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나는 계절
오전 열 시. 가로막힌 교문에 녹색 철통 모자를 뒤집어쓴 공수부대가 쫙 깔렸다. 손에 들린 진압봉을 보고 뒷걸음질 칠만도 했는데, 그들과 대거리하는 무리 가운데에 윤두준이 있었다. 꽁무니에 얼룩덜룩한 군인들을 태운 닷지가 도착했다. 쏟아져 내린 떼거리들이 전투 행렬을 정비할 때부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개머리판과 군화발과 진압봉을 필두로 무차별적인 폭력의 장이 열렸다. 정강이가 걷어 차인 동기 놈은 티셔츠가 뒤집어 까진 채로 땅바닥에 질질 끌려다녔다. 세워둔 자전거 뒷바퀴에 머리를 맞고 고꾸라지자마자 매타작이 시작됐다. 바닥을 기는 사람이 속출하고 시커먼 아스팔트 바닥에 튀긴 핏물이 군데군데 스며들었다. 대관절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발 치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가늠하다가 야차같이 달려드는 병사를 눈치채지 못했다. 목뼈와 어깨, 허리에서 차례로 격추되는 듯한 통증이 타올랐다. 운동에는 젬병이어서 제대로 된 저항도 못하고 끌려가나, 싶었다. 그때 덤프트럭같이 돌진한 몸뚱이가 날 갈구는 병사의 뒤를 덮쳤다. 맥없이 떨어져 나간 병사의 뒤로 익숙한 눈동자가 마주쳤다.
일어나, 얼른 뛰어!
경련처럼 떨리던 손목이 붙잡혔다. 커다란 손에 이끌려서 뛰는 동안 몇 번이고 발이 걸려 넘어졌다. 그때마다 윤두준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구불거리는 골목들을 날쌔게 쏘다니며, 끈질기게 따라붙는 공수부대 놈들에게 돌팔매질을 퍼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비좁은 돌담길을 통과하자마자 움푹 파인 저수지로 몸을 내던졌다. 윤두준이 헐떡거리는 내 입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동시에 뒤까지 바짝 쫓아온 공수부대들이 두리번거리며 욕지거리를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니미, 쳐 죽일 빨갱이 새끼들! 나는 공포에 떨며 그와 어깨를 바짝 붙여 앉았다. 맞닿은 무릎 때문에 윤두준이 잠깐 나를 내려다봤다. 군홧발들이 멀어지고 나서야 주의를 살피던 윤두준이 조심스럽게 손을 내렸다. 맺혀있던 눈물이 툭, 두 뺨 아래로 흘렀다. 윤두준은 자신의 안쪽 주머니를 뒤지더니 하얀색의 무명 손수건과 빽빽한 글씨가 적힌 유인물을 꺼냈다. 그리고 이따 보자, 하며 내 손에 그것들을 꼭 쥐여줬다. 무어라 말을 할 새도 없었다. 단거리를 뛰는 육상 선수의 자세였다. 윤두준은 아비규환의 비명이 난무하는 곳으로 뛰어가며 넋이 나간 내 얼굴을 몇 번이고 뒤돌아봤다. 저렇게 뒤돌아 볼 거면 차라리 가질 말지. 멀어져서 하나의 작은 점이 되어버린 너른 등을 바라보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일으켰다. 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집에 도착할 때까지 손에 들린 유인물을 읽고 또 읽었다. 광주시민에게 드리는 글,로 시작된 호소문은 매일 오후 12시 도청 앞 집결,로 끝맺음 되어 있었다.
나는 시위대에 나가지 못했다. 도처에 시체가 들끓는다며 문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딛게 한 어머니 때문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나라로부터 나를 지키는 것이 20년 전 나라에 의해 살해당한 아버지의 뜻을 잇는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나의 아버지는 긴급조치,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법으로 1심에서 무기수를 선고받았고, 젖먹이를 등에 업은 어머니가 곧장 항소했지만 비밀 군사 재판이 열렸던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나라로부터 가족을 지켜야 하는 세상.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어머니는 마음에 철옹성 같은 성벽을 세우고 그 안에 나를 가뒀다.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늘 달고 살았던 말대로 모른 척 계셨으면 좋았을걸. 이튿날 오전, 철대문을 부술 듯이 뚫고 들어온 남자가 핏물에 섞인 눈물을 떨구며 어머니의 치맛단을 붙잡았다. 아지매, 저 좀 숨겨주쇼, 살려주시라. 뒤이어 말발굽 소리를 내는 군화발이 몰려왔다.
