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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연애

장기연애

w. 베팅

 

요즘 같은 장수 시대에 환갑잔치는 잘 하지도 않는다던데. 평생의 소원이셨다며 한사코 호텔 잔치, 그것도 신라호텔을 고집하시는 아버님의 뚝심에 윤 씨 가문 차남이 발 벗고 나섰다.

 

짜디짠 공무원 봉급으로 신라호텔은 택도 없어서 그냥 일산에서 제일 좋다는 호텔로 예약을 했단다.

 

그 외 부가적인 것들은 두준의 누나가 비용을 부담하기로 했다.

 

유명 대기업에 다니는 누나는 돈이 많았으나, 쌓인 통장 잔고와 비례하게 늘 만성적 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돈으로 해결하고자 했고 덕분에 잔치 준비에 귀찮은 것들을 몽땅 윤두준이 떠안았다.

 

당연히 불만은 없었다. 고등학교 체육 교사 연봉은 솜사탕과 같은 질량이었으니까. 달고, 가볍고, 후 불면 사라졌다.

 

나와 함께 호텔 포트폴리오를 찾아본 게 벌써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식사 코스와 현수막 문구, 초청할 하객들의 명단... 하필 두준이 재직 중인 학교가 중간고사 기간이라, 준비 과정 중 내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참고로 우리 아빠 생일도 이렇겐 안 챙겼다.

 

“아이씨, 차 엄청 막히네. 그러게 평일로 하시자니까...”

 

윤두준이 짜증스런 말투로 운전석 창문을 반쯤 내렸다.

 

우리는 두준의 아버님의 육십 번째 생일잔치를 무사히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버님이 좋아하셔서 다행이지, 뭐.”

 

“우리 아버지 똥고집 진짜. 가족끼리 조촐하게 하면 될 걸... 아씨, 왜 끼어들고 지랄이야.”

 

빵! 짧은 견적 소리가 신경질적이다.

 

답답한지 두준이 운전석 창문을 반쯤 내렸다. 건조한 가을바람이 들어왔다. 얼마 전 뽑은 중형세단 내부에 다 뜯지 못한 비닐이 곳곳에서 펄럭거렸다.

 

“안 춥지?”

 

윤두준이 선바이저에서 사형대 목줄처럼 흔들리는 기다란 비닐을 북, 찢으며 물었다. 나는 심난한 마음으로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예약한 호텔의 아래층은 예식장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마다 아래층 하객들과 마주쳤다. 하필 뷔페까지 겹쳐서 아버님의 손님과 신혼부부의 하객이 뒤섞여 뷔페를 이용해야 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오고 가는 흰색 드레스에 마음을 빼앗긴 두준의 어머님이 명절 3대 잔소리 ‘결혼 언제 하니?’ 타령을 시작한 것이다.

 

오늘은 명절날이 아닌데, 게다가 두준의 아버님 환갑잔치였는데 말이다.

 

맞선을 봤단다. 윤두준이. 상대는 같은 공무원 자리에 있는 네 살 연하의 여성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도 알선 자리를 강매하셨다. 덧붙이며 말씀하셨다.

 

이젠 너희도 제 짝 찾아야지, 언제까지 둘이 붙어다닐래?

 

윤두준이 횡설수설하면서 자기 엄마를 뜯어 말렸다.

 

그만해 엄마, 기광이가 엄마 아들고 아니고. 어련히 알아서 잘 할까.

 

왜에, 십 년 넘게 봤는데. 이만하면 아들이지. 너네도 이젠 갈 때 됐어. 때 놓치면 좋은 여자 찾기 힘들어.

 

아이참, 엄마. 그만하라니까. 왜 또 시작이실까아.

 

윤두준이 죄지은 강아지처럼 내 눈치를 봤다.

 

차라리 진짜 강아지처럼 우리 집 거실 매트나 찢어 놓지. 이 청천벽력을 오늘 같은 날 듣게 할 거면... 날 부르질 말지.

 

“하아...”

 

“기광아, 문 닫을까?”

 

“아니. 차 냄새 안 뺐어? 새 차 냄새 너무 난다.”

 

“새 차 냄새? 너가 준 방향제 걸어 놨는데?”

 

두준이 코를 킁킁거렸다. 그러고보니 에어컨 꽂이에 내가 선물한 방향제가 꽂혀 있다.

 

“...그러네. 향이 별론가.”

 

“왜, 난 좋은데. 운전할 때마다 니 생각나서 좋아.”

 

“웃기시네.”

