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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체온

*이부형제 소재 주의

 

 

 

 

“네 거 내 거 씨부리지 마. 기광이가 물건이야?”

“어, 물건이야. 내 거.”

“그거 그대로 애한테 가서 말해 봐, 좋아하나.”

“이미 듣고 있어.”

 

 

 

두준의 고개가 벼락 맞은 듯 돌아갔지만 기광은 이미 등을 내보인 상태였다. 하등 예상도 못한 전개에 득의양양하게 웃고 있던 요섭조차 넋을 놓고 멀어지는 몸을 바라본다.

 

 

 

철천지원수래도 저놈들에 비하면 호형호제하는 사이일 것이다. 기광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서로를 조져 놓을 의지만 드러내는 요섭과 두준에게 질린 지도 한참 전이었다. 이제는 정말 말리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로 달려와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을 종용하는 선생님도 모른 척 비켜 서 걷는다.

 

 

 

“기광,”

“저는 쟤네 몰라요.”

“야!”

“기광아!”

 

 

 

한 트럭이나 되는 사람들이 달겨들어 말려도 꿈쩍을 안 할 때는 언제고 기광의 한 마디에 사이 좋게 붙들고 쥐어 뜯던 멱살을 놓고 달려온다. 요섭이 그 작은 몸의 앞을 가로막으면, 두준은 그 뒤에 서서 뒷목의 셔츠 깃 안으로 갈고리에 떡밥을 걸듯 손가락을 꿰 넣었다. 잡힌 건 아니지만 벗어나지도 못 하게 굴었다.

 

 

 

“영화 보러 갈래?”

 

 

 

눈치도 없지. 끌어안고 있는 게 책이건만 놀 궁리나 하고 있는 요섭을 뒤편에 서서 비웃던 두준은 제 갈고리에 걸린 기광의 옷을 끌어당겼다. 곧이곧대로 끌려오진 않았으나 두 발목과 몸통과 두꺼운 입술에 힘을 주고 꾹 버티는 게 느껴져 퍽 싱거운 웃음이 터졌다. 킥킥 웃어 놓고 흘깃 눈치를 본 두준이 제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뭘 해도 사랑스럽다.

 

 

 

“벚꽃 보러 갈,”

“학원 가야 돼.”

“학원?”

“학원? 미쳤어?”

“양요섭, 말 조심해라.”

“넌 좀 다물어. 무슨 학원?”

 

 

 

진절머리가 난 기광이 발을 탁 굴려 두 사람의 사이에서 벗어났다. 급식실 한복판에 서서 저잣거리 인형극을 펼치는 꾼이라도 된 마냥 세간의 관심을 받는 것도 창피해 죽겠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매번 자존심을 건드려 놓고 저 하나만 속이 탄다는 듯 구는 요섭이 얄미워 끓는 속이 터질랑 말랑 넘실거렸다. 시험이 코앞인데 얼마 전부터 봄꽃 구경 타령만 하는 두준도 마찬가지다. 기광은 눈알이 말라 비틀어지도록 두 사람을 흘기다 잰걸음을 옮겼다.

 

 

 

“야, 이기광!”

“기광아....”

“옆에 끝내 주게 잘생긴 과외 선생님이 있는데 무슨 학원이야아!!!”

 

 

 

기광은 어처구니없게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얼얼한 콧등을 꼬집고 울컥 들뜨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갖은 노력을 다해도 바닥을 치는 성적만으로도 억울한데, 탱자탱자 이 시대의 탕아처럼 놀지만 1등과 2등을 껌 씹어 뱉듯 하는 요섭과 두준이 옆에 있는 건 더욱 서러운 일이다.

