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세 번의 봄

이기광은 일찍 청소를 끝내놓고 짐을 챙겨 반을 나섰다. 창문 너머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가는 이기광을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겼다. 분리수거장으로 가는 길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마치 모두가 하교한 학교에 혼자 남은 것처럼. 4반의 분리수거일은 월요일과 금요일이라고 했다. 지금이면 4반의 분리수거 담당이 분리수거를 한창 하고 있을 것이다. 담벼락이 좁아서 주로 체구가 작은 학생이 담당이 되곤 한다. 우리 반의 경식이, 그리고 4반의 양요섭처럼.

 

 

 

“깜짝 놀랐네. 뭐야, 윤두.”

 

 

 

평온한 얼굴로 돌아보면서 하는 말은 뻔뻔하다. 이기광이 그랬던 것처럼 덩그러니 놓인 책상에 걸터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양요섭의 모습이 낯설다. 평소처럼 발랄하고 복도를 누비고 다니던 양요섭보다는 복도에서 이기광과 뜻 모를 분위기를 나누던 양요섭에 가까웠다. 담배 연기를 뱉어내는 양요섭을 보니, 담배를 피우려다 나를 보고는 다시 담배를 거두었던 이기광이 생각났다. 나는 천천히 양요섭에게로 다가갔다. 양요섭은 나를 힐끗 보기만 할 뿐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담배 피우는 줄 몰랐네.”

 

“피우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됐어. 비밀로 해주라.”

 

“……누구한테?”

 

 

 

양요섭이 나를 바라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양요섭을 응시했다. 이내 픽 웃음을 터뜨린 양요섭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꾹 밟아 껐다. 누구긴 누구야. 선생님들이지. 그렇게 대꾸하며 양요섭이 나를 지나쳐 빈 바구니를 집어든다. 곧 종이 칠테니 가자는 말을 던지고는 내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유유히 걸어갔다. 나는 얌전히 양요섭의 뒤를 따랐다.

 

 

 

“그 때 왜 거기 있었어?”

 

“어?”

 

“어떻게 알고 나와서 이기광을 말렸냐고.”

 

 

 

계단을 오르다 말고 양요섭이 나를 돌아본다. 저절로 양요섭을 올려다보게 됐다. 계단 중간에 위치한 창가 너머로 햇빛이 들어와 양요섭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솔직히 있는 그대로 답했다. 분리수거 담당이고 분리수거를 하러 간 것 뿐이라고.

 

 

 

“이기광이랑 친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물어온다. 이걸 뭐라고 답해야 하지. 적당한 대답을 고르는 사이 양요섭이 한숨을 쉰다. 아냐, 그냥 잊어. 일방적으로 통보하고는 다시 척척 계단을 올라간다. 그 등에 대고 불쑥 말을 꺼냈다.

 

 

 

“넌?”

 

“뭐?”

 

“넌 이기광이랑 친해?”

 

 

 

이기광에게 묻기가 힘든 거지 양요섭한테 묻기가 힘든 건 아니다. 이기광의 앞에선 몇 번을 망설이다 입술을 넘지 못했던 말이 술술 나온다. 양요섭이 다시 나를 돌아본다. 여전히 표정을 알 수가 없어 나는 가만히 대답을 기다렸다.

 

 

 

“친했어.”

 

“…….”

 

“지금은 아니고.”

 

“…….”

 

“그 때 싸운 거 보면 모르겠냐.”

 

“……싸운 거 맞아?”

 

 

 

바람 빠지는 소리를 섞어 말하는 양요섭에게 되물었다.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청소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렸지만 누구 하나 서두르지 않는다. 내가 먼저 걸음을 떼자 양요섭이 등을 돌렸다.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2주가 흘렀고 우리 사이에 별 다른 변화는 없었다. 이기광은 여전히 깨어있는 시간보다 잠들어 있는 시간이 더 길었고, 양요섭은 쉬는 시간마다 복도를 휘젓고 다녔다. 나는 점심을 거르는 이기광을 챙기다가 한 소리 들었다. 고맙긴 한데 매번 이러면 내가 좀 미안해. 거기다 대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어서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요즘엔 점심을 두 번 거를 때마다 한 번 사주는 식이다.

 

 

 

“담배 안 피우면 안 돼?”

 

 

 

불쑥 꺼낸 말에 강아지 같은 눈을 하고서 나를 바라본다. 빵을 씹는 입은 멈추지 않는다. 손을 뻗어 입 근처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털어주려다 말고 대신 내 입 근처를 가리켰다. 알아들은 모양인지 입가를 쓱 닦아낸다.

 

 

 

“나 담배 안 피워.”

 

 

 

다시 한번 말을 꺼내려는데 이기광이 먼저 말을 꺼낸다. 놀란 날 두고 아무렇지 않게 빨대를 물어 사과주스를 마신다. 너 전에 분리수거장에서 담배……. 이기광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아, 하더니 웃는다.

 

 

 

“가지고만 다녀. 피운 적은 없고.”

 

“왜?”

 

“쎄보이려고.”

 

 

 

제법 진지한 얼굴로 말하더니 얼마 안 가 혼자 웃음을 터뜨린다. 책상 위에 놓인 빵 봉지가 손 끝에서 바스락거린다.

 

 

 

“양요섭 때문에?”

 

 

 

그저 농담처럼 들리길 바랐는데 내 말투도, 주제도 단순하게 치부할 수 없다는 걸 내뱉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까보다 놀란 얼굴이, 그리고 아까보다 가라앉은 눈이 나를 향한다. 어떻게 알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걸 안다. 양요섭과 이기광 사이에 무언가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직접 내 앞에서 보여줬으니까.

 

 

 

“양요섭이랑 같이 연습생이었던 거지? 근데 양요섭은 그만 둔 거고.”

 

“…….”

 

“양요섭이 담배 피우니까 그거 말리려고 네가 피우는 척 하는 거야?”

 

“두준아.”

 

 

 

이기광은 내 이름을 불렀다. 그게 그만하라는 말보다 더 효과가 있을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우리 사이에 미묘한 정적이 흐른다. 이기광은 생각에 잠기면 꼭 눈을 반쯤 감는다. 그리곤 두툼한 아랫입술을 안으로 말아 입술로 깨문다. 그런 이기광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이기광이 무슨 말이라도 꺼내길 기다렸다. 열어둔 창문 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이기광의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그럴 상황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손을 뻗어 뺨을 간지럽히는 이기광의 머리칼을 정리해줬다. 그제야 사색에 잠겨있던 이기광이 움찔 몸을 떨며 나를 바라본다. 어떻게 알았어. 긴 침묵 끝에 내어놓은 이기광의 말은 물음보다는 한탄에 가깝게 들렸다. 알면 안 되는 걸 들킨 사람처럼. 그게 못내 서운했다.

