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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마주친 그대

“쟤 누구야?”

 

두준의 쭉 뻗은 오른팔을 타고 내려가 검지손가락 끝에 걸린 사람은 얼마나 먹고 마신 건지, 위장에 있는 것들을 바닥에 토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웩. 우웨엑. 끊임없이 나오는 토사물에 주변 사람들은 이미 도망간 뒤였고 알바생만 울상을 지으며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준은 그 꼴에 열이 받았다가도 죽을 것 같다며 목에 맨 앞치마로 입을 벅벅 닦는 사람이 도대체 누군지 궁금해졌다. 제대로 맛 갔네.

 

“너 쟤 몰라?”

“누군데?”

“이기광이잖아.”

 

이기광이 누군데.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질문에 슬슬 짜증이 났다. 연예인이야 뭐야, 내가 어떻게 알아. 종석은 기광을 힐끔거리며 두준에게 속닥댔다. 쟤 입학하자마자 전교에 소문 쫙 났잖아. 또라이로. 또라이? 어. 첫날부터 술에 꼴아서 들어와서는 교수님 앞에서 자기가 대학을 왜 다녀야 하냐면서….

 

“아!!”

 

제 얘기를 들은 건지 뭔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는 기광에 종석은 헉. 소리를 내며 급하게 입을 닫았다. 모른 척해. 모른 척. 비틀대는 기광에게서 필사적으로 눈을 돌리는 종석과는 달리 두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광의 앞으로 걸어갔다. 가까이서 보니 키가 꽤 작았다. 마르기도 했고. 두준은 기광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기광이 넘어지려고 할 때 어이쿠, 소리를 내며 팔을 잡아주었다. 기광이 이미 풀린 눈에 억지로 힘을 주며 두준을 쳐다봤다.

 

“등신새끼…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게 한심하기 짝이 없네.”

 

한순간이었다. 두준의 손바닥에 따라 기광의 고개가 돌아가고 주변에서 작게 숨을 삼키는 소리들이 났다. 종석은 두준의 손에 잡혀 쓰러지지도 못하고 있는 기광을 보며 손으로 입만 막고 있었다. 윤두준 왜 저래? 미쳤나 봐….

 

“작작 마시고. 어? 취했으면 곱게 들어가서 자라, 새끼야.”

 

두준은 있는 힘껏 자기를 노려보는 기광의 뺨을 툭툭 쳐주고는 태연하게 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채워져 있는 잔을 홀랑 비우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어묵탕 건더기를 집어 먹었다.

 

“너, 너 쟤 알아? 분명 모른다고…”

“어. 모르는데?”

“근데 왜… 이 미친 새끼야! 너 고소 당하는 거 한순간이야!”

“당하지 뭐.”

 

미친…. 정작 당사자인 두준은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컴공 윤두준이 ‘그 이기광’을 팼다더라, 술집에서 개싸움이 났다더라, 머리에 술병을 깼다더라, 이기광이 고소한다더라….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채 소문은 점점 커지기만 했다. 두준은 아무리 저를 보며 수군대도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방만 대충 메고 밥이나 먹으러 가는데 우연히 발견했다. 이기광을.

 

옆에 벤치가 있는데도 바닥에 주저앉아서는 양팔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 꼴이 멀리서부터 두준의 심기를 건드렸다. 뭐야 저건?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꽤나 익숙한 모습이었다. 또 너냐? 발로 툭툭 건드리니 기광은 냅다 두준의 발목을 잡고 봤다.

 

“잡았다.”

“뭐야?”

“너지? 찾아다니느라 힘들었다 씨발새끼야…….”

 

그리고는 예상대로였다. 놓으라고 난리인 두준과 절대 안 놓다가 결국 두준을 넘어뜨린 기광… 한순간에 엉겨붙어 손에 닿는 대로 주먹질을 해대고 쥐어뜯고 밀쳐내느라 난리였다. 길을 가던, 밥을 먹던 학생들이 모여 싸움을 구경하고 소리 지르는 사이 두준의 머리가 있는 대로 뽑히고 눈에 멍이 들었고 기광의 입술이 터져 피가 샜다. 싸움이 멈춘 건 교수님들이 밥 먹다가 뛰어나온 후였다.

 

-

 

“그래서 왜 싸운 건데?”

“걔가 먼저 쳤어.”

“……따지고 보면 니가 먼저 시작한 거지.”

“뭐.”