 

“참나, 왜 또 입술이 댓발 나오셨을까.”

 

“입에 침이라도 바르고 거짓말을 하세요, 윤두준 씨.”

 

“진짜거든요. 멋대로 생각하세요.”

 

안 그래도 비좁은 삼 차선 도로에 사고라도 난 모양인지 타이어 굴러가는 속도가 굼벵이 걸음마랑 맞먹었다.

 

그게 꼭 우리 연애하는 꼴처럼 지지부진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나 요 앞 터미널에서 내려줘.”

 

“터미널은 왜?”

 

“작업실 가게.”

 

“작업실? 이 시간에? 집에서 치킨이나 뜯자.”

 

“안 돼. 작업 덜 들어간 게 있어. 가사도 고쳐야 돼.”

 

“그럼 태워다줄게.”

 

파란불에 건너는 사람이 없는 걸 보고 윤두준이 천천히 우회전 핸들을 돌렸다.

 

나는 콘솔 박스를 열어서 그 안에 캡 모자를 챙겼다. 치킨이고 뭐고 지금 당장 내려야겠다는 시위였다.

 

“차 돌리지 말고 지금 세워줘. 좀 걷다가 들어갈래.”

 

“속 안 좋아? 뷔페 음식이 별로였나?”

 

내려야겠다는 말에도 차는 멈추지 않았다. 우리의 집과 점점 멀어지더니 기어이 작업실이 있는 역 근처까지 왔다.

 

룸미러로 윤두준이 나를 힐끔 훔쳐봤다. 잘못한 건 윤두준이었는데 내가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젠 진짜 내리고 싶어졌다.

 

윤두준의 사소한 거짓말 이력은 화려했지만, 나를 작정하고 속인 건. 그래, 이번이 처음이다.

 

“윤두준, 세우라고.”

 

“다 왔어, 다 왔어.”

 

합정역 근처 낮은 상가들이 줄지은 곳에 내 음악 작업실이 있었다. 홍대 지하에서 공연을 하는 무명 가수들이 종종 찾아와 녹음을 했고, 내 노래가 탄생하는 곳이자 두준과 나의 아지트였다.

 

보증금 삼천만원에 월세 50만원이 매달 나가는 이곳을 재작년 겨울 두준과 발품을 팔아 찾아냈다.

 

기어코 작업실 앞에 차를 댄 두준이 나를 따라 내리려 안전벨트를 풀었다.

 

“여기 견인 구역 됐어. 집으로 가.”

 

당연히 거짓말이다. 견인 구역은 무슨, 골목 곳곳에 전동킥보드가 세워져 있다. 차가운 내 말에 두준은 속아주는 시늉을 했다. 큰길 편의점에 들려서 요깃거리를 사온다며 차를 끌고 골목 너머로 사라졌다.

 

현관 도어락 키패드를 눌렀다. 비밀번호 1001* 두준과 내가 처음 만난 날짜다.

 

15년 전 가을, 한 중소 소속사에서 두준과 만났다. 두준은 그때도 까무잡잡한 피부에 호탕한 성격의 남자애였다. 주변엔 항상 사람들이 많았다. 예정대로 데뷔했다면 분명 인기 많은 가수가 됐을 것이다.

 

소속사 사장이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데뷔가 흐지부지 무산됐다. 연습생들은 모두 흩어졌는데, 그 와중에도 두준과 나는 사적으로 계속 만났다.

 

난데없이 교사가 된다며 수험생활을 하던 날부터 체육 교사 임용고시에 합격하던 날까지. 붙어살다시피 지내다가 임용 합격 발표가 나오는 날 두준의 자취방에서 축하주를 땄다. 그날이 내 첫 연애의 시작이었다.

 

작업실 2인용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두준의 어머니가 한 말이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결혼적령기. 그래, 한국은 이게 문제다. 백 살까지 산다는 마당에 시기적절하게 이루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때 되면 연애하고, 때 되면 취직하고. 때 되면 적당한 파트너 구해서 결혼까지...

 

“하아...”

 

대어들이 판치는 결혼 시장에서 윤두준은 못 해도 상위권이다. 얼굴 잘났고, 안정적인 직업에 집안까지 빵빵했다. 그렇다면 나는...

 

일정하지 않은 수입에 히트곡 하나 없는 무명 작곡가. 그나마 봐줄만한 건 얼굴뿐인데, 호스트바 할 거 아니면 거울 볼 때 기분이나 좋은 정도의 장점이다.