 

 

 

급식실이 있는 복도의 끝에 방치된 전신거울 앞에 선 기광은 한숨을 쉬었다. 진도를 나가도 한참 전에 나갔던, 단락의 주제고 공식이고 뭐고 다 잊어 버린 이전 학년의 책을 빌려 와 끌어안고 있는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였다. 잘못한 것도 잘못된 것도 없는 저인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비교하게 된다. 있지도 않은 데드라인을 만들어서, 너희는 그 너머에 있고 나는 이 안에 있고. 기광은 떨리는 입술을 어쩌지 못하고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봄의 체온

윤두준X이기광X양요섭

 

 

 

 

 

 

 

 

나고 자란 배는 같지만 아버지가 다른 요섭과 두준은 콩 만한 사탕도 지름과 길이를 가늠해 나눠 먹어야 하는 사이였다. 아이에게 필수적으로 조달되어야 하는 물질적인 것들이 부족해서는 아니고, 그냥 서로에게 죽어도 양보가 안 되는 고약한 심보 탓이다. 똑같은 케이크를 먹어도 어쩌다 두준이 딸기를 하나 더 집어먹으면 요섭이 길길이 날뛰어선 집안 어딘가를 당장 보수해야만 하는 일이 생기는 게 부지기수였다.

 

 

 

요섭이 일등을 거머쥐면 두준은 일주일이 다 가도록 식음을 전폐한 채 살았고, 두준이 일등을 해 오면 요섭은 날아가는 새만 보고도 상스러운 욕을 두서없이 내뱉고 길거리에 눌러붙은 껌을 좀 밟았다고 구청에 민원이랍시고 전화 백여 통을 넣는 기이한 짓을 했다. 양보가 안 될뿐더러 서로가 잘난 걸 참을 수 없는 두 사람이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일찌감치 이 이부형제를 한 카테고리에 묶어 두었다. 떼어놓을 바에 붙여 놓는 것이 현명했다.

 

 

 

“야, 이기광이랑 연락,”

“뭐.”

“거기 이불 뭐냐?”

“뭐겠냐.”

“뭐겠냐?”

“방금 겨우 재웠어. 깨우지 마.”

“너 씨발, 뭐 했지.”

“게임 안 하고 저질 동영상만 보고 왔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미친놈이.”

“....”

“학원 간다는 게 엉뚱한 데서 울고 있길래 데려왔어. 집에 보내면 또 혼자잖아.”

“....”

“너 아니어도 심란하니까 눈치 없이 조잘거릴 거면 썩 나가.”

“어딜 나가, 이기광이 여기 있는데.”

“이상한 짓 안 한다고.”

“너 뭐 찔리는 거 있냐.”

“야이씨, 다물어.”

 

 

 

가지고 싶은 것이 생기면 그것 또한 죽어도 양보할 수 없었다. 서로 입에 집어넣으려고 애를 쓰던 레고 조각과 실행해 본 적도 없어 애물단지가 된 한정판 게임 시디 따위에 커다란 기광의 존재가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가지고’ 싶은 것에 해당은 될 모양이었으니 눈에 쌍심지를 켜고 서로 달려드는 것이다. 사랑이니 애정이니 가당찮은 표현 방식으로 앞서 보기엔, 아직은 조금 많이 어렸다.

 

 

 

침대의 발치에 걸터앉은 요섭이 슬쩍 이불을 들춰 움찔거리는 발바닥을 간지럽혔다. 등허리와 종아리 아래가 유독 민감한 기광은 고작 신발끈 하나 묶어 주는 행위에도 기함을 하며 두준의 뒤로 숨어들었었다. 소동물처럼 숨어 얼굴만 내미는 그 눈을 보고, 구석 어딘가가 욱신거려서 하루의 밤을 꼬박 설쳤다. 아무것도 아닌 걸로 이상한 사람을 더 이상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게 분명했다.

 

 

 

“정 선생님 말야.”

“넌 아직도 선생님이라 그러냐. 돌아오시면 장모님으로 모실 건데, 난.”

“미친 새끼야. 나 진지하니까 진지하게 들어.”

“뭐, 또.”

“우리 앞에선 엄마라고도 못 부르게 했잖아, 기광이한테.”

“....”

“좀 너무했다 싶어서. 안 그래도 외로운 앤데.”

“엄마들 마음을 어떻게 알아, 우리가.”

“....”

“시덥잖은 거 묻지 말고 물 좀 가져와.”

“뒈진다, 진짜로.”

“기광이 줄 거라고.”

“많이 울었어?”