 

두준은 무슨 말을 들어도 인정하지 않았다. 시작하기는 뭘 내가 먼저 시작해? 걔가 먼저 열 받게 했으니까 걔 탓이지. 그러면서 모른 척했다. 그래, 너 잘났다, 근데 이기광이 너 죽인다는데 어떡할래? 두준은 어깨만 으쓱했다.

 

이기광이 건물마다 죽치고 앉아있더라, 맨날 술 마시느라 수업도 안 나온다더라, 허구헌 날 싸우고 다닌다더라, 완전 미쳤다더라……. 그런 얘기들이 두준의 귀에도 자연스레 흘러들어왔지만 두준은 신경도 안 썼다. 그러거나 말거나. 굳이 피할 이유도 없었고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제대로 밟아주겠다고 오히려 이를 갈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기광을 잊고 지내며 공부에만 열중하다 보니 한 학기가 끝나있었다. 두준은 방학이고 뭐고 감흥도 없었다. 햇빛 쨍쨍한 하늘을 보며 멍이나 때리고 있다가 알바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도 없고. 시간도 때우고. 별생각 없이 자취방 근처 편의점에 지원했더니 덥석 붙어버렸다. 월요일부터 나올 수 있어요? 그래서 된다고 했다. 하루 종일 바코드 찍고 집에 가면 자고 출근하면 바코드 찍는 나날들의 반복이었다. 지루한 낟들이었지만 두준은 별생각이 없었다. 그냥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솔직히 재미없었다. 심각하게 재미없었다. 두준은 폐기 삼각김밥의 밥알을 씹으면서 편의점 문이나 노려봤다. 아무도 없었지만 더 아무도 안 오길 바라면서 한참이나 문만 쳐다봤다. 하늘이 두준의 바람을 들어주었는지 교대 시간이 될 때까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조용한 편의점에서 두준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가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슬슬 정리하기 시작했다. 두준의 뒷 타임 알바는 성실한 사람이어서 언제나 그랬듯 20분이나 일찍 와서는 두준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고생했고, 가기 전에 저거만 좀 치우고 가줘.”

“저거?”

“응. 밖에.”

 

아, 귀찮게……. 궁시렁거려도 네 얼굴이 더 무서우니 부탁한다는 말뿐이었다. 이게 칭찬이야 욕이야. 뒤통수만 벅벅 긁고 주머니에 손 꽂고 편의점을 나섰다. 또 어떤 새끼야… 잔뜩 신경질을 내면서도 두준은 편의점 주변 청소를 소소한 퀘스트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루한 일상에 가끔 있는 특별 퀘스트. 처리할 상대를 알아보기 위해 편의점 뒤쪽을 둘러봤다. 상대는 플라스틱 의자에 몸을 축 늘어뜨린 채로 하늘을 보고 앉아있었다. 어디선가 이미 술을 마시고 온 건지 테이블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술 냄새가 진동했다. 알코올 중독자는 이래서 싫어.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발을 툭툭 찼다.

 

“저기요. 저기요 아저씨, 집에 들어가세요. 예? 여기서 이러지 말고.”

“누구보고 아저씨래…….”

“여기 아저씨 말고 더 있어요? 그만 들어가세요.”

 

인상을 팍 쓰고 어깨를 건드리니 팔을 휘적댔다. 왜 여기서 난리야. 잔뜩 짜증이 나서 머리채 휘어잡고 고개 꺾어서 들어 올렸더니 보이는 얼굴은 아저씨가 아닌 이기광이었다. 두준을 알아보는 건지 못 알아보는 건지 풀린 눈으로 가만히 보고 있기만 했다. 또 너냐…. 기광을 따라 고개를 꺾었더니 눈이 깊게 마주쳤다. 어딜 그렇게 응시하고 있는 건지 모를 눈을 한참이나 보다가 시선이 내려가 살짝 열린 입술로 꽂혔다. 어디서 또 쳐맞고 다니는지 피딱지가 져있었다. 두준은 불편한 심기에 손으로 기광의 턱선을 쓸어내려 세게 턱을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암전.

 

긴 눈이 닫힌 채로 속눈썹을 파르르 떨다가 숨이 가파질 때쯤 고개를 틀었다. 두준은 처음부터 눈을 뜨고 그런 기광을 하나하나 뜯어 보다가 입술이 떨어짐과 동시에 머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놨다. 그리고 다시 양 뺨을 감싸고 키스. 얼마나 우악스럽게 잡고 있었는지 기광은 얼굴이 잔뜩 뭉개진 채로 켁켁대기 바빴다. 눈물을 매달고 노려보는 눈빛에는 독기가 없었다. 아무리 힘을 주고 있어도 초점도 제대로 못 맞췄다.