 

 

 

“그냥 딱 보면 알지.”

 

“요섭이한테도 말했어?”

 

“아니.”

 

“두준아, 네가 언제 전학을 왔더라.”

 

“작년 12월에 이사와서 이번 학기부터 다녔지.”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성실히 답했다. 이기광은 실없는 말을 던질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우리 사이에 끼어들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해준 게 차라리 고마웠다.

 

 

 

“축제가 11월이었으니까 요섭이 노래 부르는 거 들어본 적 없겠네?”

 

 

 

직접 들어보진 않았지만 알기는 했다. 다른 애들이 찍어놓은 영상을 본 적은 있으니까. 별로 좋지 않은 음질을 뚫고 나오는 목소리에, 그 조그만 체구에서 어떻게 그렇게 쩌렁쩌렁한 소리가 나오는지 신기하기까지 했다. 고개를 끄덕이자 이기광이 슬몃 입꼬리를 당겨 웃는다. 빈 빵 껍질이 굴러다니는 책상 어딘가를 응시하며 웃는 이기광은 또 다시 나를 옆에두고 내가 아닌 양요섭을 생각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패배감이 들었다.

 

요섭이는 노래를 진짜 잘해. 내가 연습생 생활 하면서 만난 애 중에 제일 잘해. 우리가 작년 3월에 내가 지금 있는 소속사에서 만났거든. 내가 먼저 있고 요섭이가 오디션 봐서 들어왔어. 실장님이 야, 기광아, 우리 그룹 만들면 메인보컬은 얘가 해야되겠다, 이러는 거야. 사실 처음엔 재수 없었다? 나랑 친한 연습생 중에 노래 잘하는 애들도 많았거든. 근데 들어오자마자 그런 소리를 들으니까 반감부터 드는 거야. 뭔지 알지. 그래서 처음엔 틱틱 댔어. 말 걸어도 잘 대답도 안 하고 일부러 피하고 그랬다? 그랬더니 어느 날은 나를 딱 붙잡고 그러는 거야. 너 내가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딴 식으로 행동하냐고. 근데 네가 노래 잘해서 짜증나는 거라고 어떻게 말하겠어. 그래서 입 꾹 다물고 아무 말 안 했더니 양요섭이 그러더라. 나는 너 마음에 들어. 그러니까 나한테 직접 말하지도 못할 이유로 나 피하는 거 하지 마. 그 뒤로는 뭐 그냥 친해졌어. 사실 그 말이 맞잖아. 말하지도 못할 이유로 일방적으로 피하는 거 나쁜 거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요섭이가 노래하는 걸 들어버렸거든. 와, 실장님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더라고. 그래서 친해졌어. 학교도 같더라고.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맨날 같이 다녔어. 그러다가 9월쯤이었나, 대표님이 남자 그룹 하나 만들 생각이라고 하셨어. 거기 후보군에 여러 명 들어있었는데 나랑 요섭이도 있었거든. 그래서 그냥 신났어. 요섭이랑 같이 데뷔할 수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어.

 

이기광이 말을 잠시 멈췄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제 친구와 복도를 내달리는 양요섭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이기광의 시선이 열린 앞문으로 향한다. 열린 문틈 사이로 양요섭이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달이 지날 때마다 한명씩 한명씩 데뷔조가 좁혀졌어. 사장님은 여섯 명 정도를 생각하고 계셨던 거 같은데 12월까지 열 명이 남은 거야.”

 

“너랑 양요섭도 거기 있었고?”

 

“어. 근데 12월 월말평가를 평소보다 너무 못 본 거야. 목도 많이 상하고.”

 

“그래서 양요섭은 데뷔조에서……”

 

“떨어졌지. 난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어. 실장님도 요섭이 좋아하니까 데뷔조에서는 떨어졌지만 다른 기회가 충분히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요섭인 그게 아니었나봐.”

 

 

 

이기광은 그게 처음으로 들어간 소속사였지만 양요섭은 아니었다고 했다. 데뷔 직전까지 가서 무산된 적이 두어 번 더 있었다고. 월말평가가 끝난 그 겨울밤. 이기광은 괜찮을 거라고 다음에 기회가 또 있을 거라며 뻔한 위로를 건넸고, 양요섭은 허탈하게 웃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만두겠다며 이기광과 연락을 일방적으로 끊었다고 했다.

 

 

 

“나 아는 게 요섭이 번호밖에 없었거든. 근데 내 번호를 차단했나봐. 아무리 연락해도 받지를 않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개학하기를 기다렸어. 학교에선 싫어도 만날 수밖에 없으니까.”

 

 

 

5교시 시작 종이 울렸다. 소란스럽던 아이들이 다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나는 선생님이 들어올 때까지, 보다 못한 선생님이 내게 지적을 할 때까지 이기광 쪽으로 몸을 돌린 상태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둘 사이를 몰랐기에 들었던 서운함과 패배감이, 둘 사이를 알게 되자 더 짙어졌다. 지금의 두 사람은 누구보다도 멀어졌는데 이상하게 둘 사이를 파고들 틈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나는 평생 끼어들지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을 자각하자 가슴이 이상하게 울렁였다.

 

 

 

 

 

봄이 지나고 여름 방학이 되자 이기광과 연락은 거의 되지 않았다. 내가 한 문자를 뒤늦게 보고 미안하다고 하는 게 안쓰러워 내가 아예 문자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학원을 다니며 점심은 거의 밖에서 사먹게 됐는데, 점심을 먹을 때마다 이기광의 생각을 했다. 끼니는 거르지 않는지 잠은 제대로 자고 있는 건지. 햄버거를 한 입 베어물 때마다 매점빵을 베어물던 이기광을 생각하고, 콜라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사과 주스를 마시던 이기광을 생각했다.

 

 

 

“오, 윤두.”

 

“어?”

 

“혼자면 앉아도 되냐? 자리 빈 데가 없네.”

 

 

 

트레이를 들고 있는 건 분명 양요섭이었다. 머리를 샛노랗게 염색해서 못 알아볼 뻔했다. 나는 그러라며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에 올려진 트레이를 내 쪽으로 당겼다. 땀에 젖은 머리를 넘기며 양요섭이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더워 죽겠다.