 

삑 삑삑 삑 삑- 키패드 누르는 소리가 나더니 두준이 돌아왔다. 그대로 집에 갈 줄 알았는데, 온다더니 진짜 한 손가득 먹을 걸 사서 왔다.

 

"앉아서 뭐해? 불도 안 키고."

 

두준이 작업실 불을 켰다. 탁, 하고 시야가 환해졌다. 나는 앉은 채로 고개도 들지 않고 두준을 맞았다.

 

“두준아. 우리 잠깐 생각할 시간을 갖자.”

 

“무슨 생각?”

 

“잠깐 떨어져 지내면서 서로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보자고.”

 

“너 뭐, 음악 때려치게?”

 

두준이 간이 테이블에 맥주와 안주거리를 늘어놓았다. 부스럭거리는 봉지 소리가 부산스럽다. 말투는 야식 메뉴를 묻는 것처럼 무심한 음성이다. 대본을 읽는 것처럼 심각했던 내 대사와 딴판의 장르다.

 

“아 자꾸 딴소리 하지 말고. 곰곰히 생각을 해봤는데, 어머니 말씀도 확실히 일리가 있어. 너네 집이나 우리 집이나 보수적인 건 마찬가지고, 이렇게 계속 만나다가는...”

 

“너야말로 자꾸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설마 내가 선 봤다는 것 때문에 그래?”

 

설마, 설마아-?

 

기가 차다 못해 헛웃음이 나왔다.

 

“너 지금 설마라고 했냐?”

 

“말 안 한 건 미안해. 우리 엄마 성격 알잖아. 안 갔으면 일 년 내내 사람을 달달 볶았을 거야.”

 

“그러니까아. 선 본 걸 도대체 왜 말 안 했는데?”

 

“너한테 굳이 얘기할 가치도 없었어. 형식상 밥만 먹고 헤어진 게 끝이었으니까.”

 

“그게 말이 돼? 너 나랑 사귀고 있잖아. 우리 지금 사귀는 사이 아니야? 애인이 있는데 반지까지 빼고 선을 봤다는 그 자체가 나는...!”

 

더 말하다가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최악도 이런 최악이 없었다.

 

“야, 됐고. 너 나가. 너 꼴도 보기 싫어. 당장 나가.”

 

두준의 어깨를 밀쳤다. 그 단단한 체구가 내가 미는대로 밀려났다. 까만 어둠이 내려앉은 밖으로 두준을 밀어 넣었다. 문이 닫히는 와중에 문틈으로 손을 밀어 넣은 두준이 나를 붙잡았다.

 

“기광아 잠깐만, 얘기 좀 해.”

 

“오늘 내내 빡쳐 있을 예정이니까 집이나 가.”

 

“이기광 잠깐...”

 

만...

 

쾅, 하고 문을 잠궜다. 밖에서 두준이 문을 두드리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한참 들렸다.

 

잠시 후 윗집 옥탑방 아저씨 고함이 울렸다. 시끄럽다고, 잠 좀 자잔다. 두준이 아까보다 작은 목소리로 죄송하다며 비둘기를 날렸다.

 

지금 내 앞에서야 저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두준의 마음을 도통 모르겠다.

 

나를 아직 사랑하기는 하는 건지. 나를 사랑하지만 결혼 시장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다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어머니를 핑계로 낯선 여자를 만나보고 싶었던 것인지. 뭐, 설마. 그건 아니겠지만...

 

두준이 사다 놓은 음식들이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 가슴이 시큰해졌다. 아,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서 두준과 다시 얘기해 볼 작정으로 눈을 감았다.

 

 

-

 

 

알람 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냉장고에서 뒹굴던 날짜 지난 샌드위치를 먹고, 식후 담배를 태우기 위해 문을 열었다.

 

쌀쌀한 가을바람에 잔뜩 몸을 웅크리고 쪽잠에 든 윤두준을 볼 줄 알았다면 지난 밤 그렇게 그를 내보내진 않았을 거란 후회가 밀려왔다.

 

“야, 두준아.”

 

“어, 으음... 기광아...”

 

눈 부신 햇살에 두준이 한쪽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날 올려다 봤다. 검지와 중지에 끼운 담배를 은근슬쩍 구부려 숨겼다. 두준은 내가 담배를 끊은 줄 알고 있다. (끊은 건 맞지만 심난할 땐 담배만한 게 없다.)

 

“미쳤어? 멀쩡한 집 놔두고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얘기 좀 하자니까... 잘 잤어?”

