끔씩 체육복을 바꿔 입기도 했다.

 

학교가 끝나면 우리 둘은 시립도서관으로 갔다. 일찍 들어가봤자 먹을거라곤 눈칫밥 뿐인데다가 창고방을 개조해 만든 그 비좁은 공간은 내 처지만 강조시킬 뿐이어서 차라리 탁 트인 도서관에서 공부나 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솔직히 말하면, 금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우린 놀고 즐길 여유가 없었다. 양요섭의 어머니도, 내 아버지도 하나뿐인 자식이 당신들의 팔자를 대물림하게 되는 것에 극도의 공포를 가지고 살아가시는 분들이었다. 그런 밑바닥을 탈출하는 데는 공부만한 게 없었고, 그 이유로 졸업할때까진 아무 생각 말고 공부만 하라고 귀에 딱지가 얹게 말씀하시곤 하셨으니까. 맞는 말이었다. 아들뻘인 애를 상석에 태워 등교시키고 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하루종일 사장의 궂은 잡일과 뒷수습을 자처하는 것으로 하루가 저무는 삶은 그 누구라도 자식에게 살게 하고 싶지 않은 인생일 것이다. 남의 아들은 상다리 휘어치게 차려먹이고 제 아들의 입에는 빵쪼가리 하나 물려 학교 보내는 양요섭의 어머니 심정도 내 아버지와 별반 다르지 않겠거니 싶었다.

 

그러니까 양요섭도 나도, 피터져라 공부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맘대로 공부할수 있는 이 장소는 우리에겐 차라리 호사였다. 그래서 본의아니게 우리는 전교 1,2등을 번갈아가면서 했다. 어떨 때는 양요섭이 1등을 하고, 어떨 땐 내가 1등을 하고. 보통 한 문제 차이로 결정되곤 했다. 어떨 땐 둘 다 만점을 맞아 공동 1등을 하기도 했다. 이것은 가정부의 아들과 운전기사의 아들이 또래 집단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해서 그 집 사모님 또한, 뒤로는 '저런' 애들도 밑천 없이 전교 1,2등을 쉽게 하는데 너는 학원과외를 있는대로 붙여주는데도 성적이 왜 이 모양이냐 제 아들을 닦달하며 은근히 우릴 비하했어도, 앞에서는 우리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오히려 우리를 조용히 불러서 본인에게 필기노트를 팔아달라고까지 했었으니까. 그런 사모님에게 돈은 괜찮으니 그냥 드리겠다며 흔쾌히 제 노트를 건넨 양요섭은 좀 의외기도 했다. 제 어머니 몰래 우유배달과 주유소 알바를 할 정도로 돈에 악착같은 양요섭을 내가 아는데, 돈을 마다하다니.

 

“어차피 매일 학원 째고 놀러다니고 과외도 선생 꼬드겨 쓸데없는 사담만 하는걸로 시간이나 때울 생각만 하는 새낀데 그게 노트 하나로 되겠냐. 아인슈타인 노트를 가져와도 성적 안 올라 걘. 괜히 환불 요청 받고 피곤해지기 싫다.”

 

나중에 물어보니 양요섭은 그저 뭘 뻔한걸 물어보냐는 말투로 저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하기야, 아예 저택의 바깥쪽 차고에서 지내는 나와는 달리 녀석은 저택의 내부에서 지내고 있었으니 그 집 사정은 나보다 더 잘 알지 싶었다. 여튼 우리는 주기적으로 사모님에게 필기노트를 조달했고, 양요섭의 예상대로 우리의 노트는 걔의 성적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양요섭은 이제 고등학교 수준을 넘어서서 도서관에서 경제학 원서를 찾아보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독해도 보통 독한게 아니라며 혀를 내두르는 내게, 양요섭은 대학교 들어가면 자긴 닥치는대로 알바를 뛸거라서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을거라고, 그러니 지금부터 미리 전공을 익혀놓아야 한다고 했다. 이런 생각을 무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했단다. 그때의 난 무슨 생각을 했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걸 보면 별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수녀원에 떨궈졌던 순간부터 그냥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 아무 의욕 없이 숨만 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내게 갑자기 들이닥친 더부살이의 삶과 그 삶을 나보다 더 먼저 살고 있었던 동갑내기 선배 양요섭의 존재는, 열 살 난 내 정신을 번쩍 깨워버렸다.