 

 

 

“염색했네?”

 

“어. 탈색하는데 머리 다 뽑힐 뻔.”

 

“잘 어울리네.”

 

“오, 진짜? 내 친구들은 다 구리다고 난리던데 역시 너밖에 없다.”

 

 

 

킬킬 웃으며 햄버거의 포장을 뜯기 시작하는 양요섭이 새삼 낯설었다. 감자튀김을 집어먹으며 내 가방을 힐끗거리는 걸 보고 학원, 하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넌 여기 웬일이야?”

 

“아, 나도 학원다녀. 여기 3층.”

 

 

 

검지손가락을 들고 천장을 가리킨다. 여기 3층에 무슨 학원이 있었더라. 눈을 굴리며 생각에 잠겨있는 걸 봤는지 피식 웃는다.

 

 

 

“보컬 트레이닝 학원.”

 

“보컬 트레이닝?”

 

“어. 나 연습생 됐거든. 근데 거기 회사 규모가 그렇게 크지가 않아서 연습생들 보컬 트레이닝 시킬 트레이닝룸이 없어, 아직. 그래서 여기 다녀. 대표님이 아는 동생이 하는 학원이래.”

 

 

 

갑자기 엄청난 이야기를 듣게 됐다. 눈을 깜빡이며 양요섭을 바라봤다. 양요섭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향해 고개를 갸웃한다. 수많은 물음이 머리 속에서 충돌한다.

 

 

 

“너……”

 

“어, 왜?”

 

 

 

이기광은 그거 알아?

 

 

 

“……그럼 담배는 끊었냐?”

 

“어우, 당연하지. 진작 끊었어. 근데 나 진짜 많이 안 피웠다. 진짜 열 번도 안 됨. 뭐가 중독성이 있다는 건지 모르겠던데. 나 끊는 것도 진짜 쉽게 끊었어.”

 

“다행이네.”

 

“여기 보컬쌤 중 한 명이 나 예전 소속사에서 트레이닝 해줬던 형이거든. 너 노래 몇 달 쉬었다고 목소리 왜 이렇게 탁해졌냐고 하던데 담배 피웠다고 하면 죽겠지?”

 

“당연하지. 끊었다며? 그냥 자수하지 말고 무덤까지 안고 가라.”

 

“어차피 아는 사람도 몇 명 없었어. 나랑 너랑……”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이기광의 이름이 튀어나올까봐. 손가락을 접어가며 생각에 잠겼던 양요섭은 자연스럽게 콜라를 마시며 말 끝을 흐렸다. 이기광의 이름을 언급하기 싫어서 그런 건지, 그냥 어쩌다보니 대화가 끊긴 건지 알지 못하게. 둘 중에 어떤 건지 알고 싶었지만 양요섭은 아무렇지 않게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거기에 대고 또 누가 아는 거냐고 묻기도 애매해서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어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당장 이기광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다.

 

 

 

“연습생 치곤 꽤 널널한 거 같다?”

 

“야, 오늘 일주일에 한 번 쉬는 날인데 자발적으로 트레이닝 받으러 온 거야. 완전 대견하지 않냐.”

 

 

 

양요섭과 이기광의 이야기를 듣게 된 그 날 이후로 이기광과 양요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이기광은 점점 바빠졌고 분리수거장에 오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어차피 이기광이 거기에 오는 목적은 양요섭이 담배를 피우는 척을 하는 자길 목격하게 하는 거였고, 양요섭이 담배를 못 피우게 하는 거였으니까. 이기광은 알까. 양요섭이 담배를 끊었다는 걸, 다시 데뷔를 꿈꾸고 있다는 걸. 자기가 원하던 게 모두 이뤄졌다는 걸.

 

 

 

“넌 이제 집에 가?”

 

“가기 전에 서점 좀 들렀다가 가려고. 넌?”

 

“난 연습 좀만 더 하고 저녁쯤에 같이 연습하는 애들이랑 저녁 먹고 헤어질 것 같아.”

 

“그래, 수고해.”

 

 

 

양요섭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방을 집어들었다. 맥도날드를 나서자마자 훅 끼쳐오는 더위에 인상을 찌푸리며 손차양을 만드는데 양요섭이 불쑥 윤두, 하고 날 부른다.

 

 

 

“나 차단 풀었거든.”

 

 

 

무슨 소리냐고 되묻기에는 너무도 내가 아는 이야기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양요섭을 바라봤다. 그 때처럼 양요섭 뒤로 비치는 햇빛이 너무 강렬해서 양요섭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전해줄 수 있어?”

 

 

 

이기광은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직접 연락하면 되지 않아?”

 

“음, 이기광도 어지간히 빡쳤나봐. 나 차단했던데.”

 

 

 

양요섭이 머쓱한 듯 웃었다. 이제까지 눈치를 본 게 무색하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양요섭의 입에서 이기광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나는 뒤늦게 전해주겠다고 답했다.

 

 

 

“고마워.”

 

“응.”

 

“잘 가.”

 

“너도.”

 

 

 

후련한 듯 뒤돌아 가는 양요섭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나 역시 뒤를 돌았다. 걸어가며 이기광에게 짤막한 문자를 남겼다. 양요섭이 연락해달래. 답장은 오지 않았다.

 

방학이 거의 끝나갈 때쯤 이기광에게서 연락이 왔다. 소속사 사정 때문에 전학을 갈 것 같다고 했다. 아마 개학을 하면 못 볼 것 같다고,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지금은 너무 바빠서 만나지는 못하고 겨울 방학이 되면 한 번 보자고 했다. 그저 알겠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전화가 끊어지기 전에 급하게 힘내라는 말을 덧붙이자 이기광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웃음을 그친 이기광이 작고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두준아.

 

2학기가 시작 됐다. 이기광은 없었지만 양요섭은 있었다. 그 후에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여전히 양요섭은 복도를 누비며 대걸레를 마이크 삼아 노래를 부르고 다니고, 이기광은 연습이 힘들어 죽겠다는 한탄 문자를 종종 보내왔다. 금요일마다 양요섭을 분리수거장에서 마주쳤다. 연습은 할 만 하냐는 물음에 울상을 하고 다 때려칠까 고민 중이라는 이야길 하지만 우울감에 젖어 담배를 태우던 그 때보단 지금이 행복하다는 게 눈에 보여 그냥 웃고 말았다.