톡, 토톡. 드문드문 떨어지던 봄비가 거센 장대비로 태세를 바꿨다. 뺨을 간질이는 어머니의 얇은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 몸뚱이를 껴안았다. 이마에 말라붙은 피딱지가 빗물에 씻겨서 턱밑으로 흘렀다. 시야에 45도로 꺾인 무릎과 목뼈가 부러진 남자의 시신이 보였다. 남자는 왜 많고 많은 대문 중에서 우리 집 대문을 뚫고 들어온 것일까. 왜 하필이면 우리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은 것일까. 왜 우리 어머니는 하던 대로 세상 일에 등지는 게 아니라 맞섰던 것일까. 왜 남자를 구하려 들었을까. 그 남자에게서 내 모습을 본 것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 남자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본 것일지도 몰랐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전속력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연희네 방앗간을 지나 DVD방을 돌아 대로변으로 진입했다. 사방에서 굉음이 터졌다. 가늠할 수 없는 택시와 대와 버스, 트럭들이 쑥대밭이 된 도로를 꽉 막고 있었다. 그 사이로 계엄군이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도륙했다. 일반 곤봉보다 20센티미터 길게 깎은 박달나무 곤봉은 사람들의 머리통을 노렸고, M16 소총에 꽂은 대검들은 사람들의 명치께를 파고들었다. 곳곳에서 핏줄기가 솟구쳤다. 시민들은 비를 맞는 것이 아니라 난무하는 신음과 비명과 타격을 맨몸으로 버티는 중이었다. 나는 다시 뛰었다. 숨이 목까지 차올랐다. 심장이 격렬하게 박동하고 턱 밑에서 불끈거리는 정맥이 느껴졌다. 흐려지는 눈앞을 몇 번이고 소매 춤으로 닦아내며 도청 앞까지 갔다. 우뚝 솟은 분수대가 연단이었다. 모여 있는 인파를 비집으며 앞줄로, 더 앞줄로 갔다. 그곳에서 앰프 선 정리를 하고 있는 윤두준을 만났다.
입학하던 신입생 때에도, 학생회 자원을 받던 4월에도, 전두환의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발령 났을 때에도, 전국 비상계엄령이 엄포 됐을 때에도 윤두준은 늘 연단 앞에 서 있었다. 지지직거리는 낡은 스피커의 노이즈를 뚫고 유신 헌법 철폐! 신군부 퇴진! 비상계엄령 해제! 따위의 구호를 온 캠퍼스에 퍼뜨렸다. 같이 외치는 운동권 학생들이 밤새 만든 유인물들을 나눠줬지만 그뿐이었다. 당연하게도 그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사람은 적었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민족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든 말든. 나와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으나 내가 윤두준의 연설을 잠자코 듣고 있었던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깊고 반짝거리며 올곧은 신념을 가진 사람의 눈빛. 그 찬란한 광휘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기광? 너 기광이 맞지?