 

그런 식으로 살면 안 되겠구나 생각한 것도 처음이었고, 그제서야 허둥지둥 살아보려던 내게 나침반이 되어준 애는 다름아닌 양요섭이었다. 유년기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열 살이 넘도록 간단한 사칙연산조차 제대로 할 줄 몰랐던 내게 양요섭은 학교 선생님보다 더 훌륭한 스승이 되어주었고, 나는 열심히 그 뒤를 쫒아갔다. 그런 내가 양요섭을 제치고 처음으로 전교 1등을 했을때 내 아버지보다 더 기뻐해준 게 양요섭이었다. 똑같이 서러운 환경에서도 양요섭은 나에게는 없는 여유라는게 있었다. 녀석에게 유대감을 깊게 느끼면서도, 이따금씩 찾아드는 외로움의 원인은 아마 그런 데서 기인하는 것일 거다.

 

 

 

 

어쨌거나, 도서관에서의 우리 시간도 밤 열 시면 끝났다. 도서관이 열 시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공공장소가 그 시간에 문을 닫는다는 건, 그 시간이 보편적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이라는 의미임을 모르지 않았지만, 우리에겐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때마침 도서관 후문 쪽에는 간단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고, 우리는 그 길을 아주 느릿느릿 걷다가 돌아가곤 했다. 옆에 자전거를 질질 끌면서.

 

그 산책로를 쭉 따라가다 보면, 간단한 운동기구들과 쉴 수 있는 벤치 두어 개, 음료수 자판기 따위가 모여있는 작은 공간이 하나 있었다. 주 이용층이 주로 중노년층의 어르신들뿐인 그 공간은 어둠이 깔리면 지나가는 행인들조차 없는 적막한 곳이었다. 양쪽의 가로등 두 개가 유일한 조명인 그 곳에서 어느 날은 양요섭이 재밌는 제안을 하나 던졌다.

 

"우리 음료수 걸고 턱걸이 내기 하자."

"보통 그런 건 먼저 말 꺼낸 사람이 지던데."

 

그냥 별 생각 없이 남들 하는 말 따라 뱉어봤을 뿐인데 양요섭은 진짜로 졌다. 아니 대체 나보다 철봉도 못하면서 그 탄탄한 허리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의문이었다. 나도 그렇게 오래 매달려있던 편은 아니었는데 번번이 나보다 빨리 떨어지는 양요섭은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쇠냄새 나는 손바닥을 툭툭 털 뿐이었다.

 

"야, 넌 어떻게 한 번을 못 이기냐. 고작 나 하나도 못이겨서 이 험난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래?"

"내가 못하는게 아니라 니가 잘하는거야. 기광이는 못 이겨."

 

그래서 항상 음료수 자판기에 동전을 투입하는 쪽은 양요섭이었다. 나는 항상 생수를 골랐는데도 양요섭은 매번 뭐 마실래? 하고 내 의사를 물어봐줬다. 매번 같은 걸 선택하는 사람도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걸 염두에 둔 배려 같았다.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생수를 고집했다. 음료 목록에서 생수가 가장 싸기도 했고, 사실 단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기도 했다. 시원하게 마시고 텁텁하게 뒷맛이 남는 과당 특유의 질척임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반면, 양요섭은 항상 초록색 칠성사이다 캔을 뽑아마셨다. 한번은 내가 기껏 땀 빼놓고 그런 설탕물을 마시냐면서 장난스레 나무란 적이 있었는데, 녀석은 내 맘이다 어쩔래? 하며 그 따가운 걸 벌컥벌컥 들이켜대는 것이었다. 하기야, 남의 집에 얹혀 살면서 냉장고 하나 자유롭게 못 여는 삶인데 음료수 정도는 맘대로 뽑아마실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그 다음부터는 별 말 하지 않았다. 그 찰나의 예민함에서 나는 녀석의 설움을 또 한 번 읽어버렸고, 그건 나또한 너무나도 잘 아는 감정이라서 그런 양요섭이 못 견디게 애틋해지기도 했다.