 

겨울 방학이 되자 두 사람 보다 내가 더 바빠졌다. 고3이 되고 말았으니까. 만나자는 이기광의 연락에도 학원 때문에 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 사과만 했다. 결국 이기광이 내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내 학원까지 찾아오게 됐다. 새빨간 목도리를 두른 이기광이 입술을 비죽이며 투덜거렸다.

 

 

 

“얼굴 보기 힘들다?”

 

“나라고 좋아서 이러겠냐.”

 

 

 

한숨처럼 내뱉은 말에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집은 안 가? 버스 타고 가야 돼. 몇 번? 501번. 나는 400번. 어차피 같은 정류장이네. 거기까지 같이 가자. 이기광과 함께 눈이 조금 녹아 미끄러운 길을 걸었다. 서로 오가는 대화는 없었지만 우린 항상 그랬다. 둘 다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편은 아니라 그냥 아무 말 없이 같이 있기만 하던 때가 더 길었다. 겨울이라 해가 일찍 진 탓인지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닌데도 거리가 깜깜했다.

 

 

 

“고맙다는 말 하고 싶었어.”

 

“나한테?”

 

“어. 여러모로.”

 

“뭐가 고마워.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나 맨날 챙겨줬잖아. 그것도 고맙고.”

 

“안 그래도 마른 애가 밥도 못 먹고 다니니까 안쓰러워서 그런 거지, 뭐.”

 

“요섭이랑 연락 다시 된 것도 네 덕이잖아.”

 

 

 

가로등 불빛 덕에 이기광의 얼굴이 언뜻 보였다. 티 없이 맑게 웃고 있는 모습에 모든 묻고 싶었던 말들이 가슴에서 사르르 녹아 사라진다. 연락됐다니 다행이다. 그 말만 남기고 정류장에 나란히 섰다. 조용하고 깜깜하고 추운 겨울밤. 400번 버스가 멀리서 오는 게 보였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는데 불쑥 이기광의 손이 내 코트 주머니로 들어온다. 뭔가 싶어 바라보니 씩 웃으며 버스에 얼른 타라며 등을 떠민다. 엉겁결에 버스에 올라타 카드까지 찍고 일부러 오른쪽 자리를 찾아 앉았다. 창문 너머로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이기광이 보였다. 새로 탄 사람은 나밖에 없었기에 버스는 얼마 안 가 출발했고 나 역시 이기광에게 흔들어주던 손을 내려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딱딱한 무언가 잡혔다. 엠피쓰리. 그리고 꾸깃꾸깃한 포스트잇도 함께였다.

 

 

 

전에 니가 좋다고 했던 곡이랑 내가 좋아하는 곡 몇 개 더 넣었어 ^^

 

 

 

잘 쓰지 않아 가방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이어폰을 꺼내들었다. 잔뜩 엉킨 이어폰줄을 천천히, 조금씩 풀어내고 엠피쓰리에 꽂았다. 내가 좋다고 했던 곡이 무엇이었는지 사실 기억은 잘 나지 않았지만 아무 곡이나 재생시키고 창가에 머리를 기댔다. 눈을 감고 이기광을 생각했다. 누가 보면 허무하게 끝나버린 짝사랑이었지만, 내게 남는 것은 하나 없었지만, 그래도 내게는 이루어진 사랑보다 더 만족스러웠다.

 

 

 

 

 

내 또래의 여자들 틈에 끼어있으려니 민망했다. 플랜카드를 들고 삼삼오오 모여있는 여자들 무리에서 나만 동떨어져 발을 동동 굴렀다. 와서 연락하면 된다더니 아직도 둘 다 답이 없다. 그렇게 뻘쭘하게 공연장 입구 근처를 서성이는데 안경을 낀 여자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네가 두준이니? 요섭이랑 기광이 친구? 나는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여자는 따라오라며 공연장 뒷문, 스태프들 전용 출입로로 향했다. 친구도 아이돌 했어도 됐겠다. 훤칠하고 잘생겼네. 여자의 말이 그저 형식적으로 건네는 칭찬인지 진심인지 알 길이 없어 그냥 허허 웃고 말았다. 정신없는 스태프들 사이를 지나쳐 대기실 앞에 선 여자가 문을 열고 고개만 들이밀어 요섭아, 기광아, 하고 둘을 불렀다.

 

풉. 요란하게 탈색한 염색 머리와 진한 스모키 화장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먼저 터져나왔다. 긴장돼서 죽을 것 같다며 호들갑을 떨던 둘이 도끼눈을 하고 나를 노려봤다. 웃어? 웃어? 양요섭이 아프지 않게 배를 콩콩 때려왔고 이기광은 이내 풀이 죽어 이상하냐며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야, 만지지 마. 너 코디 누나한테 죽고 싶냐. 양요섭이 이기광의 손을 잡아 내려줬다.

 

 

 

“이러니까 진짜 아이돌 같네.”

 

“근데 왜 웃었냐.”

 

“아니, 솔직히 좀 웃기긴 해. 아이돌 아무나 하는 거 아니네.”

 

 

 

의상에 붙은 반짝이 장식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리자 양요섭은 내 옆구리를 찔렀다. 우리 노래 좀 이따가 나온대, 꼭 들어. 주위에 홍보 막 돌려. 알겠냐.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이기광의 머리에 묻은 먼지를 떼어냈다.

 

 

 

“야, 근데 너넨 데뷔도 안 한 애들이 무슨 팬들이 그렇게 많냐. 깜짝 놀랐네.”

 

“팬들 많아?”

 

“밖에 사람들 많던데. 다 너희 보러 온 거 아니야? 양요섭 네 이름 써진 플랜카드도 봤어.”

 

“헐, 대박. 진짜로?”

 

 

 

갑자기 긴장되는 것 같다며 양요섭이 손을 모아 기도하는 시늉을 했다. 덕분에 아이돌 쇼케이스도 다 와보고 고맙다, 야. 심호흡을 하는 이기광을 보며 툭 내뱉자 긴장이 잔뜩 서려있던 얼굴은 어디 가고 배시시 눈을 접어 웃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두준이 너는 초대해야지.