“많이.”

 

 

 

두준은 동그란 이불이 이따금씩 튀어오르는 걸 보고도 모른 척을 했다. 보지 않아도 울음소리를 입안으로 말아물고 참고 있는 것이 투시경을 씌운 것처럼 보인다. 요섭 역시 시선은 허공에 둔 채 손만 옮겨 드러난 발목을 쓸어 준다. 그렇잖아도 서러운데 그리운 엄마 이야기를 들어 더욱 애가 말랐을 것이다.

 

 

 

정년이 오기 한참도 전에 교편을 내려놓은 기광의 어머니는 이름을 떠올리는 것도 한참이 걸리는, 거리를 가늠하기도 힘든 오지의 나라를 여행하는 것을 남은 업으로 삼아 떠났다. 때가 되면 보기에 신기하기만 한 물건이 든 꾸러미나 겉부분에 꽃을 말려 장식한 엽서를 주기적으로 보내 왔지만, 기광이 그토록 바라는 소식이 든 편지는 단 한 통도 없었다. 기광은 그럴 때마다 속상해하기는커녕 엉뚱한 것을 다짐하곤 했다. 어머니보다 더 멋있는 집안의 기둥이 되어서 어머니를 책임질 것이라고. 물론, 성적표를 손에 넣을 때마다 포기하기는 했다.

 

 

 

“편의점 다녀올게.”

“나뚜루 사 와. 티라미수케이크.”

“이기광 하겐다즈 좋아해. 딸기치즈.”

“지 같은 거 좋아하네.”

“넌 그것도 모르고 뭐 했는데.”

“그런 거 잘 아는 너보다 내가 얠 더 좋아하니까 괜찮아.”

“진짜 죽이고 싶다....”

 

 

 

물먹은 웃음소리가 툭 터졌다. 들었던 만화책을 반사적으로 내팽개치고 이불을 들춘 두준이 부어오른 기광의 눈가를 차가운 손등으로 쓸어냈다. 만지기만 하면 없는 화도 끌어모아 짜증을 낼 땐 언제고 잠자코 눈을 감고 있다. 납득이 가지 않는 광경에 되려 짜증이 난 건 요섭이었다.

 

 

 

“야. 너 내가 귀 잡아서 꽃 꽂아 줄 땐 지랄을 다 해 놓고,”

“요섭아.”

“윤두준, 손 안 떼냐? 둘 다 죽고 싶어?”

“딸기치즈.”

“뭐. 딸기치즈 뭐. 어쩌라고.”

“딸기치즈....”

“....”

“혼자 가기 싫으면 같이 가자.”

“존나 짜증 나.”

“....”

“옷이나 입어!”

 

 

 

제가 입던 집업을 내던져 놓고 돌아나가는 요섭의 두 귀가 새빨갰다. 진심으로 불리할 때면 눈 한 번 크게 뜨고 입술만 내밀어 줄 뿐이었지만 유독 요섭은 그 표정을 못 견뎌했다. 봐도 봐도 신기한 요섭의 반응에 기광은 거울을 보고 서서 입술을 내민 적이 있다. 일 초 만에 관뒀다. 제가 보기엔 역한데다 성질만 나는 그걸, 대체 왜 저리도 좋아하는지 평생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한테도 애원해 줘.”

“뭘.”

“아까 한 것처럼 해 봐. 딸기치즈으, 해 봐.”

“진짜 죽이구 싶다.”

“....”

“가자, 우리 두준이.”

 

 

 

 

 

 

 

벌써 저만치 앞선 요섭을 따르느라 이마 위로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개화하는 꽃을 빤하도록 샘하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건 겨울에 태어난 요섭이 유일했다. 기광이 입었던 제 집업을 벗어 돌려 주어도 한사코 거절한 채 손에 쥐고만 있었다. 기광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앉은 두준은 끌끌 혀를 차며 알록달록 색이 물든 고드름 아이스크림을 입으로 털어넣었다. 양 조절을 실패해 양뺨이 불룩해지도록 내용물을 물었더니 기광이 뒤로 넘어가며 웃는다. 요섭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기광의 몸을 끌어안았다.