 

우리의 나날은 이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충분히 그런 날들일 수 있었는데 오늘은 유독 이상한 날이었다. 봄만 되면 산책로에 양옆으로 즐비한 벚나무가 흐드러지게 만개하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그 풍경을 한 두 해 본 것도 아니면서, 새삼스럽게 저 혼자 해맑은 봄이 거슬렸고 비라도 내려서 꽃잎들이 다 쓸려나갔으면 싶었다. 불쑥불쑥 화가 났다.

 

늘 그랬듯이 나란히 벤치에 앉아 나는 생수, 얘는 사이다를 들이키고 있었는데 별안간 훅 불어온 바람이 양요섭의 머리 위에 꽃잎들을 후두둑 떨어뜨려 놓은 것이 그 발화점이었다. 나랑 얘는 사는게 무거워서 죽겠는데, 깃털처럼 가볍게 내려앉은 그 꽃잎들에 대한 시기심이라고 해도 좋았다. 고작 그만큼의 무게라도 싫었다. 양요섭의 위에는 아무것도 얹어져 있지 않기를 바랐다.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려서 좀처럼 티내는 법이 없는 양요섭이라 해도 나는 안다. 그 버거움을. 그런 애한테 염치도 없이 내려앉은 연분홍의 잎들이 괘씸해 나는 그 머리에 손을 뻗어 서둘러 털어버렸다.

 

그래도 속이 진정이 되질 않아서 나는 충동적으로 녀석의 손에 들린 사이다 캔을 빼앗아들고 한 모금 크게 원샷했다. 단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 그 순간만큼은 돌아버리게 단게 땡겼다. 삼킬 때는 목구멍이 찢어지는 것 같이 따가웠는데, 막상 속에 들어가고 나니 그렇게 청량하고 시원할 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알아버리고 말았다. 양요섭이 매번 이 설탕물을 어떤 마음으로 들이켰던 건지. 양요섭은 당이 필요한 게 아니라 탄산이 필요했던 거였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치솟는 화를 넌 이런걸로 짓누르며 매일을 버텨왔구나.

 

그러고 보니 처음이었다. 내가 양요섭의 사이다를 마셔버린 건. 나는 물, 얘는 사이다. 우리는 그동안 그렇게 각자에게 배당된 몫을 각자 마셔왔다. 어쩌면 그건 의도하지 않았어도 우리의 방어기제가 알아서 조정해온 거리였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겨울은 쓸쓸하고 여름은 대책이 없으니 적당히 타협해 그 사이의 계절에 우릴 묶어둔 것이다. 무섭도록 영리한 무의식이었다.

 

말도 없이 제 캔을 빼앗아 마셔버린 날 잠시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양요섭의 눈빛이 일순간 어지럽게 흐트러지더니, 별안간 뜨거운 게 내 입술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눈 깜박할 새 벌어진 아주 찰나의 입맞춤이었다.