 

이기광이 내게 찾아왔던 그 날에서 이틀이 더 지나고 이기광은 양요섭네 소속사로 옮겼다고 했다. 원래 있던 소속사에서 키 크고 몸 좋은 남자 연습생들만 골라서 데뷔를 시켰고, 향후 몇 년은 남자 아이돌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 때문에 양요섭의 소개로 회사를 옮겼단다. 전 소속사에서 연습생 경력이 길어 운이 좋게 데뷔조에 바로 합류했고 3개월 간의 데뷔 준비 끝에 데뷔가 결정됐다고 했다. 양요섭은 다짜고짜 연락을 해서는 ‘너 이번주 토요일에 뭐해? 약속 있어? 스케줄 있어? 있어도 빼. 너 우리 보러 와, 꼭 보러 와.’ 하고 말했었다. 이기광이 ‘야아,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두준아, 우리 데뷔해. 이번주 토요일에 쇼케이스 한대. 초대석에 네 이름 올려놨으니까 꼭 와!’ 하고 덧붙인 덕에 오늘 오후에 있던 학원 수업을 내일로 미뤘다. 선생님한테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안 왔으면 진짜 서운했을 것 같은데 와줘서 고마워.”

 

“너네 때문에 나 내일 학원 가야 돼.”

 

“헐. 되게 빡빡하다. 그냥 하루쯤은 빼주지.”

 

“그러니까 잘하고 와.”

 

 

 

어이가 없다는 듯 투덜대던 양요섭이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돌아봤다. 그리고 뒤늦게 말했다. 야, 당연하지. 너 일요일 빼먹은 값은 한다, 내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덩치가 큰 남자 매니저가 다가와 양요섭과 이기광을 데리고 갔고 양요섭과 이기광은 끌려가면서도 뭐가 좋은지 실실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를 데리고 왔던 여자가 초대석으로 안내했다. 관객석으로 가는 길 복도는 커다란 통유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공연장 앞 길가에는 커다란 벚나무가 즐비해 있었고, 적당한 바람이 불 때마다 벚꽃잎이 살랑살랑 춤을 추듯 떨어져 거리를 물들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재작년 봄. 내가 두 사람을 처음 만난 작년 봄. 그리고 이번 봄. 총 세 번의 봄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만물이 싹트는 시작의 계절에서 우리는 조금씩 아팠고 딱 그만큼 자랐다.

 

 

 

세 번의 봄, 끝.

분리수거장은 학교 본관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쓰지 않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구관 건물을 끼고 돌면 담벼락과 건물 사이의 좁은 틈이 보인다. 햇빛이 들지 않아 서늘하다 못해 이끼가 잔뜩 끼어있는 그곳을 지나면 의외로 넓은 분리수거장이 나타난다. 감기몸살로 조퇴한, 원래 분리수거 담당인 경식이라면 우리 반에서 제일 말랐으니 여기까지 오는 데에 문제가 없겠지만 나는 경식이와 달리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평균의 몸집을 가진 고등학생이었다. 이 틈을 지나가는 게 무척이나 버겁다는 뜻이다.

 

담벼락에서 겨우 몸을 꺼냈다. 이끼 때문에 교복이 축축해져 짜증이 밀려왔다. 한숨을 쉬며 틈에 걸린 재활용품 바구니를 잡아끄는데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이제는 쓰지 않는 책걸상들이 어지럽게 쌓여있는 곳에 그 애가 있었다. 낙서로 가득한 책상 위에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 다급히 담배를 무는, 이기광이.

 

 

 

“……깜짝이야.”

 

 

 

나와 눈이 마주친 이기광은 눈을 깜빡이다 김이 샜다는 듯 한숨을 쉬며 물고 있던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넣어 입에서 빼냈다. 그리고 상체를 숙여 고개를 빼고 내 뒤를 보려는 것처럼 눈을 굴리며 물었다.

 

 

 

“혹시 누구 와?”

 

 

 

반사적으로 담벼락 사이를 살폈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지나가지 않았다. 다시 이기광을 보며 고개를 가로젓자 이기광이 어깨를 으쓱한다. 손에 끼고 있던 담배를 교복 가슴팍에 달린 주머니에 집어넣은 이기광은 책상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나는 분리수거함 앞에 서서 분리수거를 시작했다. 이대로 여길 벗어날 거라고 생각했던 이기광은 내 옆으로 다가와 아무 말 없이 분리수거를 돕기 시작했다.

 

 

 

“오늘은 왜 일찍 안 갔어?”

 

 

 

마지막으로 페트병을 던져넣고 골인, 하며 웃는 이기광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이기광은 책상 위에 던져두었던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속삭이듯 답한다.

 

 

 

“화요일이랑 금요일은 늦게 가도 되는 날이야.”

 

 

 

이기광이 대형 기획사의 연습생이라는 건 나만 아는 사실이었다. 반장이라는 직책 때문에 알게 된 정보였다. 우리 반에는 보충수업을 하지 않고 하교하는 예체능 학생들이 꽤 많았고, 이기광도 그 중 하나였다. 그 애들이 아닌 다른 애들이 그 핑계로 땡땡이를 치는 걸 막기 위해 담임은 내게 예체능 학생들의 명단을 넘겨줬었다. 명단에는 그들이 어떤 예체능을 하는지 적혀있었지만 이기광의 이름이 적힌 옆 칸은 공백이었다. 이기광은요? 묻는 내게 담임은 관심 없다는 듯이 턱을 괴고 마우스를 딸깍이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 뭐 아이돌인가 뭐시긴가 한다고 하더라. 무슨 회사 들어가서 연습하고 있다던데. 웬만하면 아는 사람 적게 해달라더라.

 

평소 조용하고 말이 없는 이기광은 늘 혼자였다. 정확히는 혼자 잠을 자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도 꾸벅꾸벅 졸다 선생님들의 불호령을 듣는 일이 허다했고, 급식시간에도 급식을 먹는 대신 엎드려 자는 걸 선택할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친구가 없는 건 아닌 듯 했다. 어쩌다 급식실에서 마주하면 우리 반, 혹은 다른 반 아이들과 섞여 밥을 먹고 있었으니까. 이기광은 내가 만난 또래 아이들 중 가장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같은 반이 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제대로 대화를 해본 적도 없었다. 말을 걸면 대답은 잘 해줄 것 같지만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잘 가.”

 

“응. 보충 수업 열심히 들어.”

 

 

 

구관 건물 앞에서 왼쪽으로 가면 후문이, 오른쪽으로 가면 본관이 나왔다. 갈림길에서 헤어지며 나도 모르게 인사를 건네자 의외로 이기광은 아무렇지 않게 친근한 대답을 해왔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이기광이 후문을 나갈 때까지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보충 수업을 알리는 예비종이 치는 걸 듣고 나서야 부랴부랴 뛰기 시작했다.