 

“지루했는데 잘됐네. 막차도 끊겼는데, 어떡할래?”

 

두준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

 

 

홧김에 기광과 밤을 보내고 두준은 일찌감치 그곳을 벗어났다. 큰길이 나올 때까지 걷다가 아무 편의점에 들어가서 맥주 한 캔을 샀다. 아침부터 미친 사람처럼 술 마시며 걸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런 고민은 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났구나. 본인의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했다. 한참이나 걷기만 하다가 오늘은 그냥 알바를 째야겠다고 생각했다. 몰라. 생각하기 싫어. 다 마신 캔을 발로 밟아 구석으로 차버렸다.

 

알바를 째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치고는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계속 울리는 핸드폰을 무시하고 집에서 누워있기만 했다. 눈만 꿈뻑대다 보니 밤이 와서 그대로 잤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피곤했고 자고 일어나도 졸렸다. 두준은 어느새 밝은 하늘을 보며 긴 하품을 했다.

 

사죄의 의미로 일찌감치 편의점으로 나섰다. 이럴 거면 어제 짼 의미가 있나. 맨날 입는 추리닝 바지 챙겨입고 느린 걸음으로 걷다 보니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또 기광이었다. 또. 또 너야.

 

왜 또 너야. 왜 계속 너야. 왜 자꾸 눈에 띄는 거야. 두준은 길 한 가운데에 멈춰선 채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자꾸 나타나 흔든다. 매일 굴곡 없이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에 돌을 던진다.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싫어하는 사람치고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기광의 앞으로 걸어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은행을 밟아 터지는 소리가 났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쓰레기통 옆에 쪼그려 앉은 기광의 앞에 서서 내려다보니 기광은 턱을 쭉 올리고 두준을 올려다봤다.

 

“어제 안 나왔더라.”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그러게.”

“……너 이상하다.”

 

타격이 없는 듯 어깨만 으쓱하는 기광을 보니 머리가 더 아파졌다.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 두준은 기광이 이해되지 않았다. 언제는 죽일 것처럼 굴더니 지금은 친구처럼 상관한다. 두준은 혼란스러워하다가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너 나 좋아하냐?

 

“미쳤냐?”

 

그치. 그건 아니지.

 

“나 너 고소하려고 온 거야. 니가 나 줘팬 거 기억 안 나냐? 좋아하기는 무슨, 양심도 없지.”

“고소 못해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그놈의 고소 타령….”

 

두준이 비아냥대자 기광은 눈을 가늘에 뜨고 기분 나쁜 표정으로 두준을 노려봤다. 다짜고짜 쳐맞은 사람 기분은 생각도 안 하는구나. 웃기는 새끼네 이거. 진짜 고소할 생각도 없었지만 괜히 괘씸해져서 기광은 다른 대안을 내놓았다. 귀찮게 고소 당하기 싫으면 한 대만 치게 해줘. 물론 얼굴 칠 거야. 두준은 잠깐 고민하다가 얼굴에 상처가 생기면 안 될 이유는 없는 것 같아 그러라고 했다. 어느 쪽 칠래. 오른쪽? 왼쪽? 기광은 고민하는 척 흐음, 소리를 내다가 방심하고 있던 두준의 얼굴에 냅다 주먹을 내리꽂았다. 두준은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어때, 방심하고 있다가 맞으니까 존나 아프지?”

 

잔뜩 의기양양해서 웃어대니 두준은 침을 모아 퉤 뱉었다. 쪼끄만 게 주먹은 맵네. 얼얼한 턱을 매만지다가 땅을 짚고 일어났다. 이리와 봐. 손을 뻗어 기광의 멱살 부근을 잡으려는데 기광은 재빠르게 피하며 코를 틀어막았다.

 

“니 손에 은행 묻었어.”

 

그제서야 자기 손을 보니 터진 은행이 지저분하게 묻어 있었다. 구린내는 이미 손을 타고 몸 전체로 밴 것 같았다. 노골적으로 인상을 쓰고 자기를 피하는 기광을 본 두준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 재밌지.

 

“어쩌라고…….”

 

그대로 기광의 흰 티를 잡고 당겨 입술을 박았다. 새하얀 티셔츠에 은행이 잔뜩 짓물러 냄새가 퍼졌다. 열 받은 기광의 표정을 보니 두준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샜다. 꽤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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