 

 

 

“나 보고 웃는 건 좋지만 걔한테 기대진 말았어야지.”

“내 이름이 걔냐. 싸가지없는 새끼.”

“그래. 개야.”

“달고나로 처맞을래?”

 

 

 

두 형제가 이를 드러내고 싸우는 동안 기광은 이미 자리를 벗어나 버스 뒷문의 앞에 서 있었다. 어느새 끌어안고 있는 것이 기광의 가방인 줄도 모르고 으르렁거리던 요섭은 뒤늦게 언짢은 얼굴을 했고, 두준은 해맑게 웃으며 주머니 속의 지갑을 확인하듯 매만졌다. 이기광한테 사 주고 싶은 것 많은데. 달고나랑 솜사탕이랑 머리띠랑, 또.......

 

 

 

“야. 처웃지 마.”

“이젠 웃는 걸로도 시비냐?”

“위를 좀 봐. 앞도 좀 보고.”

 

 

 

앞에 선 기광의 머리 위로 굵은 눈송이가 네댓 개씩 내려앉는다. 지체도 않고 달리기 시작한 요섭이 우산을 구해 올 동안 두준은 교복의 자켓을 벗어 기광의 머리 위로 씌웠다. 멈춰 서서 가장 큰 벚나무에 우르르 모인 사람들만 보고 있길래, 혹시 또 울적한 감상에 빠졌나 싶어 염려하게 된다. 두준은 슬쩍 고개를 내밀어 기광의 얼굴을 살폈다.

 

 

 

작은 얼굴이 웃고 있다. 아래로만 처져 있을 줄 알았던 눈은 예쁘게 접혔고, 웃을 적마다 온갖 빛을 받아내는 뺨의 광대는 볼록 솟은 채로 웃는다.

 

 

 

“지구가 망할 건가 봐.”

“눈 오는 날 천둥번개 친 적도 있는데, 뭐.”

“그래도 이 봄 한복판에 눈은 아니지.”

“예쁘면 됐지.”

“....”

“너처럼?”

“구려. 그런 말 다신 쓰지 마.”

“진심인데.”

“알아.”

“맨날 다 안대.... 알기만 하면 뭐 하냐고.”

“씁.”

 

 

 

하릴없이 아이러니한 광경을 감상한다. 구름 적은 푸르른 하늘에서 하얀 봄눈이 떨어지고, 이미 반 넘게 자라 버린 버들 위로 그 눈이 쌓였다. 눈송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벚꽃이 함께 떨어질 때는 소박한 감탄을 하기도 했다.

 

 

 

“어?”

 

 

 

눈앞으로 원색의 파라솔이 들이밀어진다.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기광과 달리 두준은 심드렁한 얼굴로 그 파라솔 위를 세게 내리쳤다.

 

 

 

“아파, 새끼야.”

“너 이거 훔쳐 왔지.”

“내가 너야? 주인 아저씨한테 허락 맡고 가져왔거든.”

“이걸 왜,”

“왜는 왜야. 너 웃기려고 이상한 짓 하는 거지.”

“....”

“눈이나 봐. 꽃을 보든지.”

 

 

 

요섭은 제쪽을 향한 기광의 턱을 부여잡아 앞으로 돌려 놓았다. 한쪽 손으로는 가볍지 않은 파라솔을 이고, 한쪽 손으로는 기광의 등을 조심조심 감싸안는다. 간지럼타는 허리 부근을 피하느라 조금 어정쩡한 곳에 커다란 손을 올렸다.

 

 

 

“내년에도 같이 봐.”

“뭘.”

“이런 말도 안 되는 것들.”

“내 인생에서 제일 말도 안 되는 건 너희야.”

“....”

“....”

“너희 둘밖에 없어.”

 

 

 

소리 없이 웃음을 터뜨린 두준은 두 사람의 뒤에 서서 기광의 구불거리는 뒷머리를 빗어내듯 매만졌다. 입밖으로는 굳이 하지 않을 말을 속으로 빌었다. 귀찮게는 해도 외롭게 만들진 않을 거라고, 소망하듯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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