 

그 날 이후부터 이기광이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고 매점에서 사과 주스 하나를 사려다가도 오늘 점심은 거르고 잠을 잘 거라고 제 옆자리 승제에게 말하던 게 문득 떠올랐다. 매점을 나와 교실로 가는 길에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에는 빵과 주스가 얌전히 들려있었다. 급식이 마음에 안 들었냐? 빵을 들고 교실로 들어가자 나를 보던 녀석들이 한마디씩 던진다. 나는 그냥 웃는 걸로 대꾸를 대신하고 교실 구석에서 정신 없이 잠에 빠져있는 녀석에게로 다가갔다. 남고의 점심시간이 으레 그렇듯 아이들은 신이 나서 종이 뭉치와 빗자루로 야구를 하거나 복도에서 슬리퍼로 축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빈 녀석의 앞자리에 앉아 동그란 정수리를 내려다봤다.

 

이기광은 참 작았다. 얼굴도, 키도, 체구도. 그러면서도 눈코입은 커다랗고 또렷해서 어떻게 이 작은 얼굴에 그렇게 큰 이목구비가 다 들어가나 싶을 정도였다. 처음엔 저렇게 조용한데 연예인을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요 며칠 이기광을 지켜본 결과 그냥 가만두고 썩히기에는 아까운 얼굴이긴 했다. 그래도 춤을 추고 노래하는 이기광은 상상이 잘 안 가는데.

 

야구를 하던 녀석이 뒤로 주춤주춤 무르다가 이기광의 의자를 건드렸다. 이기광이 으응, 소리를 내며 움찔거리자 녀석은 이기광에게 들리지도 않을 미안하단 소리를 건네고는 다시 야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잠에서 깬 듯 몸을 움찔대던 이기광이 느릿느릿 몸을 감싸던 담요를 걷어내고 고개를 들었다. 눈을 깜빡이는 모양새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시골에서 키우던 진돗개 새끼들을 연상케 했다. 어두운 곳에 있다가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햇빛에 적응하지 못하고 꾸물꾸물 눈을 끔뻑이던 새끼 강아지들. 그 때의 나는 강아지들이 귀여워 손을 뻗어 쓰다듬었지만 지금의 이기광에게는 차마 그러지 못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찡그리던 이기광이 나를 보더니 놀란 듯 고개를 살짝 뒤로 뺐다. 그 반응에 머쓱한 기분이 들어 손에 들고 있던 빵을 내려놓기가 망설여졌다.

 

 

 

“점심시간 끝났어?”

 

“아니, 아직 십 분 정도 남았어.”

 

“그렇구나.”

 

“배 안 고파?”

 

“조금.”

 

“……이거 먹을래?”

 

 

 

손에 쥐고 있던 빵을 책상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자 이기광의 눈이 크게 뜨인다. 그러더니 웃으며 빵 포장을 까기 시작한다. 고마워. 빵을 조금씩 떼어먹기 시작하는 이기광을 보다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주스까지 내려놓자 이기광이 푸하하 웃음을 터뜨린다. 나 주려고 산 거야? 그렇게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냥 고맙다는 말만 할 뿐이다.

 

 

 

“오늘도 늦게 가? 화요일이잖아.”

 

“오늘은 일찍 가서 연습실에서 좀 자려고.”

 

“항상 거기서 시간 때우다 가는 거 아니었어?”

 

“분리수거장? 거긴 금요일만.”

 

 

 

손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털어내며 명랑하게 대답했다. 왜 화요일은 안 가면서 금요일만 가는 건지. 왜 분리수거장에 가는 건지. 묻고 싶은 게 한가득이었지만 정작 입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그 날 분리수거장에서 가진 만남은 굉장히 짧았고 그리 특별하지도 않았다. 이기광에게 내가 갖는 관심은 일방적인 것이었고,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궁금한 걸 전부 묻는 게 무례한 일이라는 것 역시 잘 알았다. 나는 대신 이기광을 살폈다. 혹시 내가 이기광한테 궁금한 게 많은 것처럼 이기광 역시 내게 묻고 싶은 게 많지 않을까. 하지만 이기광은 어깨를 돌리며 찌뿌둥한 몸을 풀고 있을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5교시를 알리는 예비종이 울리고 일어날 타이밍을 재던 나는 그걸 핑계로 삼아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기광은 일어나는 나를 따라 고개를 치켜들더니 웃었다. 잘 먹었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 한가운데가 간질간질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 낯설어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 자리를 도망치듯 벗어났다.

 

청소시간이 되자마자 학교가 한바탕 시끄러워졌다. 어떻게든 청소를 하지 않으려 애를 쓰는 아이들을 달래 제 몫의 청소는 하게 만드는 게 내 역할이었기에 나는 얼른 일어나 창문을 여는 것부터 시작했다. 복도 쪽 창문을 열자 누군가가 학교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복도 끝에서 달려오는 게 보였다. 4반 양요섭. 외모의 귀여움과 비례하는 친화력으로 학교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녀석이었다. 겨울에 이 곳에 와서 아무도 모르던 나에게 같은 반 아이들보다 먼저 말을 걸어준 녀석이기도 했다. 언제나 활발하고 지칠 줄 모르는 양요섭을 신기하게 바라보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고개를 돌리자 이기광이 서있었다. 나도 모르게 바짝 굳었는데 이기광은 나른한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나 이제 가. 청소 열심히 해.”

 

“어, 너도 연습……”

 

 

 

연습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고 주위를 둘러봤다. 혹시나 누가 들었을까 걱정을 하는 날 알아차렸는지 이기광은 웃으며 괜찮다는 듯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곤 뒷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창문 너머로 쌩하니 양요섭이 달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대로 가면 나가는 이기광과 부딪힐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는데 다행히도 양요섭이 이기광을 봤는지 뜀박질을 멈추었다. 이기광은 놀랐는지 주춤 뒤로 물러나더니 양요섭을 바라봤다. 내가 아는 양요섭이라면 이기광을 붙잡고 괜찮냐며 온갖 호들갑을 떨고는 같이 달리던 친구의 탓을 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양요섭의 시끄러운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양요섭과 이기광은 둘 다 멀거니 서서 서로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미안.”

 

 

 

양요섭은 매우 낮은 목소리로 담백하게 사과했다. 이기광은 괜찮다는 말도 없이 양요섭을 바라봤고 양요섭은 이기광의 대답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그대로 뒤를 돌았다. 무언가 이상했다. 단순히 양요섭이 난리를 피우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기광이 돌아서는 양요섭의 등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요섭아, 하고 불렀기 때문이었고, 그 부름에 잠시 걸음을 멈춘 양요섭이 이내 이기광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걸어갔기 때문이었다.