다급하게 내려온 윤두준이 내 양 뺨을 그러잡았다. 우리가 처음 대화를 나눴던, 개나리꽃이 한 아름 피었던 캠퍼스 앞 풍경 같았다. 어느 날 무대 밑으로 내려온 윤두준은 내게 손 내밀며 인사했다. 너 이기광 맞지? 난 사학과 윤두준이야. 웃는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최면성 강한 눈이었다. 꼼짝없이 빨려 들어서 붙박힌 사람처럼 그 눈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오늘은 퉁퉁 부은 눈 때문에 윤두준과 눈을 맞출 수가 없었다. 울어서 부은 건지, 맞아서 부은 건지. 눈알이 아니라 포탄 두 알을 눈썹 뼈 밑에 심어 놓은 것 같았다. 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쑤신 건 나인데, 정작 아픈 표정은 윤두준이 지었다. 단단한 두 주먹을 꽉 쥐고 내 얼굴에 손을 대지도 못한 채 머뭇거렸다. 나는 그를 껴안고 싶었다. 체취가 배어있을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아이처럼 엉엉 울고 싶었다. 난 이제 고아라고, 나에겐 이제 아무도 없다고, 마당엔 흙이 없어서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다고. 그의 너른 품에 안겨서 울음을 왈칵 터트리고 싶었다. 그래도 널 만나서 살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윤두준은 차가워진 나의 어머니를 업었다. 내가 수습하겠다고 했으나 사실은 얻어맞은 온몸이 곤욕이었다. 합동분향소인 상무관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곳곳에서 통곡하는 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참으려고 안간힘 썼다. 정작 울음이 터진 건 윤두준이었다. 나 대신 뚝뚝,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어머니의 굳은 손을 펴서 연신 그 안의 흙먼지를 닦아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얘기했다. 기광이는 걱정 마세요, 제가 있으니 걱정 마세요. 입안에 비릿한 피맛이 맴돌았다. 입을 열면 가슴에 묻어둔 울음이 터질까봐 고맙단 말도 전하지 못했다.
우리는 유인물을 제작했다. 진압 첫날 윤두준이 내 손에 꼭 쥐여줬던 유인물도 이곳에서 만든 것이었다. 와이더블유시에이 건물 1층에서 깜빡거리는 필라멘트 전구를 켜고 글을 썼다. 많은 양을 배포해야 했기 때문에 등사기를 통한 작업이 필요했다. 빛이 새어나가지 않는 장소에서 원지를 긁은 줄판을 밀고 100여 장의 종이를 복사했다. 이 일을 하는 사람 중엔 낯익은 얼굴들이 많았는데, 캠퍼스에서 유인물들을 나눠주던 운동권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머리에 흰 두건을 두르고, 몸 곳곳에 크레용을 뭉게놓은 듯한 멍 자국을 달고 있었다. 절뚝거리며 제대로 서지도 못했지만 눈빛만큼은 매서웠다. 윤두준은 그들에게 나를 번역가라고 소개했다. 번역가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나는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평생 외국인이라곤 밴드 비틀즈밖에 모르는 평범한 남자애였다. 부끄러워서 고개도 들지 못하는 나에게 몇몇이 손을 내밀며 반색했다.
네가 그 유명한 이기광이구나?
나 대신 옆에 서있던 윤두준의 뺨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귀 끝과 두 뺨이 발갛게 익더니 결국엔 이마 끝까지 열이 올라서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그 반응에 짓궂은 사내 놈들이 낄낄거렸다. 나는 유명하지도 않았고, 유명할 재주도 없었는데 그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건 윤두준 때문임이 분명했다. 우리가 처음 대화를 나눴던 날. 윤두준은 내게 다짜고짜 번역 일을 부탁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도 내가 영문학과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나는 학교에서 눈에 띌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허구한 날 연설 구경만 하고 있던 나를 의아하게 여겨서 조사해 본 것일지도 몰랐다. 다만 그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윤두준은 손바닥만 한 책을 펼치며 빽빽한 글씨가 써져 있는 페이지들을 촤르륵 넘겼다. 죄다 영어였다. 기광아, 나 이것 좀 번역해 줄래? 다행히 윤두준이 검지를 뻗어 가리킨 문장은 단순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명언, 투표는 총알보다 빠르고 강하다. 내가 번역을 해주면 내내 심각한 표정이던 윤두준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와아, 너 진짜 똑똑하다. 쑥스러워서 대답을 넘겼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정말로 똑똑한 사람은 너였다는 것을. 문자를 읽는 건 나였지만, 그 뜻을 이해하고 분해하고, 재조립하며 습득한 사람은 너였다는 것을.