 

“우리도 이제 나이가 있어. 추운데서 자면 입 돌아가.”

 

두준이 피식 웃는다. 뭐가 웃기다고... 그리고 비장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이렇게 헤어질 순 없어.”

 

세미 정장 자캣 따위에 온기를 의지한 채 궁상맞게 누워 있는 주제에, 이렇게 헤어질 수 없다니. 두준의 모습이 처량했다.

 

자리를 툭 털고 일어난 두준이 내 앞에 섰다. 받쳐 입은 검은 반팔 티셔츠에 빠져나온 팔뚝에 오소소 일어난 소름이 보였다.

 

“춥겠다. 들어가서 얘기하자.”

 

“기광아, 나도 생각을 해봤어.”

 

“알았으니까 들어가서 얘기해.”

 

“까짓 거 하자, 까짓 거 우리도 결혼 해버리면 되지.”

 

“너가 이러고 있는 걸 보니까 내가 마음이 약해지긴 했는데... 나 진지해. 어젠 진심이었어. 우리도 앞으로를 생각해야 하는 나이잖아. 그것보다도 너 감기 걸려.”

 

두준이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왜 자꾸 걱정하는지 정말 모르겠어. 난 그냥 이대로도 좋아. 넌 안 그래?”

 

“좋았지, 어제까지만 해도 좋았지. 너가 뒤에서 그러고 다니는지 몰랐으니까.”

 

“아니라고 했잖아. 오해라고!”

 

점점 언성이 높아졌다. 이쯤되면 불같이 싸울 타이밍이었다. 그러고보니 싸운 지도 오래 됐다. 한 땐 죽기 살기로 싸웠던 시절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턴 그런 싸움조차 없었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윤두준은 보통 이 타이밍에 대화를 회피하고, 저녁 쯤 연락이 오곤 했다.

 

분명 그 타이밍이었는데, 고개를 푹 수그린 두준이 아무 말이 없다. 이젠 이런 싸움조차 지겹다는 것일까.

 

윤두준은 이런 언쟁을 질색했다. 그러니까 내가 먼저 보내줘야 할 것 같았다.

 

“...너 생각 정리되면 연락 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두준에게 시간을 주는 척, 빠져나갈 빌미를 제공해주는 것. 잘못한 사람은 윤두준인데, 나는 끝까지 비참하다. 하지만 더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다.

 

“기광아...”

 

잠시 후 두준이 고개를 들었다. 뜻밖에도 눈시울이 붉었다. 툭, 건들면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얼굴이다. 슬픈 영화를 보거나 아주 기쁜 일이 있었을 때 운 적은 많아도 싸우면서 윤두준이 울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기광아, 어제 내가 자꾸 장난 쳐서 그래? 미안해.”

 

“어제 때문이 아니라...”

 

“진지하게 얘기 시작하면 너가 화낼 것 같아서 무서워서 그랬어. 내가 진짜 잘못한 거 알아.”

 

윤두준이 울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꾹 깨문다.

 

“헤어지자고 하지마.”

 

그리고 엉엉 울음이 터졌다. 당황한 내가 어정쩡한 자세로 두준의 등에 손을 가져다댔다.

 

“야, 왜 울고 그래.”

 

...지금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이 누군데.

 

울음이 한동안 그치지 않았다. 애처럼 엉엉 울면서 한다는 말이 내게 미안하단 말 뿐이라, 결국엔 나도 같이 울었다.

 

“기광아, 나 너 밖에 없어. 내 전부야. 떠나지마...”

 

“울지마, 왜 울고 그래...”

 

“내 십 대, 이십 대, 삼십 대까지... 너 없으면 내 인생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제발 헤어지자고 하지마...”

 

코끝이 찌르르하다. 어제부터 시큰거렸던 심장이 아르르 녹았다.

 

“나도야. 자꾸 의심해서 미안해 두준아”

 

“아니야. 내가 다 잘못했어. 앞으론 무슨 짓을 하던 너한테 다 말할게. 다신 안 숨길게.”

 

아침 댓바람부터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옥탑방 아저씨가 등산복 차림으로 내려와서 우릴 흘려봤다. 두준이 퉁퉁 부은 눈으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한동안 잠잠하더니 또 이러네.”

 

아저씨가 혀를 쯧, 차고 가던 길을 떠났다.

 

나는 두준과 마주보고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바람이 차가워지고, 몇 번의 계절을 함께한 것처럼 우린 또다시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어쩌면 평생 같은 가을 햇살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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