 

내가 알기론 양요섭은 누군가를 싫어할 인물이 아니었고, 이기광은 누군가에게 미움 받을 인물이 아니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양요섭 대신 이기광의 눈치를 보았지만 이기광 역시 얼마 안 가 그 자리를 떠났다. 이기광에게 묻고 싶지만, 물을 수 없는 질문이 또 하나 생겨났다.

 

 

 

 

 

좀처럼 자리에서 떨어지지 않는 이기광이었기에 같이 있을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았다. 나는 결국 경식이에게 담당 청소를 바꿔줄 수 있냐 물었다. 경식이는 내 제안에 놀란 듯 했다. 단지 왜소하다는 이유로 분리수거 담당이 된 경식이는 내가 마음을 고쳐먹기라도 할까봐 얼른 그러자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 봄이니까 갈 만 하지, 여름 되면 엄청 더울텐데. 경식이가 내게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다시 바꾸자는 뜻은 아니고. 황급히 덧붙이는 말에 나는 별 대꾸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오늘부터 바꾸는 거지? 우리 반 분리수거일은 수요일이랑 금요일이야.”

 

“반마다 분리수거일이 달라?”

 

“응. 일주일에 두 번만 비우는 건데 다들 한꺼번에 버리면 너무 많아져서. 우리는 수요일이랑 금요일, 옆반은 화요일이랑 목요일. 뭐 이런 식으로.”

 

“아, 그럼 하루쯤은 다른 반이랑 겹치겠네.”

 

“어. 1반이랑 수요일 겹치고 4반이랑 금요일 겹쳐.”

 

 

 

근데 왜 갑자기 바꿔달라는 거야? 경식이의 물음에 나는 말을 얼버무렸다.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이기광과 둘만 있을 시간을 갖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마 평생을 비밀로 해야 할 지 몰랐다.

 

 

 

 

 

청소시간이 되자마자 평소보다 빠르게 교실의 모든 창문을 열고 교실을 둘러보았다. 이미 나갔는지 이기광은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졌다. 오늘은 금요일이었으니까. 나는 얼른 분리수거 바구니를 들고 교실을 나섰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분이 좋다는 거다. 그냥 그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빠르게 운동장을 가로질러 구관 쪽으로 향했다. 담벼락에 몸을 욱여넣고 천천히 걸음을 뗐다. 그 때처럼 책상에 앉아있을 이기광을 생각하며. 오른발을 담벼락 밖으로 내미려는데 익숙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너 정신 나갔냐?”

 

“내가 뭘.”

 

“어떤 정신 나간 놈이 가수 준비하면서 담배를 피우냐고! 너 돌았어?”

 

“그럼 넌? 넌 왜 피우는데?”

 

 

 

알 수 없는 대화가 오간다. 하지만 목청을 높이고 있는 목소리 중 하나가 이기광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본능적으로 내민 발을 다시 끌어왔다. 나가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다. 다른 한 명의 목소리가 묘하게 익숙했다. 누굴까, 누구였지. 머리를 굴렸다. 이기광과 싸울 만한 사람이 누가 있더라.

 

 

 

“……너 나랑 장난해?”

 

 

 

양요섭.

 

 

 

“너 진짜 내가 우습구나.”

 

 

 

양요섭이다.

 

 

 

“무슨 말이야? 내가 널 우습게 본다니?”

 

“씨발…….”

 

“무슨 뜻이냐고!”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나 이제 연습생 아니라는 거. 네 눈앞에서 월말평가 말아먹고 쫓겨났는데 뭐? 나는 왜 피우냐고? 씨발, 지금 나랑 장난해?”

 

 

 

저게 다 무슨 말일까. 알 수가 없다.

 

 

 

“이 세상에 소속사가 거기 하나야? 거기서 쫓겨나면 가수 못하는 거냐고!”

 

“네가 뭘 알아. 쫓겨나본 적도 없으면서.”

 

“그래서 가수 안 하겠다고? 그럼 너 뭐할 건데?”

 

“……내가 뭘 하든 너랑 무슨 상관이야. 나한테서 신경 꺼.”

 

 

 

싸늘한 목소리. 아니, 그보다는 싸늘하게 들리도록 애를 쓰는 목소리다. 그 안쓰러운 목소리에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더 이상 대화를 훔쳐들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비좁은 틈에서 몸을 돌리는데 그와 동시에 둔탁한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황급히 뛰쳐나가보니 양요섭의 멱살을 잡아챈 이기광이 양요섭을 넘어뜨리고 있었다. 양요섭의 배 위로 올라탄 이기광이 양요섭의 뺨에 주먹을 날렸다. 힘 없이 돌아가는 양요섭의 얼굴에 대고 다시금 주먹을 치켜드려는 모습을 보고 얼른 달려가 이기광을 붙들었다. 어깨 아래로 팔을 집어넣어 떼어내니 버둥거리다 이내 씩씩 숨만 몰아쉰다.

 

 

 

“너 진짜 왜 그래?”

 

“…….”

 

“양요섭, 너 진짜…….”

 

 

 

이기광을 붙들고 있는 내 팔이 덜덜 떨린다.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는 이기광 때문이었다. 양요섭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이기광은 그런 양요섭을 보며 울고 있고, 나는 그런 이기광을 꼭 붙들고 있다. 명백하게 둘 사이에 끼어있지만 두 사람에게 나는 보이지 않는 것만 같다. 이기광의 시선은 오롯이 양요섭에게만 향해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 양요섭이 몸을 일으킨다. 입가를 닦아내고 이 쪽은 바라보지 않은 채 돌아서서 걸어간다. 나는 반사적으로 이기광을 내려다봤다. 화를 낼까 아니면 더 크게 울음을 터뜨릴까.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이기광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제야 잡고 있던 팔에 힘을 풀고 이기광을 놔주었다.