20일 오후 여덟 시. 텔레비전 채널을 아무리 바꿔 틀어도 우리의 상황을 보도하는 방송국이 없었다. 평소처럼 연속극이 방송됐고, 다리를 흔들어대는 춤을 추는 사람들이 나왔다. 신문은 아예 한 면을 비운 채로 발행됐다. 또는 '불순분자와 폭도들의 난동'에 의해 희생됐다는 계엄군들의 사망 소식들만 대문짝만 하게 찍혔다. 그들은 단 두 명이었고, 우린 수 천이었는데도. 검열이 가속화될수록 우리는 빠르게 고립되는 중이었다. 분개한 어른들은 목공소에서 큰 나무 기둥과 각목들을 들고 왔다. 이미 언론의 기능을 잃은 방송사에 가서 공정 보도를 외치겠다고 했다. 김 군 아저씨가 두준에게 같이 가겠느냐, 물었다. 두준은 내 얼굴을 휙, 돌아보더니 고개를 숙이며 가로저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처음으로 시위에 불참한 일이라고 했다. 나는 비겁하게도 더 이상 두준의 얼굴과 몸에 상처들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리고 그날 밤 쾅, 하는 폭발음이 들렸다.
바닥이 잠깐 흔들리더니 방금까지만 해도 컴컴했던 창밖에 섬광이 번쩍였다. 우린 창문에 달라붙어서 높게 타오르는 불길을 목격했다. 방송사가 있던 위치였다. 총성과 굉음이 연달아 들렸다. 치솟는 불기둥을 노려보는 두준의 눈빛에도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들어있었다. 몸은 비록 내 옆에 있었지만 영혼만큼은 저곳에 가 있는 것 같았다. 말아 쥔 두 주먹이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그 주먹을 슬며시 붙잡았다. 두준이 손에 힘을 풀고 놀란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가지 마, 나랑 있어.
내가 말했다. 두준이 부드럽게 내 손을 맞잡았다. 맞닿는 면적이 놀라울 정도로 커다랬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온기가 가슴 사무치게 따뜻했다.
지난밤의 발포로 상무관에 시신 2만 구가 안치됐다. 시체와 검은 연기가 뒤덮인 거리에는 어제의 참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우리는 금남로로 나갔다. 리어카에 얼굴이 뭉개진 시신 두 구를 싣고 그 위에 커다란 태극기를 휘감은 채 행진했다. 분노로 촉발된 행진은 유례없는 시위를 만들었다. 도청을 포위하고도 금남로가 꽉 찼다. 도시는 이글거리는 격분으로 곧 폭발할 것 같았다. 심상찮은 기류를 느낀 도지사가 헬기를 타고 선무방송을 때렸다. 그때가 오전 열시 반이었다. 정오까지 계엄군을 철수 시키겠다는 내용이었으나 놈들은 정오가 지나도 물러가지 않았다. 계엄군과 우리는 노란색 바리케이트를 가운데에 둔 채 대치했다. 근거리에서 시민 군 대표가 놈들에게 협상을 제시하고 있었지만 놈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 팽배했다. 윤두준이 어젯밤처럼 내 손을 꽉 잡아줬다.
오후 한 시. 정각이었다. 도청 옥상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난데없는 일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몇몇은 가슴에 손을 올리며 경례를 했다. 우리들은 폭도가 아니었으니까. 우리에게 애국가는 불가항력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가장 무방비했을 때 건너편의 군들이 바리케이트 위로 총구를 올렸다. 총구멍을 이쪽으로 겨누더니 장전 장치를 잡아당겼다. 철컥, 하는 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졌다. 두준이 거칠게 내 팔을 이끌었다. 다급한 표정이었다. 그는 꽉 들어찬 인파를 헤집으며 빠르게 가운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포성이 울렸다.
한 발이 아니었다. 무차별 발포였다. 총부리에서 집단적으로 스파크가 튀겼다. 하얀색 연기가 가느다랗게 피어올랐다. 코를 찌르는 화약 냄새, 사람들의 고함과 비명,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신발 앞코에 차이는 시체들. 밀려오는 앞줄의 시민군들이 나를 밀치며 재빠르게 달려나갔다. 그리고 우후죽순 피 흘리며 쓰러졌다.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이곳은 도살장이었고,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가축이었다. 이 비극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나는 몰랐다. 두준이 나를 이끌고 커다란 건물 뒤에 몸을 숨겼다. 나는 바보처럼 굳어 있었는데, 두준은 불꽃을 담은 눈으로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총질이 난무하는 도로로 뛰어나갔다. 아비를 잃은 세 살배기를 안고, 내게 오다가 총에 맞았다.
기억이 드문드문 끊겼다. 진자운동 하던 시계 추가 멈춘 것처럼.