 

해명을 요구하는 내 눈짓에 양요섭은 그저 내 손에서 제 캔을 낚아채 남은 것을 전부 다 제 입 속에 털어넣어버릴 뿐이었다. 잔뜩 예민해진 손길에서 나는 후회를 읽어버렸고, 적어도 좋아해서 그랬다는 고백을 들을 일은 없겠구나, 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실수였단 사과인데, 커다란 손으로 빈 캔을 우악스럽게 구겨버린 양요섭은 벌떡 일어나서 자판기 옆에 놓여있는 쓰레기통으로 다가가더니, 찌그러진 캔을 확 쳐박아버리곤, 한동안 그렇게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일은 제가 다 저질러놓고, 좋아한다 부딪혀오지도 못하고 실수였다 수습하지도 못한 채 서 있는 그 등이, 그렇게 처량해 보일 수가 없었다. 자꾸만 여름으로 향하는 마음을 봄에 묶어두고 사는 것은 생각보다 더 고단한 일이었다. 절제를 모르고 불타는 한여름의 태양처럼 시도때도없이 타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느라 죽어버릴 것 같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치만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타오르고픈 맘은 있었지만 우리에겐 태울 장작이 없었다. 그러니 허튼 생각 집어치고 적당히 봄에 만족하는게 상책이었다.

 

그 어떤것도 이뤄내지 못한 우리는 그때까지는 저 하나 건사할 힘도 없는 미성년이었고, 해야 할 것들만 산더미였으며 헤쳐나가야 할 앞길조차 막막했다. 그리고 오로지 우리들만을 위해 남의 집 일을 감내하며 당신들의 삶을 갈아넣는 부모님이 계셨다.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무모한 짓을 벌이기엔 우린 이미 지나치게 철이란 게 들어 있었다. 남들에게는 희망찬 시작의 계절이, 우리에게는 주제파악을 강요하는 억압의 계절이었다. 그래서 양요섭에게 나는 고백도, 사과도 아무것도 강요하고 싶지 않아졌다.

 

"늦었다. 들어가자."

 

누구한테 배워서 어른의 방법을 알고 있었던 나는 그렇게 선 밖으로 먼저 발을 빼줄 뿐이었다. 체육복 사이즈마저 닮아버린 우리는 척하면 척이었고, 묵비권을 행사중인 저 뒷모습에서 이미 해명은 끝난 것이다. 내가 심문하지 않아도 이미 양요섭은 저 스스로 충분히 자괴하고 자괴하고 또 자괴하고 있을 거다. 그동안 선 잘 지키다가 순간적인 충동 하나 이기지 못하고 저질러버린 주제에 나를 이렇게 방치하고 있는 스스로를 아주 못 살게 고문해대고 있겠지. 고작 열아홉 주제에 지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아직 봄이니까, 일교차 정도는 노련하게 조절해내지 못 할 수도 있는거지.

 

저택 외부의 창고방에서 기거하는 나에겐 의도치 않게 알게 되는 것들이 꽤 있었다. 나에겐 어머니가 없었는데, 양요섭에겐 아버지가 계셨다. 처자식은 곁방살이 시켜놓고는, 허황된 꿈에 부풀어 투자니 뭐니 하면서 잊을 만하면 아주머니께 용돈 타러 오는 아버지가. 이번엔 진짜니까 일이 잘 풀리면 꼭 같이 살자는 말을 밥 먹듯이 하고 떠나시던 제 아버지의 뒷모습을 향해 양요섭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입만 살았어. 씨발.

 

양요섭은 내게 입을 죽였다.

 

그 침묵에서 녀석의 무섭도록 깊은 진심을 맛봐버려서 나는 괜찮았다. 진짜 전하고 싶은 말은 그거였지만 얘한테는 내 그런 말이 본인을 더 초라하게 만들고 나를 향한 죄책감만 더 크게 만들어줄 뿐이란걸 알았다. 내가 양요섭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그저 방금 있었던 일을 그 머리에 내려앉았던 꽃잎의 무게만치 축소해주는게 고작이었고, 그게 최선이었다.

 

제아무리 우리가 체육복 사이즈마저 닮아버린 관계라고 해도 옷은 두 벌이었다. 옷 하나를 둘이 입고 다닐 순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이 양요섭을 참 많이 외롭게 할 것 같았다.

 

지긋지긋한, 봄의 굴레였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