 

무슨 일이야? 양요섭이랑 무슨 사이야? 왜 싸우는 거야? 넌 왜 우는 거야? 수 많은 물음을 삼켜내고 나는 무슨 연유인지 벌어진 채로 저 멀리 날아간 이기광의 가방을 집어들었다. 가방 근처에 구겨진 담배갑이 나뒹굴고 있었다. 전에 이기광이 들고 있었던 것과 같은 담배였다. 이기광의 것이겠거니 싶어 담배갑을 가방에 넣어주었다. 아무 말 없이 이기광의 옆에 가방을 놓아주었다. 이기광은 한참을 그렇게 고개를 떨군 채 앉아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가방을 집어들었다. 고마워. 꺼질듯한 목소리로 나를 향해 중얼거리곤 천천히 걸어나가는 이기광의 뒷모습은 위태로워 보였다. 당장이라도 픽하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나는 재빨리 이기광의 뒤로 다가갔다. 한뺨 정도의 거리를 두고서 느릿느릿 이기광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내 존재를 모를 리 없는데 이기광은 아무 말도 없었다. 나 역시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교문 앞까지 갔지만 나는 더 이상 나갈 수 없었다. 그걸 이기광도 모르지 않을텐데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평소에 나누던 인사도 한 마디 없이 학교를 빠져나간다. 이상하게 가슴이 아팠다.

 

 

 

 

 

양요섭이랑 이기광? 걔네 1학년 땐 완전 친했어. 다른 반인데 맨날 붙어다니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같이 안 다니더라고. 그래서 그냥 싸웠나보다 했지. 양요섭도 예체능 계열이었어, 1학년 때. 그래서 청소시간에 둘이 같이 나가면서 달리기 시합도 하고 그러다 학주한테 걸려서 혼나고 그랬던 거 기억난다. 이기광은 계속 예체능 하지? 양요섭은 2학년 되고는 안 하는 것 같더라고. 뭐했는진 모르겠다. 저번에 누가 양요섭한테 물어봤는데 양요섭이 정색하더니 그런 거 묻지 말라고 했다더라. 양요섭 화내는 거 그 때 처음 봤대. 원래 평소에 웃고 다니던 애들이 화나면 더 무서운 거 알지? 왜 싸웠냐고? 그거야 나는 모르지. 한 번 물어보지 그래?

 

이기광과 종종 밥을 먹곤 하던 승제를 붙들고 이기광과 양요섭에 대해 슬쩍 흘렸더니 술술 이야기를 해줬다. 양요섭과 이기광이 친했다니. 내가 모르는 양요섭과 이기광. 두 사람이 나의 존재를 모르던 시간. 기분이 오묘했다. 주말 내내 월요일에 만날 이기광을 생각했다. 걱정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몰랐다. 마지막으로 본 이기광의 뒷모습이 너무 무거워보여서 괜찮을까 싶었다. 주말에는 꼼짝없이 연습실에만 있어야 한다며 말갛게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

 

 

 

“안녕.”

 

 

 

승제가 해준 둘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불쑥 이기광의 얼굴이 눈 앞에 나타났다.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빼자 히죽 웃는다. 평소랑 똑같은 모습이다. 창밖에 뭐라도 있냐며 창 너머를 기웃거리다 가방을 내려놓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구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아 나도 그냥 오늘은 웬일로 빨리 왔네, 하며 시덥잖은 말을 건넸다. 바람을 쐬고 싶다며 창을 여는 이기광의 뒤로 벚꽃이 넘실거렸다. 바람에 흩어지는 벚꽃잎을 보는 이기광의 눈이 가라앉는 걸 모른 척 했다.

 

체육시간에 늘 나서서 축구할 인원을 모으던 내가 빠지니 다들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돌아봤다. 어디 아프냐고 묻는 애들에게 차라리 그렇게 핑계를 대는 게 말이 길어지지 않을 것 같아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그늘이 드리우는 곳에 자리한 이기광의 옆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엠피쓰리와 연결된 이어폰을 꽂고 있던 이기광이 인기척을 느끼고 나를 돌아본다. 오늘은 축구 안 해? 그런 물음도 없이 그저 빙긋 웃는다. 무엇이든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이기광이 좋았다. 그리고 가끔은 서운했다.

 

 

 

“들어도 돼?”

 

“어. 근데 팝송밖에 없는데.”

 

“상관 없어.”

 

 

 

이기광이 건넨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노래를 들으며 가만히 운동장을 바라보는 이기광에 집중하느라 어떤 노랜지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흥얼거리는 목소리가 음악 위에 덧씌워진다. 편하게 허벅지에 팔을 올려 팔짱을 낀 이기광과 달리 나는 빳빳이 굳어있었다.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이기광의 옆모습을 볼 수 있을 만큼, 정말 최소한으로만 고개를 돌려 이기광을 살폈다. 그저 음악을 들으며 운동장을 바라보는 것뿐인데도 이기광이 그러고 있으니 청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이기광과 이 순간을 공유하고 있는 건 나인데, 그 영화의 상대 역은 내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 왜 피워?”

 

“……왜?”

 

“…….”

 

“응?”

 

“너 가수 준비하잖아. 담배 피우면 안 될 것 같은데.”

 

 

 

사정을 아는 친구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충고다. 그런데 내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갔다. 무슨 상관이냐고 할까. 담배를 피우는 이유를 말해줄까. 이기광의 반응은 쉽게 예상이 가지 않는다. 이기광은 흐음, 하고 한숨을 쉬더니 숙이고 있던 상체를 뒤로 젖히며 나를 바라봤다.

 

 

 

“다 들었구나, 그 때.”

 

“……듣긴 했는데 무슨 말인지는 몰라.”

 

“그렇겠지.”

 

 

 

화를 내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뒤로 두 팔을 뻗어 계단을 짚은 이기광은 지나치게 담담했다.

 

 

 

“가수 준비하는 사람은 담배 피우면 안 된다…….”

 

 

 

운동장 스탠드 윗부분은 철제 구조물과 덩굴로 막혀있었다. 덩굴 사이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이 이기광의 얼굴을 얼룩덜룩하게 만들었다. 혼잣말을 중얼거린 이기광이 덩굴 사이의 자그마한 하늘을 바라보며 픽 웃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사실 걔도 알고 있을텐데.”

 

“…….”

 

“왜 걔는 그럴까?”

 

 

 

한숨처럼 말을 뱉어내고는 씁쓸하게 웃는다. 이기광은 늘 내게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이기광처럼 운동장 어드메를 바라보기만 했다. 봄볕이 따뜻했다. 봄바람이 싱그러웠다. 이기광과 단둘이서만 세상에 남겨진 기분이었다.

 

 

 

“노래 좋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치는 걸 듣고 이어폰을 빼 이기광에게 돌려주었다. 엠피쓰리에 몸통에 이어폰을 돌돌 감던 이기광이 내 말에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더니 씩 웃는다. 그치? 웃는 이기광을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