가끔 정신이 들었다. 나는 두준의 몸에 휘감겨진 태극기를 찢어발기고 있었다. 쏠 줄도 모르는 카빈 소총을 들고 발악하고 있었다. 그의 배 위에 얼굴을 파묻고 뜻 모를 말을 쏟아내기도 했고, 바깥을 돌아다니며 계엄군을 만나길 기다리기도 했다. 나는 죽고 싶었지만 누군가를 죽이고 싶기도 했다. 깨어 있으면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꿈에 두준이 자꾸 나왔다. 영영 깨고 싶지 않았다. 그는 군청색 통바지에 흰 라운드넥 티셔츠를 입고, 늘 메고 다니는 갈색 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로 나를 기다렸다. 그 가방 안엔 손바닥만 한 영어 명언집과 그 애가 공부하는 책, 연필 자루 같은 것들이 들어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학교 앞 의자에 앉아서 낯선 이방의 말들을 번역한다. 수줍은 나는 조곤조곤한 말투로 얘기하고, 두준은 일부로 큰 목소리로 나를 칭찬한다. 기광아, 난 네가 진짜 마음에 들어. 내가 묻는다. 내가 영어 잘해서? 바람이 불었다. 짧은 머리칼이 흩날리며 두준의 얼굴이 드러났다.
두준아. 그 애의 이름을 부르다가 잠에서 깼다. 나는 묶여 있었다. 나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김 군 아저씨의 얼굴이 보였다. 사지가 포박 당한 채로 내 입에 물과 밥 덩어리가 들어왔지만 깊숙한 속에서 구역질이 치받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육체를 영위할 음식이 아니었다. 예수가 부활할 때의 기적, 뇌 속의 해마를 마비시킬 광기, 그를 만날 수 있는 꿈속.
아무래도 네가 가져야 할 것 같아서.
두준과 어울리던 운동권 학생이 내 품에 가방을 안겨주고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두준이 늘 메고 다니던 갈색 가방이었다. 껴안은 가방에서 희미한 두준의 냄새가 났다. 가방 주인은 따로 있는데 어쩌다 그 물건이 내게로 돌고 돈 건지 부아가 치밀었다. 몇 개 없는 소지품은 손바닥만 한 영어 명언집 하나. 그 애가 공부하던 책들. 잘 깎아진 연필 자루. 그리고 두꺼운 영문 소설책 한 권이 전부였다. 의아한 나머지 그 소설책을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그가 묻지도 않은 말에 대답을 했다.
두준이 외신 기자가 꿈이었거든. 영어도 잘 했어.
그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졌다. 삶이 송두리째 뽑혀져 나가는 듯한 감정의 범람이었다. 비통하고 참담하여 길고 긴 울음이 터졌다. 과잉된 감정의 발로 끝에 결국 그의 이름이 맺혔다. 두준아. 누구보다 뜨거운 삶을 살다가 아스라이 수그러든 나의 불꽃아. 너의 발견은 원시의 나를 문명으로 이끈 사건이었다. 신에게서 훔쳐왔기에 그 대가로 고통과 절규 속에 너를 반납한다. 두준아. 나는 너를 보내지만 영원히 내게 있어 너의 의미란-
다음 생애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두준의 연필로 태어나고 싶었다. 그의 커다란 손에서 내 몸이 닳고 닳을 때까지 그 애의 말을 받아 적고 싶었다. 그것이 다음 생애서의 바람이라면 이번 생에서는 어떻게든 오래 살아남아야 했다. 끝까지 살아남아서 이곳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모두 기억해야 했다. 나는 기자가 될 것이다. 살아남고, 기억해서, 기자가 된 다음 우리의 지난했던 투쟁을 낱낱이 게재할 것이다. 그 글의 첫 문단은 이것으로 하고 싶다. 나는 고발한다. 인두겁을 뒤집어쓰고 비겁한 삶을 영위한 놈들을 고발한다. 골을 가르는 정수리부터 바닥에 짓이겨지는 발꿈치까지 오물로 들어찬 무뢰한들을 고발한다. 사람이 사람을 돼지나 소처럼 처참하게 죽일 수 있음을 알게 해준 놈들을 고발한다. 가장 빛나던 계절, 숭고하게 스러져간 이들을 위해 나는 고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